범죄실화류를 읽어보면 이 세상 거의 대부분의 살인사건은 홧김에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드라마나 소설처럼 치밀하게 두뇌를 쓴 계획적인 범죄는 거의 없다는 것이죠.그냥 홧김에 앞뒤 안 가리고 흉기를 휘두르다가 상대가 죽자 깜짝 놀라 당황하다 놀라서 도망가는 것이 살인자들의 평균이라고 하네요.물론 이들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데 대해 크게 당황하고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비단 이런 극단적인 지경에 이르지 않더라도 홧김에 저지른 일에 후회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특히 분노를 못참아서 막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남자들의 경우는 홧김에 휘두른 주먹질의 결과 엄청난 합의금으로 끙끙 앓는 일도 있습니다.아! 그때 좀 참았더라면...하고 후회하지만 이미 저질러 버린 일은 엎어진 물입니다.
극도로 화난 상태에서 뿜는 욕설과 막말에선 실제로 독하고 악한 기운이 나온다고 합니다.이런 기운은 그 독기를 받는 사람에게도 치명적이지만 분노를 퍼붓는 사람에게도 좋지 않습니다.이렇게 성질을 부리는 사람들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참기만 하면 안 돼. 출구를 마련해줘야지." 하고 말하지만 성질부리는 것도 버릇이 되면 고약합니다.더군다나 날벼락 맞는 피해자 입장에서도 생각해봐야죠.
예전 인터넷이 잆던 시절, 화가 나서 항의하기 위해 편지를 썼으면 그 편지를 바로 부치지 말고 책상서랍 속에 한 달만 넣어두라는 조언이 있었습니다.한 달 후에 그 편지를 다시 읽어서 그때도 부쳐야겠다 생각하면 부치라는 것이죠.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한 달 전의 그 편지를 읽어보고 "안 부치기를 잘했다"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고 합니다.그만큼 분노에 치받칠 때의 마음과 나중에 냉정을 찾을 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한 달까지 갈 것도 없이 일주일만 여유를 가져도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을까요.
인터넷이란 것이 요물입니다.우체통에 갈 것도 없이 바로 연락을 취할 수가 있으니 그만큼 후회할 일도 많습니다.나 역시 화가 돋구는 글을 받아본 적이 있지만 바로 반응 안 하고 며칠 있으면 괜찮아집니다.사실 주먹싸움과는 달리 글이나 말로 싸우는 게 승패가 분명치 않아서 끝없는 소모전이 되기 쉬우니 그런 일을 계속 하는 것도 지겨운 일이지요.은근히 사람 정신력 갉아먹는 짓이기도 하고요.그러니 명분이 무엇이든 간에 우선은 한 며칠 참아볼 일입니다.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굳이 서방질이 아니더라도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에서 감행한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드뭅니다.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정의로운 분노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의 분노가 정말 정의를 위한 분노인지 내 성질 못이겨 하는 분노인지는 조금 냉정히 따져보면 다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원래 인간이 편하자고 만들어놓은 과학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래도 그 최종책임은 기술이 아닌 인간이 져야 합니다.인터넷을 통한 소통도 예외는 아니겠지요.소통의 도구가 오히려 불통을 조장한다면 결국 괴로운 것도 인간입니다.소외라는 거창한 용어를 동원할 것도 없이 분노를 다스리는 힘만 갖추면 큰 난관은 해결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