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수집하는 날, 폐지더미에서 시드니 셀던 전집이라고 씌어진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어...이건 내가 갖고 있는 건데...다른 건 없나...하고 여기저기 뒤져서 일곱권을 찾아냈습니다.제3권이 없더군요.음...이 소설이 뭘까 궁금해졌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그 제3권이 <신들의 풍차>입니다.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대통령 시절 이야기인데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소설이지요.배경은 냉전 시대의 루마니아입니다.차우세스쿠 부부가 동유럽의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면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지만 냉전시기에는 나름대로 자주노선을 내세워 꽤 짱짱하던 체제를 다졌습니다.더군다나 셀던 특유의 이야기 솜씨를 알고 있는 터라 이 소설이 궁금했거든요.공짜로 얻겠구나 했는데 하필 이 소설이 빠진 채 폐지일에 나온 겁니다.아니면 폐지더미 깊은 곳에 파묻혀 내가 못찾았을 수도 있지요.
셀던은 한때 영어권 작가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였습니다.영어권작가 하면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대작가들, 미국의 헤밍웨이나 포크너를 읽어야 지적인 독자로 간주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실상은 셀던이 가장 인기가 있었지요.당연합니다.어떤 이들은 셀던은 너무 자극적인 설정을 한다...다소 신파적이다...등등 혹평을 하기도 하지만 별다른 준비운동 없이도 술술 읽어치울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재주를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읽은 셀던 작품 중 최고로 꼽는 것이 <벌거벗은 얼굴>입니다.이 소설은 셀던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정통 추리물입니다.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막판에 마피아와 대결하는 결말이 볼 만합니다.셀던은 선정적이고 뻔한 이야기만 쓴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이들이 읽어볼 만합니다. 이 소설은 그의 초창기 작품인데 역시 그 특유의 자극적인 장면이 많아 셀던 특유의 개성을 드러냅니다.역사물 중에는 <시간의 모래밭>이 좋았습니다.스페인의 바스크 분리주의자 이야긴데 스페인 내전 때가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당시 격동의 유럽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도 제공하지요.
작품에만 신경 쓰고 작가의 이력에 무관심한 이들도 많지만 작품 이해를 위해서도 작가의 이력을 알아보는 게 좋습니다.또 작가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보는 것 자체도 매우 재미있습니다.셀던의 이력 중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시나리오 작가 시절 대표작이 '내 사랑 지니'라는 것입니다.알라딘 마술램프에서 뿅 하고 이쁜 요정이 튀어나오는 드라마지요.그 요정 역을 맡은 배우는 지금 몇 살일까요? 남자 주인공이었던 토니 커티스가 1924년 생이니 그녀도 꽤 나이가 들었겠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지니라는 단어는 꽤 익숙합니다.소녀시대 대표곡인 '소원을 말해봐'의 가사에도 나오면서 소원을 들어주는 미인을 상징하니까요.이 지니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사람이 셀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내 친구는 셀던의 작품 중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깊은 밤 깊은 곳에>를 가장 재미있다고 꼽더군요.여러분은 그의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