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윤석열이가 검찰총장 되어 반란을 일으킨 이후 서초동 교대역과 서초역 일대가 광화문 버금가는 장소와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검찰청, 대법원, 윤석열이 우리가 몰려 있는 곳이어서다. 지난 1011일에는 촛불행동이 조희대 대법원 앞인 서초역 8번 출구에서 집회하고 강남역 쪽으로 행진했다.

 

대검찰청은 물론 대법원, 심지어 아크로비스타까지도 권위주의에 절은 건축물이다. 거기서 일하는 자들과 사는 자들을 그대로 반영한다. 아니다. 거꾸로다. 그런 상징을 조작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지었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이가 싸지른 친위쿠데타 이후 속속 밝혀지는바 이 건물들로 상징되는 법과 힘을 쥔 사악한 무리가 서초 풍경을 뒤집어놨다.

 

서초(瑞草)’서리풀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서리풀은 벼다. 본디 오래전에는 이곳이 질 좋은 쌀 생산지였다고 전한다. 우리 생명 공동체 존속에 단연 으뜸으로 공헌한 식물 생명체가 쌀이라는 사실을 임을 생각할 때 이 살림 터전에다 죽임 성채를 세운 짓은 아무래도 음모다. 그에 맞서 씨알풀(民草)’이 살해 풍경을 도로 뒤집어놓으려 한다.

 

아니다. 아미타브 고시-육두구의 저주저자- 어법에 따르면 이 장소와 풍경 자체가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들리지 않는 음성으로 씨알풀을 부르고 씨알풀은 거기 응답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장소와 풍경은 우리랑 공생하는 당사자로서 반란과 살해에 맞서는 전선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죽은 땅덩어리와 텅 빈 허공이 결단코 아니다.

 

서리풀을 떠나며 나는 소스라치듯 깨닫는다. 그동안 숲과 물을 걷고 난 뒤 밤이 되면 문득 낮에 걸었던 숲과 물이 마치 사람처럼 그리워지며 어둠 속에 남겨진 그 고독을 짠해하던 심사가 어디서 발원하는지를 말이다. 비록 약한 의인법이긴 하지만 장소와 풍경을 사물 취급하지 않았다는 증거니 기나긴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한다. 정색하고 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주 가는 식당이라도 주인과 안면 트는 집이 있고 그렇지 못한 집이 있기 마련이다. 뒤 경우인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하려고 카드를 주니 느닷없이 이런다: 현금 없으신가 봐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순간 당황했다. 잠시 뒤에 한 내 대답은 이렇다: , 비용 증빙 때문에요.

 

식당 문을 막 나서는데 등 뒤에서 주인이 들으라는 듯 말한다: 세금 얼마나 내길래. ‘세금 많이 내나 보네!’ 하고 놀라는 말투가 아니다. ‘대체 세금 얼마나 낸다고···.’ 하고 비아냥거리는 말투다. 순간, 또 당황했다. 잠시 뒤에 한 내 생각은 이렇다: 다음에는 민망해서 이 집 못 오겠구나.

 

사실 한의사는 세금 관련해서 비용 증빙이 쉽지 않은 직업군에 속한다. 관내 식당에서 밥 먹은 영수증만 인정하다가 최근 들어 관외 것도 인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수증을 챙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경우를 당하면 내 가난을 일부러 드러내는 듯해 시선이 가리산지리산한다.

 

필경 그 식당 주인도 세금을 문제 삼아서 현금 결제를 요구했을 테다. 아무리 줄 서서 먹는 집이라 해도 세금, 뭐 얼마나 된다고 신경 쓰냐?’ 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결국 나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다른 처지에 섬으로써 이런 일이 일어난 셈이다. 그런데 왜 그는 내게 비아냥거리는가?

 

세금 문제로 신경 쓰는 같은 상황에서 탈세를 대놓고 시도하는 쪽이 도리어 그렇게나마 증빙을 시도해 비용 처리하려는 쪽을 나무랍게 대하는 행동은 아무래도 괴이쩍다. 자기기만이거나 변형된 자기혐오쯤 되지 싶다. 식민지 그늘에서 뒤틀어진 어떤 부류 자화상 같아서 영판 속 쓰리다.

 

그나저나 가성비 좋은 단골 식당 하나 잃었다 싶으니 이 또한 심사 보깨는 일이다. 도시 식당이 얄팍한 음식으로 사람을 모욕하는 풍조가 갈수록 가파르게 가속해 가는 마당이라 허탈감이 뜻밖에 옴팡지다. 사람 사이 쓰렁쓰렁해질 때면 늘 하던 대로 나는 허영허영 휘적휘적 숲으로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명시니는 왜 신실을 범했을까?>

 

망묘루뿐이 아니었다. 명시니는 신실(神室)을 범했다. ‘구경이라는 보도는 취재 없이 받아쓴 표현이다. 참으로 형언 불가한 호로쌍년이다. 신실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가 초미 관심사다. 단언컨대 조선 신령들을 왜() 악귀, 무엇보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 무릎 꿇리는 주술 의식 따위를 행했다고 본다. 저들 패거리가 집권을 도모한 이후 벌여 온 해괴한 협잡질을 종합하면 이 간주는 음모일 수가 없다. 그보다 더한 짓을 했으면 했지, 더 이상 합리는 불가하다. 거기서도 CCTV를 껐을 테니 먼지 한 톨까지 뒤져서 흔적이나마 찾아내야 한다. 그 짓을 하도록 허락한 최고위직 공무원이 누군지도 밝혀 단죄해야 한다. 이 나라 역사와 전통을 어디까지 모욕했는지 도통 알 수 없으니 분하기 짝이 없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 꼭대기에는 저 호로쌍년 같은 토착 왜구 매국노가 똬리 틀고 앉아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번 반란 세력은 아마도 온전히 척결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일천오백 년을 yuji해 온 힘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겠나. 안간힘 쓰는 개돼지들을 향해 저들은 썩은 웃음을 날리고 있다. 모르지 않으니 이번 깨달음으로 빛의 혁명은 비로소 저들과 맞짱 뜰 수 있는 세력으로 자라났다. 더는 질 줄 알면서 싸우는 싸움이 아니다. 지치지 말고 다 함께 웃으며 간다. 끝장낼 때까지!”

 

신문 보도를 읽고 분노가 치밀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나중에 글을 되작거리며 다시 읽던 중 문득 특별한 한 생각에 가 닿는다. 촉촉이 비 오는 일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나는 종묘행을 결정한다. 명시니 범행을 속죄하기 위함이다. 어떤 곡절에서였든 이 나라 인민이 뽑아 놓은 대통령 배우자, 아니 실질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니까 인민 가운데 속죄 필요성을 깨달은 사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 판단해서다. 물론 죄지은 당사자가 스스로 엎드려야 마땅하지만, 그럴 리 없으므로 대속(代贖)한다는 말이다. 대속은 명시니를 은총으로 극형에 처할 묘수다. 남이 짐을 져주었으니 은총이고, 빌 기회가 날아갔으니 극형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방법이 그런 인간 부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다.

 

한가위 연휴 무료입장이라 관람객이 많다. 저들과 다른 목적으로 온 나는 저들 행락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준비한 정수를 따른다. 통렬한 가슴으로 속죄한다. 비장한 넋얼로 이 나라를 중첩 식민지에서 해방해 주십사 기원한다. 전혀 다르게 열린 눈길로 정전을 바라본다. 사뭇 다른 발길로 숲을 걷는다. 죽음에서 비롯한 삶인 버섯들이 오늘따라 한껏 고요한 함성으로 나를 맞는다. 그들 앞에서 숨 멎기를 거듭하며 세 시간여 제를 올린다. 더는 견딜 수 없이 묵직해진 천추 통증을 달래며 돌아선다. 밥 먹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