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은 매년 보수교육을 받는다. 그 평점 없이는 면허 신고가 불가한지라 요식행위일 망정 피해 가지 못한다. 나도 내 의학적 관심사에 공감하고 뜻 나눌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 교육 일정을 눈 밖에 둔다. 최소한 요건만 갖추고 남은 시간은 걷는다. 오늘은 일찌감치 필수 절차를 마치고 삼성역으로 간다. 한양대역에서 내려 둔치로 향한다. 지난번 두물개 이야기를 중랑천, 또 중랑천과 만나는 청계천 이야기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여기 두물개에서 경강(京江)-한강 가운데 서울을 지나는 부분을 따로 일컫는 말-과 만나는 중랑천은 그런 지천 중에서 가장 크다. 양주 불곡산에서 발원해 (내 발길이 닿은 곳만 헤아려도) 회룡천, 호원천, 도봉천, 무수천, 당현천, 방학천, 우이천, 마침내 청계천과 만나며 물기운을 더해 경강으로 흘러간다. 서울 북동부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평야 지대를 만들어서 중요한 교통 경로로 작용한다: 3번 국도, 동부간선도로, 지하철 7호선, 1호선.
중랑천에 이런 곳도 있다
가장 나중 남쪽 끄트머리에서 중랑천과 만나 또 하나 작은 두물머리를 이루는 청계천은 작지만, 한강 못지않게 중요한 지리적, 심지어 정치적 위상을 지닌다. 한강이 서울 전체를 동에서 서로 관통한다면, 청계천은 서울 핵심을 서에서 동으로 관통한다. 청계천을 따라서 종로(6번 국도)를 포함한 동서 방향 주요 간선도로 여럿이 늘어서 있다. 지하철 1, 2-크게는 3, 4, 5-호선도 거기 해당한다. 물은 길을 열고, 길은 권력을 실어 나른다.
청계-중랑 두물머리
청계천을 따라가며 보니 잉어, 청둥오리, 남생이, 왜가리가 산다. 역한 냄새까지 풍기는 오염된 물에 산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보다 안쓰럽다. 우리야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저들은 병든 상태에서 시난고난 살아가는 거 아닐까, 걷는 내내 분노와 애통이 칠떡칠떡한다. 숲의 필연에서 물로 온 까닭 가운데 하나를 겪는 일인데 훨씬 더 맹렬해서 어렵다. 은은하게 맵고 독한 물기운이 온몸에 배어드는 현실을 정면으로 받아안고 숙의는 출발한다.
중랑천이든 청계천이든 우리는 지금 물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가? 인간에게 필요한 비생명 도구, 똑 그뿐이다. 인간 생명이 물에서 왔다는 진실은 아득한 그 이상으로 물색없고 의미 없는 ‘정답’에 지나지 않는다. 제국주의가 물과 물살이 생명에 가하는 학대와 학살은 식민지 인간과 동물과 숲에 가하는 학대와 학살보다 훨씬 심대하며 근원적인데 아직 관심은 거기에 닿지 못한다. 물이 구원인 꼭 만큼 물 살해는 원죄다. 어물거릴 틈이 없다.
원전 오염수, 항생제, 플라스틱, 무기·위성 실험과 시추·탐사선과 대형 선박이 일으키는 소음···이루 다 말할 수조차 없이 뻔뻔하고 잔혹한 폭력에 살해당하는 물, 저 강과 바다로 내가 울며불며 달려가는 일은 이제 더는 어떤 묘사조차 필요하지 않은 투신이다. “숲에서 물로”를 말하자 “선크림 꼭”으로 답하는 사람에게 유머를 던질 시각이 지나버렸다.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하염없이 물길 따라 걷고 또 걷는다. 문득 멈춘다.
청계천이 정릉천과 만나는 꼬마 두물머리를 지나 성북천과 만나는 또 다른 꼬마 두물머리로 가는 중간에 우뚝 선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잔해 세 개를 본다. 청계천 판자촌을 강제 철거하고 만든 복개도로 또는 그 위 고가도로를 떠받쳤던 기둥들을 일부러 남겨둔 것이리라. 복원된 청계천 푸른 아름다움과 대비하려는 뜻일 테다. 참 얄팍한 이명박스러운 협잡이다. 청계천 복원이 한낱 눈속임 토건임을 모른다면 이는 강아지 뒷다리 들 일이다.
나는 이 두 꼬마 두물머리를 이루는 정릉천, 성북천과 인연이 깊다. 여기서 북쪽으로 1km도 채 안 되는 지점에 두 물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6번 국도가 있다. 그 6번 국도 북쪽 300m 중간 지점 소재 중학교에 다녔다. 동소문동 산동네 살았으니 주로 성북천 따라 난 길을 걸어서 오갔다. 정릉천은 제기동 쪽으로 갈 일이 있을 때 가끔 지나갔다. 정릉천과 맺은 인연은 초등학교 때 더 깊었다. 청수장 쪽 상류 지점을 누비며 놀았기 때문이다.
정릉-청계 두물머리
성북-청계 두물머리
서울 핵심에서 청계천은 6번 국도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서울 전체에서 한강은 6번 국도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내 인생에서 6번 국도와 한강, 그 지류인 청계천·중랑천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남한강 발원지인 오대산 우통수 아래 간평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6번 국도, 그리고 한강을 따라 서울에 왔다. 서울에서 60년째 살고 있는데 거의 전 기간을 6번 국도변 또는 한강 가까운 주변에 살았다. 우연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내 진료실은 중랑천에서 300m, 6번 국도에서 1km 거리에 있다. 14년째 여기서 하루 12시간을 머문다. 내가 삶의 여정을 이렇게 길과 물로 서사화할 때 처음에는 길, 그러니까 6번 국도 중심이었다. 식물 공부 필연으로 숲에서 물로 나아가고 나서야 화들짝 깨달았다, 길은 물에서 왔다는 진실; 6번 국도가 남한강에서 발원했으며, 나는 남한강을 따라와 여기 있다는 진실. 나는 물-사람이구나, 아니. 나는 사람-물이 맞구나.
사람-물로서 내가 물에 드는 들머리에서 동시성으로 팡이실이 된 존재가 바로 해월 최시형과 수인(水仁) 이슬(李蝨)이다. 해월의 마지막 인생 도정은 내 인생 전체 도정과 겹친다. 그 도정이 완성되는 꿈으로 수인이 있다. 수인이 바라보는 개벽 세상은 물 모심(侍) 팡이실이 세계다. 사상이 옹글어 가는 과정과 비전이 구체적인 면에서 같지는 않을지라도 근원에서는 온이 같다. 그들이 맞서 싸운 제국과 내가 맞서 싸우는 제국이 어찌 다르랴.
물론 나는 동학당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동학당이 아니라고 할 때조차도 나는 동학 하는(do) 사람이 맞다. 제국주의 서학, 특히 과학이라 이름하는 민속 인식론을 가로지르는 범주 인류학 모퉁잇돌 놓기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일 또 어떤 범주 인류학을 상상할지 아직 모른다. 나는 내일 또 어떤 물 모심으로 나아갈지 아직 모른다. 비 인과적 동시성에서 해월과 수인을 만나듯 새로운 물과 만날 일을 다만 설렘으로 기다릴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