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물 이야기는 김포시 통진읍 보구곶으로 가면서 출발한다. 지하철보다 갈아타는 횟수가 적다는 이유로 버스를 탔는데 여간 지루하지 않다. 특히 신촌역에서 강화터미널을 왕복하는 버스는 가끔 막히기도 하고, 김포 들어가면서는 마을버스처럼 자주 서는 데다가 외진 마을까지 돌아 나오느라 직행이라는 이름과 영 다르게 꾸물댄다. 설상가상 난지 기산지 책임 묻기가 어정뜬 실수로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가 버린다. 그 한 정거장이 물경 강화대교다. 졸지에 강화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니 심사가 사뭇 헝클어진다. 다행히 예상치 못한 발견 하나로 단박에 정돈된다.

 

처음부터 물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택한 길 들머리께에서 걸어 건널 수 있는 강화교를 본 것이다. 다리 앞에는 평화의 길이라는 글귀가 씌어 있다. 좌우로 쳐진 철조망이 그 평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준다. 강화도에 갈 생각은 아니지만 얼마만큼 그 다리를 걸어 물 위에 선다. 직접 닿지는 못하더라도 철조망 사이로 보지는 않으니 한결 낫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이어질 그 시야를 이렇게나마 걷어내면서 출발하니 위로로 삼는다. 물을 따라 난 길로 접어들어 걸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방치와 후패 풍경은 심사를 다른 결로 흔들어 댄다. 철조망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철조망은 완고해 보이지만 거기로도 시간은 흐른다. 벙커를 포함한 군사 시설도 모두 녹슬고 삭았으며 인적이 전혀 없다. 걷는 내내 딱 한 번을 빼고는 군인을 보지 못했다. 강과 바다가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 분명하지는 않겠지만 여기쯤이다 싶은 지점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느닷없이 군 차량이 나타나 제지한다. 한참 멀어지는 내 모습을 확인한 다음에야 떠난다. 나는 다시 돌아와 기어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물의 정치적 죽음에 애도하며 삼 배를 올린다. 물의 부활을 기원하며 다시 일 배를 올린다. 건너편 개풍군을 바라보면서는 눈물을 흘린다. 가슴이 저려온다.



김포와 강화 사이 좁은 바다(염하강)


한강과 바다가 만나니 여기도 두물머리다. 좀 더 분명히 하자면 임진강도 만나니 세물머리다. 지금 지명으로 남아 있는 조강(祖江)은 옛사람들이 이 부분을 따로 불렀던 이름이다. 한강, 임진강, 조강이 만난다고 해서 삼기하(三岐河)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범위를 좀 더 넓히면 예성강도 만나니 네물머리다. 네물머리는 백제 건국 때부터 삼국, 고려, 그리고 조선, 심지어 국권 상실기까지 2천 년 동안 가장 중요한 물머리로 위상을 떨쳤다. 제국주의 마수에 걸려 분단되고 내전까지 겪으면서 이 물머리는 돌연한 죽음을 맞았다. 검문소에 막혀 내 물 제의 또한 돌연한 죽음을 맞는다.



세물머리-철조망 밑바닥에 미미하게만 보인다


 

카메라 초점도 철조망을 넘지 못해 강화도 북단과 개풍군이 희미하게 보인다.


크게 돌아 용강리 쪽으로 나오려던 물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아쉽지만 들어온 길과 최소한으로 겹치게 경로를 다시 구성해 되돌아온다. 들어올 때는 군대가 닦은 길과 간척지 논길을 주로 걸었는데 나갈 때는 대부분 마을 길을 걸었다. 방치와 후패의 풍경은 마을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외지인 전원주택이나 별장 빼놓고는 까부라진 자루처럼 힘없고 지친 듯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한다. 통일되면 무조건 좋아진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려면 철조망에 막힌 지금 같겠는가. 지도 검색 때 점심 식사를 위해 확인해 둔 음식점은 한 군데 빼고 모조리 폐업 상태다. 이런 세상에···.


 

영업 중인 그 음식점은 혼자 들어갈 수 없는 전문 음식점이다. 2인분 시키겠노라 하니 그러면 괜찮단다. 허기질 정도로 배가 고프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 우주 최강 가난뱅이 한의사로는 여태껏 써보지 못한 거액을 이 절반 실패한 물 제의 현장에서 음식값으로 치르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김밥 한 줄 들고 오지 않는 것을 몇 번씩이나 후회했다. 그나마 딸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포장해 가니 조금 위안은 된다. 인간을 떠나온 곳에서 불가피하게 인간 신세를 져야 하는 이런 행로 중 가장 심한 모순 의식에 휘감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실패가 준 넉넉한 시간이라도 잘 써야지.



문수산성에서 본 보구곶, 그 너머 개풍군의 아린 풍경

 

전화를 건다. 김포시 월곶면 갈산리 출신인 한국화가 김구가 내 오랜 벗이다. 여기 왔으니, 오랜만에 만나서 막걸리 한잔하는 게 좋겠다. 마침 화실 작업이 끝나고 나오던 차란다. 막걸리에 파전 한 장 시켜 놓고 그가 아는 김포 이야기를 듣는다. 조강, 전류리, 준치, 건너편 강화도 연미정, 병인양요···마치 오늘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구수하게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제국주의, 부역 엘리트 실체, 그리고 두물머리를 터전으로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던 해월 최시형 선생과 후계로 지목됐으나 너무나 일찍이 비참하게 살해된 이수인의 물 이야기를 보탰다.

 

앞으로 당분간 내 물 제의에서 해월과 이()로 자칭했던 이수인 이야기가 화두로 등장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필경 이 서사는 김지하가 쓴 수왕사(水王史)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김지하가 늙바탕에 보인 일탈 탓에 그를 인정하지 않지만, 저 주체할 수 없어, 누구 말도 듣지 않았던 신끼를 짐작하기에 적절히 걷어내면서 범주 인류학 맥을 더듬어 보려 한다. 결코 누락시킬 수 없는 민족지 진실을 품고 있으리라 본다. 거기에는 박경리 문학도 있을 테고. 물론 나는 한껏 절제하고 한껏 더 나아간다. 해월이 안 두물머리, 그 너머 물머리를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 너머 물머리는 반제국주의 전선 총 본진이다. 제국주의는 불의 시대를 열어 구가한다. 과학기술과 탄소 에너지로 지구 전체를 불바다로 만드는 중이다. 특히 앵글로아메리카 제국이 정착형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토착민, 그들과 공생하는 동물들과 숲에 멸절의 총칼을 쑤셔 넣은 짓은 그 생명을 이루는 물에 소진의 네이팜탄을 퍼부은 짓이다. 그러나 불은 물을 이기지 못한다. 물이 마침내 불을 잠재운다. 불을 잠재우는 그 물로 무고히 살해당한 생명들이 모여들어 팡이실이 사건을 한껏 일으킨다. 여성과 아이와 숲이 고요한 함성으로 모여드는 곳을 물머리라 부른다.

 

삿된 무당 하나가 졸개 둘을 시켜 사적 이득만 노린 해괴한 짓을 기탄없이 하고 있다. 한 나라의 수장, 또는 그 부부가 이렇게 대놓고 주술 통치를 하는 데도 한패인 언론이야 그렇다 치고 당대 일급 지성들이 입 처닫고 있는 짓은 그들 또한 특권층 부역자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이번에는 석유 bullshit이다. 석유야말로 제국주의 서사의 백미 아닌가. 모르고 바치는 충성 같은 맹독은 다시없다. 망해가는 나라를 살해당함으로써 부둥켜안아야 했던 해월과 이의 음성이 오늘따라 더욱 아프게 들린다. 그 웅숭깊은 이명이 대취에 갈마들며 내 귀갓길을 막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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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은빛 풍뎅이가 홀연히 날아들기에 가볍게 붙잡는다. 붙잡는 순간 황금빛으로 바뀐다. 그 경이로움을 옆 사람에게 전한다. 꿈에서 깬다. 일어나 앉아 생각에 잠긴다. 카를 구스타프 융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황금풍뎅이 일화를 기억하는 데다가 요즘 그의 어록을 심심치 않게 마주해서 일어난 꿈 작용이라고 일단 이성적·합리적 해석부터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황금풍뎅이는 본 적이 없다. 어릴 적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본 풍뎅이는 검푸른 빛이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워낙 식물적인 사람이라 물방개, 몇몇 민물고기, 알 품은 새 둥지 따위를 빼곤 동물과 관련한 각별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풍뎅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동시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글을 읽던 중 카를 구스타프 융 일화와 마주쳐 새로운 인상으로 각인된 듯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그 꿈 서사를 단순하게 구성하는 일은 동시성을 대하는 내 태도는 물론 동시성 자체에 모독이 된다.

 

이 꿈만으로 완결된 메시지가 있을까, 곰곰 묻는다. 당최 어떤 심상 작용도 일어나지 않는다. 통속한 길몽이라 여기기에는 내가 너무 냉정한 무당이다. 요즘 내가 화두 삼은 문제와 연결해 생각을 이어가다가 Irena Buzarewicz 트위터 그림과 돌연 마주친다.


 

거기 Ego 대신 인간, Nature 대신 인류를 집어넣으면 요즘 내가 드러내려 애쓰는 범주 인류학구도를 시각적으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오른쪽 사람 색마저 검게 해야겠지만 어쨌든) 그 구도에서라면 인류는 다른 생명체와 다를 바가 없고, 따라서 범주 인류학의 공동 주체인 다른 생명체와 소통(해야 )한다. 그게 자연 이치며, 지구생태계 본성이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 인류가 그러니까 풍뎅이와 소통할 수 있느냐다. 늘 여기서 멈춘다. 자리에서 일어나 탕전실로 간다. 바깥으로 난 창문 통해 하늘을 볼 수 있어 생각이 어지럽거나 멈출 때 찾곤 한다. 창밖으로 나가던 눈길이 무심히 한곳에 머문다. 바로 거기서

 


황금무당벌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내 손등에 앉는다. 황금풍뎅이는커녕 평범 풍뎅이조차 전혀 볼 수 없는 서울 한복판에서라면야 황금 무당벌레야말로 범주 인류학 팡이실이 전령으로 충분하게 감동적이고 충만하게 경이롭지 않은가. 황금 무당벌레가 이내 날아가고 없는 허공 향해 나는 깊이 허리를 접는다. 더는 꿈을 해석할 까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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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조금 일찍 일어나 움직이기로 한다. 두물머리로 갈 생각이 있어서다. 일요일 중앙선은 사람은 물론 자전거까지 더해져 매우 혼잡하다. 혼잡을 조금이라도 피하려면 양수역에서 내려 남한강 쪽부터 걷고, 그다음 북한강과 만나는 언저리를 걸은 다음 북한강 물가 길 타고 운길산역으로 가 돌아온다, 이렇게 가닥 잡는다.

 

양수역은 의외로 그리 붐비지 않았다. 아마도 오후에 비 오신다는 예보 탓일 테다. 스마트폰 지도로 용담리 가정천과 남한강 마지막 물길이 만나 이루는 만 모양 물 서쪽 숲길을 찾기 위해 사람 다니는 차선이 그어지지 않은 차도로 들어서다 몇 걸음 못 가고 그만두었다. 급회전하는 지방도는 바위투성이 산등성길보다 더 무섭다.

 

동쪽 둔치에 만들어 놓은 산책로로 방향을 바꾼다. 그 끝에서 서쪽을 향해 난 양수로를 걸어 남한강 큰 물길과 만난다. 6번 국도 경강로와 만나는 곳에서 한참 간 다음 더는 나아가지 않고 높은 언덕에 올라 남한강을 내려다본다. 저 물길 시원인 오대산 우통수 발치 간평리 마을 내 고향을 떠올린다. 언제이든 다시 걸을 곳이기에.



돌아오는 산모퉁이에 무덤이 하나 보인다. 가까이 인기척 있어 다가간다. 파평 윤씨 선산이란다. 이 산을 넘어 양수역 가는 길이 있는가, 물으니 그렇단다. 아까 실패를 만회할 양으로 거침없이 숲으로 들어갔으나 이내 길을 잃었다. 그가 있다고 한 산길은 옛 기억일 가능성이 크다. 늘 그랬듯 나는 직진했다, 이번엔 물에 닿으려.

 

산은 작지만, 숲이 커서 길 잃은 자는 아뜩해진다. 홀연 길 하나가 보인다. 마치 익숙한 산 사람이 남긴 증거처럼. 그런데 이상하다. 그 산 사람이 아이 또는 난쟁이라면 모르지만, 어찌 기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 이토록 많을까? 이제 길이 트이는구나, 하는 찰나 소름이 훅 끼쳐온다: , 바로 이게 짐승 길이구나. 아이고, 맙소사!

 

회룡 계곡 때 사람 발자국과 달리 짐승 길은 끊어지지 않고 샘이 있는 곳과 닿아 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샘에서 물을 받던 등산객들이 놀란다: 거기 워낙 가팔라 길이 없는데요? 내가 웃으며 일부러 물 가까이 걷기 위해 길을 내며 왔다고 하니, 다들 고개를 갸웃한다. 그 와중에 기어이 물에 닿아 손을 담갔음은 똑 사실이다.


 

알고 보니 그렇게 간 길은 처음 무서워 그만둔 그 길과 마주 이어져 있었다. 거꾸로 한 바퀴 돌았으니 목적 달성이 분명하다. 거기부터 내 발걸음은 헤매지 않고 용담리를 관통한 다음, 양수리 물가 길을 샅샅이 돌았다. 두물머리 나루에서 두 한강 물과 손을 맞잡았다. 북한강 물과도 손뼉을 마주쳤다. 네 시경 운길산역에 닿았다.

 

지지난 주 안성 저수지 물·멍에서 물과 만난 뒤 사실 어떻게 숲에서 물로 이동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냥 오늘 두물머리로 향했다. 물은 숲과 특성이 달라 뭍 생명 인간을 쉽게 단도직입으로 품어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태초에 숲은 물이었다. 지구 팡이실이 창발로 물기 던 숲을 발현했을 뿐. 숲에서 물로 가는 길은 숙명이다.

 

운길산역 아래 북한강 물에 다섯 번째 손을 담금으로써 내 첫 물나들이는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이 걷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나는 모른다. 반걸음 앞을 내다보고 한 걸음씩만 내디디려 한다. 팡이실이, 그 살아 움직이는 현실에 내가 극진히 참여하는 한, 물은 물로 그 길을 열 터이므로. 바야흐로 새로운 한 시절이 일어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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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최근에 들어와서 러시아(이하 러샤)와 우크라이나(이하 우크) 간의 전쟁 양상이 러샤 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모양새다. 그 점을 보여주는 한 지표가 최근에 우크군이 내는 사상자 수가 아닌가 싶다. 2024년 5월 5일〜10일 6일 동안 6,460명, 5월 11일〜17일 1주일 동안 9,565명, 5월 18일 하루 1,725명, 19일 1,880명, 20일 1,260명, 21일 1,660명, 22일 1,330명, 23일 1,740명. 이상은 텔레그램 채널 슬라비안그라드에 올라온 우크군의 사상자 관련 보도를 종합한 통계다.

우크군의 사상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5월 5일〜10일 사이는 하루 평균 1,077명, 11일〜17일의 1주일은 하루 1,366명, 그리고 5월 18일 이후 6일간은 하루 1,600명 수준인 셈이다. 우크의 사상자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여기는 사람은 통계를 발표한 것이 러시아 국방부임을 문제로 삼을 수도 있다. 자국의 전과를 내세우느라 국방부가 사상자 수를 부풀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자국의 전과를 축소하는 경향은 있어도 과장하는 경우는 드문 편으로 알려진다(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가 오판해서 확전하지 않도록 전쟁을 매우 조심스럽게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관련 보도를 한 슬라비안그라드는 친러샤이기는 하지만 우크 전쟁과 관련해 신뢰를 인정받는 매체다.

러샤군의 사상자는 어떨까? 러샤측 사상자가 많이 나온다는 보도는 많지 않다. 러샤의 사상자는 2022년 2월에 시작된 전쟁의 초기에 좀 많이 나왔고, 23년 초 바흐무트 공방이 진행될 때 증가했는데, 그 외에는 높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고 알려진다. 특히 최근에는 전쟁 개시 이후 사상자가 최저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점은 영국의 BBC 방송국과 협동으로 러샤의 전사자 수를 확인해오고 있는, 러샤 반정부단체 미디어조나의 발표로도 확인된다. 미디어조나는 2022년 2월 24일〜2024년 5월 10일 사이 확인된 러샤측 전사자는 52,789명이며, 올 4월 29일〜5월 3일 사이 5일간 전사자를 최소 10명으로 잡고 있다. 사상자는 전사자의 세 배 정도로 잡기도 하니 지금까지 러샤측의 사상자는 15만명 안팎일 가능성도 있다. 우크는? 100만명을 육박하거나 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우크 대통령 젤렌스키의 신경질 또는 울화 행동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군 장성들을 만나면 전황 보고가 정확하지 않다고 화를 벌컥 낸다 하고, 6월 15〜16일 예정으로 스위스에서 열릴 ‘우크라이나 평화 회의’와 관련해 키예프 주재 외국 대사들과 준비 모임을 하면서 우크의 입장을 지지해달라 ‘히스테릭하게’ 요구했다는 전언도 있다. 젤렌스키의 그런 태도는 우크가 대 러샤 전쟁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 2년 반의 전쟁 중에 우크군이 그래도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였던 것은 2022년 가을에 하르코프 지역과 헤르손 지역을 탈환했을 때뿐이다. 당시 서방 언론은 러샤군이 와해하는 듯 호들갑을 떨었으나 우크가 거둔 ‘승리’는 자국군의 피해가 너무 큰 피루스의 승리였다. 그래도 그때 우크군이 공세를 펼쳐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병력이 러샤군에 비해 훨씬 더 많았고, 미국과 EU 등 나토국가로부터 무기를 많이 공급받았던 덕분이다. 그러나 22년 겨울 이후 우크군은 계속 열세를 면치 못했다고 해야 한다.

러샤군은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동원령으로 30만, 자원입대로 월 4만 이상의 병력을 확보해 지금은 우크군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전쟁 기간 광범위한 제재를 받으면서도 러샤 경제는 서방 어떤 나라보다 큰 성장세를 기록했고, 특히 군수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러샤의 방위산업이 예상보다 빨리 발전한 것은 미국의 합동참모의장 찰스 브라운도 최근에 인정한 바 있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우크군에 제공한 탱크나 자주포, 미사일 등은 모두 고가로 처음 제공될 때는 ‘경이의 무기’인 양 선전되었으나 전장에서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반면에 러샤의 탱크, 미사일, 드론, 대포 등은 가격은 훨씬 싸면서도 성능은 나토군 무기를 능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크는 지금 특히 병력이 절대로 모자란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 동원령을 내려 ‘대포 밥’이 될 사람들을 찾고 있으나 나라의 부름에 응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동안 징병관들의 무자비한 납치 행위를 목격한 남성들이 숨어서 나오지 않아 도시 거리가 텅 빌 정도라고 한다. 병력만이 아니라 무기가 부족한 것도 큰 문제다. 그동안 무기를 대주던 나토도 이제는 재고가 바닥난 상황인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 우크군의 사상자 수가 급증한 것도 그런 점과 무관할 수 없다. 전투 유경험 병력은 오랜 복무로 다수가 희생되었고 생존해도 피로와 부상이 쌓였을 것이며, 새로 강제로 투입된 병력은 훈련과 경험 부족으로 전쟁 능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우크군의 사상자가 늘고 있는 것은 열악한 조건으로 군 사기가 크게 떨어진 가운데 갈수록 막강해지는 러샤군을 맞아 싸워야 하기 때문 아닐까 한다.

우크군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연 없다. 남은 길은 항복이나 협상밖에 없는데 젤렌스키의 태도를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우크군을 내세워 대리전을 치르는 미국에서 나온다. 최근에 미국의 국무장관 블링컨이 우크의 수도 키예프를 다녀갔다. 젤렌스키는 블링컨에게 미국이 제공한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로 러샤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은 우크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러샤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게 러샤 영토 공격은 금지해왔다. 우려스러운 것은 본국에 간 블링컨이 에이태큼스 미사일로 러샤 본토를 공격하는 것은 우크의 선택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5월 6일 러샤 외무부는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 나이젤 케이시와 프랑스 대사 피에를 레비를 차례로 초치한 바 있다. 그것은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자국군을 우크에 보내겠다고 한 것과 영국 외무장관 캐머런이 자국이 제공한 스톰쉐도우 미사일로 우크가 러샤 영토를 타격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경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블링컨이 미국의 미사일로 러샤 본토를 공격하는 것은 우크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러샤가 영국과 프랑스에 제기한 경고를 무시한 것인 셈이다.

블링컨만도 아니다. 미국에는 지금 우크가 미국 미사일로 러샤를 타격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강경론자가 많다. 우크가 러샤에 하이마스 로켓포와 에이태큼스 미사일을 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등 뒤로 손을 묶는 셈이라고 하는 하원의 외교위원장 마이클 매콜이 한 예다.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의 태도도 비슷하다. 최근에 그는 “나는 우크가 그들이 적합하다고 보는 대로 전쟁을 수행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동안 러샤-우크 전쟁을 관찰해온 전문가들은 지금 미국을 위시한 나토국가들이 우크에 아무리 무기를 많이 제공해도, 또 우크가 러샤 본토에 아무리 효율적 공격을 가하더라도 전세가 뒤집힐 일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도 젤렌스키가 미국 미사일로 러샤 본토를 공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미국을 전쟁에 직접 개입시키기 위함일 공산이 높다. 하지만 우크가 미국의 미사일로 자국 본토를 공격하면 러샤는 미국이 전쟁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우크가 서방 무기로 러샤 영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고 미국 주재 러샤 대사가 “위험하고 무모하다”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정치인과 의원이 우리의 인내를 계속 시험하고 있다. 우리는 키예프 정권에 군사원조를 확대하라는 새로운 제안을 매일 듣는다. 키예프의 주안점은 미국과 다른 나토국가들이 성급하게 행동하도록 부추겨 러샤와 나토 간의 정면충돌을 일으키려는 것임이 분명하다.”

현재 전황으로 봐서는 우크군의 궤멸은 비가역적으로 보인다. 최근의 전선 상황으로는 여름 지나고 가을쯤 되면 우크는 무조건 항복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우크로서는 나라 전체가 초토화하는 것을 면하려면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러샤와의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젤렌스키를 위시한 우크의 지도부는 이기지 전쟁을 종식해 평화를 얻을 생각은 전연 하는 것 같지 않다. 우크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2014년 우크에 마이단 쿠데타를 일으켜 러샤와의 전쟁을 유발한 서방, 특히 미국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러샤와의 전쟁을 멈추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무장관이 미국의 무기로 우크가 러샤 영토를 공격할 것을 부추기려는 형국이다.

우크가 과연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로 러샤 본토를 공격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러샤는 미국이 자국을 공격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고, 맞대응할 공산이 있다. 핵무기로 무장한 두 초강대국이 서로 맞붙는다면? 너무나 위험한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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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과 백악산 사이, 그러니까 정릉동에서 평창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옛 이름이 보토현(補土峴)이었다. 보토현(補土峴)은 백두대간에서 한북정맥으로 갈라져 조선 한양성 주산인 백악산으로 오는 주맥 가운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으로 파악되었다.

 

고개는 보통 두 산 사이 가장 낮은 곳이라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조선 왕실 기록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빗물에 씻기고 헐려 땅 기운 옹근 곳이 떨어져 나갔다. 그 땅에 흙을 채워 넣어야 한다고 비변사에서 아뢰었다(정조 8). 그래서 여기가 보토현이 되었다. 보토현 관리를 맡은 보토처(補土處)가 총융청 산하에 있었다.

 

나는 이런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한 채, 202364일 북한산과 백악산 사이 자락에서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제의를 실행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야기 배경을 이렇게 적었다.

 

북한산과 백악산 경계, 동쪽 정릉동과 서쪽 평창동 사이에는 본디 고갯길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지금처럼 북한산 둘레길 제5구간 명상길 일부와 겹치는 길이 아니라, 청학사와 현재 평창동 형제봉 통제소를 잇는 최단구간 고갯길을 상상해 보았다.” (2023.6.6. <북한산과 백악산 사이>)

 

물론 내가 상상한 고갯길과 실제 보토현은 같을 수 없다. 내 상상은 등고선 지도를 보며 찾아낸-청학사와 형제봉 통제소를 직선으로 이은-가장 낮고 짧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상상 속 장소를 찾아 나선다. 작년 내 제의와 보토현 역사적 서사를 한 데 묶기 위해서다. 작년과 전혀 다른 경로를 따라 들어가 청학사와 여래사를 잇는 익숙한 길에 다다랐다. 여기서 갈라져 삼곡사 쪽으로 간다. 작은 골짜기지만 영검을 구한 흔적들로 가득 차 있다. 마애불이든 산신이든 보토현 풍수 서사에 기댄 갈망을 결집한 표지들은 여전히 여기를 떠나지 않고 웅얼거린다. 맞은편 평창동으로 내려가는 골짜기도 마찬가지다. 비나리와 징 두드리는 소리가 언제든 들려올 듯하다.


 

지도에서 확인한 보토현을 정확히 찾아낸다. 북한산 청담 계곡에서 담아온(2023.10.29.) 흙을 골짜기 양쪽으로 뿌려 보토현 서사가 오늘에 살아 있도록 제의를 실행한다. 구진봉(俱盡峰) 쪽으로 직진하다가 길이 군부대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되돌아온다. 못내 아쉬운 마음이 한순간 사라진다. 아까 그 제의 자리 조금 지나서 내 눈에 길 한가운데 파헤쳐진 구덩이와 나뒹구는 흙더미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누가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선명한 삽 자국이 있는 사실로 미루어 작정하고 한 짓임이 틀림없다. 길 한가운데라 귀한 약초나 보석 따위가 있었을 리 없으니 내게는 다만 보토현 서사를 훼손한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흩어진 나머지 흙을 다시 모으고 도둑맞은 흙 대신 인근 나무토막들로 덮는다. 온전히 복원하지 못해 아쉽지만, 오늘 여기로 와야 했던 이유가 분명해져 내가 요즘 깊이 주의를 기울이는 범주 인류학적 언어와 실천 탐구에 숲이 보내는 응원이라 여긴다.


 

백악산 동북쪽에서 시작해 북한산을 거쳐 다시 경복궁과 청와대가 자리한 백악산 서남쪽으로 향한다. 보토현 서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북한산 흙을 백악산에 삼가 보탠 다음 정화를 전제로 축원 올린다. 가벼운 발걸음이 삼청동 쪽 숲길 끄트머리쯤에서 멈춘다. 숲속에서 유유히 푸른 잎을 먹고 있는 꽃사슴이 보였기 때문이다.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희화화했듯 청와대를 우스개로 만든 부역 주술 통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악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느껴져 뭉클하다.


 

배고픔과 목마름이 몰려와 총총히 숲을 나온다. 인공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삼청동 어느 두부 전문점으로 들어간다. 막걸리부터 시켜 벌컥벌컥 들이켠다. 낮술이라 할 만한 시간대인지라 취기가 날렵하게 퍼진다. 오늘 남은 시간일랑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보낼 수 있으니 뭐 대취한들 어떤가, 아내와 딸아이가 함께 여행을 떠나서 저녁 약속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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