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직립 보행할 수 있도록 진화하면서 뇌가 커져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미성숙기가 오래도록 지속된다. 윤리 뇌가 다 자라는 일을 마지막이라고 보면 여성은 25년가량, 남성은 30년가량 자라야 한다. 전인격적 성숙까지 고려한다면 사실 인간 대부분은 평생토록 다 자라지 못하고 살다 죽는다. 직립보행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축복 이면이다. 비대칭 대칭이란 진리는 여기서도 예외를 허하지 않는다.

 

인간이 태어나 자라가는 과정은 단계적인 몸짓 변화로 이루어진다. 몸짓이야말로 존재론이며 근원 의학이다. 소소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로 넘기고 큰 몸짓 이야기만 한다. 아기가 가장 먼저 하는 몸짓은 뒤집기다. 뒤집기는 눕혀진 상태에서 엎드린 상태로 바꾸는 몸짓이다. 이 몸짓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스스로 만드는 최초 행동이다. 배가 위로 향해 있으며 움직이지 못하는, 그러니까 죽어가는 물고기와 움직이지는 않으나 배를 아래로 향하고 잠든 물고기를 비교하면 그 이치를 금방 알 수 있다.

 

뒤집은 다음 아기가 하는 몸짓은 몸을 좌우로 흔들어 전진하는 배밀이다. 이는 명백히 물고기, 그러니까 어류 생명 운동이다. 그다음에는 손발을 쓰면서 진행하는 엎드려 기기다. 배가 여전히 땅에 닿아 있는 양서류 단계부터 시작해 파충류 단계를 거쳐서 이윽고 배가 땅에서 완전히 떨어져 생활하는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자라간다. 그러다가 주위 사물을 의지하면서 서고 발걸음을 떼면서 영장류로 변화해간다. 최후로 걷기가 시작되어 능숙해지고, 게다가 달리기로 나아가면 비로소 인간 몸짓이 완성된다. 이 과정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말로 은유된다.

 

어류는 어류대로, 양서류는 양서류대로, 파충류는 파충류대로, 포유류는 포유류대로, 영장류는 영장류대로,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우주 이치에 맞는 생명을 살다 간다. 그들 삶에는 심신 분열도 없고, 자아와 우주 분리도 없다. 문제는 인간이다. 걷기는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조건이다. 걷기 진리를 미처 자각하기 전에 인간은 자아 폭발(스티브 테일러)이란 분리를 겪으면서 걷기에서 스스로 소외되었다. 걷기에서 소외된 장구한 역사를 우리는 문명이라 부른다. 문명이 이제 인간을 인간이지 못하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 어찌할까?

 

걷기 진리를 복원해야 한다. 걷기를 되살려야 한다. 걸을 수 있음에도 걷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당장 걸어야 한다. 걷지 못하는 사람은 기어야 한다. 기지 못하는 사람은 배밀이 해야 한다. 배밀이도 못 하는 사람은 뒤집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시작해서 걷기를 복원하면, 구구한 설명 필요 없이 인간이 왜 인간인지 알 수 있다.

 

그러면 걷기란 무엇인가? 이미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여성이 남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의학이다-이브의 몸(14)>에서 대강을 밝혔다. 걷기는 우주 진리를 몸 사건으로 일으키는 인간 존재 양태다. 두 발과 다리는 비대칭 대칭을 이루며 움직인다.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미는 동작을 교차 반복한다. 찰나적으로만 땅에서 서로 연속되고, 나머지 모든 시간 동안은 서로 단절된다. 연속과 단절, 역설적 본성이다. 연속될 때는 단정하게, 단절될 때는 기우뚱하게 균형을 이룬다. 연속과 단절, 역설적 조화다. 걷기는 정확하고 절묘하게 우주 운동을 담는 인간 행위다. 몸짓으로서 인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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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회룡 계곡에서 길 잃고 헤매던 와중 비옥한 부엽토 한 움큼을 떠왔다. 한의원 난 화분에 조금 넣어줬더니 세상에나 달개비꽃을 피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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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메리앤 J. 리가토가 2002년에 쓴이브의 몸2년 뒤 한국어로 번역·출간되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책을 옆에 두고 수시로 읽어왔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려 애썼다. 그러는 동안 한국성인지의학회가 창립되고 그 자리에 메리앤 J. 리가토가 참석했다는 소식 정도를 들었다. 거기까지다. 지금 한국성인지의학회는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 듯하다. 사위는 예와 다름없이 고요하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남성의학으로서 더욱 굳건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브의 몸은 진즉 절판되었다.

 

나는 오늘 이 책, 이브의 몸20년 만에 다시 불러낸다. 내가 고안한 주해 리뷰 형식을 빌려 찬찬히 돌아보려 한다.

 

여성 몸이 남성 몸과 다르다고 할 때, 그래서 병이 다르니 달리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가면 안 된다. 여성을 다른 몸으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의학 패러다임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성이 인식하는 세계, 인간 생명, 건강, 질병, 진단, 치료와 치유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 새로운 의학은 단순히 남성의학과 1;1 대응 관계에 서는 따위가 아니다. 남성의학을 포괄하면서 넘어서는 광대함과 남성의학이 담아내지 못한 소소함이 모두 들어 있는, 이를테면 어머니의학이다.

 

글을 써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새로이 하겠지만, 이미 졸저 안녕, 우울증14개 절(15-28) 70(109-178)에 걸쳐 이야기한 내용과 포개지는 일은 불가피할 듯하다.

 

1

 

이 책은 단지 여성 건강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남녀 양성 건강에 관한 책이자 성 차이를 고려한 새로운 과학에 관한 책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생식 기능을 제외하고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라고 가정하고 행동해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모아온 정보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가정이다. 어디를 돌아보든지, 정상적인 신체 기능뿐만 아니라 질병을 체험하는 과정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차이를 보인다.(7)

 

기나긴 의학사에서 이 이야기를 정색하고 한 일이 2002년에야 일어났다는 사실이야말로 저자를 둘러싸고 있는 의학이 제국주의 백색의학임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제국주의 서구의학이 그렇다고 해서 동북아시아 전통 의학은 뭐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는 일도 부질없다. 도긴개긴이다.

 

위 다섯 문장은 이 책 첫 문단을 이룬다. 단호하면서도 함축이 깊은 선언을 머금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며 그 차이를 고려한 의학을 말하면 대부분 여성에 관한의학이라고 인식한다. 바로 이게 남성 사고방식이다; 형식논리 사고방식이다; A가 아니라고 하면 대뜸 non A를 떠올리는 유아적 사고방식이다. 이치를 따지고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이런 사고방식이 수천 년 동안 인류문명 주도권을 쥐어왔다. 의도된 무지를 탑재한 대중에게는 어이없음이 매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부역 광풍이 그 전형에 해당한다.

 

A가 아니라는 말에는 부분은 오류라는 근원적 진실이 들어 있다. non A는 그 진실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A가 아니라는 말은 딸랑 non A를 겨냥하고 있지 않다. 전체 진실을 향해 두 팔을 한껏 벌리고 있다. “성 차이를 고려한 새로운 과학은 여성과 남성 사이 화쟁을 통해 일심 진리를 밝혀 무애자재한 삶으로 나아간다는 선언이다. 종자 논리를 바꾸는 발본 혁명이다. 이 과학이 완숙기에 이르면 이 과학 주체들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리라.

 

여성 몸 공부는 당연히 여성 맘 공부로 이어진다. 여성 몸 공부는 여성 오감과 제6, 그리고 육감(肉感)을 거쳐 직관으로 이어질 터이기 때문이다. 여성 직관으로 보는 전체 진실이 어떻게 남성이 쌓아 올린 백색 문명 세계관과 다른지 알게 되면, 과학에 개벽이 들이닥친다. 개벽은 이상한 신흥종교가 떠드는 묵시록이 아니다. 제국주의 백색과학 어이없음을 타파하는 죽비다. 둔탁해서 예리한 그 깨우침 소리를 예감한다.

 

 

2-1

 

전체적으로 볼 때 여성과 남성 뇌는, 작지만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남성은 우울증을 예방하는 호르몬 세로토닌을 여성보다 52%나 많이 생산한다.···그런데 사회적 성공···은 뇌 내 세로토닌 농도를 증가시킨다. 사회적 성공이 실제로 뇌에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배나 높은 이유는 어쩌면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경우에 의사는 우울증 약을 처방하는 대신 삶 문제에 대하여 상담을 권하는 편이 좋을 수도 있다.(32)

 

백색의학은 마음을 뇌라 한다. 틀렸다. 뇌는 마음이지만 그 역은 아니다. 가장 진실에 육박하는 표현은 다음과 같다.

 

마음은 몸 전체가 삶 안팎 조건과 일으키는 상호작용의 파동적 측면이다. 뇌는 몸 전체와 삶 안팎 조건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경계 관제탑이다.”

 

사회적 변화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알고도 마음을 뇌라 하는 짓은 비과학 이전에 참으로 어이없는 행태다. 더군다나, 여기서는 언급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뇌에 있는 2% 미만 세로토닌만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는 거 아니다. 세로토닌 98% 이상은 장에 있다. 마음이 뇌라면 마음이 장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세로토닌에 관한 한 49배 이상 타당하다. 마음은 뇌가 아니다. 여기서 이 문제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뇌 내 세로토닌 생산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52% 우세하다는 사실이 큰 맥락에서 이해된다. 본디 뇌가 그렇게 생겼다고 말하는 짓 역시 제국주의 백색의학 어법이기 때문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우울증과 마주할 때, 삶 전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진단하고 치료한다. 증상 확인하면 곧바로 프로작(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 던져주는 짓을 하지 않는다. 삶 이야기, 그 역사를 경청하고 인생행로를 바꾸는 일에 조력하기도 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그러므로 인문 의학이다. 여성이 남성과 다름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차별은 묵인하는 사회와 싸우는 일에 함께하기도 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그러므로 사회 의학이다. 인문 의학이며 사회 의학인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그러므로 숙의(熟議) 의학이다. 숙의 의학에 미래가 걸려 있다.

 

 

2-2

 

세로토닌 농도가 떨어지면 여성은 의기소침해지고 근심, 걱정에 잠기며 안으로 숨는데, 남성은 술을 마시고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 따라서 부부가 둘 다 우울증을 앓아도 부인과 남편 증세는 현저히 다르다. 남편 경우 음주량이 증가하고, 평소와 달리 성질이 급해지며 난폭해질 수 있다. 한편 부인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거나 사람이 많은 백화점 같은 곳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33)

 

본인도 주위 사람도, 심지어 의사도 성질이 급해지며 난폭해지는 남성, “사람이 많은 백화점 같은 곳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여성을 보고 같은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전자는 혹시 간헐폭발장애(속칭 분노조절장애), 후자는 말 그대로 공황장애 가능성을 생각하기 쉽다. 여성과 남성 세로토닌 부족으로 드러내는 증상이 이토록 판이하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두 가지 모두 우울장애 증상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조금 더 생각한다. 공격성이나 난폭함과 공황 발작은 전혀 다른 증상인가? 사실 이 두 증상의 뿌리는 같다. 공포가 바로 그 뿌리다. 전방위·전천후로 확산한 공포가 불안이고, 고강도 불안이 다름 아닌 공황이다. 난폭한 행동이나 공격은 공포 방어기제다. “겁먹은 개가 크게 짖는다.” 전자는 즉자적 반응이고 후자는 대자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삶 조건에 연속적 자세를 취하는 여성과 불연속적 자세를 취하는 남성 간 차이와 맞물린다.

 

이런 통찰보다 중요한 사항이 있다. 공포 반응을 우울증으로 파악하는 이치는 무엇인가? 미국정신의학회가 우울장애를 기분장애로 보는 견해를 버렸다고 하지만, 우울장애라는 이름은 여전히 기분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우울장애는 자기 가치를 불신·폄훼하는, 마침내 존재 자체를 거부·부정하는 복합적인 정신·신체 상태다. 나는 이를 자기부정증후군이라 부른다. 자기부정증후군 날개 아래 공포·불안이 깃드는 일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여성과 남성 차이를 통해 진실 전체상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진실 전체상에 비대칭 대칭이 존재한다는 점을 여성과 남성 차이로써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달리 해야 할 치료, 같이 해야 할 치료를 혼동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이쪽에서 저쪽 진실을, 저쪽에서 이쪽 진실을, 함께 알아차린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양극을 가로지르며 휘돌아 회통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우울장애를 마음의 감기라고 조롱하지 않는다.

 

 

3

 

출생 시 남자아이 뇌는 여자아이보다 더 크다. 그러나 남자아이는 지적 장애, 언어 이해력 부족, 말더듬증, 자폐증, 뚜렛증후군, 틱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야뇨증과 같은 발달장애를 겪는 빈도가 더 높다.···남자 아이 뇌가 여자아이보다 크지만···낮은 대사율을 보인다. 체온이나 심박이 여자아이에게 떨어진다. 남자아이 뇌 산소와 에너지 요구량은 더 많지만, 충족시켜줄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다.···이와 같은 모순이 남성에게서 발달장애 빈도가 높은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52)

 

남자는 철들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일생을 철부지로 산다는 말이다. 그저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장구한 가부장적 전통에서 여성이 겪어온 삶 진실을 녹여낸 말이다. 뇌 과학이 제시하는 증거는 그 진실 원인일 수도 있고 결과일 수도 있다.

 

남자아이에게서 발달장애 빈도가 더 높게 나타나는 일은 제대로 치료되지 않는다면 성인기에도 유지되는 현상이다. 지적 장애, 언어 이해력 부족, 말더듬증, 자폐증, 뚜렛증후군, 틱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은 발달장애가 성인이 된 뒤에도 말끔히 고쳐지지 않고 계속되는 실제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흔히 성격이나 버릇으로 치부하고 말기 때문에 정색해서 문제 삼지 않을 뿐이다.

 

가부장 사회 남성 편향 윤리나 통념이 의학적 판단을 왜곡하는 일은 일반 시민은 물론 심지어 의료인에게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가령 공부 잘하는 아들에게 자폐스펙트럼이 나타나면 외려 자랑처럼 여긴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에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가 나타나면 오냐오냐 키워서 버릇이 없어 그런다, 정도로 눙치고 넘어간다. 그 아이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아무런 제약 없이 그 상태를 유지한 채,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피해는 고스란히 주위 사람, 특히 여성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얼마 전, 발달장애 상태가 유지된 채 50년 가까이 살아온 남성과 양극성장애 상태에 있는 여성이 찾아왔다. 둘은 부부다. 아내 병을 치료하려고 남편이 함께 온 모양새다. 나는 한눈에 아내보다 남편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론 남편은 그 사실을 부정했고, 당연히 치료를 거부했다. 둘은 늦깎이 결혼을 했다. 남편이 그런 상태인 줄 아내가 안 때는 결혼하고 한참 뒤였다. 당사자는 병식이 아예 없고, 그 어머니는 알고도 감추었다. 결혼을 주선한 목회자 내외는 다들 그러고 산다. 신앙으로 극복하라.’ 한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신앙은 극복 아닌 억압 도구다. 치료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비단 한 가정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 문제다.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기탄없이 거들먹거리는 특권층 부역 권력자들을 보라. 저들은 대부분 이른바 대박 난 자들이다. 발달장애가 대박 스펙이 되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그 수혜자 대부분이 남성 또는 남성을 내재화한 여성이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이런 세상 총애를 받는다. 그 백색의사는 이런 판에서 대박 난 사람에 속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이런 세상 눈총을 받는다. 그 녹색의사는 이런 판에서 쪽박 찬 사람에 속한다. 쪽박을 각오하고 진욕(進辱)하는 녹색의사, 소박(素博)’ 혁명 기치를 든다.

 

 

4

 

약물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여성은 괴로운 경험이나 감정을 느낄 때 다시 약물에 손을 대곤 하지만 남성은 그 반대로 좋은 기분이 들 때 다시 약물에 빠진다. ‘좋은 기분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다.···여성은 남성보다 약물중독에 다시 빠지는 빈도가 낮다.(100)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과 즐거움을 더하고자 하는 마음이 같을 리 없다. 전자는 즐겁기까지야 바라겠느냐 괴롭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즐거움을 향락으로까지 극단화 하지 않는다. 후자는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좋다는 얘기다. 즐거움을 향락으로까지 극단화 한다.

 

극단화는 제국 백색문명이 낳은 일극집중구조 전매특허다. 음성 되먹임이 불가능한 무제약적 매혹이 도사리고 있다. 그 매혹은 문명 전체를 포르노로 만든다. 포르노는 백색인간 숙명이며 저주다. 우리 자신이 이미 익숙히 몸담고 있는바 이제 포르노 아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중독이 아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중독은 진정한 몸 느낌 전체성을 상호 소외된 파편들에 사로잡히게 한다. 찰나적 각성과 지속적 몰각이 끊임없이 단순 반복됨으로써 향락은 타락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타락은 필연이다. 필연 속에서 제국 백색문명은 멸망을 향해 달린다. 멸망일로 제국 백색문명에 백색의학은 땜질 시늉으로 삽질하면서 부역한다.

 

담금질, 저 진정한 몸 느낌 전체성을 복원하는 힘든 과정이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비대칭 대칭을 이루어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이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이 불망의 약속에서 여성은 남성과 다를 뿐만 아니라 더 야젓한 지킴이다.

 

 

5

 

스타틴은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을 저해하고 혈액 중 해로운 저밀도지단백(LDL)을 제거하는 간세포 능력을 강화해 관상동맥 질환 위험을 예방하거나 경감시킵니다.···

스타틴이 여성에게 효과가 있고 안전하냐고요?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약물은 효과가 높고 해로운 부작용이 거의 없어서···가장 유용한 약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09)

 

메리앤 J. 리가토는 이 글을 적어도 책이 출간된 2002년 이전에 썼다. 2013년 출간된 피터 괴체 위험한 제약회사에는 스타틴을 전혀 상반되게 평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스타틴은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맹렬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제약회사뿐 아니라, 일부 열광적인 의사들도 마케팅에 앞장선다. 그러나 스타틴을 심혈관 질환 1차 예방으로 사용하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매우 적다.···스타틴은 근육통과 근육 약화를 유발한다.(97-98)

 

이 상반됨은 견해차 문제가 아니다. 의산 복합체를 구축하여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제국 제약회사와 그 부역자 노릇을 충실히 수행하는 의사 실체를 아느냐 모르느냐, 차이다. 안타깝게도 메리앤 J. 리가토는 의산 복합체의 진실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성 차이를 고려한 의학연구를 위해 재정 지원을 한 대기업 P&G는 미국에서 존경받는 기업500 가운데 10위라고 하니 대략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안일한 태도를 눙치고 넘어갈 수는 없다. 그가 여성이 남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반제국주의 녹색의학 지평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사실로써, 고의는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조폭보다 더 부도덕한 제국 제약회사 손발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상계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해두자. 스타틴은 예방 효과가 거의 없고, 부작용은 있다. 부작용으로서 근육통과 근육 약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도 안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대한 질환으로 이어지며 생사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여성은 월경 부조, 우울증과 긴밀한 연계를 형성하므로 십분 주의해야 한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할 수도 없다. 한 사람의 지식과 사상이 모두 옳을 수도 없다. 한계와 오류는 누구에게나 있다. 관건은 각성 여부다. 각성할 때, 인정하면 된다. 인정할 때, 수용하면 된다. 수용할 때, 팡이실이를 향해 두 팔 벌리면 된다. 팡이실이를 향해 두 팔 벌리는 의학이 바로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이다.

 

 

6

 

식도 하단에는 위산과 음식 역류를 막는 심장 판막 모양의 근육이 있다. 이 근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위 내용물이 식도 하부로 역류해서 위·식도 역류성 질환을 일으킨다.···

·식도 역류성 질환은 여성에게 좀 더 높은 빈도로 나타나고 여성이 증상을 더 심하게 느낀다. 그러나 더 심각한 병으로 발전하는 것은 남성 쪽이다.(120)

 

흔히 역류식도염으로 불리는 위·식도 역류성 질환이 최근 몇 년 동안 유행병처럼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아픈 증상 때문에 심혈관계 질환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계속해서 기침이 나는 경우는 호흡기 계통 중병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질환으로 말미암아 천식이나 폐렴이 생기기도 한다. 통증이 어깨뼈 사이 등 부분이나 목, 팔 쪽으로 나타나는 증상 때문에 단순히 정형외과 물리치료나 침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그 밖에도 인후 이물감, 만성 부비동염(축농증), 연하곤란, 쉰 목소리 등 다양한 관련 증상을 유발한다. 더 중요한 점은 치료 안 된 상태로 시간이 흐를 경우, 식도암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과식, 거친 음식물, 카페인 함유 음식물, 즉석식품, 초 가공식품, 담배에서 비롯하기도 하고, 항콜린제와 같은 약물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히 주의할 일이 있다. 제국주의 백색의학 때문에 빠지는 함정이다.

 

하나는, 저염식 문제다. 심장병, 고혈압 같은 질환을 막는다는 이유로 저염식이 무슨 보편규범처럼 인식되고 있다. 소금 성분인 Cl은 위산 요소이기도 하다. 위산이 묽어지거나 덜 분비되면 가스트린 분비가 계속되어 위 분문-위와 식도 사이 괄약근-이 열린다. 그리로 위산이 역류하는 현상이 역류식도염이므로 저염식은 역류식도염 원인으로 작용한다. 백색 함정이다.

 

다른 하나는, 양성자펌프 억제제다. 역류식도염에 통상적으로 투입하는 약물이다. 위산 분비를 억제하면 Ca 이 흡수되기 어렵다. Ca 이 흡수되기 어려우면 거꾸로 위산이 분비되기 어렵다. 악순환이다. 역류식도염은 위산 자체 아닌 위 분문 기능 문제다. 임시 땜빵으로 처방하는 양성자펌프 억제제가 도리어 역류식도염 유발 또는 악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백색 함정이다. (이 두 문제는 조한경 환자 혁명에 자세하게 나온다. 꼭 알아두어야 할 많은 다른 내용도 있으니 필독을 권한다.)

 

이제 좀 더 포괄적인 근본 원인을 이야기해본다: 정신적 스트레스. 정신적 스트레스는 단순한 개인 생리 문제가 아니다. 사회 문제다. 정치경제 문제다. 여성이 이 질환에 더 높은 빈도로 노출되는 까닭은 남성 가부장 체제와 유관하다. 남성이 더 심각한 병으로 발전하는 까닭은 부역 집단이 오랫동안 자행해온 정치·경제적 수탈구조와 유관하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위·식도 역류성 질환이 지니는 소소한 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인체를 기계로 여기므로 진단할 때도 내시경검사, 24시간 식도 산도 검사, 식도 내압 검사 따위 방법을 사용한다. 생활 전반 특히 정신적인 문제를 점검하지 않는다. 기계적 진단으로 병명이 확정되면 화학합성물질 대증(對症) 처방하고 끝낸다.

 

국내 최고 어떤 거대병원에서 제국주의 백색의학 방법으로 3년간 치료(?)받았으나 전혀 차도가 없어 애태우던 어떤 분이 찾아왔다. 나는 대화와 간단한 손 진단으로 몸과 마음 상태 전반을 확인했다. 그 끈질긴 위·식도 역류성 질환은 한약 한 제와 침 치료 10여 회로 완치되었다. 소요 기간은 보름이었다. 그가 신기하다며 혹시나 해서 그러니 마무리로 한약 한 제를 더 지어 달라고 해서 그리했다. ‘마무리까지 포함하면 딱 한 달이었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 본성이 이렇다.

 

극적인 효과에 기댄 말이 아니다. 병과 사람 서로 다른 결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 결이 다르면 같은 병명이라도 치료 길을 달리해야 한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에 길들면 아픈 사람조차 이런 진실에 귀 기울이지 못한다. 얼마 전 목 디스크를 의심하며 목과 등이 아프다고 찾아온 분이 있었다. 목과 등에다 침을 놓아달라고 했다. 진단 결과 위·식도 역류성 질환이었다. 나는 소상히 이야기해주고 치료 방향을 달리했다. 그는 내 진단과 치료를 신뢰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당장 통증 있는 곳을 손대지 않은 점이 못마땅했을 터.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제국주의 백색의학 적폐가 이렇다.

 

·식도 역류성 질환은 상당 기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조짐이다. 젊은 여성들에게 많이 번져 가리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다. 임상 현장에 있는 의자로서 좀 더 세심하고 곡진하게 녹색 의도에 배어들기로 한다.

 

 

7

 

정상적인 소화 과정에서, 음식물이 위를 통과하는 시간은 남성이 여성보다 30% 빠르다. 액체일 경우 거의 2배나 더 빠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고, 다만 배란 호르몬 특히 프로게스테론이 여성 위에서 음식물 통과 시간을 늦춘다고 추측할 뿐이다. 그래서 식사 후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포만감을 느끼고 자주 트림한다.(121)

 

앞 두 문장과 뒤 두 문장 사이에 어긋남이 있다. 왜냐하면 프로게스테론 분비에는 주기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프로게스테론 작용 때문임이 분명하다면 앞 두 문장에는 시기를 명시하는 부가 내용이 첨가되어야 한다. 에스트로젠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어긋남은 많이 해소된다.

 

프로게스테론이 소화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메커니즘은 아직 잘 모르지만) 분명해 보인다. 에스트로젠(정확히는 에스트라디올)은 타우린 억제 기능을 한다. 타우린은 GABA 수준을 높이는 물질이므로 에스트로젠 분비가 늘어나면 자연히 GABA 활성도 저하된다. GABA 활성이 떨어지면 소화 주기가 늘어진다.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젠 분비 증가가 겹치는 월경 직전에 특히 많은 여성이 위가 더부룩하다거나 가스가 찬다고 호소하는 근거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일상생활에서 남성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 자신도 월경주기를 점검하면서 배려해야 할 일이 있다. 무엇보다 식사 시간과 식단을 조정해야 한다. 식사 직후 하는 설거지도 남성이 대신하거나 그럴 형편이 아니라면 시간을 어느 정도 늦추면 좋다. 그뿐만 아니다. GABA 비활성은 불안을 일으키므로 심리적 배려도 필요하다.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 시민이 이런 지식을 지닐 가능성은 매우 낮다. TV를 포함한 대중매체가 온갖 건강 관련 담론을 쏟아내지만 대부분 정보 포르노에 해당하는 파편들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삶을 의료화한 세상이면서도 정작 필요한 지식은 유포하지 않는다. 돈독 오른 제국주의 백색의학이 그려내는 씁쓸한 풍경화다. 월경주기를 고려해서 처방 조절하는 백색의사에 관한 소식을 듣는 날은 오지 않는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 혁명이 필요할 따름이다.

 

 

8

 

담즙 조성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에스트로젠과 프로게스테론은 모두 담즙 콜레스테롤 함량을 높인다. 프로게스테론은 또한 쓸개 수축을 억제해 쓸개즙을 십이지장으로 분비하는 속도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높은 월경 전이나 임신 기간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쓸개 질환에 걸리는 빈도가 높다.···

  쓸개즙 조성은 월경주기와 임신에 따라 변한다. 쓸개즙 분해물 일부는 여성 결장암 발병 위험성을 높인다. 그리고 아마도 그 빈도가 여성에게서 2배 이상 높게 나타나는 궤양결장염이나 국소장염 또는 크론병과 같은 염증성 장 질환도 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124)

  ···쓸개 절제술이 결장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쓸개를 제거함으로써 쓸개즙이 계속 장으로 흘러들어 결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133)

 

우울장애로 숙의치료를 했던 여성이 인사차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쓸개 제거 수술을 받기로 예약했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했다. 나는 정색하고 그 내용을 소상하게 물었다. 담즙 이야기를 핵심으로 결장암 이야기까지 하면서 예약 취소하고 치료 계획을 전면 재조정하라 일러주었다.

 

제국주의 백색의학 판단력은 여성 몸이 남성과 다른 점에 유의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백색의학 주의력은 몸과 건강 전체에 미치지 못한다. 전공 테두리 안에 갇혀서 요법 포르노를 매력 포인트로 삼는다. 외과의사는 사람 몸에 칼 대는 일에 기탄없다. 내과의사는 조폭보다 더 잔혹한 범죄 집단인 제국 제약회사가 만들어내는 백색화학합성물질 먹이는 일에 기탄없다.

 

남성과 다른 조성, 특히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쓸개즙이 여성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앞으로 좀 더 면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담석증, 과민성장증후군, 기능성 장 장애와 연결될 뿐만 아니라 불안·우울을 포함한 정신질환과도 상호작용함에 틀림없다.

 

동북아시아 전통 의학은 쓸개를 중정(中正) 기관이라 인식했다. 단순히 쓸개즙을 담아두는 주머니가 아니었다. 우리말 쓸개 빠진 인간이란 표현은 지조, 바른 판단, 최후 결단과 같은 정신 작용을 쓸개에 귀속시킨 사유 반향이다. 이는 단순한 비과학적 은유가 아니다. 위장관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속속 밝혀지고 있거니와, 머지않아 쓸개즙이 담은 신비, 특히 여성 마음 복잡한 결과 미묘한 겹에 닿아 있는 메커니즘이 드러나리라 본다.

 

쓸개 질환에 여성이 취약하다는 사실은 모름지기 사회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제국 백색문명 가부장체제가 초래한 성차별은 수천 년 동안 여성을 쓸개 빠진 인간으로 묶어 놓지 않았던가.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와신상담 세월이 발효시킨 성 인지 의학이다. 주어진 문제에서 정답 찾기만 하지는 않는다. 문제 자체를 전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9

 

과민성대장증후군은 통증과 복부 팽창, 배변 빈도와 변 상태를 변화시키는 몇 가지 장 장애를 일컫는 말이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가장 흔히 발생하는 소화기 질병으로···발병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3배에서 6배까지 높다.···여성은 월경 직전에 더 큰 통증을 호소한다. 여성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에게는 매우 심한 월경통이 있을 수 있다.(127-129)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아직 쓰기는 하지만 과민성장증후군이라 해야 맞다. 실제 통증은 소장 기능 장애와도 관련성을 지닌다. 과민성장증후군 또한 생체 리듬 조절에 관여하는 GABA 비활성 문제와 닿아 있다. GABA를 연결고리로 과민성장증후군은 월경통과 연결된다. 대다수 한·양의사들은 월경통 원인을 자궁에서만 찾는다. 아직 메커니즘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극심한 월경통은 과민성장증후군 통증과 병발 가능성이 있다. 임상 실제에서 원발성 월경 곤란(월경통) 일부는 과민성장증후군 통증 오진일 수도 있다. 물론 자궁내막증에서 비롯한 월경통을 과민성장증후군으로 오진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다른 문제다.

 

GABA는 또 다른 연결고리로 작동한다. 과민성장증후군은 다양한 정신장애 혹은 정신병과 연결된다. 우울장애, 불안장애, 양극성장애, 망상장애, 그리고 조현병까지. 연결이란 표현은 사실 모호하다. 원인과 결과를 주고받는다는 표현이 진실에 가장 가깝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과민성장증후군과 월경통, 그리고 정신장애를 각기 다른 전문의가 상호연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따로따로 진단하고 치료한다. 아픈 사람이 겪는 불편은 시간, 비용에만 그치지 않는다. 질병 현상을 전체로 보지 못한 채, 분절된 정보·요법을 제공받음으로써 근본 치료에서 멀어진다. 달리 봐야 할 문제는 같게 보고, 함께 봐야 할 문제는 떨어뜨려 보는 혼란이 일으키는 폐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같음에서 다름을, 다름에서 같음을 읽는다. 요법 포르노에 기대지 않고 질병을 통짜 치료한다. 과민성장증후군과 원발성 월경 곤란(월경통)과 우울장애를 가로지르는 통합처방을 내린다. 이런 점에서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 가장 근접한 의학은 동북아시아 전통 의학, 곧 한의학이다. 물론 현실 한의사들 모두가 한의학을 이렇게 구사하지는 못한다. 어디나 그러하듯 제국 백색문명은 디테일에서 절대 지배력을 자랑한다. 찰나마다 깨어 있지 않으면 누구라도 졸지에 제국 백색문명 노예가 된다. 제국 백색문명은 모든 사람을 모든 병에 걸리도록 하는 주술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이 제국 백색문명을 돌파하는 결정적인 깃발이다.

 

 

10

 

식이장애는 한마디로 음식을 섭취하는 방식이 심각하게 왜곡된 상태를 말한다. 성별에 따라 식이장애 양상이 다르고 좋은 치료 방법에도 차이가 있을 수···있다.(141)

  ···식이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은 사람들이 체격에 대해 가지는 생각 영향을 크게 받는다.···(143)

 남성은 정상체중 105%에 이를 때까지는 자신이 날씬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여성은 정상체중의 87% 이하여야 스스로 날씬하다고 생각한다.···(145)

  따라서 식이장애 치료는 환자 성별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성 상담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성 상담 또한 환자 성별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여성 거식증 환자 대부분 성관계를 갖지 않거나 성적으로 소심한 편이다. 반면 성정체성 혼란 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남성 거식증 환자에게서 나타난다. 남성과 달리 여성 환자는 성적 학대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치료 과정 중에 이러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알아보아야 한다. 여성 환자일 경우에는 일대일 상담이 더 성공적이고, 남성 환자 경우에는 모두 남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일단 치료자와 관계가 성립하면 치료자 성별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남성 치료는 남성 전문가가 맡는 편이 더 낫다.(146-147)

 

그야말로 세 살부터 여든까지 살과 전쟁하는 이 세상은 먹는 문제로 인간을 정신질환에 빠뜨리는 데까지 왔다. 먹기를 마다하고, 먹자마자 게워내고, 먹기로 들면 배 터지게 먹고···사람만이 앓을 수 있는 병이다. 식이장애가 모두 비만과 연루되지는 않는다. 성과 관련된 부분도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식이장애 전경은 결국 자기부정을 밑절미 삼은 에피소드 다양한 변주로 어우러져 있다. 자기부정이 손 뻗은 여러 곡절을 소상하게 짚어야 진실을 알 수 있다. 여성·아이·성소수자가 먹는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단도직입 목숨 차원에 닿은 문제다. 식이 왜곡은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본령은 우울이다. 타인에게 부정당하느니 차라리 먼저 스스로 부정을 단행하는데, 하필 먹는 행동이 그 방편일 따름이다. 식이장애를 독립 범주로 만든 데는 학문적 천박과 영업적 계략이 맞물려 있다. 이 또한 제국주의 백색의학 진경 가운데 하나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인간 욕구 뿌리에 유의하지 않으니 식··수면욕을 마치 아무런 상호연관이 없는 듯 따로따로 다룬다. 근원 치료를 덮고 대증요법으로 질병 장사에 매진한다. 대증요법은 크게 두 가지 이익을 노린다. 근원 치료가 안 되므로 환자를 계속 노예로 묶을 수 있다. 증상 중심으로 세분하면 돈벌이 판수를 늘릴 수 있다. 이 자체가 제국주의 백색의학 식이장애.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환자와 만나는 시공에 자본을 최소한만 배치한다. 도를 잊지 않는다.

 

 

11

 

양성 모두 높은 압력에 대항하여 혈액을 뿜어내기 위해 근육 질량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더 커진 혹은 비대해진 심장 기하학적 특성은 남녀 간에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고혈압 여성 심장은 벽이 두꺼워져 남성 심장에 비해 탄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 불리하다.(167)

  부부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여성은 문지방을 밟는 순간에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반면 남성은 그 반대라고 한다.(179)

  전형적인 심장 발작 징후는 가슴 한복판에 타는 듯한 통증과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다.···그런데 심장 발작을 경험한 여성 20%가량은 매우 다른 징후를 보였다. 배 위쪽 또는 등에 통증을 느끼고, 숨이 가빠지고, 토할 듯하며, 땀이 흠뻑 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소화불량이나 급성담낭염으로 오진이 내려질 수 있다. 숨이 가빠지는 증상은 불안 발작으로 오인되기 쉽다. 의사들은 이런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는 여성들에게 제산제나 신경안정제를 주고 집에 돌려보내곤 한다. 그러면 많은 환자가 훨씬 심각한 상태로 변해서, 혹은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채 응급실로 되돌아온다.(182)

 

국정감사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 양극화는 임계점을 이미 넘어선 듯하다. 상위 0.1% 소득이 중위 소득자 248배에 이른다. 상위 10%가 전체 개인 토지 97.6%를 소유한다. 이뿐이겠나. 칼 같은 양극화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성역 없이 차질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양극화는 부역 자본 포르노가 일으킨 토건 종착역이다. 0.1%99.9%를 수탈하는 인류 최후 노예제사회가 목하 오르가즘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광란 무인지경이다. 이 미친 불길에는 무궁한 불쏘시개 하나가 숨어 있다. 근원적 급진성을 보이며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깬 사람들조차 간과하고 넘어간다.

 

지식욕 포르노다. 이는 과도한 다른 욕망 추구는 탐욕으로 인식하면서 과도한 지식 추구는 문제 삼지 않는 기이한 맹점에서 탄생한 불멸 불쏘시개다. 본디 지식 추구는 인간 본성에 가까운 무엇이되, 그 폭발적이고 무제약적인 격화가 일어난 이후, 문명 자체가 이를 제어하고 나선 적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붓다가 무기(無記)를 본보이고 맹자가 천착을 경계한 일은 있으나, 거대 제국 문명 타락 본성이 노골화하면서 지식 추구는 이성과 과학 이름으로 한껏 부추겨져 왔다. 전지하면 전능해지리라는 야심 때문이다. 전지가 여는 전능이 상위 0.1%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묵시를 깨닫지 못하면 인류는 결국 이 지식욕 포르노란 불쏘시개 때문에 홀랑 불타 없어지고 말리라.

 

지식욕 포르노는 지식 양극화를 몰고 온다. 0.1%만 알고 쉬쉬한다. 99.9%는 몰라서 수탈당하다 죽는다. 지식 양극화는 지식 사용 양극화를 몰고 온다. 알아도 어쩔 도리가 없어서 수탈당하다 죽는다. 생리적으로 여성은 심장질환에서 남성보다 불리하다. 사회적으로도 여성은 심장질환에서 남성보다 불리하다. 마지막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의료적 기회에서마저 여성은 남성보다 불리하다. 이것이 제국 백색문명 속살이며, 제국 백색의료체계 민낯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지식욕 포르노에 반대한다. 남김없이 알아내겠다며 홀로 질주하지 않는다. 내남없이 앎을 공유하여 공생하겠다며 멈춘다. 완벽한 사적 지식 소유는 불완전한 지식 공적 소유 앞에서 무릎 꿇어야 한다. 아라한은 부처가 아니다.

 

 

12

 

부부싸움은 면역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며, 특히 여성에게 그 영향이 더욱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231)

 

여성과 진단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매우 자주 발견하는 질병 가운데 하나가 비세균성 방광염이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으로 따지면 신경성 방광염에 해당한다. 그들 식으로 엄밀히 말하면 정신성 방광염이라 해야 하지만 말이다. 비세균성 염증은 말 그대로 외부 세균이 아닌 내부 요인으로 일어난 염증이다. 여성 경우 부부싸움이 급성 방광염을 일으킬 수 있다. 부부싸움 때문에 면역기능이 떨어져 급성 방광염을 일으킨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남성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이만으로도 적잖이 놀라운 사실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톺을 일이 있다.

 

면역기능이 떨어져 염증이 생겼다는 말에 담긴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익히 아는 바를 따르자면, 면역기능이 떨어진 결과 외부 세균을 막아내지 못해서 염증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미 밝혔듯 외부 세균은 염증 요인이 아니다. 내부 요인이 염증을 일으킨다. 그 내부 요인이 대관절 무엇인가?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라 부르든 스트레스 물질이라 부르든 여성 정신에서 일어난 어떤 공격이 내부 요인이다. 요컨대 자기 공격이다. 자기 공격이 일으킨 급성 방광염을 비세균성 방광염이라 했을 뿐이다. 이 또한 자가면역질환인 셈이다.

 

논의 여지는 있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이 제기하는 이의는 기각한다. 제국주의 백색의학 면역이론은 아직 파편 조각들이다. 형식논리에 근거한 이종 면역 개념을 근간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 논리로는 자가면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특히나 여성이 왜 자가면역질환에 더 잘 걸리는가를 둘러싼 논쟁에는 메리앤 리가토가 소개한 이론만도 3가지가 물려 있다. 그렇게는 해결 불가능하다. 면역 또한 비대칭 대칭이라는 큰 진실 속에 있다. 여성은 몸, 아니 생명현상 전체가 훨씬 더 복잡 미묘한 역설이다. 임신이라는 금강 화두를 깨치면 녹색 면역 열반에 든다.

 

임신은 당최 의학 영지가 아니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이 주제넘은 의료화로 임신을 의학에 욱여넣은 뒤, 여성 생명 전체와 분리해버렸다. 사달은 여기부터다. 임신은, 하든 않든, 여성 생명을 본령에서 역설이게 한다. 다른 생명체를 자기 몸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구조와 운동 체제기 때문이다. 다른 생명체를 받아들인다는 사건은 자기 생명 일부를 내어준다는 사건을 전제로 한다. 임신은 근원적 자기 비움, 그러니까 자기부정이다. 자기부정을 향해 구성된 생리 메커니즘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진실을 결곡히 인식해야 여성 면역 통짜 진실에 이른다.

 

 

13

 

여성의 관절은 남성보다 느슨하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호르몬(에스트로젠과 릴랙신) 농도가 월경주기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에스트로젠은 힘줄과 질긴띠(인대) 콜라겐 형성 속도를 늦춘다. 그래서 월경주기 가운데 에스트로젠 수치가 치솟는 배란기에 특히 부상이 잘 일어난다.···릴랙신은 에스트로젠과 마찬가지로 콜라겐 전환을 촉진하고 관절을 고정하고 있는 힘줄과 인대를 느슨하게 한다.(261-262)

 

마을 의료기관에서 가장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 가운데 하나가 손목이나 발목이 삐어서 오는 사람에게 하는 치료다. 병 자체도 그렇거니와 치료 내용도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질병 상태를 알기 위한 간단한 문진을 제외하고는 어떤 대화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치료 방식이 다를 뿐 한의사든 정형외과 양의사든 기본적으로 보여주는 같은 제국주의 백색의학 일상이다. 이 일상에서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화들짝 깨어난다. 손목이나 발목이 삐어서 오는 여성일 경우, 필수다. 배란기를 확인한다. 월경주기·임신·출산에 따른 손·발목 관절 문제를 이야기한다.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제국주의 백색의학과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확연히 구분된다. 내친김에 이야기를 좀 더 넓힌다.

 

관절이 어디 손·발목뿐인가. ·발가락, 팔꿈치, 어깨, , , 허리, 넙다리, 무릎···그러고 보면 관절이 아니면 몸이 아니다. 몸이 아니면 생명이 아니다. 생명으로서 펼치는 실천, 관계, 안정, 균형, 지지, 표현, 지향들이 모두 관절에서 나온다. 실천, 관계, 안정, 균형, 지지, 표현, 지향들에서 여성은 남성과 다르다. 개인 생리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정치·경제적 지평에서도 다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열악한 조건 속에 놓인다. 이 조건 때문에 여성은 더 많은 관절병에 걸린다. 한 여성이 반복해서 관절병으로 찾아온다면 반제국주의 녹색의사는 반드시 그 여성 삶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사는 발목 삐어서 무심코 침 맞으러 온 여성 인생 문제를 숙의할 줄 아는 자다.

 

 

14

 

반복 사용 긴장성 손상(RSI)은 힘줄, 관절, 근육을 긴장시키는 특정 동작을 계속 되풀이하는 경우 일어난다.·······

  여성은 반복 사용 긴장성 손상에 더욱 취약하다. 대부분 사무기기가 남성을 대상으로 설계된 사실을 부분적 이유로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여성은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남성보다 많이 종사한다.(264)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통속한 이미지만으로도 제국 백색문명은 충분히 통속하다. 통속한 눈에는 대부분 사무기기가 남성을 대상으로 설계된 사실이란 진실이 들어오지 않는다. 통속한 눈에는 여성은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남성보다 많이 종사한다.라는 사실이 들어오지 않는다. 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 사실에서 비롯한 RSI를 제국 백색문명이 주목할 리 없다. 주목했다면 사무기기 시장 풍경이 달라졌으리라. 주목했다면 직업 남녀 불평등 구조가 달라졌으리라. 이 부질없는 이야기를 부질없이 하는 까닭은 뭔가.

 

이치를 따지자면 우리 이야기는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제국 백색문명이 자기 보전 근간으로 먼저 남녀 불평등 구조를 만들었고, 그 구조 유구함이 도저한 통속함으로 쌓인 셈이니 말이다. 통속함에서 놓여나려면 본진으로 단도직입해야 한다. 제국 백색의사가 그 눈으로 RSI에 주목한대봐야 오십보백보다. 자신이 빠져 있는 문명 함정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인문적 눈을 떠야 한다. 의사이기 전에 인간인 근원 조건으로 진입해 사유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 발을 앞으로 들어 넘어질 위기 속에 투신부터 해야 한다.

 

그다음, 허공에 띄운 발을 더 앞으로 내밀고 몸 전체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위기를 증폭시킨다. 마지막으로, 안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른 발로 힘차게 기존 땅을 뒤로 밀어 위기를 극대화한다. 그러면 먼저 나간 발이 새로운 땅에 닿으며 새로운 안정을 준비한다. 새로운 안정은 찰나적이다. 바로 다음 순간 다른 무너짐이 시작되니 말이다. 그렇다. 근원에 이르려는 자는 끊임없이 걸어 나아가야 한다. 제국 백색문명은 정지, 그러니까 제자리에서 같은 동작을 영원히 반복하려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 제국 백색문명은 RSI 그 자체다.

 

제국 백색문명이 RSI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생긴 이익은 0.1%가 가져가고 손실은 99.9%가 짊어진다. 99.9%는 아래로 갈수록 여성이 많아진다. 그 여성은 다시 겹겹 RSI를 뒤집어쓴 채 살아간다. 팡이실이 녹색문명은 제국 백색문명 등을 떠민다. 한 발을 앞으로 들어라, 촉구한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기울여라, 독려한다. 다른 한 발을 뒤로 힘껏 밀어라, 손뼉 친다. 그리고 구호를 외친다. 근원을 향하라. 인간을 향하라. 평등을 향하라. 자유를 향하라. 평화를 향하라. 사랑을 향하라. “La marche est spiritualité, elle nous connecte à l’univers.

 

 

15

 

표피 두께는 여성과 남성이 같지만, 태아 때 표피 발달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디다. 에스트로젠이 표피 성숙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미숙아로 태어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더 약하고 생존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여겨진다.(274)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을 떠나 다른 사람 손에서 양육된 여성 청년과 숙의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이 시기에 어머니와 주고받아야 할 피부접촉과 교감 누락으로 말미암아 심신 전체가 움푹하게 상처를 입었다.

 

그는 좀처럼 이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무엇보다 상처가 구체적인 삶 속 결핍으로 나타나는 현실을 못 견딘다. 자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근거 없이 높은 기준에 비추어 스스로 검열한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여기는 사람 원망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 주위 사람들한테 끊임없는 온정을 요구한다. 자기 문제 상황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보다 끝없이 집착하는 유아적 태도에 얽매인 채다. 자기가 지닌 실재는 팽개치고 바라는 허구를 향해 악착같이 포옹을 계속한다. 그런 자신을 구질구질하다며 절규한다.

 

진짜 구질구질한 사람은 이미 죽었다.”

 

내가 또박또박 그에게 해준 말이다. 그가 그렇게라도(?) 살아가는 데에는 그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남자아이로 태어났다면 하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처도 원망도 집착도 살아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어떤 중처럼 덮어놓고 감사하라는 얘기를 하려는 거 아니다. 어떤 철학가처럼 아프게 야단치려는 거 아니다. 진실 전경을 보게 하려는 거다. 삶 한쪽 문이 닫혀 있으면 또 다른 한쪽 문은 열려 있다. 닫힌 문만 붙잡고 한탄하는 치우침에서 부디 놓여나기를 빈다.

 

 

16

 

여성은 남성보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지만, 참아내는 능력은 남성보다 떨어진다. 그뿐 아니라 여성은 더 많은 부위에서 더 오래, 더 강한 통증을 느낀다.(300-301)

 

남성이 폭력에 준하는 신체 접촉행위를 한 뒤, 아프다 소리치는 여성에게 엄살떤다며 놀리는 일은 거의 한평생 이어지는 우리 경험이거나 목격담이다. 이런 풍경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무감각이 결코 사소할 리 없다. 여성 산통에 가 닿는 감각이 남성에게 끝내 생기지 않는다는 진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는 통증 일반에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사실 통증은 근원적 문제다. 통증은 인간에게 숙명적 무게를 지닌다. 인간인 한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종교와 정치, 그리고 의료가 비롯한다. 인류가 통증을 이종(異種)으로 인식한 문명을 건설하면서 모든 종교와 정치, 그리고 의료에는 통증을 적대시하는 전통이 자리 잡는다. 적대시는 전략적 악용을 포함한다. 무통을 미끼로 온갖 수탈이 이루어진다.

 

제국 백색문명이 무통 마케팅으로 타락 극한으로 치닫고 있을 때, 큰 스승들은 통증을 열린 문으로 알아차리는 전복적 진리를 제시했다. 동종(同種) 인식 지평에서 통증 문제는 해결 아닌 해소, 축출 아닌 연대 길을 연다. 통증 진리 역시 비대칭 대칭 운동과 구조로써 전체상을 드러낸다. 통증 진리는 의자와 환자 문제가 아니다. 인간 존재 문제다.

 

존재 차원 문제로 다시 묻는다. 통증에서 왜 여성은 남성과 다른가? 이론과 사색이 아닌 경험에서 오는 깨달음 하나만 꺼내 답에 갈음한다. 젖먹이는 일 말고 모든 육아 활동을 전담하면서 1년여 동안 나는 딸아이 곁을 지켰다. 이때, 아기 키우는 사람은 아기보다 여름에는 더 덥게, 겨울에는 더 춥게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전방위 유효다.

 

 

17

 

남성은 통증을 느끼면 혈압이 상승하곤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310)

  ···여성은 두통과 관련된 정서적 고통을 더 많이 받으며 남성은 두통으로 인한 장애가 더 심하다.(여성보다 일상적인 업무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의미다.)(312)

  ···편두통은 분명히 여성에게 더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이다.···편두통은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은 여성에게 편두통이 더 잘 발생하는 이유를 여성이 우울증에 더 잘 걸리는 사실에서 찾으려고 한다.(313)

  ···여성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흉부 통증을 호소하고, 남성은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흉부 통증을 경험한다.(318)

  ···여성이 섬유근육통에 걸릴 확률은 남성보다 9배나 높다.···섬유근육통 환자는 건강한 여성에 비해 정신과 질환을 보이는 경향이 높다.(320-321)

  ···턱관절 장애는···여성에게 7배나 더 높은 비율로 발병한다.···섬유근육통과 턱관절 장애 환자는 서로 겹치는 경향이 있다. 섬유근육통 환자 75%가 턱관절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턱관절 장애는 사실상 섬유근육통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321)

  ···경구용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턱관절 통증을 많이 겪는다.(327)

  ···경구용 피임약 복용은···테스토스테론 농도를 낮출 수 있다.···테스토스테론은 만족할 만한 흥분과 오르가즘에 관여한다.···여성이 에스트로젠과 프로게스테론 농도가 정상인데도 성욕이 줄고, 동기 유발이 잘 안되고, 피로감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기 어려운 상태라면 테스토스테론···결핍을 고려해 볼 수 있다.(342-343, 글 순서 일부를 바꾸어 인용함.)

 

한의 진단도 양의 진단도 맥진에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여성과 남성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한의에서 삭맥(數脈-양의 용어로는 빈맥)이 뜨면 열이 있다고 본다. 이는 남성 중심 진단이다. 여성 삭맥을 감지하고 통증이 있느냐고 묻는 한의사는 거의 없다. 심지어 여성 한의사도 마찬가지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한의학도 제국주의 백색의학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통증이 있으면 여성은 맥박이 빨라지고, 남성은 혈압이 올라가는 차이가 무엇을 뜻할까? 이를 밝혀줄 반제국주의 녹색의학 증거로서 관련 부분을 다소 길게 인용했다.

 

통증을 느낄 때 맥박이 빨라지는 증상을 혈압이 올라가는 증상과 대조하면 이는 마음 증상이다. 혈압 상승도 심리적 측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성 경우 통증이 심해질수록 오히려 혈압은 떨어진다고 하니 상관성에서 약할 수밖에 없다. 통증이 불러오는 공포·불안 등이 맥을 빨라지게 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통증이 어떻게 여성 정서·심리·정신적 스트레스와 연결되는지 두통, 편두통, 흉통, 섬유근육통, 턱 관절통 증상에서 두루 근거가 찾아진다. 개인적 임상 경험에서 알 수 있었던바, 우울장애 여성 거의 모두가 이런 통증 하나 이상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물질은 경구 피임이다. 경구 피임이 이런 질환들을 일으키는 연쇄 매개 고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의사도 환자도 거의 없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여성이 경우 피임약을 먹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남성 파트너가 콘돔 착용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남성 성감을 위해 여성이 희생하는 셈이다. 성적 오르가즘 봉쇄는 각종 통증과 정신장애, 끝내는 생활 파탄으로 이어진다.

 

또 하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바로 턱관절 문제다. 보통 우습게 생각하고 지나치지만,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다. 턱관절에 문제가 생기면 관자뼈(측두골)에 영향을 준다. 관자뼈에 문제가 생기면 두통·이명·청력장애·어지럼증은 물론 위산 감소가 나타난다. 그뿐 아니라 턱관절 운동 축이 목뼈 1, 2번 사이이기 때문에 그 주위 목 통증을 일으킨다. 또한 관자뼈에 부착된 경막이 뇌와 척수를 감싸고 엉치뼈까지 내려가 있으므로 각종 자율신경 장애와 요통을 일으킨다. 턱관절과 이렇게 이어지면서 목 신경 1~4번은 정신·신경장애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가뜩이나 여성이 잘 걸리는데 피임까지 먹는다면 , 턱이 아프네!’ 하다가 우울증까지 내달리는 급행열차를 타는 셈이다.

 

여성이 당하는 이런 일에 남성이 직간접으로 개입한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이 이런 상황을 묵과하고 주도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여성이 남성과 다른 통증 인식과 경험을 지닌다는 사실에 유념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여성에게 통증은 단순한 몸 기능 문제가 아니라 정서와 의미 균열 문제라는 진실에 주의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남성 중심으로 획일화시킨 무조건적 통증 극복 또는 제압을 꾀하지 않는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진단에서 치료, 그리고 그 너머 전인 치유까지 전혀 다른 결과 겹으로 꿈꾼다.

 

 

 

18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 대부분이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성기능 장애를 일으킨다. 이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항고혈압제 때문에 발기불능인 남성에게는 실데나필(상품명 비아그라)이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그와 같은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생명을 생각한다면 심각한 심혈관계 질환을 치료하는 일은 성기능 장애를 개선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러나 성기능 장애라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경우, 삶의 질은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347-348)

 

앞에서 메리앤 J. 리가토가 약, 그러니까 제약회사가 만드는 화학합성물질 문제에 대해 안일한 자세를 취한다고 지적하였다. 이 지적은 책 전반을 관통한다. 안타까운 점이다. 일단 항고혈압제 문제에서 여성과 남성 불평등, 치명적 심혈관계 질환과 성이라는 삶의 질이 지니는 모순 관계를 고민한 일은 당연하고 고맙다. 그러나 고마움은 두 가지를 전제한다. 하나, 항고혈압제가 심각한 심혈관계 질환을 치료한다는 말이 사실이어야 한다. 다른 하나, 실데나필(상품명 비아그라)이 백색화학합성물질이 아니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물론 둘 다 아니다. 우선, 항고혈압제는 그냥 혈압을 강제로 떨어뜨릴 뿐이다. 혈압이 높아지는 기전을 찾아 해결하지 못한다. 간단명료한 증거가 있다. 정말 항고혈압제가 치료제라면 언젠가 치료되고 그다음에는 복용하지 말아야 할 일 아닌가. 그런 일 없다. 이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다. 치료는커녕 부작용이나 수반하므로 사기다.

 

실데나필, 그러니까 비아그라는 대체 어떤 물질인가? 우리가 그 세세한 지식을 공유할 필요까진 없다. 다만 원리를 따져보자. 항고혈압제 부작용에 쓰는 물질이라면 실데나필은 이치상 항고혈압제와 길항하는 기전을 지녀야 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 작용하는 부위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이 어긋남이 그냥 넘어갈 뿐이다. 정말 이 물질은 딱 그 부위에서만 그런 좋은 작용을 하고 마는가? 그럴 리 없다. 결국, 이 물질은 본디 염려했던 부작용을 낳고 만다. 하여 이 물질 제조자 모리배 갱단(피터 C. 괴체)’인 제국 초국적 제약회사 화이자는 심혈관계 질환을 지닌 사람들에게 쓸 때 주의하라는 경고를 교묘한 문구로 어지럽게 늘어놓는다. 그 문구를 의자가 읽나, 환자가 읽나.

 

하나 더. 두 전제 다 입증됐다 치자. 그런데 대체 혈압이 얼마에서 얼마면 항고혈압제를 먹어야 하나? 대체 성기능 장애가 어느 정도면 그 실데나필을 먹어야 하나? 전자는 근거 없는 객관 120-80이고, 후자는 정처 없는 주관 욕망 문제다. 후자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전자다. 120-80은 대체 어디서 나온 기준인가? 필시 백인 남성 청년이 기준일 터이다. 실제로 항고혈압제가 긴절한 연령대는 자기 나이에 90을 더한 수치가 수축기 정상혈압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런 이야기를 임상 현실에서 하지 않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다 안다. 그럼에도 약을 먹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거짓말과 두려움 조장은 백색 마케팅 쌍끌이다.

 

마지막으로 중대한 문제가 있다. 분명히 저자도 항고혈압제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성기능 장애를 일으킨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임상 현실에서 이 문제를 먼저 호소하는 여성은 전혀 없다. 진단 과정에서 신중하게 물어봐도 그렇다고 대답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 이유는 단 하나다. 대체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다. 다시 말하면 그동안 성욕을 정색하고 직면하며 살피며 추구하며 살지 않아서다. 이는 개인 생리 문제가 아니다. 사회정치 문제다. 여성 성욕과 기능, 그 생활이 삶의 질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사회정치적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실데나필이라는 해결책이 없음을 말하는 일은 본말전도다. 양성평등은 sexualitygender 양면을 함께 사유하고 실천해야 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고혈압 증상만 억제하는 가짜 약을 만들지도 쓰지도 않는다. 따라서 발기부전에 요법 포르노를 개발할 필요도 없다. 혈압도 성도 인간 생명과 생애 전체를 놓고 판단한다. 인간 생명과 생애 전체는 그가 속한 공동체 사회정치 흐름을 불가피하게 탄다는 엄연한 사실에 주의한다. 진실에 터 하려 하므로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언제나 스스로 흔들어 안일함을 깨운다. 마치 나침반 바늘처럼.

 

 

19

 

성적 학대를 경험한 여성 84.5%는 그 부정적인 영향이 평생 지속되며, 자기 몸과 자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 그들은 성적 학대를 경험하지 않은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거나 유지하지 못하며, 자기 연인이나 배우자와 있을 때도 옷을 벗거나 불을 켠 채로 사랑을 나누는 일에 불편함을 느낀다.(351)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는 말을 페미니스트는 달가워하지 않으리라. 보편명제로 올리기에 하자 있는 말임이 분명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비수 같은 말임 또한 분명하다.

 

성적 학대를 경험한 한 여성이 어떤 인문학 공부 모임에서 그 사실과 그로 말미암은 고통에서 쉽사리 해방되지 못하는 자신에 관하여 이야기하자 들은 사람들 한결같은 반응은 , 그걸 내려놓지 않느냐?’였다. 자기 연민에 빠져 징징거리는 행위는 인문적 삶에 반한다는 비판이 날아들었다. 놀랍지도 않게, 그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놀랍지도 않게, 그들 리더, 아니 스승은 뜨르르한 철학자였다. 스승은 공개적 질타가 치유라며 가차 없이 그 여성을 공격했다. 그 여성은 다음부터 그들을 무서워했다.

 

그들한테만 특수하게 일어난 일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 태도는 성폭행당했다고 울부짖는 여고생 딸 따귀를 후려갈기며 몸 간수를 어떻게 했기에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여주인공 엄마와 근본적으로 같다. 놀랍지도 않게 이 태도는 남성 내면화다. 놀랍지도 않게 정서적 공감에 터 한 평등한 소통을 내던진 채 이성적 분석에 터 한 일방적 훈계를 집어 든 남성성을 인문학이랍시고 뻐기는 짓이다. 놀랍지도 않기만 한 이 풍경에서 쪼끔 놀라운 상상을 한 번 해보자.

 

그들 가운데 동성애자가 있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자기 연인이나 배우자가 성적 학대 경험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이 평생 지속되며, 자기 몸과 자아에 만족하지 못하는상태에 있으며, 자신과 함께 있을 때도 옷을 벗거나 불을 켠 채로 사랑을 나누는 일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어찌 반응했을까?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성애자 남성이고 비 학습 양성평등주의자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상상할 수 없다. 다만 여성 동성애자라도 자신이 남성을 내면화한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 태도는 달라지지 않으리라 볼 뿐이다.

 

성적 학대에서 인식과 삶 전체 왜곡까지 여성은 중첩적으로 수탈당한다. 피해자인 여성이 수탈에 부역하면 중첩은 더욱 교묘해진다. 이 질곡에서 벗어나는 길은 수탈당한 여성을 치유하는 사후 방책에 있지 않다. 수탈 원천을 봉쇄해야 한다. 수탈 원천을 봉쇄하려면 이 남성 문명, 그러니까 제국 백색문명 멱을 따야 한다. 제국 백색문명 멱은 일극 집중 거대구조다. 일극 집중 거대구조는 소소심심 팡이실이로써만 무너진다. 소소심심 팡이실이는 아픔과 슬픔으로 나지막이 직조된다.

 

아픔·슬픔 팡이실이에 트인 남성이 한 축이 될 필요는 있다. 남성이 아픔·슬픔 팡이실이를 주도해서는 안 된다. 두 번 겪을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20

 

폐암에 걸린 여성 흡연자에게는 특정 유전자(K-ras) 손상이 있는데, 남성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이 유전적 취약성에 의해 담배 발암 물질을 중화시키는 신체 능력이 손상되어 암에 걸리기 쉽다는 얘기다. 이는 또한 여성이 간접흡연으로 암에 걸리기 쉬운 현상을 설명해준다.(371)

 

담배회사들은···엄청난 니코틴 중독성을 숨겼을 뿐만 아니라,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담배 중독성을 교묘하게 강화해 왔다. 건강과 목숨을 앗아가는 흡연 습관에서 흡연자들이 언제까지나 헤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367)

 

결국 메리앤 J. 리가토와 피터 C. 괴체는 여기서 만난다.

 

담배회사 경영자들은 1994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니코틴에 중독성이 없다고 증언했지만, 실은 수십 년 전부터 그들은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다. 미국 거대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는 연구 업체를 설립해서 부류연(sidestream) 흡연 위험성에 관한 증거를 확인했는데, 800편이 넘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지만 단 한 편도 발표하지 않았다.(위험한 제약회사20)

 

피터 C. 괴체 고발은 본디 이렇게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만든 두 가지 유행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바로 담배와 처방약이다.”( 위험한 제약회사19)

 

담배회사와 제약회사는 공통점이 많다. 도덕적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인명 경시가 이 회사들 전형적인 행태다.”(위험한 제약회사20)

 

사실 담배회사와 제약회사 간 공통점은 좀 더 근본적이고 실재적이다.

소녀들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단지 멋있고 세련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곧 담배가 체형을 날씬하게 유지하는 효과가 있음을 (또한 담배를 끊을 때 체중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흡연은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완화해준다. 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담배를 끊고 싶어 할 때, 비슷한 흡연 경력을 가진 같은 연령 남성보다 훨씬 끊기 어려워진다.”(369)

 

그러니까 담배도 약물 일종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사 마약 효과를 지닌 백색화학합성물질이다. 기본 재료가 자연 식물이어도 거기에 담배 중독성을 교묘하게 강화하는 첨가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담배회사는 극력 부인하지만, 그들 전반적 행태로 보아 거짓말임이 틀림없다. 이름이 다를 뿐 담배회사와 제약회사는 동체다. 여기에 백색의사 집단을 보태면 죽음을 팔아먹는 삼위일체 메두사가 완성된다.

 

담배는 더 이상 기호품이 아니다. 개인 취향 문제로 치부할 단계를 진즉 지났다. 사회정치적 어젠다로 하루빨리 설정해야 한다. 담뱃값 올려 천문학적 돈을 수탈하는 한편 공포심 조장하는 공익광고 때리는 야비한 짓 따위로는 어림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20대 여성 흡연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10대 여성 흡연율도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이 담배회사와 제약회사 주구 노릇을 하면서 인류에게 뿌린 독은 여성에게 더욱 심각하다. 무엇보다 젊고 어린 여성에게 뿌려진 독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터이니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녹색의사를 천명 삼은 자로서 고민은 하염없이 깊어진다.

 

 

00

 

메리앤 J. 리가토가 제창한 Gender-specific Medicine을 번역자는 성 차이를 고려한 의학이라 옮겼다. 내 생각에는 성 특정 의학이라 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지금처럼 남성 중심이면서 보편을 전유하는 의학 아래 여성의학 아닌 산부인과 의학을 배속하는 식이 아니라 남성의학과 여성의학을 평등한 두 축, 엄밀하게 말하면 비대칭 대칭으로 놓되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不二而不一) 관계를 유지하는 식이다. 진단과 치료 전반에 걸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교육 내용과 과정도 개편해야 한다. 이런 대대적 변화가 불가피한 까닭은 부분 손질에 그치면 반드시 여성의학은 곁다리가 되고 말 테니까 말이다. 부가적 지식을 얹어놓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게 하면 안 된다. 여성의학은 남성의학과 전혀 다른 생명 감각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지점과 영역이 명확히 존재한다.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결국 혁명 하나가 크게 필요하다.

 

이 책이 출간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현재 메리앤 J. 리가토가 새로운 땅 어디쯤 도달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성 특정 의학을 실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음 병 문제에 주의하여 공부하고 치유한다. 갈 길은 먼데 벌써 황혼이 깃들기 시작했다. 초조해할 일은 아니다. 가는 꼭 그만큼이 내 천명 아니겠나. 삶에 둔 종자 신뢰를 거두어들이지 않는 한 갈 만큼 가게 되리라. 기댈랑은 않고 그저 어떤 궁금함으로 발맘발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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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백색문명은 아이 학대 문명이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아이 학대 의학이다.

 

아이 학대는 태아 때부터 시작된다. 산업 출산 시스템에 결박당한 채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임신을 확인한 여성은 불문곡직 병원으로 향한다. 그때부터 태아는 병원 관리, 아니 학대 아래 사실상 환자로 취급받으며 자유로운 성장을 몰수당하기 시작한다. 출산과 양육 과정에서도 이 학대는 지속되고 강화된다.

 

아무도 이 출산·양육 시스템이 지닌 토건 방식 의료화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사이, 아이들 병은 깊어 간다. 깊이 병든 아이들이 자라 깊이 병든 어른이 된다. 깊이 병든 어른 n명 속에는 각각 성장을 멈춘 아이 n명이 웅크리고 있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그러니까 명 아이들을 합법적으로 죽이는, 전쟁보다 더욱 무서운, 범죄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예방과 치료라는 미명으로 테러를 가함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테러리스트를 자신의 수호신이라 믿게 한다. 각각 아이들 n명씩으로 구성된 가짜 어른 n명은 오늘도 한 움큼씩 백색 화학합성물을 만나로 여기며 먹는다. 이들에게서 임신-출산-양육 과정 의료화 차꼬를 풀어주어야만 문제는 원천적으로 해결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n명 어른 속 명 아이를 인정하는 의학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병든 명 아이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 양육하는 일이 의학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과정 전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모든 질병이 제국주의 백색문명이 일으킨 발달불균형증후군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치유를 천명으로 삼는 자세다.

 

반제국주의 녹색문명은 아이 존중 문명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아이 존중 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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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디 SNS에 한국인은 우울장애에 취약하다고 썼더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는 댓글이 올라왔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한국인의 70%는 북방계다. 그들은 수천 년에 걸쳐 시베리아를 통과해 한반도에 정착했다. 시베리아 평원 혹독한 조건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바는 이른바 우뇌 활동, 그러니까 직관이 지닌 비교 우위다. 직관 우뇌는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므로 부분에 집중하여 낙관하는 상황을 제어한다. 상황이 불투명할 경우, 최악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비판적 통찰이나 비관적 전망 능력이 발달하기 마련이다. 만일 좋지 않은 상황이 장기화하고, 거기에 적응해온 생활 경험이 유전 근거가 된다면, 내 발언은 의학적 유의미성을 획득한다. 우뇌 활성 우위 장기적 고착은 우울장애에 노출되는 길을 활짝 열어놓는다. 실제 통계로 한국인의 75% 정도가 왼쪽 눈이 작다. 왼쪽 눈이 작다는 사실은 우뇌 우위 증거가 된다.

 

75%, 즉 다수는 좌뇌 패권 사회에서 피지배층을 형성한다; 좌뇌 우위 소수에게 수탈당하는 먹잇감이 된다. 그 수탈 과정과 결과를 개인 차원에서 의학적 진술로 번역한 말이 바로 우울장애다. 녹색 뇌 이야기를 통해 역설한 우뇌 혁명은 이런 정치경제학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혁명이란 용어를 동원한 까닭은 지배 세력이 이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할 리 없으므로 수탈당하는 사람, 그러니까 우울장애를 앓는 생명공동체가 수탈체제, 그러니까 질병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질병 체제를 전복하려면 공동체 구성원이 스스로 일어나 연대해야 한다. 스스로 일어나 연대하려면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각성해야 한다. 각자 다른 소향과 정황을 모두 끌어안은 생명 장()이 있다는 진실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이 각자도생을 선동할 때,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생명공동체의 팡이실이를 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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