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나와 까치 능선길을 따라 관악산으로 들어가는 경로는 다소 지루하다. 그러나 내가 서울에서 차를 타지 않고 숲길을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큰 산은 관악산뿐이다. 오늘은 그렇게 걸어 아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등산로를 따라 계곡을 거쳐 능선에 도착한다. 천년송 지나자마자 낙성대역으로 내려가는 능선으로 들어선다.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내 지성소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내려가면서 지난번에 걷지 못한 계곡물 발원지를 확인한다. 물론 발원지는 하나가 아니다. 계곡 갈래를 잘 살피면서 내려오다 보니 또 다른 발원지가 나온다. 누군가 그곳을 보존하려고 석축을 쌓고 들머리 물길을 확보해 놓았다. 사람이 자주 지나는 곳이라 훼손될 염려가 커서 그리 한 모양이다. 숲에 나뒹구는 사람 자취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이런 손길은 결 다르게 느껴진다. 완전한 야생 숲이 진리는 아니다.

 

문제는 숲을 행락 장소로 써먹는 사람이다. 내가 지성소 삼은 작은 폭포 위 너럭바위에 남녀 여럿이 앉아 고기 먹고 막걸리 마시며 왁자하다. 도시 오염된 공기와 자동차 소음 속에서 먹고 마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숲이 다만 그런 도구로 여겨지고 마는 일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은 숲에서 태어났다. 숲이 사람에게 팡이실이를 가르쳤다. 나무가 사람 직립 본성을 일깨웠다.

 

나는 이 진실에 감사하며 먹고 떠드는 사람을 등 뒤로 하여 숲에 큰절을 올린다. 정화수와 잔을 올리고 반제국주의 진언, 그러니까 부역 아이콘을 위한 축원을 올린다.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아득히 멀어진다. 흐르는 물소리 가을벌레 소리가 교향악으로 영을 채운다. 숲을 도구 삼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내 말을 숲은 듣는다. 피톤치드로나 기억하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나무의 말을 나는 듣는다.



지성소 계곡에서 나와 서울 둘레길을 따라 낙성대로 향한다. 세 번째 찾은 음식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는다. 맛있게 먹은 다음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 여자 사람이 말을 건넨다. “선생님, 참 단정해 보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참 다정해 보이십니다.” 곱슬해서 제멋대로 뻗친 꽁지머리에 회백색 수염이 덥수룩한데 단정해 보인단다. 단정하면 냉정해 보일 텐데 다정해 보인단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극찬의 표현이다.

 

칭찬에 서투른 나는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라고 엉뚱하게 대답하고 만다. 민망한 나머지 서둘러 백악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가면서 생각해 보니 그 대답은 엉뚱하지 않다. 그 대답은 내가 아니라 숲 자신이 했기에 말이다. 오늘따라 연이어 오는 등산객 때문에 청와대 전망대 아닌 장소를 택해 제의를 진행한다나지막이 소리 내어 백악 생명에게 내 뜻을 전한다. 고요히 귀 아닌 귀를 열어 말 아닌 말을 듣는다.

 

앞으로 이 순례와 제의가 내 삶에서 주축을 이루게 될 듯하다. 그 이름을 관백제라 붙인다. 오늘 관백제 끄트머리는 다소 심란하다. 청와대에서 무슨 떠들썩한 공연이 벌어지고 있다. 들려오는 노래 면면이 거시기하다. 청와대 희화화 일환은 아닌지. 무슨 법산가 하는 자가 내린 처방은 아닌지. 특권층 부역 정권이 하는 패악이 점입가경이니 분노하는 일도, 슬퍼하는 일도, 견뎌내는 일도 여간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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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거실 통창을 통해 관악산 푸르스름한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온다.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다. 이로써 내 하루가 시작된다. 관악산은 여기 사는 동안 내가 깃들 넉넉한 품이다. 시월 초하루 나는 관악산 스무 계곡 중 남은 셋을 걸음으로써 모든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 셋 중에서 지성소로 삼을만한 곳을 찾았다.

 

집에서 살피재를 가로지르는 능선을 타고 걸어 까치산으로 간 다음 서울 둘레길로 접어들어 갈래 진 소곡들을 더듬어 간다. 첫 계곡은 무당골이다. 입구에 등산로 폐쇄를 알리는 안내 표지가 덜렁대고 거의 사용되지 않는 듯한 화장실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영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성소 찾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나뭇가지로 거미줄을 걷어내며 깊숙이 들어간다. 가까이에 무당 바위가 있어 그저 무당골이라 이름한 모양으로 영검한 기운은 없다. 인적 끊겼으니 고요히 제의를 수행할 호젓한 곳은 있다. 문제는 정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 천명은 정화에 우선순위가 있으니 이 문제를 각별하게 신경 쓴다.

 

돌아 나와 산자락을 타고 다음 계곡으로 향한다. 들어서는 순간 느낌이 좋다. 이름도 없는 소곡이지만 나름 깊어 영롱한 물소리를 낸다. 이따금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고요한 편이다. 무엇보다 정갈한 느낌을 준다. 몇 군데 눈길을 끄는 곳 가운데 나름 폭포 형상 풍경이 있어 살펴보니 길가긴 하지만 온욱하다. 그래 여기다.

 


올라온 길을 도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더 올라간다. 정상 직전에서 우회해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다음 계곡으로 넘어가는 자락 길로 접어든다. 샘방골이라는 이름을 지닌 계곡 입구에 도착해 보니 각종 편의 시설과 사방공사로 풍경이 사납다. 진입 자체를 단념한다. 다시 자락길을 걸어 다음 계곡으로 넘어간다. 소박한 소곡인데 나지막이 소리 내어 물이 흐른다. 그 물에 발을 담그고 중년 여자 사람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볍게 인사하고 계곡 이름을 물으니 모른단다. 다음 계곡으로 넘어가는 자락길이 있느냐고 다시 묻자,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킨다. 물론 지도에 없는 오솔길이다.

 

오솔길로 접어들어 조금 걸어가니 밤나무가 나타난다. 방금 떨어진 듯한 토실한 밤알이 있어 당을 보충한다. 저혈당 상태를 살포시 감지해서다. 감사 예를 표하고 더 깊이 숲으로 들어간다. 더 깊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숲을 벗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잠시 뒤에 알아차린다. 갑자기 눈앞에 서울대 관악사 운동장이 나타나서다.

 

관악사 운동장에서 들어가는 계곡이 관악(산속) 지리()’ 계곡이다. 이렇게 해서 관악산 계곡 순례가 끝났다. 이제부터 걸어서 들어갔다가 걸어서 나오는 관악산 지성소를 또 한 축으로 삼아 내 삶과 제의, 인간과 숲을 잇는 일을 계속한다. 북쪽 주산 백악과 남쪽 객산 관악을 반제국주의 전선 공동 주체, 아니 으뜸 주체로 모시고 나, 그러니까 사람 나무가 살아가는 나날을 나는 천명 수행 과정으로 여긴다. 오늘 여기서 이웃해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삶을 어찌 생각할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깜냥대로 공부하고 사유하며 실천해 온 내 삶이 지닌 전체성에 터 잡아 순간을 살아 낼 따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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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 대가족 공동체에서 한가위는 참으로 대단한 날이었다. 그 한가위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지 제법 됐다. 60년 가까이 서울살이하면서 내가 도착한 종착역은 아내와 딸, 그리고 나, 이렇게 셋뿐인 도시 핵가족이었다. 자연스럽게 명절 개념이 증발했다. 설이 없어지니 세배가 없어지고, 한가위가 사라지니 송편이 사라졌다. 이제 가족에게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한의원 문을 열 수 있다니 서늘하다.

 

텅 빈 지하철 타고 썰렁한 골목길을 지나 한의원에 앉아 환자를 기다린다. , 물론 기다린다는 표현에는 문제가 있다. 나는 그저 글 쓰고 틈틈이 일어나 걷고 뭐 있나 하고 TV 화면을 곁눈질한다. 정오가 조금 안 된 시각에 한의원 건물 입구에서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려온다. 직감으로 치매 앓으시는 어르신 모자임을 알아차린다. 어르신은 왜 간호사가 없냐고 물으신다. 한가위임을 모르시기 때문이다.

 

침 맞고 누워 계신 동안 아들이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한의원 와 침 맞고 상태가 잠시나마 호전되어 다리에 힘도 붙고 잠도 잘 주무시는 일이 어머니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커다란 해방감을 준단다. 그 아내가 시달리던 편두통도 내가 생전 처음 보는 접근법을 쓴 덕에 좋아졌다고도 한다. 그가 내게 이토록 많은 고마움을 털어놓았던 적이 없었던지라 적잖이 놀랍다. 장인 모시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다.

 

명절날 진료소를 열어 놓고 있는 일이 의료인에게 결코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오늘 같은 예상 밖 일이 내가 명절에도 나와 적요를 견디게 하는 힘이다. 내가 진료하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해 보면 오후 내내 텅 비어도 행복할 듯하다. 그가 다시 돌아와 포도 한 상자를 건넨다. 어느 때보다 그 눈빛이 촉촉함으로 반짝인다. 이제부터 한의원 올 때 즐겁게 놀러 온다고 생각하겠다며 어린아이 표정으로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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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그래왔듯

 

늘 먹는 아침 도시락으로 차린

 

416 차례상

 

오늘 더 아득하지만

 

내일 더 더 희망을 짓기 위해


큰절 크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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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느질하는 사람이다. 직업이라는 말이 아니다. 요즘 사람, 더구나 남자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말이다. 자주 쓰는 흑백 실 꿴 바늘 두 개를 아예 책상 위 컴퓨터 앞에 놓아두고 있다. 양말, 장갑, , 우산, 모자, 목도리, 그리고 단추···무엇이든 해지고 찢어지고 뜯어지고 떨어진 곳을 수선 전문가에게 맡길 정도가 아니라면 손수 바느질해서 쓴다.

 

구멍 난 양말 꿰매는 내 모습이 아내 눈에 그리 좋은 풍경으로 들어올 리 없다. 아내가 꼭 그리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냐고 말할 때, 내 처음 대답은 이랬다.

 

양말이라는 사물에 예의를 표하는 내 방식이다.”

 

요 몇 년 동안 식물을 공부하면서 대답이 달라졌다.

 

양말이라는 이 사물이 발원한 식물에 경의를 표하는 내 방식이다.”

 

최근 곰팡이와 제국주의를 공부하면서 대답이 다시 달라졌다.

 

바느질은 팡이실이며 제국주의 반대말이다.”

 

김선우의 사물들<바늘, 숨은 자의 글썽이는 꿈>에서 시인은 말했다.

 

바늘은 자기 몸에 실을 꿰고 온몸으로 옷감-현실을 관통한다. 그리고 숨는다. 바늘은 현실에 깊숙이 관여하면서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바늘에게는 아상(我相)이 없다. 찢어지고 떨어지고 조각나고 해진 것들을 이어 붙이고 매달아 주고 기워주면서 자신의 존재를 타자 속에 스미게 한다. 바늘의 자아는 그 자신의 이름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이 이어 붙이고 부활하게 한 옷감으로 증명된다···

 

자기의 온몸으로 자기를 넘어가는 바늘의 흔적은 고요하다.”(86)

 

시인은 사물로서 바늘에 주의하면서 사유했고, 나는 사건으로서 바느질에 주의하며 사유한다. ‘온몸으로 옷감-현실을 관통자신의 존재를 타자 속에 스미게하면서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일이 여태껏 불려 온 이름은 네트워킹이었다. 이 말이 심각하게 오염되었다고 판단해 내가 만든 순우리말이 팡이실이. 팡이실이로 우리는 현실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지닌 근원 범주가 제국주의다. 제국주의에 깊숙이 관여하는 일은 제국을 해체해 작은 생명 팡이실이들의 팡이실이를 무한히 결 지고 겹 지게 하는 일이다.



여름에 진료할 때 입었던 하얀 한복 저고리가 워낙 낡아 손 쓰기 힘들 정도가 됐다. 조심조심 손빨래해서 조심조심 바느질했다. 두 여름은 더 입을 수 있겠다. 이로써 제국주의 붕괴가 두 여름 앞당겨졌다고 나는 주()한다. 내 주는 영검하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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