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6. 금. `나무 위의 남작` - 이탈로 칼비노 / 51˝땅을 제대로 보고 싶은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열두 살 나이에 나무 위로 올라간 소년은 나무 위에서 세상을 보고 배우고 변화시키고 그리고 사랑한다. 황폐하고 모순적인 땅을 떠나 푸르고 높은 그 세계로 숨어들어가 자신만의 안락과 자신만의 고행을 택한 그의 삶,그 기이하고도 환상적인 행보에 놀라고 또 감동한다. 구불구불한 나무 가지 사이로 내려다 본 땅의 세상과 늘 평행선을 달리는 듯 하지만그 적당한 거리만큼 세상을 바로보고자 노력하고 또 적극적으로 세상과 어우러지는 삶을 만들어 나간 코지모 남작이 두고 두고 그리울 것 같다. `반쪼가리 자작`과 `나무위의 남작`을 통해 이탈로 칼비노는 나에게 절대적은 신뢰를 얻은 몇 안되는 작가, 그 영광의 반열에 오르셨다. ^^˝우리는 현실의 표정, 책임감, 에너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고 애쓰지만 점점 더 힘을 잃어 가기만 한다. 환상 소설을 통해 현실의 표정, 에너지, 곧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에 활기를 주고 싶었다˝ - 이탈로 칼비노
2016. 5. 1. 일.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전우익 지음 / 50 입으로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생활 신조, 삶 자체로 말하는 바를 보여주는 이의 숭고한 가르침. 자연의 섭리를 머리와 가슴에 담고 농사꾼의 마음으로 이 세상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대했던 그 분의 이야기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나 그 이상의 것을 들여다보는데 미숙한 작고 작은 내 고개가 자꾸만 숙어진다. 밭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적으나 많으나 수확을 하고. 그렇게 일년 사계절의 시간이 생의 시작부터 끝날까지 반복되고. 산다는 게 그 순환과 이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있다던가. 좋은 인생의 밭을 가꾸기 위해 몸도 마음도 자신만의 시간, 속도를 따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라는...나로써 살되 나 아닌 자연의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그 분의 이야기가 5월의 첫 날 나에게 천금같은 선물과 가르침이 된다.
2016. 4. 30. `책들의 전쟁` - 조나단 스위프트 / 49토요일 이른 아침. 버거킹에서 햄머핀과 곁들여 달콤 쌉쌀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풍자를 맛보다.`1742년 메닌거 신드롬이란 질환으로 금치산자 선고`세기의 풍자작가가 불현듯 인생말미 정신착란으로 삶을 마감했다니 그의 인생이 문득 궁금하다. `메닌거 신드롬`은 네이버도 모른다는 것이 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
2016. 4. 29. 금.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 염은열 지음 / 48송두리째 삶이 뽑혀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형벌.유배.내가 살아온 곳에 뿌리 내리고 꽃을 피우고 또 열매 맺으며 살고자하는 정착민들에게 유배란 예나 지금이나쉽게 받이들일 수 없는 고난이자 도전이다.조선시대 후기 유배형을 겪는 그들의 사정,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이 가슴아리다.삶이 흔들릴때마다 기꺼이 난 유목민, 길 떠나야지 했던 마음을 떠올린다.유배의 형벌을 받기 전 `자의에 의한 유목`을 자청하며 떠나고 또 머물렀던 나에게 진짜 삶은 무얼까 갈팡질팡한다..내 삶은 유배인가 아니면 유목민으로서의 헤매임인가. 아무래도 이 한 주가 내겐 힘에 부쳤나보다.생각치도 못하게 `유배`에 꽂히고 그 양반들의 거친 여정에 맘 아파하는 내 모습에 비춰보니.. 내가 많이 힘들고 지쳐있다는 것을 오롯이 느끼게된다.유배를 떠나는 자가 아닌 유목민으로 살기 위해난 더 굳건한 생명력을 꿈꾼다.삶의 무게를 겸허히 그리고 웬만하면 거뜬히 감당하고 싶다.돌아갈 곳을 꿈꾸는 유배가 아닌헤매임 그 자체의 즐거움과 깨달음을 꿈꾸는 유목.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그저드넓은 초원, 그 위에서 쐬는 바람으로 즐기고 싶다.지치지 말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배지로서의 삶이 아닌 발걸음도 마음도 가벼운 유쾌한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부단히 걸어가기 위해.
2016. 4. 25. `오 자히르` - 파울로 코엘료 / 47 10년 전 파울로 코엘료의 책에 빠져 그의 작품들을 연이어 읽던 시절이 있었다. 서른 무렵, 삶을 안다고 생각했고 남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착각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매 장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채로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주인공의 손을 맞잡고 그가 이끄는 대로 물안개 휩싸인 숲 속을 뛰어다니는 신비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경험이 설레었고 즐거웠었다. 10여 년 만에 그의 책을 다시 펼쳐들며 그 때의 그런 감정과 같지는 않아도 그 비슷한 무언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시절과 결코 같을 수 없는 내가, 그 시절과는 많이 달라진 오늘, 이 책은 전혀 다른 그 무엇이 되었다. 기대했던 잔잔한 전율과 설렘 대신에 자꾸만 어디선가 질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난 10년...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길 포기하고 가진 것에 순응하며 현실과 모양새 좋은 타협을 하는 것에 내 최선을 다하며 버둥거려 왔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와 나를 잠식시킨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정성`이라는 것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점 사그라들었으며 오로지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각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편협한 구도자가 되었다. 충만하고 평온한 내가 되고자하는 그럴싸한 명목 하에 마흔 무렵의 나는 이토록 좁고 작고 소심한 내가 된 것은 아닌지... 문득 마음이 쓰리고 무겁다. 책 속의 주인공은 유목민 마을로 들어서며 그들의 관례에 따라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선택한다. `아무도 아니다 (Nobody)` 그리고 오랜 시간 번민하고 헤매인 끝에 그의 자히르, 그의 아내, 그의 여자, 그의 꿈을 만난다. 자신을 비우고 자신에게 진짜 가치있고 중요한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조심스러운 한 발을 내딛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은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변함없이 가슴찡했다. 이 책을 펼치고는 꿈을 잃고 사는 좁고 작은 나를 발견하게 된 것 같아 씁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질책의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 나의 허울을 벗고자 애쓰는 것 만으로 그리고 또 다시 스스로에게 이대로 좋은가를 묻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고 아름다운 재회였다. 인생 구도자들인 우리 모두를 정진케 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목소리를 듣고 갈등하고 또 질문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재회의 여운으로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