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5. `오 자히르` - 파울로 코엘료 / 47 10년 전 파울로 코엘료의 책에 빠져 그의 작품들을 연이어 읽던 시절이 있었다. 서른 무렵, 삶을 안다고 생각했고 남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착각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매 장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채로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주인공의 손을 맞잡고 그가 이끄는 대로 물안개 휩싸인 숲 속을 뛰어다니는 신비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경험이 설레었고 즐거웠었다. 10여 년 만에 그의 책을 다시 펼쳐들며 그 때의 그런 감정과 같지는 않아도 그 비슷한 무언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시절과 결코 같을 수 없는 내가, 그 시절과는 많이 달라진 오늘, 이 책은 전혀 다른 그 무엇이 되었다. 기대했던 잔잔한 전율과 설렘 대신에 자꾸만 어디선가 질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난 10년...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길 포기하고 가진 것에 순응하며 현실과 모양새 좋은 타협을 하는 것에 내 최선을 다하며 버둥거려 왔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와 나를 잠식시킨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정성`이라는 것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점 사그라들었으며 오로지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각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편협한 구도자가 되었다. 충만하고 평온한 내가 되고자하는 그럴싸한 명목 하에 마흔 무렵의 나는 이토록 좁고 작고 소심한 내가 된 것은 아닌지... 문득 마음이 쓰리고 무겁다. 책 속의 주인공은 유목민 마을로 들어서며 그들의 관례에 따라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선택한다. `아무도 아니다 (Nobody)` 그리고 오랜 시간 번민하고 헤매인 끝에 그의 자히르, 그의 아내, 그의 여자, 그의 꿈을 만난다. 자신을 비우고 자신에게 진짜 가치있고 중요한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조심스러운 한 발을 내딛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은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변함없이 가슴찡했다. 이 책을 펼치고는 꿈을 잃고 사는 좁고 작은 나를 발견하게 된 것 같아 씁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질책의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 나의 허울을 벗고자 애쓰는 것 만으로 그리고 또 다시 스스로에게 이대로 좋은가를 묻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고 아름다운 재회였다. 인생 구도자들인 우리 모두를 정진케 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목소리를 듣고 갈등하고 또 질문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재회의 여운으로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