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8. 월 `자기 앞의 生` - 에밀 아자르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엄마 아빠의 얼굴도 모르고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의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에 의해 키워진 열네 살 아랍인 소년 모모.그가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로자 아줌마가 뇌혈증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슬프고 아픈 한 시절의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없이 살 수 있나요?˝를 묻던 모모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그리하여 죽은 로자아줌마의 시체 곁을 3주일을 지키며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가슴이 울컥했고 머리속이 하얘졌다. 사랑했던 이를 잃은 허망함과 아픔 뒤에도 스스로 ˝사랑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14살 소년. 정말이지 어메이징이다. 아랍인이든, 유태인이든, 아프리카인이든, 가톨릭신자든... 그리고 너이든 나이든...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유일무이한 진실. ˝사랑해야 한다˝ ... 소설 `인생`에서 위화는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맞는 얘기.. 그러나 사랑이 없다면 살아가기 위한 힘을 얻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이 빛날 수 없다는 것... 사랑해야 한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자기 앞의 生` 그 한치 앞이라도 비추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한다.
2014. 12. 2. 화. `인형의 집` - 헨리크 입센누군가를 죽인 것도,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아픈 남편의 요양을 위해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여 돈을 빌린 것 뿐인데... 남편에게 그 사실이 발각되어 남편을 실망시킬까봐 걱정을 하다니... 언제나 남편의 취향대로 남편의 즐거움을 위해 남편의 꼭두각시가 되어 살아온 가여운 여인 노라. 사랑받고 편안한 삶 이면에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가꾸어 나가야 할 스스로의 의지와 자존감을 상실한다는 것은 19세기 말 북유럽에서나 21세기 초 대한민국에서나 마찬가지로 슬프고 아픈 일이 아닌가...싶다. 노라처럼 지금의 우리도 정말 뭣도 아닌 것 때문에 인생 다 산것 처럼 전전긍긍해하는 모습이 너무나 닮아있다. 사회, 관습, 법률이 그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하는 판단과 행동이 옳은지 그리고 그것을 따라야만 하는지는...˝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한다는 것.`관습` 그 자체가 악습이거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습` 그리고 `주류의 규범`을 무조건 따를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이에 대한 개개인의 고찰이 결여된 것.그것이 악습이고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노라가 떠나고 난 빈자리에 남아 맴돈다.
2014. 8.5. 화 `Self` - 얀 마텔남자로 태어나 18살 생일에 여자가 되고 다시 26살.. 끔찍한 강간을 겪으며 다시 남자가 된 주인공의 허구의 자전적 소설 `Self``Life of Pi` 에서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뱅갈 호랑이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가는 주인공으로 나를 매혹시켰던 얀 마텔이 이번에는 `올란도` 처럼 성을 바꾸며 자신의 남자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로 나를 휘어잡았다... 소설가의 상상력은 정말이지 독자에 대한 `구원` 그 자체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유쾌하고 설레이는데 가슴 저리고 씁쓸하다. 어린 시절부터 서른 살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엿보는 성장 소설의 즐거움도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한 인간의 고단함이 무겁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세상에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일... 나는 무엇을 믿고 있고 또 거기에는 나의 무엇이 담겨 있는가... 무엇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는가... 주인공의 디테일한 내면 묘사는 결국은 나를 향해 던져지는 수많은 질문들이 되어 나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다. 책을 보면서 몇 번이나 앞 쪽을 뒤적거렸는지 모른다. 주인공 이름이 뭐였더라... 하면서. 내 심각한 건망증으로 또 외국 소설 주인공 이름이 뇌리에 박히지 않는구나 하면서. 그런데 내 뒤통수를 친 것은 주인공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 `Self`. 그냥 그 자신 혹은 그녀 자신 이었던 것. 왜 였을까... 작가가 주인공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던 이유는.. 소설 속 `나 자신`의 시각과 경험을 통해 소설을 읽는 독자 `나 자신`이 소설을 완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을까? 같은 소설일지라 하여도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의 수 만큼 다른 인격체로 완성되는 소설의 세계가 새삼 신비롭다...................우리 눈의 맑은 액체는 바닷물이고, 우리 눈에는 물고기가 있다. 사랑은 눈에 있는 물고기의 먹이이고 사랑만이 그 물고기들을 키운다.열정적인 포옹을 하고 있는 중에 숨결이, 숨소리가 가장 거세어지고피부가 가장 짜릿해질 때 나는 내가 무아지경에서 바다의 일렁임을 듣고 느낄 수 있다는 생각 같은 것을 한다. .... 어찌됐든 간에 나는 아직도 사랑은 대양같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Self 中>
2014.7.12. 토. `생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Nina.. 엷은 공기 속에서는 살 수 없었던 여자..열과 동요와 변화를 필요로 했던 여자...많은 위험을 감행할 성질의 여자...나쁜 운명이 그 여자를 가져다 놓은 장소를 결코 떠나지 않고 운명은 어쨌든 의미 있고 정당하다고 믿었던 여자...토끼처럼 밤낮 사는 것에 넌더리가 날 지라도 지금이 아닌 다른 삶, 나 아닌 타인의 삶을 원치 않았던 여자... 소름이 끼치는 추악함 일지라도.. 그것을 외면하면 생의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여자... 질풍노도의 시기에 늘 내 곁에 두었던 책을 20년이 훌쩍 지나 다시금 펼쳐보니... 그 시절 가슴에 품었던 니나의 모습이 아주 조금이나마 내 안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소설 속 현재의 니나가 서른 여덟인 줄은 미처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의 내 나이 즈음이라는 것이 왠지 더욱 애틋하다. 사랑과 좌절, 생에 대한 집념과 갈등... 기만과 타협을 용납치 않는 고집스러운 니나...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인 그녀와의 간만의 재회가 너무나 설레었고 반가웠고.. 또 고맙다. 삶의 모델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친구처럼 여겨진다. 불안하지만 도전적인 그녀의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주말 저녁이다...
2014. 7. 4 `The little Prince` - Antoine Saint-Exupery˝The grown-ups are certainly altogether extraordinary˝...가끔씩. 몇 년에 한번씩 펼쳐보는 어린왕자..서른 아홉 여름 문턱에 펼쳐든 어린왕자는...너무 슬프고 아프다. 어느 시절엔 분명 어린왕자의 마음으로 어른들의 우스꽝스럽고 모자란 모습을 답답해했던 내가...이제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the grown-up`이 되어서, 나만의 작은 행성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생생히 와닿는다.이래서 이야기는 생과 함께 변해가고 완성되어가는 것이라나 보다.나만의 `어린왕자`는 몇년 뒤 또 어떤 새로움과 감동으로 되살아날런지...다시 만날 그때는 이상한 어른들의 모습이 비수처럼 와닿지 말고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꽃과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설레어하며해지는 풍경을 위해 해 질 시간을 기다리는마음이 꿈결처럼 와닿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