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제로 라이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삶
실비 드룰랑 지음, 장 부르기뇽 그림, 이나래 옮김 / 북스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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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 때문에 환경문제는 순위가 밀려가는듯해서 걱정이다. 지구 위기란 말은 곧 환경 위기를 말한다. 그럼에도 관련기사를 보면서 순간의 심각성만 인지할 뿐이다. 내 손 안을 떠난 쓰레기처럼 금세 잊고 만다. 환경호르몬은 눈에 보이지 않고 쓰레기 산은 볼 일도 없으며 쓰레기가 처리되는 과정 또한 누군가가 할 일이라고 여긴다.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하기엔 쓰레기 문제는 이미 그 심각성을 넘어섰다.

 

 

내가 버린 일회용 커피잔, 다 재활용 되는게 아니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전남 해안에 밀려든 쓰레기 5400톤…처리 구슬땀

출처 : 전남일보

치킨 뼈·굳은 삼겹살…'배달 음식' 쓰레기의 역습

출처 : 네이버뉴스

[코로나 後 쓰레기 대란①] 환경의 경고… 언택트 시대 과제로

출처 : 뉴데일리경제

일회용품 분리수거 '나몰라라'...쓰레기 대란 위기 '코앞'

출처 :YTN

 

 

이 책을 읽기 전에 몇 권의 환경 책을 보았다. 그 뒤로 환경 뉴스를 챙겨 읽는 편인데 특히 쓰레기 문제에 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휩싸이곤 한다. 쓰레기 줄이기에 어떻게 동참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바쁘다는 핑계로) 이 책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저자가 한국인이 아니라서 우리나라 경제사정과 맞지 않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맥락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체크해가며 읽었다.

우선은 쓰레기를 버려서 큰일이라고만 생각했지 새 제품이 만들어질 때 나오는 쓰레기를 간과했음을 알았다. 게다 우리가 재활용이라고 내놓은 것들도 거의 일부만 재활용이 된다고 하니 그만큼 쓰레기 문제는 그보다 더 포괄적이고 넓게 생각해야 한다.

 

간단하게 접근하면 줄이기, 재사용하기, 재활용하기라는 세 단계를 생각할 수 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이자 소비주의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보니 집집마다 물건이 넘치고 쌓인 물건에 치여 사는 이들이 많다. 그렇기에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다면 환경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 제로를 위한 삶은 결코 소유의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소유의 삶이 아닌 존재의 삶으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뭐든 계획적으로 살아야 한다. 특히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뒷받침되어야 실천하겠다는 의지도 오래 지속된다. 계획된 장보기, 벌크 제품 구매 시 필요한 천 주머니 소지,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 구매, 친환경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고 쓰레기 제로 매장을 이용한다. 농산물 직거래를 이용해서 버려지는 제품 포장을 줄이고 외식보다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더 좋으며 직접 채소를 길러먹는 것도 추천하고 있다.

 

며칠 전에 생활 속 환경호르몬에 관한 방송이 나간 적 있었다. 방송을 보니 우리는 꽤 많은 환경호르몬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놀랐었는데 그걸 보았다면 실천내용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의류, 화장품, 생활용품 등 우리의 건강과 직결되지 않은 것들이 없었으니 이제부터는 똑똑한 소비를 해야 할 때다. 기업의 파워 때문에 이런 환경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권에서도 눈치만 보고 나서주지 않는다. 결국 이건 현명한 소비자의 몫이다. 그런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걸로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

 

 

 

 

저자는 가족 모두가 쓰레기 제로 운동에 동참하고 있었다. 육류 섭취 줄이기, 물건 덜 사기, 일회용품이나 포장이 과한 제품은 구매하지 않기, 친환경 제품을 함께 만들어 쓰기 등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범위를 늘려가며 실천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참 기특하단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기까지 부모님은 아이들과 환경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역시 부모가 준비되어 있으니 아이들도 따르며 자긍심을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한다.

 

나도 최근엔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려고 하지 않으며 재활용에도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번거로워도 텀블러는 늘 가지고 다니고 있으며 장바구니와 손수건 등을 챙겨 다닌다. 배달음식은 가급적 피하고 육류 섭취를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중고물품을 구매하는 등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저자는 일 년에 배출하는 쓰레기양이 단 한 통이라고 한다. 정말 대단한 가족이지 않은가. 오늘 아침에도 아파트 단지에 배출된 쓰레기들을 보며 얼마큼 애쓰고 노력해야 눈에 띄게 줄여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 장에는 친환경 제품을 위한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어 팁을 얻을 수 있다. 시중에 각종 강력 오염제거제에 현혹되지 말고 친환경 세제를 만들어 쓰면서 수질오염을 줄이는데도 동참해야겠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일 수 있다. 더는 걱정만 하지 말고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에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면 좋겠다.

#야너두할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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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이현욱 옮김 / 밀리언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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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을 거의 읽지 않았던 때도 하루키와 히가시노 게이고는 알았다. 두 작가의 작품이 가장 자주 출간이 되는듯했고 베스트셀러 대열에서 늘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두 작가의 책을 읽은 건 고작 두어 권뿐이다. 이상하게도 손이 가질 않는다. 아무리 주변에서 극찬을 늘어놓아도 준비가 안되면 읽히질 않는 법. 하지만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에서 그의 삶을 본 것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왔었다. 게다 작가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곤 친숙함마저 느끼기도 했고 그 뒤 수리부엉이 티저북도 읽었기에 하루키의 규칙이 전혀 낯설진 않겠다 싶었다.

 

책을 본 순간 이제는 하루키를 제대로 만날 때임을 직감했다. 일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을 읽고서 느낀 감정과 비슷하달까. 워낙에 출간된 책도 많기에 독파하려면 시일이 좀 걸리겠지만 작가의 세계관과 문체를 제대로 음미하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하루키의 작품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워낙에 다독 다작하는 작가임은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많이 글을 내놓았으면 그의 책으로 하루키 규칙이 나올 정도였을까. 그의 작품을 거의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었다면 맞장구를 연신 쳐댔겠지만 난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준비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읽어내려갔다.

 

 

 

 

 

그의 규칙을 조목조목 따져보고 그런 기법이 가져다주는 효과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나다. 참고 예문은 더욱 책에 대한 구미를 당긴다. 작가 지망생들이라면 필독서가 아닐까. 이렇듯 작가들은 글을 쓸 때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이름, 지명, 연도 등 세세하고 꼼꼼하게 기획하고 연결고리를 지어 놓는다. 어떤 작가는 조사 하나에도 느낌이 달라져 며칠을 끙끙 앓았다고 했다. 이러한 점들을 알게 되니 더 정독하게 될 것 같다. 제목이, 이름이, 시간이, 숫자가, 음식이, 지명이, 음악이, 색채가... 뭐 끝도 없구나. 이제서야 책 읽는 속도를 붙였는데 다시 느려지겠는걸.

 

책장에 <1Q84> 세 권과 <기사단장 죽이기> 두 권, <여자 없는 남자들>과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가 여태 진열 중이다. 이것부터 시작할까 하다 <도쿄기담집>부터 시작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를 지나 <노르웨이 숲>을 거쳐 <1Q84>로 달리는 게 좋을 듯. 적고 보니 끝이 안 보이는구나. 하루키 순서도를 짜놓고 그의 문학세계에 진입해 보아야겠다. 마지막에 에디터도 순서도를 언급해 놓았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 그러고 나서 이 책을 제독하면 쏙쏙 흡수가 잘 될듯하다. 하루키의 문학세계에 빠지고 나면 더 많은 가지가 쳐질 것 같다. 그가 영향을 받은 작가가 어디 한둘이라야지. 그의 문체를 단단하게 해 준 여러 고전과 철학서도 자연스레 눈이 갈 것이고 영화나 음악도 마찬가지일 터. 도스토옙스키는 하루키뿐 아니라 박경리 작가에게도 영향을 끼친 작가다.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었단 사실이 이렇게 뿌듯할 줄이야.

 

다양한 기법이 그의 이야기 구조를 견고하고 탄탄히 받쳐주고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에서 말한 그의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제게는 문장이 전부입니다.

물론 소설에는 이야기적 장치, 등장인물, 구조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문장으로 귀결합니다.

문장을 잘 쓰려면 하루키처럼 다독 다작이 답이겠다. 하지만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하냐는 독자의 질문에 하루키는 솔직하게 답한다. 타고나야 한다고.ㅋㅋ 난 그냥 성실한 독자니 하루키 월드에나 진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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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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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 보라 넘 이뻐요! 왠지 건별님이 떠오르는 색깔..입니다.ㅎㅎ" 오늘 내가 카페 회원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나의 보라색 사랑은 BTS 아미가 되고부터다. 보라해 보라해를 연신 외쳐대다 보니 보라색만 보면 설렌다. 그래서인지 거의 완벽한 보라색 목소리였다. -p.28 라는 문장의 느낌을 알 것만 같다.(물론 내 머릿속엔 일곱 명의 소년들이 쭈욱 오버랩이 되지만)

 

뭐든 의미를 갖다 붙이길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이 심상찮게 다가온다. 오늘 그런 말을 들은 이유도 있고 보라색 목소리에 보랏빛 자태를 지닌 s가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색깔이 있다지만 대부분 상대를 보며 색상을 잘 떠올리진 않는다. 그래서 셜리의 감각이 더욱 특별나 보인다. 앞으로 나는 마주하는 상대에게서 어떤 색감들을 보게 될까.

 

책의 정보도 없이 책장부터 펼쳤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장면이 등장해서 작가의 여행 에세이인 줄 알았다. 어디서부터가 경험담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임인지 경계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내레이션 형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음악시장도 레트로가 유행인데 아날로그적인 독특한 구성도 매력적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로맨스물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ㅋ

 

설희(발음이 비슷해 영어 이름은 셜리다)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그곳에서 s를 만난다. 그전에 그녀는 우연히 거리축제에서 '더 셜리 클럽'의 행진을 보게 되고 운명의 자석에 이끌리듯 그들을 쫓아 어느 펍으로 들어간다. 정확히 s와의 첫 만남은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들이 낯선 곳에서 무언가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관례지만 그녀는 s에게서 자신이 좋아하던 보라색을 보게 된다. 그것도 완벽한 보라색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 이쯤 되니 머릿속엔 <보랏빛 향기>멜로디가 상큼하게 깔리기 시작한다.

 

 

 

셜리 클럽은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의 모임이다. 셜리라는 이름 자체가 올드해서 회원들이 죄다 할머니들뿐이지만 셜리는 오래전부터 자신과 이어져온 운명처럼 여긴다. 할머니들은 리틀 셜리를 예외로 규정하며 명예회원으로 받아들인다. ㅎㅎ 동양인 리틀 셜리는 백만 분의 일이라는 확률만큼 귀해 보였기 때문이다.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서로의 셜리와 소통하며 친분과 의리를 쌓아간다. 어쩌면 그들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았으므로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디지털이 이어준 새로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그들은 진정한 friend가 되어간다.

셜리는 낯선 호주 땅에서 만난 다양한 셜리들과의 만남이 신선하고 즐겁다. 그랬기에 매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으며 주말마다 만나는 s와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규정짓지 못하고 애매하게 지속한다. 소중한 건 잃었을 때 빛을 발하는 법. 어느 날 갑자기 s로부터 연락이 끊어지자 그때부터 셜리는 s의 행방을 수소문하며 떠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정말 맘을 졸이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보랏빛 총각이 대체 말도 없이 왜 사라진 건지, 셜리가 그토록 그의 행적을 쫓고 있는데 만날 수는 있는 건지, 혹은 어렵게 다시 만난 자리에서 회색빛 목소리를 남기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녀가 워킹할 때도, 사랑 찾아 삼만 리인 때도 여러 셜리들의 도움을 받는 장면은 인류애가 느껴질 정도다. 지금처럼 코로나로 단절된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이 오버되고 찌릿찌릿 저려온다. 피부색이, 언어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차별에 찌든 자들에게 보란 듯이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다시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내가 살면서 괜히 연결지점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건 연대라는 또 다른 본능이었던 것이다.

 

한국식으로 한다면 더 순자 클럽, 더 말자 클럽 정도 되려나.ㅋㅋ 상상만으로도 따스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82년생 김지영>이 히트하면서 모 방송에서 전국의 김지영 중 다양한 김지영 몇 명을 모신 적이 있었다. 그분들은 방송이 끝난 뒤에도 계속 연락하면서 지낼까. 나도 자꾸 생각이 샛길로 빠지는구나.

 

그래, 결국은 사랑과 연대다. 이 소설의 제목에서 로맨스를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이유도 더 큰 사랑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셜리가 오해 속에 얼그러지고 상처받고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런 위대한 마음들이 그녀를 토닥여왔다. 그것이 여행지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감정이라 하더라도 분명한 건 여행은 인간을 한 단계 성장시킨다는 점이다. 이 레트로 감성이야말로 지금처럼 연대마저 끊어져가는 시점에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파도같은 보라색을 지닌 S를 상상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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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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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 젠장. 내가 죽었어!

 

베르트랑 사실, 경험해 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 수가 없죠.

 

아나톨 젠장. 내가 죽었어!

 

인간이 참 어리석은 점이라면 바로 이런 순간이다. 자신은 특별해서 자신에게만 불행은 비껴가며 그렇기에 모든 진실을 부정하고 남 탓을 한다. 그리고 아무리 얘길 해도 믿지 않는다. 아나톨이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처럼.

정말 멍청이다!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p.54

 

한 남자가 폐암으로 죽어서 하늘의 심판대에 오른다. 그곳은 한국 영화(신과 함께)에서 본 것처럼 무시무시한 재판 과정(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죽은 자를 변호하는 이와 검사 재판장이 있고 이생에서의 삶을 따져 물어 죄를 가려낸다. 그런데 죄를 지은 자가 가는 곳이 뻔한 코스인 지옥이 아니다. 다시 삶을 사는 것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예전에 읽은 책들 중 죽어서 계속 환생하는 남자의 이야기(환생 블루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태어나기 전 자율의지로 자신의 삶의 일정 부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누구나 훌륭한 조건으로 다시 환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야기 속 아나톨은 의외의 선택을 하며 반전을 선사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통찰이 돋보이는 희곡이다. 읽으면서 여러 장면에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남겨진 재산 때문이라고 하는 것부터 고작 이중필터담배로 폐암일 리 없다며 부정하는 모습이나 마지막까지 물질에 대한 욕구를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비슷한 탄식을 내뱉었을 것이다.

 

아나톨의 삶을 조목조목 따져 묻는 장면도 해학과 풍자가 가득이다. 자신에게 맞는 짝을 못 찾은 것도 죄요. 자신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것(타인에 대한 연민을 망각하고 압력에 의한 선처를 한 일)도 죄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은 죄.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은(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않은) 죄를 따져 물으며 순응주의에 빠진 인간들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변호인의 시선을 통해 아나톨의 삶은 다시 변명할 기회가 주어진다. 인간은 체재와 관습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언급하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던 순간들을 증언하기도 한다.

 

자신의 장례식을 본 뒤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나톨은 다음 생으로의 삶을 거부하게 된다. 얼씨구나 할 줄 알았던 그가 왜 다음 생을 거부한 걸까. 아나톨의 이유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삶이란 단순히 입구와 출구 사이를 메우는 과정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있겠지만 삶은 그보다 더 심오하고 섬세하다. 그런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멍청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지에서 시작한 인간은 무진장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이상적 삶을 찾아간다. 그것은 극도의 피로감을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더 많다. 세상을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고 단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보면 저들을 변화시키는 게 가능할까 의구심도 들지만 우리가 독서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로 이 책을 꼽겠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심판하며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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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 초연결 시대를 이끌 공감형 인간
최배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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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Empathy)

• 다른 사람의 상황과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능력

•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경험의 일부가 되어 그 느낌을 공유하며 그것을 통해 상대방과 소통하는 능력을 의미함

 

시대에 따라 그에 걸맞은, 아니면 필요한 인간상이 항상 존재해왔다. 포노 사피엔스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신선했지만 호모 엠파티쿠스라는 용어를 본 순간 정말 이것이야말로 필요한 인간상이 아닌가 했다.

 

인간은 공감의 동물이다. 동물보다 나은 점이라면 타인의 행동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실로 국가적 재난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이러한 인간의 능력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인간의 크나큰 단점이라면 그러한 능력이 욕망과 이념, 종교, 사상 등에 쉽게 무너진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이 막을 내리고 IT 혁명 시대가 왔다. 무한 경쟁시대에서 이제는 공유와 협업만이 답인 시대가 온 것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형 인간으로는 더 이상 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떤 식의 공감력을 발휘해야 각자의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을까.

 

독점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코로나19 경제 위기 또한 뚜렷한 해결방안이 없다. 하지만 방향을 찾아야 한다. 저자는 디지털 생태계가 출현하기까지의 세계 경제 시스템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초연결시대를 위한 새로운 가치에 주목한다. 실질적으로 각국의 코로나19 대처 방식만 보아도 초연결시대를 어떻게 적절히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보았다. 즉 연결고리에서 필요한 건 협력이다. 그러나 잘못된 협력인 '집단행동의 딜레마'와 '중심주의 세계관'은 늘 협력의 발목을 잡아왔다.

 

'다름'을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모두에게 같은 생각을 강요한다. -p.150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로 혼란스럽다. 중요한 건 사회시스템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네트워크상에서 지속적으로 연결 짓고 그곳에서 가치창출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성, 비판적 사고, 소통, 협력의 역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평균 인간 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참담함을 느낀다. 세대 간 인식의 격차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고 창의성을 상실한 고득점 괴물만 낳고 있다. 내가 지나온 교육 현실의 문제점을 내 아이들도 똑같이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롭다. 왜 다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꾸려 하지 않는가. 플랫폼 사업모델이 죄다 외국시장에서 출발하고 있는 점만 보아도 얼마나 우리 교육에 문제가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나올 수 있기에 아이들에게 충분한 자유를 주어 자기 길 찾게 해주어야 한다. -p.121

 

마지막 챕터에서는 초연결시대의 전제조건인 공정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사업이 많아 보이는데 솔직히 가능할까 하는 부정적 생각이 앞선다. 매번 어떠한 정책마다 심한 진통을 겪고 있으니 나 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답답함과 짜증만 느낄 뿐이다. 부동산 정책만 해도 있는 자들의 반발이 심하지 않은가.

 

모두를 위한 자유를 위해서는 진통은 필수다. 코로나 위기처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팬데믹으로 초연결시대는 더 앞당겨졌다. 혁명에 혁명을 거치며 한 걸음씩 진화해온 인류에게 이제는 공감능력으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는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자연, 인간 대 동물 등 모든 것들에게 발휘해야 할 능력인 것이다. 이제 호모엠파티쿠스형 인간으로 거듭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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