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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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 젠장. 내가 죽었어!

 

베르트랑 사실, 경험해 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 수가 없죠.

 

아나톨 젠장. 내가 죽었어!

 

인간이 참 어리석은 점이라면 바로 이런 순간이다. 자신은 특별해서 자신에게만 불행은 비껴가며 그렇기에 모든 진실을 부정하고 남 탓을 한다. 그리고 아무리 얘길 해도 믿지 않는다. 아나톨이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처럼.

정말 멍청이다!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p.54

 

한 남자가 폐암으로 죽어서 하늘의 심판대에 오른다. 그곳은 한국 영화(신과 함께)에서 본 것처럼 무시무시한 재판 과정(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죽은 자를 변호하는 이와 검사 재판장이 있고 이생에서의 삶을 따져 물어 죄를 가려낸다. 그런데 죄를 지은 자가 가는 곳이 뻔한 코스인 지옥이 아니다. 다시 삶을 사는 것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예전에 읽은 책들 중 죽어서 계속 환생하는 남자의 이야기(환생 블루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태어나기 전 자율의지로 자신의 삶의 일정 부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누구나 훌륭한 조건으로 다시 환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야기 속 아나톨은 의외의 선택을 하며 반전을 선사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통찰이 돋보이는 희곡이다. 읽으면서 여러 장면에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남겨진 재산 때문이라고 하는 것부터 고작 이중필터담배로 폐암일 리 없다며 부정하는 모습이나 마지막까지 물질에 대한 욕구를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비슷한 탄식을 내뱉었을 것이다.

 

아나톨의 삶을 조목조목 따져 묻는 장면도 해학과 풍자가 가득이다. 자신에게 맞는 짝을 못 찾은 것도 죄요. 자신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것(타인에 대한 연민을 망각하고 압력에 의한 선처를 한 일)도 죄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은 죄.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은(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않은) 죄를 따져 물으며 순응주의에 빠진 인간들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변호인의 시선을 통해 아나톨의 삶은 다시 변명할 기회가 주어진다. 인간은 체재와 관습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언급하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던 순간들을 증언하기도 한다.

 

자신의 장례식을 본 뒤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나톨은 다음 생으로의 삶을 거부하게 된다. 얼씨구나 할 줄 알았던 그가 왜 다음 생을 거부한 걸까. 아나톨의 이유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삶이란 단순히 입구와 출구 사이를 메우는 과정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있겠지만 삶은 그보다 더 심오하고 섬세하다. 그런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멍청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지에서 시작한 인간은 무진장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이상적 삶을 찾아간다. 그것은 극도의 피로감을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더 많다. 세상을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고 단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보면 저들을 변화시키는 게 가능할까 의구심도 들지만 우리가 독서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로 이 책을 꼽겠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심판하며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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