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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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 보라 넘 이뻐요! 왠지 건별님이 떠오르는 색깔..입니다.ㅎㅎ" 오늘 내가 카페 회원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나의 보라색 사랑은 BTS 아미가 되고부터다. 보라해 보라해를 연신 외쳐대다 보니 보라색만 보면 설렌다. 그래서인지 거의 완벽한 보라색 목소리였다. -p.28 라는 문장의 느낌을 알 것만 같다.(물론 내 머릿속엔 일곱 명의 소년들이 쭈욱 오버랩이 되지만)

 

뭐든 의미를 갖다 붙이길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이 심상찮게 다가온다. 오늘 그런 말을 들은 이유도 있고 보라색 목소리에 보랏빛 자태를 지닌 s가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색깔이 있다지만 대부분 상대를 보며 색상을 잘 떠올리진 않는다. 그래서 셜리의 감각이 더욱 특별나 보인다. 앞으로 나는 마주하는 상대에게서 어떤 색감들을 보게 될까.

 

책의 정보도 없이 책장부터 펼쳤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장면이 등장해서 작가의 여행 에세이인 줄 알았다. 어디서부터가 경험담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임인지 경계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내레이션 형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음악시장도 레트로가 유행인데 아날로그적인 독특한 구성도 매력적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로맨스물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ㅋ

 

설희(발음이 비슷해 영어 이름은 셜리다)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그곳에서 s를 만난다. 그전에 그녀는 우연히 거리축제에서 '더 셜리 클럽'의 행진을 보게 되고 운명의 자석에 이끌리듯 그들을 쫓아 어느 펍으로 들어간다. 정확히 s와의 첫 만남은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들이 낯선 곳에서 무언가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관례지만 그녀는 s에게서 자신이 좋아하던 보라색을 보게 된다. 그것도 완벽한 보라색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 이쯤 되니 머릿속엔 <보랏빛 향기>멜로디가 상큼하게 깔리기 시작한다.

 

 

 

셜리 클럽은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의 모임이다. 셜리라는 이름 자체가 올드해서 회원들이 죄다 할머니들뿐이지만 셜리는 오래전부터 자신과 이어져온 운명처럼 여긴다. 할머니들은 리틀 셜리를 예외로 규정하며 명예회원으로 받아들인다. ㅎㅎ 동양인 리틀 셜리는 백만 분의 일이라는 확률만큼 귀해 보였기 때문이다.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서로의 셜리와 소통하며 친분과 의리를 쌓아간다. 어쩌면 그들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았으므로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디지털이 이어준 새로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그들은 진정한 friend가 되어간다.

셜리는 낯선 호주 땅에서 만난 다양한 셜리들과의 만남이 신선하고 즐겁다. 그랬기에 매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으며 주말마다 만나는 s와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규정짓지 못하고 애매하게 지속한다. 소중한 건 잃었을 때 빛을 발하는 법. 어느 날 갑자기 s로부터 연락이 끊어지자 그때부터 셜리는 s의 행방을 수소문하며 떠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정말 맘을 졸이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보랏빛 총각이 대체 말도 없이 왜 사라진 건지, 셜리가 그토록 그의 행적을 쫓고 있는데 만날 수는 있는 건지, 혹은 어렵게 다시 만난 자리에서 회색빛 목소리를 남기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녀가 워킹할 때도, 사랑 찾아 삼만 리인 때도 여러 셜리들의 도움을 받는 장면은 인류애가 느껴질 정도다. 지금처럼 코로나로 단절된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이 오버되고 찌릿찌릿 저려온다. 피부색이, 언어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차별에 찌든 자들에게 보란 듯이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다시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내가 살면서 괜히 연결지점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건 연대라는 또 다른 본능이었던 것이다.

 

한국식으로 한다면 더 순자 클럽, 더 말자 클럽 정도 되려나.ㅋㅋ 상상만으로도 따스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82년생 김지영>이 히트하면서 모 방송에서 전국의 김지영 중 다양한 김지영 몇 명을 모신 적이 있었다. 그분들은 방송이 끝난 뒤에도 계속 연락하면서 지낼까. 나도 자꾸 생각이 샛길로 빠지는구나.

 

그래, 결국은 사랑과 연대다. 이 소설의 제목에서 로맨스를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이유도 더 큰 사랑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셜리가 오해 속에 얼그러지고 상처받고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런 위대한 마음들이 그녀를 토닥여왔다. 그것이 여행지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감정이라 하더라도 분명한 건 여행은 인간을 한 단계 성장시킨다는 점이다. 이 레트로 감성이야말로 지금처럼 연대마저 끊어져가는 시점에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파도같은 보라색을 지닌 S를 상상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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