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펜션의 비밀 청어람주니어 고학년 문고 9
한영미 지음, 나오미양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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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옛적에 개암 하나로 도깨비방망이를 손에 넣었던 한 나무꾼을 기억하는가? 이 이야기는 그 나무꾼의 가족 이야기이다.^^ 물론 시대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아닌 그 후손들의 이야기인데 도깨비방망이가 대대로 물려져 내려왔었다는 가정을 두고 시작한다. 이러한 가정 앞에 도깨비방망이를 무탈하게 가보로 전하는 일 따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도깨비방망이의 존재는 금세 퍼져나가 위험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풀이네는 도깨비방망이 때문에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이유는 도깨비방망이의 존재를 알고 있던 심술쟁이 이웃(박서방)의 후손들 때문이다. 풀이네는 지금까지 그 전설 속의 도깨비방망이를 지키기 위해, 아니 뺏기지 않기 위해 박서방네를 피해 수십 번을 옮겨 다녔고 최대한 없는 척을 하며 살았다. 풀이네 아빠는 이름조차도 없어 보이게 지었다. 이지푸라기.ㅋㅋ (진짜 작가님 작명 센스 최고세요. ᄏ)

 

 

 

 

  역시나 도깨비방망이는 물질적인 풍요를 안겨주지만 인간의 욕심을 부채질하는 요물이다. 풀이네 부모는 마땅한 직업도 없이 돈을 물 쓰듯 한다. 뭐 그도 그럴 것이 금 나와라 뚝딱하면 금이 쏟아지니 누군들 일을 하려 할까. 게다 아빠 이지푸씨는 돈이라는 달콤함에 취해 SNS 세계에서마저 돈을 뿌리고 다닌다.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풀이네 할아버지는 드디어 결단을 내린다. 여행을 가신 거라고 여겼건만 도깨비방망이를 원래 있던 산에다 두러 떠나신 것이었다. 돈이 든 항아리가 바닥나자 드러난 할아버지의 편지는 풀이네 부모를 망연자실하게 했고 어떻게든 되찾아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채 따라나서게 된다. 눈에 뵈는 게 없어진 부부는 풀이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나버린다. 방망이를 찾겠다고 온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채 말이다.

 

   부모님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풀이에게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부모보다 더 어른스럽고 대견하다. 아마도 풀이는 헛된 욕심 때문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기에 방망이에 대한 욕심이 사라져버린 듯하다. 풀이는 돈보다 안정된 집과 가정환경을 원했다. 방망이도 부모님도 다 사라진 집은 박서방네 손자인 만석이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풀이는 우선 돈을 벌 궁리를 하고 그렇게 숲속펜션이 탄생하게 된다.

 

 

 

 

  말이 펜션이지 정리가 안된 집은 자칫 흉가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초긍정 소녀 풀이는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는다. 일단 손님부터 받고 만석이를 구슬려 집안 정리를 한다. 펜션을 처음 찾은 손님은 베스트셀러를 쓰겠다고 찾아온 동화 작가다. 그러고는 귀신 체험을 하겠다는 어린이 단체 손님까지 받게 되는데.

놀랍게도 풀이는 도깨비방망이 따위 없어도 뭐든지 뚝딱뚝딱 풀어 나간다. 그래서 이름이 풀이인가.ㅋㅋ

 

   만석이의 능청스러운 활약상도 재미나고 곳곳에 웃음 빵빵 터지는 장면도 있어서 신나게 읽었다. 방망이의 정체가 궁금했음에도 알레르기 비염 핑계를 대는 모습이나, 책을 싫어해서 동화 작가의 책 제목을 듣자마자 제 스타일이 아니라며 툭 내뱉는 모습도 재미났지만 온 집안을 뒤지고 나서도 풀이의 펜션 사업을 도와주는 모습은 참 아이답게 순수해 보였다.

 

   옛날이야기 속 도깨비방망이는 착한 이들을 위한 선물 같은 존재였다면 현대 이야기 속 도깨비방망이는 인간의 삶을 망치는 존재이다. '잘 살았습니다~~'가 절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각종 히어로물을 보면 꼭 이런 물건들 때문에 사달이 나지 않는가. 세상에는 그렇듯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자연의 법칙은 그 나름의 이유가 존재하는 법이다. 이제 숲속 펜션에는 풀이와 가족, 이웃의 노력으로 진정한 도깨비방망이가 생겼다. 도깨비방망이의 파워는 그것이 눈앞에 없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믿음과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에게 너의 '도깨비방망이'는 뭐냐고 물으니 '나 자신'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답을 내놓는다.^^ 그 자신감이 늘 함께 하기를.

 

   그나저나 나야말로 도깨비방망이가 있다면 티 안 나게 쓰겠다. 끼니 해결, 청소 해결. 그리고 풀이처럼 읽고 싶은 책 왕창 들이기. ㅎㅎ (진짜 있다면 달라지겠지만!)

 

 

 

 

 

  독후 활동 지하는 시간만큼은 조금 진지했으면 좋으련만 도깨비방망이라는 소재 때문에 계속 우스갯소리다. 방망이가 생기면 무얼 할 거냐는 질문지에 돈으로 사고 싶은 거 다 사겠다는 답이 역시나 일 순위다. 게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겠다는 다짐도 있다. 그리곤 백신을 만들어 무료 나눔을 하겠다고.

퍼즐 맞추기에서는 의외로 단어에 약세를 보인다. 진저리, 께름칙, 객식구라는 말은 떠올리지를 못한다. 이렇듯 단어 공부를 할 수 있어 유익했다. 활동지는 꼭 함께 해 보길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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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화해하기 - 관계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그림이 건네는 말
김지연 지음 / 미술문화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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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계획 중 '미술 관련 책 한 달에 두 권씩 꼭 읽기'가 있었다. 좀 더 깊게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심삼일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로 집 밖이 위험한 상황이 되자 당초 계획했던 미술 관람마저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니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미술에 관한 신간도서가 보이면 열심히 모셔다 두었다. 언젠가는 이라는 가능성을 남겨두고서.

 

그러다 끌리는 책을 만났다. 한동안 덮어 두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나 자신을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가족'과 '나'라는 시간의 저울질에서 조금씩 해방이 되자 본격적으로 그림을 보러 다녔다. 물론 그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미술관을 찾을 때만큼은 나와의 소통이 수월했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 속에서 바라보는 시간 여행. 그리고 그 여행에서 느껴지는 화가의 열정이 느슨해져가는 나를 채찍질했고 삶의 덩어리들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누구는 그림을 전체로 보며 만족하고 누구는 찬찬히 뜯어보며 분석하는 걸 좋아하고 또 누구는 잘 모르지만 그림이라서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술사를 읽고부터였다. 더 솔직하자면 지식 장착 욕구 때문이기도 했다. 내적으로 와닿는 것보다 외적 정보에 더 충실하려 했다. 남들이 그렇게 보인다고 하니 그렇게 보였고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생애에 자꾸만 초점을 맞춰갔다. 그렇다 보니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너무 좁았다.

 

틀을 깨고 싶어 읽기 시작한 것이 그림 에세이였다. 여러 권을 통해 같은 그림이라도 다양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고 작가의 역량을 보면서 자극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를 보니 책에 실린 작가와 작품은 이미 여러 책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책은 무언가 다르게 다가왔다. 미술작품에 관해 개인적 사유를 덧붙인 책들을 보면 작가의 인생관이나 삶의 방식이 드러난다. 그것은 작품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좋은 글인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작가와 나와의 닮은 지점을 발견하고 나면 글이 더 쏙쏙 잘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위로는 거창한 응원이나 조언보다는 나와 비슷한 한 사람의 삶의 궤적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p.10

 

 

 

 

작품 속에는 예술가들의 분투와 그 끝에 이루어 낸 회해의 조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는 그림과 화해라는 키를 꺼내들고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전한다. 많은 작품들을 테마별로 선별하는 작업도, 그림에 덧붙인 다양한 사유(문학 작품, 역사 속 인물, 티비쇼, 사회 이슈, 경험담 등) 들을 연결 짓는 작업도 신중했을 것이다. 그림을 보며 얻는 위안은 모든 것들로부터 화해할 수 있는 길이 된다. 나 자신, 타인, 사회로부터 화해를 할 수 있다면 삶은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에 공감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을 잘 모른다고 지나칠 책이 아니다. 잘 모른다면 더 봐야 할 책이다. 그럴싸한 말들로 치장한 심리 책보다 훨씬 잼나게 볼 수 있으니까. 덕분에 나 또한 좀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와의 화해를 위한 작품들에 더 집중해서 읽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이야기가 있는 인물화나 풍경화를 더 좋아한다.(아직까지 중세 종교화에서는 작가의 역량 외엔 그다지 감흥을 느끼진 못하겠다.) 고흐의 풍경화에 베여있는 진한 그리움을 보고 있으면 갱년기가 벌써 올 리가 없을 텐데 가끔 울컥함이 밀려온다. 반면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닛>은 분노가 치밀 때 보면 좋다. ㅋ

 

뭉크의 <절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를 떠올리지만 언젠가 노을 진 하늘을 보면서 이 남자의 표정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저자도 자연의 절규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 쪽으로 해석하고 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뭉크의 <태양>이란 작품은 처음 접했는데 노르웨이가 지폐에 이 그림을 선정한 이유를 알듯하다. 저자는 쿠르베라는 인물의 이해를 돕고자 <그리스인 조르바> 이야기를 꺼낸다. 그 순간 올 초에 꼭 읽는다고 해 놓고선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스친다. 진정한 삶의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고 산 이 인물이 궁금해서 꼭 읽어야겠다. 렘브란트의 일생을 보면 진정한 인생의 황금기는 고통 속에서 피어남이 언뜻 보인다.

이처럼 작가들의 인생 여정이 묻어 난 그림 속에서 그 단서를 찾다 보면 나를 이해할 수 있겠다.

 

 

 

 

표지 그림은 윌리엄 퀼러 오차드슨의 <첫 구름>이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상류사회의 결혼 풍습을 비판하고자 삼연작을 남겼는데 그림을 보고 나면 결혼에 좀 더 신중해지지 않을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도 참 좋아하는데 <293호 열차 C 칸>을 다시 보니 앉아 있는 여인이 나였으면 싶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은 그녀의 생 때문에 바라볼 때마다 맘이 아프지만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더 불편한 작품을 마주하고 말았다. 크리스 조던의 사진 한 장 때문에 충격의 여파가 너무 커서 나머지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플라스틱을 삼킨 채 죽어가는 새라니. 인간으로 인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동식물을 볼 때마다 죄스러워 미치겠다. 어미 새와 아기 새의 모습에 울컥한다. 환경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

 

오래간만에 괜찮은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이상하게 늘 빠르게 넘기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앞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다. 저자의 해석으로인해 달리 다가왔다. 이처럼 독서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다. 고전을 좋아해서 가끔 미술작품 앞에 서면 고전 속 인물을 떠올릴 때가 있다. 나 혼자 그렇게 만족해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화해라는 코드까지 함께 떠올리면서 감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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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 엮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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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하여 ->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내가 찰스 부코스키의 책을 읽은 순서다. 순서도가 나쁘지만은 않다.

 

찰스 부코스키라는 작가는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을 검색하다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먼저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고양이로 맺어진 인연이라고나 할까.ㅋ 그 뒤 나머지 에세이 2종(글쓰기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을 읽으려 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졌었다.

 

그의 글은 문학계 이단아, 위대한 아웃사이더라는 별칭처럼 내가 여태 읽어왔던 글들과 느낌이 달랐다. 시에 등장한 외설스러운 단어에 움찔했으나 문학이 아닌 그의 삶이 보였기에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여러 칼럼과 에세이를 읽다 보니 픽션과 진실이 적절히 어우러지면서도 어딘가 도전적이기도 한 문장에 자꾸 빠져든다. 분명한 건 가식도 꾸밈도 허풍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삶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있다. 저질스럽고 외설적인 것도 선뜻 넘겼다. 그는 쓰는 순간만큼은 겁날 것이 없어 보였다. 삶의 중심에서 비껴난 적도 하층 바닥을 전전하며 술과 도박, 섹스에 인생을 허비하면서도 그 안에 내재된 작가적 본능을 잃지 않았다. 숙명처럼.

빨리 작가가 되려면 술도 끊고 여성을 보는 잘못된 인식도 고쳐야겠지. -p.32

 

비망록에서 언뜻 보았던 그의 과거를 <음탕한 늙은이의 고백>편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이자 아웃사이더로 성장하다 어느 날 뜬금없이 터프한 소년이 된다. 책을 향한 본능이 이때 잠시 깨어나지만 그는 술과 도박으로 에너지를 충당한다. 내재된 문학적 소양은 그를 다시 깨워냈고 드디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닥치는 대로 마시고 쓰고 또 마신다. 게다가 닥치는 대로 일하고 또 떠돈다. 정말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그냥 한잔 두 잔 걸치고 쓴다. 술에 취하듯 예술에 취한다. 취기에 나온 진심들이 너무나 솔직해서 낯 뜨겁기도 하다.

 

오랜 무명시절과 수없이 세상의 문 앞에서 인내를 배워나갈 수밖에 없었던 고된 삶. 어쩌면 그 시작은 그가 아버지의 매질에 이를 악물고 울지 않았던 그 시점부터가 아니었을까. 그의 반항기?는 주로 하찮은 일상들에서 진하게 베어 나온다. 어떤 글은 전후 사정이 뒤죽박죽이고 전혀 연결지점이 없어 보인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끼적여 놓은 듯한 문장도 더러 있다. 그런 점에서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언뜻 비치기도 하지만 차이점이라면 그의 글은 난해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섹스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이 이해할 만한 살짝 덜 죽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 -p.178

 

 

 

 

결국 훌륭한 작가는 두 가지만 잘하면 된다. 살고 글을 쓰는 것. 그거면 끝이다. -p.191

 

  그는 훌륭한 작가였다. 살았기에 썼다. 병에 걸려 죽을 것 같아 글을 썼다는 그는 엄청난 다작가였다. 스물네 살에 첫 단편을 발표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스물여섯부터 10년간 글쓰기를 포기한다. 술로 만신창이가 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일주일에 6~10편의 단편을 쓰며 고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시, 에세이, 칼럼 등을 닥치는 대로 쓴다. 그의 나이 쉰 살에 이르러 19일 만에 장편을 써냄으로써 전업 작가가 된다.

 

가난이 절망적이지 않았다고, 배고픔과 외로움 따위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던 그는 인생의 벗으로 술과 책을 택했다. 그만의 방식대로, 그만의 고집으로 써 내려간 글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과 자신의 삶에 애착이 있었음이 느껴진다. 그가 늘어놓은 말과 말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그러고 보니 난 한잔 걸치고 글이란 걸 써본 적이 없다. 일단 알콜이 들어가면 졸음이 쏟아지기 때문이다.ㅋㅋ 적당히 두어 잔 걸치고(와인으로) 떠오르는 대로 한번 써볼까나. 물론 그런 재주는 없을 테지만.

글을 쓰는 건 특이한 일이다.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가까이 갈 수는 있지만 결코 도달할 순 없다. -p.358

 

Don't try.(그의 묘비명에 적힌 글)

이 말은 애써본 자만이 알기에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읽고 쓰는 일에 애 좀 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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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찰스 부코스키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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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은 마치 맡아보지도 못한 냄새가 풍기는 -p.176 듯하다. 그의 글에서는 싸구려 술 냄새가 진동한다. 표지만 보고도 짐작했겠지만 고상한 문체와 적법한 은유와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 따윈 기대할 수 없다.

그의 아버지 말처럼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섹스하거나 자위하거나 똥만 싸지르는 내용이 질펀하게 등장한다.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글 따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현실과 머릿속의 일들이 뒤죽박죽이라서 도덕적 선의 경계마저 헷갈린다. 그 시대 미국 사회 바닥이 이랬단 말인가 하고 짐작만 할 따름이다. 걸러지지 않은 대화들, 둘러대지 않은 표현들. 찰스 부코스키의 <고양이에 대하여>를 읽지 않았다면 인상 꽤나 써가며 읽었겠지만 다행히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가 고양이와 함께 하고 있는 사진을 본 이들이라면 내 마음을 잘 알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까지 짐작하자니 애잔한 마음도 크다.

 

그가 칭송하는 작가들과는 사뭇 다른 글의 결. 그가 이처럼 삶의 밑바닥에서 풍겨 나오는 오리지널 인생을 갈겨쓴 데는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싸구려 잡지에 걸맞은 음탕한 내용들을 맘 내키는 대로 써 내려가도 어느 누구 하나 터치하지 않았고 의외로 그의 글은 많은 독자를 홀리게 했다.

쥐가 득실거리는 뒷골목, 폐고무와 낡은 신문 쪼가리와 말라비틀어진 벌레가 가득한 곳에 나뒹굴어도 행운과 길이 내 편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남자라니 술 한 잔 걸치고 늘어놓는 음탕한 이야기가 그닥 나쁘지 않다.

 

허나 월리엄 포크너를 칭송하는 내게 그는 포크너마저 까버린다. 카뮈도 내내 까고. 음... 뭐 취향은 다 다르니.

그래도 도스토옙스키에서는 많은 걸 배운다고.ㅎ

 

세상에 대한 빈정거림과 삐딱한 반항기, 정치와 종교를 향한 풍자에 거침이 없다. 건들면 바로 쏟아낸다. 질 떨어지는 글이라고 해도 핵심은 비껴가지 않았다. 오히려 품위 없이 내뱉는 말들에 시원함을 느낄 때가 있으니까.

난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이런 속임수가 가득한 변화구가 던져지면 열받아서 거기에 개입할 것 같다. -p.68

 

인류의 한 사람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에 더해 부끄러움을 더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자꾸만 귓전에 맴돈다. 부코스키의 칼럼을 읽고 나니 뜬금없이 미드 <섹스 앤 더시티>가 떠오른다. 섹스 칼럼을 쓰는 여자 캐리 브래드 쇼의 거침없는 입담에 흠뻑 빠져들었던 나를 떠올리니 찰스 부코스키의 글이 왜 그리 대중들에게 먹힌 건지 이해가 된다. 음탕함에 걸맞게 섹스 냄새가 진동을 한다. 섹스가 끝난 뒤 침대 다리가 부러진 사실을 알게 되던 장면을 읽다 빵 터트리고 말았다. 여자의 반응이 더 반전이다. (여성을 비하한다고 잡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그냥 시대적 흐름을 감안하고 넘어가련다.)

 

부코스키의 글을 덮고 나니 나 또한 속 깊은 날것의 감정들을 마구 꺼내보고 싶다. 분명 나의 이면에도 거침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분명 난 지성인은 아니다. 어렵게 말하는 건 못한다.

지성인이란 단순한 것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이다. 예술가란 어려운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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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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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우리 이렇게 살바엔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는 게 어떨까?"

"그래. 그냥 죽어버리자."

참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어 보이는 이 대화는 아이들이 어릴 때 차 안에서 들려주던 이솝 우화 중 한 대사이다. 이 책에도 비슷한 우화가 등장하는데 토끼들은 너무나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자신들이 한심해서 이렇게 살바엔 차라리 죽어버리자며 결심한 뒤 내뱉은 대사다. 하지만 연못으로 뛰어들려던 순간 토끼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개구리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그걸 보면서 토끼들은 저런 소심한 개구리들도 사는데 자신들이라고 못 살 이유가 없다며 죽지 말자고 한다. 낭독하던 성우의 대사가 너무나 귀에 쏙 들어와서 "죽어버리자 "라는 대사만 나오면 그렇게 따라 하며 웃었었다. 물론 소심하고 겁 많은 큰 녀석에게 이야기의 교훈을 얘기해 주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 토끼와 거북이, 해와 달, 개미와 베짱이, 여우와 두루미, 어리석은 개, 서울쥐와 시골쥐, 양치기 소년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이솝 우화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재미있고 귀엽게 각색되어 동화로 읽혀 오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이솝우화는 어린이들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오래전 이솝이란 사람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솝도 델포이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결국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 꼴인가. 그의 말로가 씁쓸하다.

 

오래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욕망을 대신하던 존재였다. 그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들을 심심찮게 저지른다. 그랬기에 유독 우화에 신들이 등장한다. 즉 인간의 어리석음을 신과 동물에 빗대어 간접적으로 가르치려 한 것이다. 지금은 이야기가 많이 순화되었지만 원문을 읽다 보면 참 잔인하고 야만적인 이야기들도 더러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의 근원도 잔혹동화가 많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그 시절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명작동화를 좋아하고 이야기의 근원을 찾는 것도 좋아해서 이솝우화 전집을 본 순간 욕심이 났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원전에서 직접 번역한 358편의 우화가 실려 있으며 다수의 일러스트까지 곁들여져 있어 편집이나 구성도 맘에 들었다. 원문에 교훈도 짤막하게 덧붙여 놓았다.

 

모든 우화가 다 교훈적인 것은 아니다. 더러는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교훈이 없는 것도 있다. <내시와 제관>에는 교훈이 없다고는 하나 이 우화는 좀 잔인하다. <아이와 까마귀>도 교훈이 없다고는 하나 뭐가 있을 거야 하면서 집요하게 찾고 싶어진다.ㅋ

<사람과 사티로스>에 보면 사람은 동일한 입으로 덥히기도 하고 식히기도 하는 사람이라며 믿지 못할 존재라 칭한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쁘게 보면 인간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존재긴 하지만 좋게 보면 한 입으로 두 가지를 다하는 능력자이기도 하지 않나.^^

 

이솝 우화에서는 철저히 선과 악이 분리되고 자연의 질서와 순리를 지키고자 한다. 또한 과한 명예욕과 분에 넘치는 욕심은 화를 자초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늑대와 말>에서의 늑대처럼 천성이 악한 자는 선의를 강조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음을, <농부와 독사>에서 농부가 독사를 불쌍히 여겼다가 되려 독사에게 당하는 것처럼 악은 원래 악한 존재로 비친다. 그런데 나쁜 이들에게 당한 자들은 항상 당해도 싸지라는 말로 자신을 탓한다. 우화에는 분노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한편 우화에서는 차별과 편견에 대한 내용은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그런 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제우스와 수치심>이라는 우화에서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채소에 물을 주는 원예사>에서는 계모와 생모에 관한 편견을 발견할 수 있다. <갈매기와 솔개> 이야기는 솔직히 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갈매기가 바다를 터전으로 삼고 사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뭐가 큰 야망을 품었다고 하는 것인지...

 

뭐니 뭐니 해도 우화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어 철학적이다. <프로메테우스와 사람들>을 읽으면서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처음부터 사람으로 지음을 받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전쟁과 오만>을 읽으면서 인간이 오만하지 않았으면 전쟁 또한 잦지 않았을 텐데 전쟁은 왜 오만하고 결혼을 해가지고라며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좋은 것들은 힘이 없어서 나쁜 것들에게 쫓겨 다녔다.'로 시작하고 있는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라는 이야도가 인상 깊었다. 어쩜 그리도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건지.

철학서와 고전에 관심이 있다면 이솝 우화 전집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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