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화해하기 - 관계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그림이 건네는 말
김지연 지음 / 미술문화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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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계획 중 '미술 관련 책 한 달에 두 권씩 꼭 읽기'가 있었다. 좀 더 깊게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심삼일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로 집 밖이 위험한 상황이 되자 당초 계획했던 미술 관람마저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니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미술에 관한 신간도서가 보이면 열심히 모셔다 두었다. 언젠가는 이라는 가능성을 남겨두고서.

 

그러다 끌리는 책을 만났다. 한동안 덮어 두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나 자신을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가족'과 '나'라는 시간의 저울질에서 조금씩 해방이 되자 본격적으로 그림을 보러 다녔다. 물론 그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미술관을 찾을 때만큼은 나와의 소통이 수월했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 속에서 바라보는 시간 여행. 그리고 그 여행에서 느껴지는 화가의 열정이 느슨해져가는 나를 채찍질했고 삶의 덩어리들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누구는 그림을 전체로 보며 만족하고 누구는 찬찬히 뜯어보며 분석하는 걸 좋아하고 또 누구는 잘 모르지만 그림이라서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술사를 읽고부터였다. 더 솔직하자면 지식 장착 욕구 때문이기도 했다. 내적으로 와닿는 것보다 외적 정보에 더 충실하려 했다. 남들이 그렇게 보인다고 하니 그렇게 보였고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생애에 자꾸만 초점을 맞춰갔다. 그렇다 보니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너무 좁았다.

 

틀을 깨고 싶어 읽기 시작한 것이 그림 에세이였다. 여러 권을 통해 같은 그림이라도 다양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고 작가의 역량을 보면서 자극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를 보니 책에 실린 작가와 작품은 이미 여러 책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책은 무언가 다르게 다가왔다. 미술작품에 관해 개인적 사유를 덧붙인 책들을 보면 작가의 인생관이나 삶의 방식이 드러난다. 그것은 작품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좋은 글인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작가와 나와의 닮은 지점을 발견하고 나면 글이 더 쏙쏙 잘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위로는 거창한 응원이나 조언보다는 나와 비슷한 한 사람의 삶의 궤적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p.10

 

 

 

 

작품 속에는 예술가들의 분투와 그 끝에 이루어 낸 회해의 조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는 그림과 화해라는 키를 꺼내들고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전한다. 많은 작품들을 테마별로 선별하는 작업도, 그림에 덧붙인 다양한 사유(문학 작품, 역사 속 인물, 티비쇼, 사회 이슈, 경험담 등) 들을 연결 짓는 작업도 신중했을 것이다. 그림을 보며 얻는 위안은 모든 것들로부터 화해할 수 있는 길이 된다. 나 자신, 타인, 사회로부터 화해를 할 수 있다면 삶은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에 공감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을 잘 모른다고 지나칠 책이 아니다. 잘 모른다면 더 봐야 할 책이다. 그럴싸한 말들로 치장한 심리 책보다 훨씬 잼나게 볼 수 있으니까. 덕분에 나 또한 좀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와의 화해를 위한 작품들에 더 집중해서 읽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이야기가 있는 인물화나 풍경화를 더 좋아한다.(아직까지 중세 종교화에서는 작가의 역량 외엔 그다지 감흥을 느끼진 못하겠다.) 고흐의 풍경화에 베여있는 진한 그리움을 보고 있으면 갱년기가 벌써 올 리가 없을 텐데 가끔 울컥함이 밀려온다. 반면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닛>은 분노가 치밀 때 보면 좋다. ㅋ

 

뭉크의 <절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를 떠올리지만 언젠가 노을 진 하늘을 보면서 이 남자의 표정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저자도 자연의 절규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 쪽으로 해석하고 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뭉크의 <태양>이란 작품은 처음 접했는데 노르웨이가 지폐에 이 그림을 선정한 이유를 알듯하다. 저자는 쿠르베라는 인물의 이해를 돕고자 <그리스인 조르바> 이야기를 꺼낸다. 그 순간 올 초에 꼭 읽는다고 해 놓고선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스친다. 진정한 삶의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고 산 이 인물이 궁금해서 꼭 읽어야겠다. 렘브란트의 일생을 보면 진정한 인생의 황금기는 고통 속에서 피어남이 언뜻 보인다.

이처럼 작가들의 인생 여정이 묻어 난 그림 속에서 그 단서를 찾다 보면 나를 이해할 수 있겠다.

 

 

 

 

표지 그림은 윌리엄 퀼러 오차드슨의 <첫 구름>이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상류사회의 결혼 풍습을 비판하고자 삼연작을 남겼는데 그림을 보고 나면 결혼에 좀 더 신중해지지 않을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도 참 좋아하는데 <293호 열차 C 칸>을 다시 보니 앉아 있는 여인이 나였으면 싶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은 그녀의 생 때문에 바라볼 때마다 맘이 아프지만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더 불편한 작품을 마주하고 말았다. 크리스 조던의 사진 한 장 때문에 충격의 여파가 너무 커서 나머지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플라스틱을 삼킨 채 죽어가는 새라니. 인간으로 인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동식물을 볼 때마다 죄스러워 미치겠다. 어미 새와 아기 새의 모습에 울컥한다. 환경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

 

오래간만에 괜찮은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이상하게 늘 빠르게 넘기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앞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다. 저자의 해석으로인해 달리 다가왔다. 이처럼 독서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다. 고전을 좋아해서 가끔 미술작품 앞에 서면 고전 속 인물을 떠올릴 때가 있다. 나 혼자 그렇게 만족해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화해라는 코드까지 함께 떠올리면서 감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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