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 엮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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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하여 ->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내가 찰스 부코스키의 책을 읽은 순서다. 순서도가 나쁘지만은 않다.

 

찰스 부코스키라는 작가는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을 검색하다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먼저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고양이로 맺어진 인연이라고나 할까.ㅋ 그 뒤 나머지 에세이 2종(글쓰기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을 읽으려 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졌었다.

 

그의 글은 문학계 이단아, 위대한 아웃사이더라는 별칭처럼 내가 여태 읽어왔던 글들과 느낌이 달랐다. 시에 등장한 외설스러운 단어에 움찔했으나 문학이 아닌 그의 삶이 보였기에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여러 칼럼과 에세이를 읽다 보니 픽션과 진실이 적절히 어우러지면서도 어딘가 도전적이기도 한 문장에 자꾸 빠져든다. 분명한 건 가식도 꾸밈도 허풍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삶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있다. 저질스럽고 외설적인 것도 선뜻 넘겼다. 그는 쓰는 순간만큼은 겁날 것이 없어 보였다. 삶의 중심에서 비껴난 적도 하층 바닥을 전전하며 술과 도박, 섹스에 인생을 허비하면서도 그 안에 내재된 작가적 본능을 잃지 않았다. 숙명처럼.

빨리 작가가 되려면 술도 끊고 여성을 보는 잘못된 인식도 고쳐야겠지. -p.32

 

비망록에서 언뜻 보았던 그의 과거를 <음탕한 늙은이의 고백>편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이자 아웃사이더로 성장하다 어느 날 뜬금없이 터프한 소년이 된다. 책을 향한 본능이 이때 잠시 깨어나지만 그는 술과 도박으로 에너지를 충당한다. 내재된 문학적 소양은 그를 다시 깨워냈고 드디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닥치는 대로 마시고 쓰고 또 마신다. 게다가 닥치는 대로 일하고 또 떠돈다. 정말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그냥 한잔 두 잔 걸치고 쓴다. 술에 취하듯 예술에 취한다. 취기에 나온 진심들이 너무나 솔직해서 낯 뜨겁기도 하다.

 

오랜 무명시절과 수없이 세상의 문 앞에서 인내를 배워나갈 수밖에 없었던 고된 삶. 어쩌면 그 시작은 그가 아버지의 매질에 이를 악물고 울지 않았던 그 시점부터가 아니었을까. 그의 반항기?는 주로 하찮은 일상들에서 진하게 베어 나온다. 어떤 글은 전후 사정이 뒤죽박죽이고 전혀 연결지점이 없어 보인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끼적여 놓은 듯한 문장도 더러 있다. 그런 점에서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언뜻 비치기도 하지만 차이점이라면 그의 글은 난해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섹스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이 이해할 만한 살짝 덜 죽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 -p.178

 

 

 

 

결국 훌륭한 작가는 두 가지만 잘하면 된다. 살고 글을 쓰는 것. 그거면 끝이다. -p.191

 

  그는 훌륭한 작가였다. 살았기에 썼다. 병에 걸려 죽을 것 같아 글을 썼다는 그는 엄청난 다작가였다. 스물네 살에 첫 단편을 발표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스물여섯부터 10년간 글쓰기를 포기한다. 술로 만신창이가 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일주일에 6~10편의 단편을 쓰며 고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시, 에세이, 칼럼 등을 닥치는 대로 쓴다. 그의 나이 쉰 살에 이르러 19일 만에 장편을 써냄으로써 전업 작가가 된다.

 

가난이 절망적이지 않았다고, 배고픔과 외로움 따위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던 그는 인생의 벗으로 술과 책을 택했다. 그만의 방식대로, 그만의 고집으로 써 내려간 글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과 자신의 삶에 애착이 있었음이 느껴진다. 그가 늘어놓은 말과 말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그러고 보니 난 한잔 걸치고 글이란 걸 써본 적이 없다. 일단 알콜이 들어가면 졸음이 쏟아지기 때문이다.ㅋㅋ 적당히 두어 잔 걸치고(와인으로) 떠오르는 대로 한번 써볼까나. 물론 그런 재주는 없을 테지만.

글을 쓰는 건 특이한 일이다.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가까이 갈 수는 있지만 결코 도달할 순 없다. -p.358

 

Don't try.(그의 묘비명에 적힌 글)

이 말은 애써본 자만이 알기에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읽고 쓰는 일에 애 좀 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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