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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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우리 이렇게 살바엔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는 게 어떨까?"

"그래. 그냥 죽어버리자."

참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어 보이는 이 대화는 아이들이 어릴 때 차 안에서 들려주던 이솝 우화 중 한 대사이다. 이 책에도 비슷한 우화가 등장하는데 토끼들은 너무나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자신들이 한심해서 이렇게 살바엔 차라리 죽어버리자며 결심한 뒤 내뱉은 대사다. 하지만 연못으로 뛰어들려던 순간 토끼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개구리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그걸 보면서 토끼들은 저런 소심한 개구리들도 사는데 자신들이라고 못 살 이유가 없다며 죽지 말자고 한다. 낭독하던 성우의 대사가 너무나 귀에 쏙 들어와서 "죽어버리자 "라는 대사만 나오면 그렇게 따라 하며 웃었었다. 물론 소심하고 겁 많은 큰 녀석에게 이야기의 교훈을 얘기해 주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 토끼와 거북이, 해와 달, 개미와 베짱이, 여우와 두루미, 어리석은 개, 서울쥐와 시골쥐, 양치기 소년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이솝 우화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재미있고 귀엽게 각색되어 동화로 읽혀 오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이솝우화는 어린이들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오래전 이솝이란 사람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솝도 델포이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결국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 꼴인가. 그의 말로가 씁쓸하다.

 

오래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욕망을 대신하던 존재였다. 그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들을 심심찮게 저지른다. 그랬기에 유독 우화에 신들이 등장한다. 즉 인간의 어리석음을 신과 동물에 빗대어 간접적으로 가르치려 한 것이다. 지금은 이야기가 많이 순화되었지만 원문을 읽다 보면 참 잔인하고 야만적인 이야기들도 더러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의 근원도 잔혹동화가 많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그 시절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명작동화를 좋아하고 이야기의 근원을 찾는 것도 좋아해서 이솝우화 전집을 본 순간 욕심이 났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원전에서 직접 번역한 358편의 우화가 실려 있으며 다수의 일러스트까지 곁들여져 있어 편집이나 구성도 맘에 들었다. 원문에 교훈도 짤막하게 덧붙여 놓았다.

 

모든 우화가 다 교훈적인 것은 아니다. 더러는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교훈이 없는 것도 있다. <내시와 제관>에는 교훈이 없다고는 하나 이 우화는 좀 잔인하다. <아이와 까마귀>도 교훈이 없다고는 하나 뭐가 있을 거야 하면서 집요하게 찾고 싶어진다.ㅋ

<사람과 사티로스>에 보면 사람은 동일한 입으로 덥히기도 하고 식히기도 하는 사람이라며 믿지 못할 존재라 칭한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쁘게 보면 인간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존재긴 하지만 좋게 보면 한 입으로 두 가지를 다하는 능력자이기도 하지 않나.^^

 

이솝 우화에서는 철저히 선과 악이 분리되고 자연의 질서와 순리를 지키고자 한다. 또한 과한 명예욕과 분에 넘치는 욕심은 화를 자초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늑대와 말>에서의 늑대처럼 천성이 악한 자는 선의를 강조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음을, <농부와 독사>에서 농부가 독사를 불쌍히 여겼다가 되려 독사에게 당하는 것처럼 악은 원래 악한 존재로 비친다. 그런데 나쁜 이들에게 당한 자들은 항상 당해도 싸지라는 말로 자신을 탓한다. 우화에는 분노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한편 우화에서는 차별과 편견에 대한 내용은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그런 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제우스와 수치심>이라는 우화에서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채소에 물을 주는 원예사>에서는 계모와 생모에 관한 편견을 발견할 수 있다. <갈매기와 솔개> 이야기는 솔직히 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갈매기가 바다를 터전으로 삼고 사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뭐가 큰 야망을 품었다고 하는 것인지...

 

뭐니 뭐니 해도 우화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어 철학적이다. <프로메테우스와 사람들>을 읽으면서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처음부터 사람으로 지음을 받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전쟁과 오만>을 읽으면서 인간이 오만하지 않았으면 전쟁 또한 잦지 않았을 텐데 전쟁은 왜 오만하고 결혼을 해가지고라며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좋은 것들은 힘이 없어서 나쁜 것들에게 쫓겨 다녔다.'로 시작하고 있는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라는 이야도가 인상 깊었다. 어쩜 그리도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건지.

철학서와 고전에 관심이 있다면 이솝 우화 전집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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