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찰스 부코스키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그의 글은 마치 맡아보지도 못한 냄새가 풍기는 -p.176 듯하다. 그의 글에서는 싸구려 술 냄새가 진동한다. 표지만 보고도 짐작했겠지만 고상한 문체와 적법한 은유와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 따윈 기대할 수 없다.

그의 아버지 말처럼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섹스하거나 자위하거나 똥만 싸지르는 내용이 질펀하게 등장한다.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글 따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현실과 머릿속의 일들이 뒤죽박죽이라서 도덕적 선의 경계마저 헷갈린다. 그 시대 미국 사회 바닥이 이랬단 말인가 하고 짐작만 할 따름이다. 걸러지지 않은 대화들, 둘러대지 않은 표현들. 찰스 부코스키의 <고양이에 대하여>를 읽지 않았다면 인상 꽤나 써가며 읽었겠지만 다행히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가 고양이와 함께 하고 있는 사진을 본 이들이라면 내 마음을 잘 알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까지 짐작하자니 애잔한 마음도 크다.

 

그가 칭송하는 작가들과는 사뭇 다른 글의 결. 그가 이처럼 삶의 밑바닥에서 풍겨 나오는 오리지널 인생을 갈겨쓴 데는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싸구려 잡지에 걸맞은 음탕한 내용들을 맘 내키는 대로 써 내려가도 어느 누구 하나 터치하지 않았고 의외로 그의 글은 많은 독자를 홀리게 했다.

쥐가 득실거리는 뒷골목, 폐고무와 낡은 신문 쪼가리와 말라비틀어진 벌레가 가득한 곳에 나뒹굴어도 행운과 길이 내 편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남자라니 술 한 잔 걸치고 늘어놓는 음탕한 이야기가 그닥 나쁘지 않다.

 

허나 월리엄 포크너를 칭송하는 내게 그는 포크너마저 까버린다. 카뮈도 내내 까고. 음... 뭐 취향은 다 다르니.

그래도 도스토옙스키에서는 많은 걸 배운다고.ㅎ

 

세상에 대한 빈정거림과 삐딱한 반항기, 정치와 종교를 향한 풍자에 거침이 없다. 건들면 바로 쏟아낸다. 질 떨어지는 글이라고 해도 핵심은 비껴가지 않았다. 오히려 품위 없이 내뱉는 말들에 시원함을 느낄 때가 있으니까.

난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이런 속임수가 가득한 변화구가 던져지면 열받아서 거기에 개입할 것 같다. -p.68

 

인류의 한 사람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에 더해 부끄러움을 더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자꾸만 귓전에 맴돈다. 부코스키의 칼럼을 읽고 나니 뜬금없이 미드 <섹스 앤 더시티>가 떠오른다. 섹스 칼럼을 쓰는 여자 캐리 브래드 쇼의 거침없는 입담에 흠뻑 빠져들었던 나를 떠올리니 찰스 부코스키의 글이 왜 그리 대중들에게 먹힌 건지 이해가 된다. 음탕함에 걸맞게 섹스 냄새가 진동을 한다. 섹스가 끝난 뒤 침대 다리가 부러진 사실을 알게 되던 장면을 읽다 빵 터트리고 말았다. 여자의 반응이 더 반전이다. (여성을 비하한다고 잡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그냥 시대적 흐름을 감안하고 넘어가련다.)

 

부코스키의 글을 덮고 나니 나 또한 속 깊은 날것의 감정들을 마구 꺼내보고 싶다. 분명 나의 이면에도 거침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분명 난 지성인은 아니다. 어렵게 말하는 건 못한다.

지성인이란 단순한 것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이다. 예술가란 어려운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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