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 빈민가 아이들에게 미래를 약속한 베네수엘라 음악 혁명
체피 보르사치니 지음, 김희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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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엘 시스테마'를 만나는 내내 음악의 힘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자동차 경적소리만큼 잦은 총성, 지독한 가난,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약의 유혹 속에 베네수엘라 아이들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집안에 있을 때조차 갑작스레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야하는, 10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베네수엘라의 빈민가이다. 일상 안에 폭탄처럼 내재되어 있는 폭력, 마약, 죽음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는 그들의 한 부분이다. 이처럼 앞날을 기대할 수 없는 빈민가 아이들을 음악으로 구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알려 준 오케스트라가 있다. 바로 '엘 시스테마'이다.

엘 시스테마는 극빈층 아이들을 범죄와 마약에서 구하고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역할의 오케스트라 조직이다. 음악(오케스트라)을 내세워 사회를 변화시키자는 음악혁명을 기조로 엘 시스테마는 1975년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창립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를 안전하게 지키고 있는 현재 진행형 오케스트라이다. 창립자 아브레우는 음악의 힘을, 특히 오케스트라의 괴력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다. 오케스트라는 서로 다른 악기로 합주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전체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듣기 좋은 음악은 아이들의 인성에 좋은 영향으로 작용한다. 결국 오케스트라를 통한 조화를 몸소 체험한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 타인과 잘 어우러질 수 있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의 생각은 엘 시스테마가 창립된 이후 그 곳을 거쳐 간 아이들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고 있었다.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는 엘 시스테마의 창립자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인터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구성이다. 또한 엘 시스테마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독자는 오케스트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활과 음악을 접할 수 있으며, 엘 시스테마를 조직하고 참여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엘 시스테마의 성장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간단한 인터뷰와 문답식 편집은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있다.

베네수엘라 전국 곳곳에 엘 시스테마의 센터가 있고 아이들은 즐겁게 열심히 악기를 연주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모두 전문연주인을 목표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첫째는 열정, 둘째는 기술"을 외치는 엘 시스테마의 음악이기에 당연한 결과이다. 아이들은 음악인이 되고자 악기를 연주한 것이 아니었다. 악기를 연주하다보니 절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직업음악인을, 어떤 아이는 선생님을 꿈꾸게 되었다. 아이들은 엘 시스테마 안에서 무궁무진한 꿈과 희망을 얻고 있었다.

하나를 베풀면 그것은 둘 이상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알려주고 비전을 제시해준 엘 시스테마의 졸업생들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 어릴 적 자신과 닮은 아이의 손에 악기를 쥐어 준다. 엘 시스테마를 통해 얻은 희망을 다시 엘 시스테마로 되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오케스트라가 창립될 당시, 그들을 향한 시선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패기 넘치는 창립자들의 끈질긴 노력과 거대한 음악의 힘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룩해냈다. 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창립자와 어른이 된 졸업생들이 엘 시스테마을 소중하게 꾸려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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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여행>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집보다 여행 - 어느 여행자의 기발한 이야기
왕영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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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집에 있기를 소망하는 나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매번 '방콕족'을 자청한다. 집밖에 나가봐야 개고생이라던 광고카피를 100% 이상으로 공감하고 지지하는 내가 『집보다 여행』을 만나게 되었다. 읽기 전부터 나와는 맞지 않는 작품이라고, 처음부터 저자의 이야기를 달갑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정착․안정주의자인 나와는 전혀 다른 모험․도전주의자인 저자! 나의 걱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부쩍 여행에 관심이 가는 터라 이 작품을 통해 여행에 대한 가치의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며 한편으로 조금은 그의 이야기에 솔깃한 마음도 공존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집보다 여행』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집보다 여행』은 편집상으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도입부에 해당하는 '함께 여행할래요?'에는 에세이, 소설, 인터뷰, 사설 등 여러 형식으로 표현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까운 미래의 로봇과 함께 하는 여행, 여러 곳을 유랑하는 유목 드라큘라와의 대담, 10년 뒤 저자 본인이 당하게 되는 마녀사냥식 재판 등 소설적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는 즐거운 시작이다. 그리고 중반부인 '배워야 할 것은 여행에서 다 배웠다'와 '여행 철학자의 탄생'은 저자가 독자에게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여행의 본질적인 의미를 역설하고 있다. 바로 『집보다 여행』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우리가 눈여겨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결말부는 저자의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몇 가지 일화들을 소개한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로 마무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 부인과의 만남, 절친한 친구의 죽음, 현재 운영하는 카페 아쿠아, 그리고 그 밖의 자신의 생각들을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한다.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다룬 인간적인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 있으며 그가 왜 '여행'에 빠져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집보다 여행』은 여타의 여행에세이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잠시 일상을 떠난 휴식처로서의 여행이 아닌 삶과 여행이 같은 연장선 위에 있음을 인문,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탐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저자가 체험한 여행지에 대한 소개와 정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 안의 여행, 혹은 여행 안의 일상을 끊임없이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저자는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존재인 것 같은 안정과 도전, 여행과 일상, 밤과 낮, 속도와 공간 등은 실상을 파헤치면 언제나 함께인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안정'이라고 여기는 상태는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불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자는 우리가 늘상 놓치고 있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반복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는 저자의 외침에 주의 깊게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존의 여행에세이와 다른 노선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보다 여행』은 독자가 받아들이는 데 무리가 없다.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철학적으로 표현되는 '여행'이 무겁거나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아주 친절한 작품이다. 또한 에둘러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쉽게 비유 설명하는 저자의 문장은 읽는 이에게 착하고 편하게 다가온다. 원론적으로 여행에 대해 서술하는 『집보다 여행』은 에세이의 가벼움과 재미를 가미하여 자칫 어렵고 난해할 수 있는 위험을 떨쳐버린 영리한 작품이기도 하다. 인문, 철학 장르의 진중함과 에세이 장르의 친화력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작품으로 굳이 여행과 결부 짓지 않더라도 인생의 여유를 위해 읽어볼 만한 『집보다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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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부크 부인의 초상 샘터 외국소설선 4
제프리 포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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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상대방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가늠해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당신이 상상한 인물과 실제 인물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였는가? 요즘 같은 디지털 영상 시대에 어쩌면 적합하지 않는 질문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을 지나온 나는 실물을 보지 않고 상대의 목소리와 이야기만을 듣고 상대방을 상상해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매번 상상은 상상으로 머물렀다. 실물과 비교해보면 그들은 너무도 다른 외양으로, 나는 완벽하게 다른 인물을 창조해냈을 뿐이다. 인간을 빚어낸 신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 작업을 수락한 화가는 과연 실제 모델과 닮은 초상화를 그려낼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의 이야기이다. 이제 화가의 섬세하고도 고된 붓놀림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1890년대 뉴욕, 피암보는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이다. 초상화 분야에서는 제법 명성이 자자한 그이다. 하지만 피암보는 진정한 예술에 목말라 있는 상태이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표출할 수 없는 초상화 작업에 이골이 나 있는 현 상황을 탈출하고 싶다. 그러던 중, 그에게 거액의 초상화 제의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번 제의는 이상하다 못해 요상스럽다. 모델을 보지 않고 초상화를 완성시켜야 한단다. 피암보는 무작정 돈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샤르부크 부인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그리고 피암보 인생의 마지막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은 "나를 그리되 나를 보지는 말라!", 라는 모순과도 같은 소재로 독자의 시선을 한순간에 사로잡는다. 게다가 작가는 자신의 뛰어난 구성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 작품은 피암보가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을 그리면서 표현되는 그녀의 과거와 뉴욕 시내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의문의 현재 사건을 동시에 전개시키고 있다. 또한 엎치락뒤치락 긴장감 넘치게 진행되는 두 이야기의 축은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피암보의 초상화 작업을 주축으로 의문의 사건을 결합시킨 자연스런 연결구도는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과 연관된 급작스런 마무리는 작품에 대한 아쉬움으로 자리잡는다. 사라진 샤르부크 부인의 행적과 그녀의 충성스런 수행인 왓킨의 사연은 너무 짧게 서술되어 있어 부족한 느낌이 든다. 특히 '왓킨'이라는 중요 인물의 과거와 왜 그토록 샤르부크 부인의 곁에 있기를 집착하는지에 대한 서술이 전무한 점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그동안의 짜임새 있는 구성의 오점이 된다.

작가가 펼쳐놓은 퍼즐 조각을 독자는 어려움 없이 맞춰나간다. 더불어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만 즐겁게 퍼즐을 완성시켰음에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독자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지만 부족한 마무리로 인해 독자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이 나로선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프리 포드는 독자의 흥미를 끄집어낼 만한 소재들을 효율적으로 제시했지만 결말의 미흡함 때문에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은 소설문학으로서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 확실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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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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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년', '언나', '간나', '유나'……. 시시각각 소녀를 지칭하는 단어들이다. 소녀는 안타깝고 슬픈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지만 마지막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바람처럼 스쳐 지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소녀의 운명은 한곳에 머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바람'과 흡사하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는 동안, 나는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소녀를 불러주고 싶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아비는 술만 먹으면 괴물로 돌변하여 소녀의 어미와 소녀에게 폭력을 가한다. 소녀의 어미는 내내 남편의 폭력을 묵인하다 한계치에 다다르면 큰 가방을 싸들고 가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절대 남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저 집 근처 여관에서 며칠 기거하다 다시 집으로 되돌아온다. 소녀는 때리는 아비와 맞기만 하는 어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이들이 자신의 '진짜'부모가 아닌 '가짜'부모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제 소녀는 '진짜'엄마를 찾아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다. '진짜'엄마의 얼굴은 알 수 없지만 만나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아이는 역 근처 황금다방의 창문을 통해 '진짜'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과연 소녀는 진짜 엄마와 만날 수 있을까!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독자로 하여금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한다. 하나는 소녀의 존재 유무에 관하여, 또 다른 하나는 소녀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먼저 이름과 나이조차 모르는 소녀를 보고 있노라면 꿈속을 걷는 듯 한 비현실적 몽환의 느낌이 다가온다. (작품 속세계에서)소녀는 실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인물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친엄마를 '가짜'엄마로 규정짓고 '진짜'엄마를 갈구하는 소녀는 이 작품에서 이미 죽어버린 사자(死者)의 영혼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읽는 내내 나와 함께 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으로 작품을 읽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은 나의 추측과 의구심으로 내용을 달리 전개할 수 있다. 소녀가 살아있는 경우와 죽은 경우 모두 가능케 하기에 독자는 하나의 이야기를 두 가지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황금다방의 마음씨 착한 장미언니, 태백식당의 정 많은 할머니, 유랑하는 각설이패의 대장과 삼촌, 따뜻한 목소리의 교회 청년, 사회와 격리된 폐가생활을 하는 아저씨, 보호받지 못한 비행청소년 유미와 나리. 이처럼 소녀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녀가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불쌍하고 비루한 인생들뿐이다. 그리고 작가는 소녀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고 담담하게 풀어가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불안한 인간 군상을 매우 현실적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있는 작가의 화법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소녀가 아닌 '그네들'이라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서른을 갓 넘긴 작가는 사회가 암담한 현실 속 소수의 우울에 대해서 관심을 갖길 바라고 있었다.

가끔씩 제목만으로도 읽고자하는 의욕이 불끈불끈 생기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과 마주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나에게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매우 현실적이었으며 매우 몽환적인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나란히 존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 것 같은 현실과 몽환의 경계를 작가는 작품 속 소녀로 분(扮)하여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또한 무언가 알 수 없는 매력으로 이야기에 힘을 더하고 있는 신선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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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샤크
베르너 J. 에글리 지음, 배수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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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대륙의 삶은 처참하다. 특히 약자인 아이들의 삶은 처참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지경이다. 우리는 수많은 언론매체들을 통해서 이미 그들의 비극을 익히 들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고통과 상처를 제대로 정확히 알고 있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는 머나먼 거리상의 이유도 한 몫을 하지만 마음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리라. 간혹 뉴스에서 전해오는 소말리아 해적의 우리 선박납포 소식은 오히려 그네들에 대한 반감을 키우게 한다. 언론을 통한 빈번한 노출 덕분에 아프리카 아이들의 고통에 대한 체감지수는 상당히 높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의 아픔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블랙 샤크』는 영국 소년이 소말리아 소년소녀와 만나게 되면서 점차 알아가는 아프리카의 실상을 다룬, 결코 가볍지 않은 성장소설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우울한 토미는 아버지의 친구인 캡틴 루니의 엠마 루 호에 주방보조로 승선하게 된다. 항해를 하던 중, 토미는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있는 누리아를 발견하고 에이미와 함께 그녀를 구한다. 그리고 소말리아 해안 근처에서 블랙 샤크 해적단의 공격을 받는다. 게다가 캡틴 루니와 에이미는 몸값요구의 인질로 해적에게 납치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

나는 『블랙 샤크』를 읽으면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블랙 샤크의 이중성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미와 에이미에게 블랙 샤크는 악명 높은 악당일 뿐이다. 만약 오마르와 타렉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그저 해적과의 모험을 다룬 한 소년의 성장소설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블랙 샤크』에는 또 다른 주인공 오마르와 타렉이 등장하면서 이야기에 무게감을 더하게 된다. 블랙 샤크를 만나고자 하는 일념으로 살아가고 있는 두 소년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무장 군인들을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블랙 샤크는 정의의 사도이다. 블랙 샤크는 소말리아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영웅이자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이처럼 토미와 에이미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오마르와 타렉에게는 존경의 대상인 블랙 샤크! 과연 그는 선(善)일까? 악(惡)일까?

결론부터 말하지만 그는 선과 악의 경계선 위 애매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블랙 샤크는 단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인물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는 결코 소말리아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단지 정부군의 폭압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사기꾼이다. 나에게도 토미와 에이미가 그랬던 것처럼 블랙 샤크는 자만심으로 가득 찬 독재자, 악이다. 하지만 정부군의 폭격으로 해적단의 은신처가 불바다가 되었을 때에는 그토록 가증스럽던 블랙 샤크와 그의 부하들이 애처롭고 불쌍하게 여겨져 나는 약간의 당혹감마저 들었다. 이 순간에는 분명 오마르와 타렉의 시선으로 그들을 선으로 바라본 것이 분명하다.

『블랙 샤크』는 값싼 동정심을 얻기 위한 작품이 아니다. 비참한 소말리아와 이와 연관된 국제정세를 알리기 위함이 주된 목적이다.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지 않으려고 작가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풀어가고 있지만 그들의 참혹함은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오래전 강대국의 이권다툼으로 조각난 아프리카는 현재까지도 강대국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블랙 샤크의 이중성은 아프리카의 역사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생산된 것이 바로 선도 악도 아닌 "블랙 샤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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