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
로버트 바 지음, 이은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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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대부분 별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반 다인은 병상에 있기가 심심해서 추리소설을 읽다가 '이런 내가 써도 이것 보다는 낫겠군'이라며 까도남스럽게 소설을 써 불멸의 명작들을 남겼다지만, 사실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래서 왠만큼 어처구니 없는 졸작이 아닌 이상 나는 추리소설이라면 다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그런데 명탐정 외젠 발몽은 추리소설이 아니라도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읽는 내내 오만하고 예쁜 여자 무지하게 밝히는 이 프랑스 남자가 귀엽고 유쾌해서 웃음이 났다. 여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면 포와로가 생각나고, 잘난 척 무지하게 해대는 모습을 보면 셜록 홈즈와 포와로가 동시에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외젠 발몽이었다. 도대체 뭘 먹으면 이렇게 잘난 척을 유쾌하게 해댈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질 정도다... 

각각의 단편들은 탐정의 실패 혹은 엄청난 대실패로 끝날 때도 있고, 유쾌한 성공으로 끝나 지갑을 두둑하게 채울 때도 있지만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똑같다. 물론 나처럼 느끼려면 골든 에이지 시대의 작품들을 유난히 애정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작가가 최초의 셜로키언이라고 하는데, 그런 사람치고는 뒤에 실린 셜로 콤즈의 모험과 두 번째 돈주머니의 모험은 홈즈를 너무 희화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셜록 홈즈를 너무나 애정하는 사람만이 그런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외젠 발몽의 새로운 활약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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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혈관이 터져 흰자위가 새빨갛게 되었다. 

우연히 거울을 봤다가(내가 이래서 거울을 자주 안 본다.) 눈을 보고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병원에서는 혈압이 높거나 힘을 너무 세게 줬거나 스트레스나 피로로 그럴 수 있다고 한다. 2주일이면 피가 다 삭는다는데, 원하면 약으로 안구 속의 피를 삭힐 수도 있다고 한다. 요즘 젖을 떼느라 식혜를 먹으며 젖을 삭히는 중인데, 이제는 피까지 삭혀야 하나! 

아무튼 모유수유 중이니 약먹지 말고 그냥 두는 건 어떻겠느냐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그러기로 했다. 특별히 외출할 일도 없고, 내 눈에 고인 핏물에 남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ㅜ.ㅜ 아무튼 우울하다. 

오늘 암웨이에서 좋다고 소문난 카로틴 뭐시깽이하는 약을 샀다. 그걸 먹으면 눈에서 힘이 난다나 어쩐다나. 안구에서 레이저 빔까지 나올 필요는 없고, 다시는 이런 흉한 일만 겪지 않으면 좋겠다. 그냥 오기 뭐해서 방부제 안 들어간 인공눈물을 처방받아 왔는데, 창가에 뒀더니 눈에 넣으면 시원하다.  

나이도 한 살 더 먹고, 애까지 낳아서 그런지 몸이 예전같지 않다. 원래도 골골했지만 요즘 특히 더 골골하니 우울하다. 무릎도 가끔 시큰거린다. 몸살도 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전에는 한 번 크게 앓으면 골골하면서도 일 년은 무사히 나곤 했는데, 죽도록 끙끙 앓은 적이 서너번은 된 것 같다. 그것도 반 년 동안. 올해는 건강에 신경 쓰면서 살자고 했는데, 정초부터 눈이 이렇게 되니 의욕이 팍 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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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금 내가 작업한 책에 다른 사람 이름이 올라간 있는 걸 봤다. 두 권짜리라 1권 역자 이름이 2권에도 따라 들어갔나 보다. 책에는 내 이름이 나와 있으니 상관없지만, 불쾌하다.  

작년 이맘 때는 정반대의 경우 때문에 분통이 터졌었는데... 그 때는 인터넷 서점에는 내 이름이 올라 있고, 책에는 시리즈의 이전 책을 번역한 역자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출판사에 전화해서 이야기를 해서 수정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수정한 책을 한 권이라도 보내줄 줄 알았는데, 꿩 구어먹은 소식이다. 할 수 없이 증정본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판에도 불구하고 방구석에서 썩고 있다.  

2. 새해 들어 영성 관련 서적을 몇 권이나 검토를 하게 되었다. 전에는 이런 책 다 허접하다고 싫어했는데, 작년 한 해 이런저런 일들을 워낙 폭풍처럼 겪다보니 달리 보인다. 그래서 사람은 장담을 하면 안 되는 건가 보다. 내가 이런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좋은 구절을 옮겨 적고 할 날이 올 줄이야. 

지금 디팍 초프라의 책을 보고 있다. 행복에 관한 책인데, 그 책에는 인간이 기억하고 상상할 수 있어서 더 고통스럽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떤 개를 발로 차고 10년 후에 그 개를 다시 만난다고 하자. 개는 내게 차인 기억을 떠올리며 으르렁거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람과 달리 개는 10년 동안 그 기억을 곱씹으며 복수를 다짐하지는 않는다. 지금 내 상황을 알고서 쓴 것 같다. 지금 서럽고 분하고 억울한 기억 때문에 많이 힘든데, 이 구절을 본 순간 그 기억을 날려 버릴 수는 없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과연 이 기억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 사람들을 용서하고 나도 용서를 구할 수 있을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내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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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던 책이 도착했다.  

책갈피를 준다는 말에 낚여서(그렇지 않아도 사긴 살 계획이었지만) 예약을 했는데, 오늘 도착했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들도 많고, 얼마전 도서관 마실로 거둬 온 책들도 많아서 읽을 책이 부족할 리는 만무하지만, 예약한 책이 오지 않으니 이제나저제나 택배아저씨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책갈피 선착순 100명이지 않았나? 그렇다면 나 전국 100등 안에 든거야?

웃는 이에몬도 읽지도 못했고, 리라장 살인사건은 펼쳐보지도 못했는데, 하루살이까지. 

그래도 당분간 읽을 책이 많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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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문기담 - 추리편 김내성 걸작 시리즈
김내성 지음 / 페이퍼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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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내성의 작품을 좋아한다.  

몇 해 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추리소설 코너를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보게 된 '비밀의 문', 명지사에서 나온 헌책 포스를 짱짱하게 풍기는 새 책이었었다. 김내성과의 첫만남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지만 뒷표지 문구를 본 순간, 호기심이 동했다.  

'한국추리소설사에 있어 김내성의 존재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위대하다. 그가 남긴 업적은 그 시대적 상황과 비춰볼 때 가히 독보적인 개척자라 할 만큼 이 땅 위에 알찬 열매를 맺어놓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일본의 '에도가와 람뽀'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에 '에도가와 람뽀'가 있다면 우리 한국에는 김내성이 있다는 말 아닌가. 당장 책을 샀다. 하지만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아까와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내 깜냥으로 구할 수 있는 김내성의 작품은 명지사에서 나온 비밀의 문이 다인데, 이걸 읽고 나면 아쉬워서 어쩌나 싶어서 자꾸 책읽기를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페이퍼 하우스에서 김내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멋지구리한 마인을 내놓았고, 마인 삽화본도 나왔다. 유불란과의 랑데뷰를 기대하며 마인과 마인 삽화본을 냉큼 샀지만 이번에도 책을 읽지는 않았다. 자꾸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만큼은 아니더라도 신작이 계속 나올 상황도 아니고, 고 김내성의 미발표 추리소설이 가득 든 괘짝이 발견된 것도 아닌데, 읽기가 너무 아깝다 이말이다.  

얼마 전에 연문기담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이번에야 말로 꼭 읽고야 말겠다며 책을 펼쳤는데, 첫 번째 작품의 첫 문장을 읽고 나는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도회의 가을은 빌딩가에서 하염없이 신음하고 있는 가로수의 낙엽소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니, 페이브먼트에 울리는 수심 많은 숫처녀들의 하이힐 소리에서부터 시작된다.'

국사 성적이 형편없었던 나로서는 일제 강점기라면 (단발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상투를 틀고 치마 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이 연상되는데, 이 문장 하나로 그 옛날 경성의 분위기는 숫처녀들의 킬힐이 페이브먼트를 또각또각 울리며 지나가는 빌딩숲으로 바뀌고 말았다. 문체를 현대식으로 고치지 않고 당시 표현을 그대로 살려서 처음에는 잘 읽히지 않았지만, 읽다보니 왠걸, 글에서 운율이 느껴지는 것 같다... 사랑방 손님의 옥희가 옆에서 낭독을 해 주는 것 처럼 귀에 와서 착착 감긴다.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영어도 재미있다. 

'오라이 노 댕큐'를 본 순간 나와 신랑은 박장대소를 했다. 

이 문장은 또 어떤가.  

'이런 것들이 서로 얽히고 사리어서 조금 과장하게 표현한다면 마치 종로 네거리의 교통과 같은 일대 혼잡을 이루고 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마침 광화문을 지나던 참이라, 더 웃음이 터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순간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일제강점기의 현실은 너무나 암울하지만 한편으로는 '빌딩'이 들어서고 자동차가 다니고 양장을 하고 빠마를 한 숫처녀들과 빽구두를 신은 모던 보이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활기찬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문체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재미있는 표현들이 코믹하지만 추리소설로서는 무척 훌륭하다.  

다섯 작품 모두 반전과 아이디어가 뛰어나다. 나는 특히 표제작인 연문기담이 좋았다. 말 그대로 연애편지에 얽힌 미스터리를 다룬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콩트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타원형의 거울은 사건이 술술 해결되는 것 같지만 마지막 반전이 읽는 이의 허를 찌른다. 가상범인은 명탐정 유불란이 등장하는 것 만으로도 좋지만, 탐정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벌처기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알리바이가 무너저버린 어떤 남편의 이야기이다. 마지막 작품인 비밀의 문은 살인광선을 개발한 강박사가 가장 소중한 것을 훔쳐가겠다는 도둑의 예고장을 받고 광선무기를 열심히 지키지만 정작 딸을 도둑맞는다는 이야기이다. 다섯 작품 모두 짧아도 스토리가 탄탄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의 해설에는 요즘 나오는 한국 추리소설이 대부분 하드보일드나 역사추리소설에 국한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팩션은 좋아하지 않아 외국작품이든 한국작품이든 잘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하드보일드'한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정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읽은 몇 편의 현대 하드보일드 한국추리소설은 추리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도 되나 싶을 정도로, 추리는 없고 폭력과 욕설만 난무했다. 하드보일드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제대로 된 트릭이나 추리를 만들어 낼 수 없어 하드보일드를 쓴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설홍주와 왕도손' 명콤비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야기가 또 엉뚱한 곳으로...) 후속작은 언제 나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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