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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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따금씩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당신의 남편을 처음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말이 '이따금씩'이지, 이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기까지 계절마다 한번씩 들었다고 쳐도 백번이 훨씬 넘는 횟수다. 그만큼 듣다보니 어머니가 '내가 처녀적에 말이야'라고 운을 떼자마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때로는 어머니가 가물가물해 하시는 부분을 내가 정정해드리기도 하고 보충해드릴 정도다. 어릴 때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그저 당신의 젊은 시절,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기 위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그토록 많이 듣고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아직도 반복해서 들려주실 리가 있는가. 그래서 생각해보니 두 분이 어떻게 만나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었는지 하는 이야기가 결국에는 나의 탄생과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거창하게 말하면 '탄생 설화'와 같은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평범한 나 같은 인간도 두 남녀의 만남과 사랑, 결혼 약속, 희생 등을 거쳐서 태어났다. 결국 어머니는 그런 뜻을 오랫동안 긴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전해주신 것이 아닐까.

 

2011년을 강타한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신체가 정상인보다 급격히 빨리 늙는 희귀병인 조로증을 앓고 있는 열일곱 살 소년 '아름'의 '탄생설화'로부터 시작된다. 아름의 부모 '대수'와 '미라'는 지금의 아름과 같은 열일곱 살의 나이에 그를 낳았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당장 다니는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것은 물론 친구들처럼 대학에도 못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할 기회도, 젊음을 불살라볼 기회도 잃게된다. 게다가 그렇게 어렵게 태어난 아들 아름이가 병을 앓게 되면서 두 사람은 십대 후반부터 삼십대 초반까지의 꽃 같은 시절을 노동과 살림으로 날리며 아름이처럼 일찍[早] 늙어[老]버린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많은 상실과 이별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름의 존재는 부모가 잃어버린 시간과 기회의 총합 그 이상이었다. 하루하루 그가 살아있다는 것이 부모에게는 기적이었고 행복이었으며,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로 인해 웃고, 울고, 행복해하고, 좌절하며 인생을 만끽했다. 사람은 누구나 제 나름의 가치가 있고, 자기자신조차 인식할 수 없을만큼 많은 이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를 통해 절실히 느꼈다.   

 

이 소설은 언뜻 보기에 아름이와 그의 부모의 생활을 다룬 가족소설 내지는 아름이의 성장을 다룬 성장소설로 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만남과 이별, 사랑과 미움, 탄생과 죽음, 남자와 여자, 가족과 타인 등 수많은 대립항을 인생이라는 테마로 잘 녹여낸 휴머니즘 소설이다. 열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남들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대수와 미라의 삶이 '조로증'이라는 방식으로 자식인 아름이의 삶으로서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참 기구하다 싶고 안타깝지만, 예기치 않은 시련들에도 삶의 의지를 꺾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힘과 인생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두 남녀의 '두근두근'으로 시작된 나의 인생을 좀 더 '두근두근'하게 살아봐야겠다는 자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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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A722416555 ˝나는 왜 일보다 사람이 힘들까˝ 이제까지는 별탈없이 잘 지내왔지만 알게모르게 직장내 인간관계 때문에 다들 속썩고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특히 사회로 처음 나온 신입 직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저도 신입때 일도 어렵지만 인간관계가 훨씬 더 어렵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서요. 좋은 상담자, 선배가 되어주지는 못해도 이번 기회에 책 선물 하고 좋은 선배 되어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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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
김이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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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머니께서 누구나 살다보면 죽을 고비를 일곱 번 맞닥뜨리게 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부자인 사람, 성공한 사람, 똑똑한 사람, 잘난 사람 할 것 없이 살다보면 누구나 실패를 겪고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니 너무 낙심하지도 말고 억울해하지도 말라는 뜻이셨으리라.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를 읽으면서 그 때 그 어머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저자 김이율은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교보생명, 유한양행, 미래에셋, 기아, 대상, 신한금융, 국민연금 등 20여 군데의 기업 사보에 칼럼을 썼으며 특강 강사로도 활동했다. 또한 <가슴이 시키는 일>,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신작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는 모두 스물세 명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특유의 아름답고 따뜻한 문장으로 풀어낸 감동적인 책이다. 장애를 이겨내고 희망의 증거가 된 호이트 부자, 금남의 벽을 깨고 무용수가 된 빌리 엘리어트, 암투병 중에도 환경보호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은 레이첼 카슨, 야쿠자의 부인에서 변호사로 인생역전한 오히라 미쓰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사들뿐 아니라,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유명한 서울대 이상묵 교수, 한국인 차별을 이겨내고 성공한 MK택시 유봉식 사장, 960번 도전 끝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차사순 할머니 등 국내에서 화제가 된 이웃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나는 노숙자임에도 열심히 공부하여 하버드대에 입학한 소녀 카디자 윌리엄스와 '마지막 강의'로 유명한 랜디 포시 교수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열네 살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카디자는 날 때부터 길거리에서 살았다.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가 득실대는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구하는 생활이었지만, 카디자는 꾸준히 책을 읽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많은 명문대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으며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집에 돈이 없어서, 부모님이 제대로 뒷바라지를 안 해줘서 공부를 못하고 성공을 못한다는 핑계를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랜디 포시 교수는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삶의 의지를 꺾지 않고 강단에 선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는 <마지막 강의>라는 책으로도 만들어져 전세계인들을 울린 바 있다. 그가 남긴 말 중에는 명언으로 남은 것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책에도 소개가 되어 있었다. "담벼락이 왜 존재하는지 아세요? 그건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거기 서 있는 겁니다. 그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그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담벼락은 우리의 가능성과 간절함을 끌어내고자 거기에 있는 겁니다." (p.254)


우리는 인생길에서 수없이 많은 담벼락을 맞닥뜨린다. 그것은 실패일 수도 있고, 실연일 수도 있고, 가난일 수도 있고, 병일 수도 있고, 불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담벼락들은 나를 파괴하고 좌절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깨부수고 넘어가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한층 더 빛난다. 그래서 저자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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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의 법칙 - 끌리는 사람에게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
문준연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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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는 일이란 결국 모두 남의 호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닐까? 공부든 일이든, 옷을 잘 입고 예쁘게 꾸미는 일이든,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일이든, 운동이든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자기계발서의 경우, 처세, 인맥, 화술 등등 서로 다른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결국에는 상사와 동료,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기 위한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모든 일이 상대방의 호감을 얻는 데에서 시작되고, 호감을 얻음으로써 끝난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호감의 법칙>의 저자 한양대학교 경상대학 경영학부 문준연 교수는 마케팅 역시 소비자의 호감을 얻기 위한 수단이며, 호감을 얻는 방법을 알면 마케팅 역시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호감을 얻는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에게 있어 타인의 호감을 얻는 일은 그 전 세대에 비해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핵가족에서 태어나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경제적으로도 훨씬 풍요로운 가운데 성장한다. 따라서 우리 같은 중장년층에게는 당연하고 쉬운 인간관계 비법이 그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호감의 원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은 더욱 절실한 과제이다." (p.6) 그렇기 때문에 취업하겠다고, 경영을 해보겠다고 책으로만 마케팅, 경영 이론을 공부할 것이 아니라, 당장 옆에 있는 사람, 친구와 연인, 가족의 마음을 얻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론이 아니라 마음으로 접근하는 일은 상당히 효과가 좋다. "면접관에게 당신이 수강한 학과목과 학점과 수행한 프로젝트를 설명하면 머리에 호소하는 것이다. 동료 학생들로부터 인기와 동아리 후배들로부터 받고 있는 존경과 봉사활동에서 경험한 감동을 이야기하면 가슴에 호소하는 것이다." (p.19) 게다가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호감을 얻는 일이야 이미 태어나서부터 부모와 교사의 관심을 받고 친구와 애인을 사귀기 위해 수차례 반복해온 일이 아닌가. 이 책 역시 수많은 마케팅, 심리학 이론을 담고 있지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면접, 취업, 소개팅, 친구 사귀기 등등 누군가의 호감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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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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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70대 노인이 여자아이에게 입맞춤을 해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보도되었다. 여자아이에게 갑자기 입을 맞춘 70대 노인이라니. 언뜻 생각하기에는 징그럽고 끔찍하고, 내가 아이의 부모라도 신고를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노인의 마음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젊고 예쁘고 순수한 것을 보았을 때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거나 손을 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봄꽃을 꺾고 새싹을 밟고, 어린 아이돌 스타에게 열광하는 게 아닐까?) 다만 이 노인의 경우 그 대상이 생면부지의 타인이었고,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입맞춤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했기 때문에 사회적인 제약을 받은 것이다.


마침 70대 노인의 사랑과 욕망을 다룬 박범신의 소설 <은교>를 읽었다. 이 소설과 위 사건은 노인이 소녀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는다는 점은 같지만, 그 본질은 엄연히 다르다. 위 사건에서 70대 노인은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인 행위로 표현했지만, 소설에 나오는 이적요 시인은 은교에 대해 연모의 감정을 품었을지언정 그것을 행동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 그 선을 넘을 뻔한 적은 있지만, 자신의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은교가 다치지 않도록, 그리고 자신의 깊은 사랑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애썼다. 그것이 범죄와 사랑의 차이가 아닐까.


소설에서 작가는 시인을 통해 노인에게도 욕망이 있고 사랑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현대 사회, 특히 우리나라의 노년층은 전쟁과 정치적인 혼란,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젊은 시절에는 청춘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고, 가족을 이루고도 그 행복을 여실히 느끼지 못한 불행한 세대다. 시인 역시 지금은 사회적으로 명망을 누리고 있고 재정적으로도 어렵지 않지만, 가슴 한 구석에는 청춘을 다 누리지 못한 회환과 첫사랑에 대한 연민, 가정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이제 늙고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니 잊어야지 했던 그 연민과 회환을 하루아침에 터트려버린 존재가 바로 은교다. 그녀는 빼어나게 예쁘지도 않고 이렇다할 잘난 구석도 없는 평범한 여고생이지만, 시인에게는 순수, 청춘, 사랑 등 잃어버린 젊음과 행복의 결정체로 보였다. 그래서 시인은 그녀를 범하기보다 지켜주는 쪽을 택했다.


반면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는 은교를 성(性)의 대상으로밖에 보지 못했다. 그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은 잘못된 욕망을 가진 자의 비극적인 최후로도 볼 수 있지만, 예술적으로 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독하고 외곬수적인 삶을 택한 이적요 시인과 달리, 작품을 창조하는 고통을 겪지 않고도 부와 명예를 모두 누리려했던 '사이비' 예술가의 말로로도 볼 수 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적요 시인이 한편으로는 서지우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바라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 꾹꾹 눌러왔던 그 욕망을 은교와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버릴 수 있었고, 그것을 서지우에 대한 폭력으로 해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히 노인의 성과 욕망을 그린 대중소설이 아니라 예술과 인생의 의미에 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모든 예술과 인생의 선택에 뒤따르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 갈림길에 서있었던 소녀가 바로 은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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