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식탁 - 만들기도 치우기도 쉬운
이현주 지음 / 지식인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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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이 되면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요리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10대, 아니 20대 초반에만 하더라도 음식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전부였고, 집밥보다는 인스턴트 음식이나 분식, 군것질을 좋아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끼니를 챙겨먹는 일이 늘고 건강을 신경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혼자 차려먹을 때에도 기왕이면 몸에 좋은 재료 위주로 직접 만들어 먹고, 가끔씩은 가족이나 남에게 대접하기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의욕은 높은데 실력이 따라주지 못하다보니 아쉬운 때가 참 많았다.


그런 나의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만들기도 치우기도 쉬운 2인 식탁>이라는 책이다. 혼자 밥먹는 때가 많다보니 거창한 잔치 음식이나 엄청난 솜씨를 필요로 하는 음식보다는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 좋은데, 이 책에 소개된 요리들은 대부분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지 않는 간단한 요리들이고, 무엇보다도 '치우기도' 쉽다는 게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음식하는 시간보다 설거지하는 시간이 더 길 때가 있다...)
 

저자 이현주는 블로그 '레이디스 쿠킹 월드'를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 파워블로거라고 한다. (http://blog.naver.com/chris1719) 든든하지만 부담 없는 메뉴, 쉽고 간단한 요리, 심플하고 건강한 요리를 지향하며, 제과자격증, 제빵자격증까지 겸비한 실력자라고 하니 믿음이 간다. 요리할 때 네이버에서 레시피를 찾는 일이 참 많은데 앞으로는 이현주 저자님의 블로그를 참고해야겠다 ^^ 


이 책은 총 여섯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상차림을 기본으로 하며, 가족 모임이나 손님 맞이, 술안주 등 특별한 때를 대비한 레시피와 요즘 각광받고 있는 홈베이킹 레시피까지 담겨 있어서 꽤 알차다. 제목이 '2인 식탁'이라서 두 사람이 단출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만 소개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 먹을 수 있는 요리도 소개되어 있어서 뭔가 득템한 기분 ^^


파트1은 든든하게 아침을 여는 아침 상차림이다. 기본 중의 기본인 에그 스크램블, 토스트, 샌드위치 류를 비롯하여, 출근 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주스, 스무디 제조법과,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브런치 메뉴 레시피를 다루고 있다. 길거리 토스트처럼 자주 만들어 먹는 메뉴도 있지만 버섯과 양파를 올린 오픈 샌드위치처럼 새로운 메뉴도 있어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팍팍 들었다.


파트2는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원플레이트 상차림으로, 파스타, 비빔국수, 칼국수 등 면류와 카레라이스, 초밥, 규동, 주먹밥, 비빔밥 등 밥류로 나누어져있다. 뇨끼라든가 파니니, 프리타타, 규동 등 메뉴들이 웬만한 레스토랑 못지 않게 감각적이고 트렌디해서 젊은 사람들의 감각에 잘 맞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음식 솜씨가 뛰어나지 않은 신혼부부들이 만들어 먹기에도 좋겠지만, 자취생들한테도 매우 좋을 것 같다.


파트3은 저녁 상차림이다. 보통 하루 중 가장 거하게 식사를 하는 때가 저녁인만큼 소개된 메뉴가 파트1에 소개된 아침 메뉴나 파트2의 원플레이트 상차림에 비해 화려한 편이다. 한국인의 밥상에 빠져서는 안되는 국, 찌개, 전골 등 국물류 요리부터 찜닭, 스테이크, 양념구이, 강정, 전, 무침, 조림 등 메인 요리가 소개되어 있다. 레벨이 높은 요리도 있지만 샤브샤브, 어묵전골, 도토리묵 김치무침처럼 음식 솜씨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요리도 있고, 채소볶음, 두부조림 등 자주 해먹을 수 있는 메뉴 위주로 되어 있어서 유용할 것 같다. 


파트4에는 엄마의 손맛을 담고픈 반찬들이 소개되어 있다. 나물 요리를 비롯하여 무침, 볶음, 장아찌 등이 주로 소개되어 있다. 인스턴트 요리를 최대한 배제하고, 버섯, 매생이, 곤드레 나물 등 몸에 좋은 자연 재료 위주로 구성이 되어있는 점이 좋았다. 


파트5에는 홈베이킹으로 만들 수 있는 스콘, 머핀, 케이크, 떡 등이 소개되어 있다. 요즘은 주부뿐 아니라 직장인, 학생들 중에도 홈베이킹에 관심있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이 책에 소개된 홈베이킹 요리들 중에는 홈베이킹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도 별다른 기구나 재료 준비를 하지 않아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 많아서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212, 213페이지에 소개된 고구마 케이크는 오븐 없이 빵집이나 슈퍼에서 파는 카스테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니 도전해 봐야지. 생크림 발라서 차갑게 식혀서 아이스티나 커피와 먹으면 진짜 맛있겠다 ^ㅠ^


마지막으로 파트6에는 가족을 초대하거나 손님 맞이를 할 때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요리들이 소개되어 있다. 웨지 감자, 스테이크 등 친구들 입맛에 맞을 것 같은 요리도 있고, 곤드레밥, 채소찜 등 부모님들 취향에 맞는 요리도 있다. 잼이나 아이스 에이드 같은 간단한 요리, 치킨, 닭꼬치, 골뱅이 무침 등 안주 요리도 소개되어 있어서 이제 막 요리를 시작한 사람들이 전천후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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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하우스
캐슬린 그리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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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스토켓의 <헬프>를 읽을 당시 (소설 자체는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이지만) 인종차별이 예전처럼 극심하지 않은 지금, 이러한 문제를 다룬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궁금했다. 노예해방 전후의 흑인들의 비참한 삶을 다룬 소설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비롯하여 앨리스 워커의 <컬러 피플>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소설들이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인종차별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던 반면, 지금은 흑인 대통령이 선출될 만큼 미국 내에서 흑인들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이런 소설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전보다 나아졌다고 해서 그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는 인종뿐 아니라 여성, 노동자, 장애인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어떤 작품은 같은 주제라도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새로운 의미를 제시하고 문제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소설이 바로 캐슬린 그리섬의 <키친 하우스>다.



원래 흑인 문학, 역사 문학 등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나 일어났음직한 일에 기반한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소설은 소재도 소재지만, 줄거리 자체가 매우 극적이고 흥미진진하며 인물들의 캐릭터가 매우 생동감있고 개성적이어서 아주 오랜만에 밤잠도 잊고 읽었다. 소설의 배경은 노예해방 이전 미국 남부의 어느 농장이다. 제목이기도 한 '키친 하우스'는 백인 농장주 가족이 사는 '빅 하우스'에 딸린 흑인 노예들의 숙소를 일컫는다. 키친 하우스에는 백인 농장주와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여인 '벨'과 아일랜드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과 헤어지고 기억마저 잃은 채 끌려온 백인 소녀 '라비니아', 그리고 인자한 '파파'와 너그러운 '마마 마에'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 끔찍한 일이 끊이지 않는 빅 하우스와 달리 키친 하우스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를 아끼며 화목하게 지낸다. 비록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언제 깨질지 모르는 행복을 붙잡고 있는 기분으로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사소한 행복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콩 한 쪽이라도 서로 나누려고 노력한다. 



키친 하우스의 정경이 따뜻하고 행복하게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바깥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들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의 중심 인물인 벨과 라비니아는 태생부터도 기구하지만 그들 앞에 닥친 인생은 더욱 가혹했다. 벨은 아버지를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도 모자라 아버지와의 관계를 오해받아 억울한 일을 겪기도 했고, 다른 이들의 계략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내고 아이마저 잃었다. 라비니아의 삶은 더욱 가엾다. 백인이면서 같은 백인의 노예가 된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농락당하고 배신당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시련 앞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고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며 소녀에서 여인으로, 어머니로 성장하고 성숙했다. 특히 라비니아는 백인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흑인들과 살면서 흑인에 대한 편견 없이, 백지 상태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배운 지혜로 온갖 역경을 헤쳐나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였던 그녀가 당찬 여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대견하고 감동적이었다.


 

이러한 재미와 감동 때문에 흑인문학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흑인문학이 역사문학이나 여성문학 같은 다른 장르들과 마찬가지로 전인류의 보편적인 감성과 현대인들이 잊기 쉬운 정서를 환기시켜주며 오래오래 사랑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비니아." 파파가 닭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닭들을 봐. 어떤 닭들은 갈색이고 어떤 닭들은 하얀색이고 또 검은색도 있어. 저 닭들이 병아리였을 때 어미 닭과 아빠 닭이 그런 걸 신경 썼을 것 같니?" 나는 파파 조지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고, 파파는 그 커다란 손을 내 머리에 얹었다. "내가 딸 하나를 더 얻은 것 같구나." 파파는 이렇게 말하고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이 이름은 아비니아고 말이야. 정말 굉장한 일이지!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야겠다.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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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찐 사람은 빚을 지는가 - 빚, 비만, 음주, 도박으로 살펴본 자멸하는 선택의 수수께끼
이케다 신스케 지음, 김윤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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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방학숙제를 내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에는 방학숙제로 탐구생활이라는 문제집 비슷한 책을 풀고 곤충채집, 만들기, 일기쓰기 등을 해야했다. 학생들 중에는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숙제를 일찌감치 끝내놓고 신나게 노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방학 내내 놀다가 개학 전날이 되어서야 울면서 밀린 숙제를 하는 아이가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전자였는데, 지금도 그 성격이 변하지 않아서 할일을 미루거나 계획을 못이루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시험에 불합격한다거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서 못하는 일은 있지만, 운동이라든가 일정관리 같은 작은 일은 대개 마음먹은대로 해내는 편이다. 


나와 달리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제목은 <왜 살찐 사람은 빚을 지는가>. 저자 이케다 신스케 오사카대 교수는 일본 행동경제학회 회장을 지내고 있는 명실상부 행동경제학 분야의 일본 최고전문가이다. 저자는 책에서 행동경제학에 입각해 사람들이 빚, 비만, 음주, 도박 등의 문제를 겪는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빚도 없고, 비만도 아니고, 술도 안 마시고, 도박도 안 하지만, 이런 큰 문제말고도 밀린 일을 언제 할지, 운동을 언제 할지, 공과금을 언제 낼지 등 일상적인 고민은 비일비재하게 겪는 편이고, 이런 일까지도 행동경제학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해서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의 내면에는 장래의 일을 중시하는 자아(천사)와 오직 당장의 이익에 솔깃한 자아(악마)가 있다. 천사는 낮은 시간 할인율에 의해 멋지게 장기적인 활동 계획(다이어트, 시험공부, 퇴직 후를 대비한 저축)을 세우지만, 그 실행 여부는 그때그때마다 조급한 악마의 손에 맡겨진다. 따라서 조급한 실행자는 모처럼 세운 장기 계획을 수포로 만들고 단기적인 이익에 근거한 방종 또는 건강을 해치는 행동을 한다. (p.43)


저자는 사람들이 어떤 행동에 따르는 이익과 비용을 정확히 알면서도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시간 할인율'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시간 할인율 개념은 보통 임기 제한이 있는 정치인들이 장기적 이익이 큰 정책대신 단기적 이익이 큰 정책을 선호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쓰이는데, 저자는 정치인뿐 아니라 개인도 시간 할인율로 인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운동을 하면 장기적으로 살도 빠지고 몸도 건강해진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운동을 안하고 쉬거나 노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운동을 안한다. 또한 금연을 하면 장기적으로 건강에도 좋고 돈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단기적으로는 주머니에 있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것이 훨씬 좋기 때문에 금연을 못한다. 이밖에도 비슷한 예가 참 많다.


방학 숙제를 언제 할까, 다이어트를 언제 시작할까, 운전면허 변경 절차를 언제 밟을까, 싫어하는 음식을 언제 먹을까...... 어떤 의사 결정이든 장래의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은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고,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그 폐해를 다소나마 회피할 수 있다. (p.145)

곧바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크고, 이익의 실현이 늦어지는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유익한 일이라 하더라도 미룬다. 일의 선택에 관해서는 '청소'보다 장기적으로 더욱 큰 이익을 가져올 '중요한 리포트'가 선택되는 한편, 그 리포트를 쓰는 시기에 관해 당장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큰 경우에는 그 시기를 미루는 상황이 생긴다. (p.161)


그렇다면 이러한 잘못된 선택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을 자꾸 미루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나중이 되면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과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집안이 어질러져 있을 때 지금 치우지 않아도 '미래의 나'가 치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청소를 미룬다. 그러나 나는 나다. '지금의 나'가 하지 않는 일을 '미래의 나'라고 할 리가 없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 좋다. 할 일을 너무 많이 만들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할 일이 청소밖에 없을 때에 비해 청소, 시험 공부, 쇼핑, 모임 등 할 일이 여러가지일 때 사람들은 청소를 미루는 경향이 있다. 해야할 일이 생기면 바로바로 '해치워서' 할 일이 산더미처럼 불어나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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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인 Lean In - 200만이 열광한 TED강연! 페이스북 성공 아이콘의 특별한 조언
셰릴 샌드버그 지음, 안기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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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인 집안에서 자란 우리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들이기를 바랐다. 내가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둘째라도 꼭 아들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둘째마저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실망했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 후로는 나와 동생이 딸이라서 아쉬웠다는 내색을 결코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부모님이 실망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동생이 딸이라서 원망을 들을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살면서 남자이길 바란 적은 훨씬 많다. 여자라서 반장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똑똑한 남자는 좋지만 똑똑한 여자는 재수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여자는 혼자 여행을 하면 안되고, 연애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등등. 한때는 내가 여자라는 것이 너무 싫어서 남자를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대를 다니고 여성학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여자로 태어나서 행복해요'까지는 아니지만 여자라서 좋은 점이 적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남자에게는 없는 여성만의 장점이나 특기도 깨달았다. 또한 남자라고 해서 세상의 특권을 다 누리는 게 아니며 그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연애를 한 덕이 크지 않나 싶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이며 <포춘>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셰릴 샌드버그의 책 <린 인>을 읽었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다른 책(어떻게 나를 최고로 만드는가)에서 먼저 접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졸업후 세계은행에 입사, 인도에서 일했고, 은사인 래리 서머스의 조언을 받아 하버드 MBA에 입학, 세계적인 기업 맥킨지와 정부 등에서 일했으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글에 입사, 현재는 페이스북의 COO로 일하고 있는, 일하는 여성의 성공 사례로서 소개되어 있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언젠가 셰릴 샌드버그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그녀의 자서전 <린 인>을 통해 그녀 자신의 이야기와 사회에 대한 생각, 앞으로의 계획 등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폴린과 앤더슨은 실험 대상 학생의 절반에게 하이디의 사례를 읽는 과제를 내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같은 사례를 제시하되, 주인공의 이름만 '하이디'에서 남성 이름인 '하워드'로 바꾸었다. (중략) 학생들은 하워드를 인간적으로 좀 더 매력적인 동료로 보는 반면 하이디는 이기적이고 "고용하거나 그 밑에서 일하고 싶은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성을 제외하고 다른 조건이 모두 같은데도 하이디와 하워드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인상은 엄청나게 달랐다. 이 실험은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 연구 결과, 즉 '남성에게는 성공과 호감도가 긍정적 이미지로 연결되지만 여성에게는 부정적 이미지로 연결된다'를 뒷받침한다. 성공한 남성은 남녀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성공한 여성을 향한 호감도는 남녀 구별 없이 떨어진다. (p.67)



페이스북의 최고 임원이자 성공한 기업인인 그녀가 책을 쓴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경영, 마케팅에 관한 책을 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그녀는 여성에 관한 책을 썼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 이미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여성'이라는 족쇄가 따라다니는 현실을 자각했다. 발표를 하면 선생님과 친구들은 '나댄다'고 했고, 공부를 잘하면 '여자로서 매력이 없다'고 했다. 저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그 때쯤이면 여성이 일을 하고 리더로 뽑히는 일이 별스럽지 않은 세상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CEO 가운데 여성은 4%에 불과하며 중역은 14%, 이사직은 17%에 그쳤다. 전 세계 195개 국가 가운데 여성이 수장인 나라는 (대한민국을 포함해) 17개국뿐이며, 여성 국회의원은 전 세계 국회의원의 20%에 불과하다. 



페미니즘 운동 이전에는 여성의 사회 참여가 적은 이유가 단순히 '유리 천장' 같은 사회적 차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이 오래 진행된 지금은 여성들 스스로가 사회 참여를 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젊은 여성들은 어머니 세대가 일과 가사를 양립하면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목도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일을 포기하고 육아와 가사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의 사회 참여가 적은 것은 여성의 탓이라기보다 사회적 차별이나 장애물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또한 반드시 직업적 성공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직업적 성공이라는 것을 꼭 대기업의 임원직이 되는 것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또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남성들의 룰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며, 억지로 '남성'이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요즘은 전통적으로 '남성적'이라고 여겨졌던 가치들을 지양하는 추세이고, 일이나 사회적 책무에 몰두하다가 가정에서 소외당하는 남성들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일하고자 마음먹은 여성들에게는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애초에 그런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여성들에게 꿈을 꿀 기회는 주어야 한다. 아직도 전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은 사회 참여는커녕 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고, 전통이나 관습의 이름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여성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던진다. 첫째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 남자들 대부분이 자신을 미남이라고 생각하고 여자들 대부분이 자신을 추녀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듯이, 여자들은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며 자신감을 잃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약간 높게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일 수 있다. 둘째는 완벽추구 성향을 버리라는 것. 단적인 예로, 입사지원을 할 때 남자는 지원자격의 60%만 해당해도 지원을 하는 반면, 여자는 100% 해당되지 않으면 포기한다고 한다. 성공의 비밀은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배우는 능력'이므로, 능력이 없다고, 부족하다고 지레 겁먹지 말고 일단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도전해보는 것이 좋다. 셋째는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부담을 버리라는 것. 남자는 아이가 생겨도 육아와 가사 부담을 느끼지 않지만, 여자는 결혼을 하기 훨씬 전부터 - 심지어는 어릴 때부터(내가 그랬다) -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고민한다. 육아 문제는 여자 혼자 해결하기가 참 어렵다. 남편을 비롯한 가족의 지원 및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저자는 기업의 최고임원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임신 여성 전용 주차공간을 마련하고 출산 휴가를 지급하는 등 좋은 정책을 많이 마련했다고 한다. 이렇게 여성 개개인이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다른 여성들이 편안하게 일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책을 쓰기 전부터 저자는 강연이나 매체를 통해 여성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발언을 자주 했는데, 그 때마다 '똑똑한 척한다', '악마다' 등등의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왜 남성이 남성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발언을 하면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까? 정말 이상한 일이다. 오늘 아침에도 샌드버그의 성공은 그녀가 의사 아버지를 두었고,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하버드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글을 보았다. 물론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저자는 세계 상위 1%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고, 그녀가 맞닥뜨렸던 시련이라는 것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는 여성들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다. 그러나 저자와 하버드대 동기인 여성들 중에 저자처럼 일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같은 기회가 주어져도 누구는 그 기회를 이용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은 것이다. 저자가 남들이 가질 수 없었던 행운을 얻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슷한 행운을 가지고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녀는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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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슈미트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새로운 디지털 시대 - Google 회장 에릭 슈미트의 압도적인 통찰과 예측, 개정증보판
에릭 슈미트 & 제러드 코언 지음, 이진원 옮김 / 알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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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회과학자들도 이제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상호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미래의 정치, 사회 변화와 역동성에 대한 예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국가의 정치적 아젠다, 혁명, 테러리즘 그리고 국가 간의 갈등 및 전쟁과 같은 권력투쟁 현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 관계 속에서 증폭되고, 소멸되고, 다시 생성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가 쓴 <새로운 디지털 시대>가 국내에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기술, 기계라면 치를 떠는 전형적인 문과생인데다가, 스마트폰도 얼마 전에 겨우 구입했을만큼 유행에 민감한 편이 아니라서 '디지털 시대', '디지털 혁명' 같은 말을 들어도 감흥이 일지 않는 탓이다. 그런데 서문에서 최연혁 교수가 쓴 추천사를 읽고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고 스마트 기기의 보급율이 높아져도 디지털 기술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은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고 있으며, 실제로 지구촌 곳곳에서 변화가 일으켰거나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공학적 프레임이 아닌 사회과학적 프레임이 필요한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사실 기업의 CEO가 사회과학에 대한 책을 쓰는 일은 극히 드물다. 게다가 에릭 슈미트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뼛속부터' 공학도인 데다가, 그가 이끌고 있는 구글은 세계적인 디지털 기업이다. 그런 저자가 인권과 국가, 전쟁, 테러리즘 등 사회과학적인 문제에 대해 발언을 했으며, 자신에게 훨씬 익숙할 공학적인 언어를 버리고 누구나 읽기 쉬운 언어로 디지털 기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책을 썼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게다가 기업 CEO들의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예찬적인 글이나 자신의 회사를 홍보하는 글도 거의 없다!) 지난 달에 읽은 <디지털 시대의 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업과 공학자들의 관심이 점점 사회과학, 인문학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세계 무대에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전파가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국가와 기관에 쏠린 권력을 재분배하고 개인에게 이전하는 것을 돕는 방식일 것이다. 새로운 정보기술은 역사적으로도 종종 왕이건 교회건 엘리트건 상관없이 전통적인 실세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국민에게 돌려주곤 했다. 따라서 정보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채널로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참여하고,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힘을 갖고, 더 강력한 기관과 함께 우리가 삶의 경로를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p.14)  



디지털 기술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여러가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변화다. 역사적으로 종이의 발명, 인쇄기술의 발달, 라디오와 TV 등 미디어 기기의 발전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엄청난 사회적 변동을 야기했듯이, 디지털 기술 또한 의사소통 방식을 보다 손쉽고 빠르게 바꿈으로써 권력을 재분배하고 개인의 참여를 촉구하는 등 사회적 변화를 촉발할 것이다. 가령 과거에는 유권자 수가 많고 영토가 넓다는 한계 때문에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민들의 의사가 행정에 반영되고 이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시민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트위터를 통해 민원사항을 바로 접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고라나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네티즌이 직접 이슈를 제기하고 오피니언의 향방을 바꾸는 일도 왕왕 있다. 저자는 이러한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이 미래에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며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본다.



다른 국가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국가들,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교수들, 국내에서 활동하는 NGO와 기업들은 각자 현실세계 및 가상세계에 대해 개별적인 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이때 어느 한 편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중 무엇이 양쪽 세상에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고 현실세계에서의 외교 및 가상세계에서의 외교와 국내 정책들 사이에 존재할지 모르는 모순을 해결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p.201)



이외에도 저자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국가, 테러리즘, 혁명, 개인의 사생활 보호 등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있게 분석했다. 그렇지만 기술이 인간을 웃도는 역할을 한다든가, 기술이 모든 일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기술은 권력을 감시하고 검증하며 혁명을 촉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갈등이나 분쟁 등을 야기하여 혼란을 일으키는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 문제다. 이미 여러 번 반복된 바 있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포함하여, 블로그나 SNS가 권력기관의 검열 대상이 된다든지, 감시 도구로 변질되는 예가 적지 않다. 하루에도 몇번씩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컴퓨터가 내 생활을 감시하고 옥죄는 '빅 브라더'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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