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매 - 머리를 쓰지 않는 똑똑한 바보들
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김세나 옮김 / 북로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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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라디오가 고장났다. 아침저녁으로 영어 공부를 위해 듣던 EBS라디오와 AFKN 방송도 못 듣고, 낮에는 배경음악 삼아 듣던 FM방송도 못들으니 그야말로 고역이다. MP3 플레이어는 어머니께 빌려드렸고, 그 흔한 스마트폰도 없고, 하루종일 컴퓨터를 켜놓을 수도 없는 노릇. 갑작스런 적막도 당황스럽지만, 기계 하나 때문에 생활이 전에 비해 확연히 단조로워졌다는 사실이 황당하다.


라디오 하나 없다고 이런데, 컴퓨터나 휴대폰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고장난다면 얼마나 힘들까. <디지털 치매>를 읽으면서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치매>의 저자 만프레드 슈피처는 현재 독일 울름에 있는 대학정신병원의 병원장 및 신경학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뇌 연구가이자 <정신과 뇌>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다. 책에서 저자는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 기기 등이 보급되면서 인간의 지능과 기억력이 감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현상을 '디지털 치매'라고 일컬었다. 놀랍게도 '디지털 치매'라는 용어는 저자가 처음 제시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원조다. "세계적으로 정보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의사들은 이미 5년 전에 기억력 장애, 주의력 결핍 장애는 물론, 감수성 약화를 겪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러한 질병 양상을 '디지털 치매'라고 불렀다." (p.7) 세계적인 정보기술 강국인 우리나라가 디지털 치매로도 '강국'이라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


디지털 치매의 한 예로 저자는 직접 겪은 사례를 소개한다. 학자로서 저자는 어린 학생들이나 대학생들에게 이메일을 자주 받는데, 그 중에는 "뇌는 어떻게 기능합니까?" 와 같은, 마치 구글 검색을 이용하듯이 저자의 답변을 요구하는 내용의 글이 상당수 있었다. 이러한 예를 통해 저자는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배움이란 무엇인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내용이란 대체 무엇인지 추궁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산 정상에 올려놔주는 것으로 등산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학생이 전문가의 생각을 묻는 것만으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지식의 본질을 자기 것으로 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의문을 제기하면서 파고들고, 퍼즐의 작은 조각들을 의미 있는 하나로 완성해나가는 것,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접 해봐야만 한다." (p.21)


저자는 책에서 단순히 디지털 기기가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비롯하여 인류의 학습, 커뮤니케이션 도구 전반에 관한 고찰을 통해 주장을 뒷받침한다. 의학적, 과학적 자료도 풍부하게 첨부하여 신빙성을 높였다. 문제는 책이나 학술지에서나 이런 주장이 제기되지, 사람들이 자주 보는 TV나 인터넷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를 판매하는 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는 방송사, 인터넷 기업이 그러한 주장을 할 리가 없다. 게다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고 멍청해질수록 기업가와 정치가는 유리한 법. "이들(디지털 미디어)의 약속은 예전 기계들과 동일하고, 이에 대한 자료들은 끔찍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도 시장은 디지털 미디어를 갈수록 더욱 찾고 있다. 만약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면, 왜 정치인들과 교육학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가?" (p.103)


"학교에서 디지털 미디어 사용률이 가장 높은 국가인 한국의 경우, 2010년에 이미 학생들의 12퍼센트가 인터넷에 중독되었다. 한국에서 '디지털 치매'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만한 값을 이미 치른 것이다." 디지털 기기가 지능과 기억력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섬뜩한 기분이 든다. 요즘은 카페, 레스토랑 등 어딜 가도 사람들이 스마트 기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심지어는 걸어다니면서, 운전하면서도 본다. 그들 모두 직장이나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을 터. 그런 사람들의 뇌의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찔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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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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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디어 시대, 디지털 시대에 기술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상력의 세계를 표현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힘, 책의 힘을 모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그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미디어와 디지털이 사실은 문학에서, 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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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의 눈물 - 소금제국의 군왕
케네디 원 지음, 서정아 옮김 / 프롬나드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새우가 들어간 음식을 자주 본다. 분식집이나 일식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우 튀김, 레스토랑이나 뷔페에서 맛볼 수 있는 새우 샐러드, 새우 샌드위치, 배달 음식으로 자주 먹을 수 있는 새우(쉬림프) 피자, 새우 치킨 등등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새우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새우가 많이 잡히고 값이 싸져서 많이 먹게 된 줄 알았는데 대부분이 양식 새우라고 한다. 그것도 개도국 해안가에 사는 맹그로브 늪지대 주민들의 삶을 파괴한 대가로 얻은 '피와 눈물의 새우'라고......


<맹그로브의 눈물>은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맹그로브 늪지대가 새우 양식업자들에 의해 파괴되는 현상을 취재한 르포 형식의 책이다. 저자 케네디 원은 뉴질랜드 출신의 작가, 편집자이자 사진작가로, <뉴질랜드 지오그래픽>의 공동 창립자이자 초대 편집장을 지냈으며, 2004년부터는 지구촌 곳곳의 맹그로브 늪지대를 중점적으로 촬영하며 그곳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맹그로브 늪지대에는 수많은 바다 생명체가 서식하고 있다. 늪지대 주변의 어민들은 몇천 년에 걸쳐 조상 대대로 그곳에서 어업을 하며 생활 터전을 일구어왔다. 그 중에서도 게와 새조개 어업이 유명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조차도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선진국의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새우 양식업자들 때문이다. 현재 세계 어획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수산양식업 중에서도 새우 양식업은 선진국의 수요가 높아 각광받고 있는 산업인데, 이들 양식업장이 땅값이 싸고 바다에 인접한 맹그로브 늪지대를 따라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어업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민들이 주로 잡는 게와 새조개의 먹이가 새우이다보니 새우 양식업자들의 눈에 어민들이 좋게 보일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충돌이 빈번하고 심지어는 어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해 위협을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개발도상국들의 맹그로브 공동체에서 게잡이나 새조개잡이 어부, 숯꾼, 손낚시 어부 들은 새우 양식업자들에게 두들겨 맞거나 총에 맞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당하기도 한다. (p.10)"


경제학을 전공했고, 그 중에서도 무역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지만, 이론적으로 올바른 것과 현실적으로 올바른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는 것 같다. 이론적으로는 대규모 자본을 가진 양식업자가 효율적으로 자본을 활용해서 업장을 늘리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게 맞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환경 오염, 인체의 건강 위협, 생태계 파괴, 공동체 파괴 등 경제적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들을 너무 많이 잃는 것 같다. 게다가 각 나라에서 똑똑한 사람만 모여있는 정부와 국제기구가 이 같은 간극을 무시하고 기업의 편만 들어준다는 게 부당하고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주장하는 효율성이라는 것도 장기적으로 보면 이치에 안 맞는 것이고...... 앞으로 새우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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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2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2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수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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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를 쓴 작가 이수진은 1987년생으로 나보다 어리다. 2009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무등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이제 5년차 작가가 되었다는 그녀. 그렇지만 이 소설을 그저 '나보다 어린 작가가 쓴 소설'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소설이 너무 매력적이고 깊이가 있다.


이야기는 한 남자가 헤어지자는 문자메시지 하나 달랑 남기고 떠나간 여자를 찾기 위해 여자가 가입되어 있던 고양이 관련 커뮤니티의 정모(정기모임)에 참석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일주일 하고도 사흘, 너는 완벽한 해녀처럼 잠수를 타고 있었다.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르바이트까지 그만두었고 네 집 초인종이 묵묵부답인 것만큼이나 너의 페이스북과 싸이월드, 트위터와 블로그는 정전상태였다." (p.31) 기존의 한국문학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동시대적이고 젊은 감각의 소재들 때문에 처음엔 '헐, 대박!'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민망하고 어색했지만, 작가의 눈에 비친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점점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저 스쳐보내는 일상이 작가의 눈에는 작품으로 빚어낼만한 소재가 된다는 것은 언제봐도 멋진 일이다.


자신을 찬 여자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똘똘뭉쳐 있던 남자는 정신을 차려보니 사회가 순식간에 고양이 애호가 위주로 바뀐 것을 알아챈다. 고양이 애호가가 사회 주류가 된다는 것만 해도 신선한데, 공중파 방송에서 아홉시 뉴스 대신 고양이 쇼를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마저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여부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등등의 설정이 이어지니 지금 내가 문학 소설을 읽는 것인지, 판타지나 장르 소설을 읽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뭐 요즘은 퓨전이 대세지만.) 그렇지만 이 소설이 그저 젊은 작가의 통통 튀는 상상력이 발휘된, 유쾌하고 재미있는 소설인 것만은 아니다. 고양이 대신 돈이나 명예, 명품이나 재벌 같은 단어를 넣으면 현재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가, 주류 또는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고, 심하게는 죽음의 위협까지 당하는 일이 지금도 빈번하다. 작가의 진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난 후로부터는 이 소설이 전혀 다르게 읽혔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부분의 '나'가 '너'에게 하는 독백은 그저 '너'를 향한 것이 아니라 '너'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취향에 대한 폭력성과 배타성을 일갈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네 취향은 절대로 내 취향이 될 수 없었다고. 너는 취향을 추구할 순 있었지만 내게 강요할 순 없었다고. 너는 매번 내 취향을 비난했지만 나도 네 취향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고. 너는 날 창피해했지만 나는 오히려 네가 창피했다고." (pp.345-6)
  

한국 사회는 '취향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취향에 대해 배타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가진 이가 많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혈연, 학교, 군대, 직장 등 개인의 취향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의 힘이 강한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집단과 다수가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소수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문화를 당연시하는 파시즘적 경향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틀림이 아닌 다름이다', '이해가 아닌 인정이다' 등등 취향의 차이,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들이자는 인식이 퍼지고 있지만, 이런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자체가 우리 사회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고양이를 내세운 지독한 풍자 소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읽을 수 없는, 가볍고도 묵직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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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 뚜벅이변호사 조우성이 전하는 뜨겁고 가슴 저린 인생 드라마
조우성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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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 드라마 중에서도 <앨리 맥빌>, <보스턴 리걸> 같은 법정물에 열광하던 시기가 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샤프하고 세련된 모습의 변호사들이 명석한 두뇌와 화려한 언변으로 법정을 압도하며 변호를 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드라마라도 통쾌하고 온몸이 짜릿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준비한 변론으로 승소한 뒤 안도하는 의뢰인의 표정을 볼 때마다 의사만 사람 목숨을 살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칼을 들지 않고도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으니 변호사란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 게다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높은 수입까지 보장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직업인 셈이다.


하지만 변호사의 현실은 드라마 속 모습처럼 멋지기만 한 것은 아닌가 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로스쿨 설립으로 인해 변호사의 공급량이 많아져서 전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고수입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에서 비롯되는 고충은 보통 사람들의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 절친한 사람들이 사소한 오해나 욕심 때문에 원수가 되고, 서로를 향해 욕을 퍼붓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일상이다. 분노하는 사람들 속에서 변호사는 오롯이 냉정을 지키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열심히 변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소를 하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 때의 좌절감과 실망감. 이는 힘든 수술 끝에 환자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의사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의 저자인 변호사 조우성 씨의 이력만 보면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변호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7년부터 대한민국 1세대 로펌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7년간 민사총괄부 변호사로 근무한 그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분쟁조정위원으로 활동했고, 기업 및 공기업 대상 법률 강의, 경쟁력 강화 강의 등을 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이력이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그가 마주하는 현실은 드라마에서처럼 멋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저자가 17년 동안 법정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겪은 일화를 그린,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진짜 법정물'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남성이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 연루되고, 재산 때문에 가족들이 서로를 고소하고, 착한 청년이 홧김에 집주인을 살해하는 등 기막힌 사건들이 이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사실 잘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더러 벌어지기도 하는 일들이다. 겉보기엔 모두가 '법 없이도 살 사람'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욕심이나 잘못 때문에 해소점을 찾지 못할 때는 최종적으로 '법대로' 하는 것이 최선인 법. 이 '최후의 현장'에서 변호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명석한 두뇌로 상대방의 허점을 찾아내는 것도 좋다.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도 좋다. 하지만 변호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작은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자세, 즉 '경청'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법정에는 '승소를 해도 치유를 못 받는 사람이 있고, 패소를 해도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변호하고 분쟁을 처리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정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을 해야 한다. '분노를 품고 소송의 문턱까지 찾아온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용서'를 싹 틔우'는 일. 그것이 변호사가 해야하는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언뜻 '정말 그럴까?' 싶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그렇다!'고 느꼈다. 저자가 경험한 사건 중에는 극악무도한 범죄 사건도 있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분쟁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언제나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주의 깊게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면 저절로 의뢰인의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도 찾을 수 있었다. 분노가 용서로 바뀌고, 분쟁이 치유의 과정으로 바뀌는 기적! 이것이 변호사가 하는 일,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은 가시고, 인간이, 인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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