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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수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를 쓴 작가 이수진은 1987년생으로 나보다 어리다. 2009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무등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이제 5년차 작가가 되었다는 그녀. 그렇지만 이 소설을 그저 '나보다 어린 작가가 쓴 소설'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소설이 너무 매력적이고 깊이가 있다.
이야기는 한 남자가 헤어지자는 문자메시지 하나 달랑 남기고 떠나간 여자를 찾기 위해 여자가 가입되어 있던 고양이 관련 커뮤니티의 정모(정기모임)에 참석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일주일 하고도 사흘, 너는 완벽한 해녀처럼 잠수를 타고 있었다.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르바이트까지 그만두었고 네 집 초인종이 묵묵부답인 것만큼이나 너의 페이스북과 싸이월드, 트위터와 블로그는 정전상태였다." (p.31) 기존의 한국문학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동시대적이고 젊은 감각의 소재들 때문에 처음엔 '헐, 대박!'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민망하고 어색했지만, 작가의 눈에 비친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점점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저 스쳐보내는 일상이 작가의 눈에는 작품으로 빚어낼만한 소재가 된다는 것은 언제봐도 멋진 일이다.
자신을 찬 여자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똘똘뭉쳐 있던 남자는 정신을 차려보니 사회가 순식간에 고양이 애호가 위주로 바뀐 것을 알아챈다. 고양이 애호가가 사회 주류가 된다는 것만 해도 신선한데, 공중파 방송에서 아홉시 뉴스 대신 고양이 쇼를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마저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여부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등등의 설정이 이어지니 지금 내가 문학 소설을 읽는 것인지, 판타지나 장르 소설을 읽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뭐 요즘은 퓨전이 대세지만.) 그렇지만 이 소설이 그저 젊은 작가의 통통 튀는 상상력이 발휘된, 유쾌하고 재미있는 소설인 것만은 아니다. 고양이 대신 돈이나 명예, 명품이나 재벌 같은 단어를 넣으면 현재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가, 주류 또는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고, 심하게는 죽음의 위협까지 당하는 일이 지금도 빈번하다. 작가의 진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난 후로부터는 이 소설이 전혀 다르게 읽혔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부분의 '나'가 '너'에게 하는 독백은 그저 '너'를 향한 것이 아니라 '너'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취향에 대한 폭력성과 배타성을 일갈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네 취향은 절대로 내 취향이 될 수 없었다고. 너는 취향을 추구할 순 있었지만 내게 강요할 순 없었다고. 너는 매번 내 취향을 비난했지만 나도 네 취향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고. 너는 날 창피해했지만 나는 오히려 네가 창피했다고." (pp.345-6)
한국 사회는 '취향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취향에 대해 배타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가진 이가 많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혈연, 학교, 군대, 직장 등 개인의 취향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의 힘이 강한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집단과 다수가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소수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문화를 당연시하는 파시즘적 경향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틀림이 아닌 다름이다', '이해가 아닌 인정이다' 등등 취향의 차이,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들이자는 인식이 퍼지고 있지만, 이런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자체가 우리 사회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고양이를 내세운 지독한 풍자 소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읽을 수 없는, 가볍고도 묵직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