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 뚜벅이변호사 조우성이 전하는 뜨겁고 가슴 저린 인생 드라마
조우성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미국 드라마 중에서도 <앨리 맥빌>, <보스턴 리걸> 같은 법정물에 열광하던 시기가 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샤프하고 세련된 모습의 변호사들이 명석한 두뇌와 화려한 언변으로 법정을 압도하며 변호를 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드라마라도 통쾌하고 온몸이 짜릿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준비한 변론으로 승소한 뒤 안도하는 의뢰인의 표정을 볼 때마다 의사만 사람 목숨을 살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칼을 들지 않고도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으니 변호사란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 게다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높은 수입까지 보장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직업인 셈이다.


하지만 변호사의 현실은 드라마 속 모습처럼 멋지기만 한 것은 아닌가 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로스쿨 설립으로 인해 변호사의 공급량이 많아져서 전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고수입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에서 비롯되는 고충은 보통 사람들의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 절친한 사람들이 사소한 오해나 욕심 때문에 원수가 되고, 서로를 향해 욕을 퍼붓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일상이다. 분노하는 사람들 속에서 변호사는 오롯이 냉정을 지키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열심히 변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소를 하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 때의 좌절감과 실망감. 이는 힘든 수술 끝에 환자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의사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의 저자인 변호사 조우성 씨의 이력만 보면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변호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7년부터 대한민국 1세대 로펌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7년간 민사총괄부 변호사로 근무한 그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분쟁조정위원으로 활동했고, 기업 및 공기업 대상 법률 강의, 경쟁력 강화 강의 등을 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이력이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그가 마주하는 현실은 드라마에서처럼 멋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저자가 17년 동안 법정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겪은 일화를 그린,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진짜 법정물'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남성이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 연루되고, 재산 때문에 가족들이 서로를 고소하고, 착한 청년이 홧김에 집주인을 살해하는 등 기막힌 사건들이 이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사실 잘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더러 벌어지기도 하는 일들이다. 겉보기엔 모두가 '법 없이도 살 사람'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욕심이나 잘못 때문에 해소점을 찾지 못할 때는 최종적으로 '법대로' 하는 것이 최선인 법. 이 '최후의 현장'에서 변호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명석한 두뇌로 상대방의 허점을 찾아내는 것도 좋다.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도 좋다. 하지만 변호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작은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자세, 즉 '경청'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법정에는 '승소를 해도 치유를 못 받는 사람이 있고, 패소를 해도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변호하고 분쟁을 처리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정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을 해야 한다. '분노를 품고 소송의 문턱까지 찾아온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용서'를 싹 틔우'는 일. 그것이 변호사가 해야하는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언뜻 '정말 그럴까?' 싶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그렇다!'고 느꼈다. 저자가 경험한 사건 중에는 극악무도한 범죄 사건도 있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분쟁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언제나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주의 깊게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면 저절로 의뢰인의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도 찾을 수 있었다. 분노가 용서로 바뀌고, 분쟁이 치유의 과정으로 바뀌는 기적! 이것이 변호사가 하는 일,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은 가시고, 인간이, 인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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