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하라 마리의 작품을 최근에 출간된 두 권을 제외하고 모두 읽거나 소장하고 있는 팬입니다. (이번 기회에 두 권을 장만해야겠네요 ^^) 요네하라 마리의 책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프라하의 소녀시대>입니다. 그녀가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 재학 시절 친하게 지낸 세 명의 친구에 얽힌 일화와 몇십 년이 흐른 후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책인데요, 그 중에서도 저는 루마니아 출신의 거짓말쟁이 아냐를 만난 뒤 요네하라 마리가 느낀 복잡한 감정을 서술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냐는 지금 10퍼센트의 루마니아인이라고 했지.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나라를 오랫동안 갖지 못한 유대 민족의 역사가 겹쳐 보이는 느낌이 들고, 네 말투는 차우셰스쿠와 똑같아` 라는 말이 목에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나는 숨을 크게 한번 쉰 다음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루마니아인들의 참상에 마음 아프지 않아?˝ ˝그야 마음 아프지. 아프리카에도 아시아에도 남미에도 이보다 훨씬 심한 곳이 많아.˝ ˝하지만 루마니아는 네가 자란 곳이잖아.˝ ˝그런 좁은 민족주의가 세계를 불행하게 하잖아.˝ (<프라하의 소녀시대> p.169) 차우셰스쿠 정권의 수하에 있던 아버지를 둔 덕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아냐가 자기 가족과 정권의 과오를 뒤돌아보고 반성하기는커녕 `좁은 민족주의`라며 뻔뻔스럽게 일축하는 모습에 마리 여사는 말을 잃었습니다. 평생을 개인과 국가, 이데올로기와 민족 같은 문제를 두고 고민했던 마리여사의 아픔이 드러나는 대목이라서 저까지 마음이 아리고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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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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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시절 즐겨 읽었던 기욤 뮈소. 그가 (좋은 의미로)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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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인문학 - 도시남녀의 괜찮은 삶을 위한 책 처방전
밥장 지음 / 앨리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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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절이고 어떤 술을 마시든 간에 <밤의 인문학> 이 한 권의 책이 있으면 긴긴 밤이 외롭거나 슬프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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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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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는 음악 마니아로 유명한 소설가 김중혁이 여러 매체에 쓴 음악에 대한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여러 매체'라고 해도, 언뜻 보기에는 작가가 올해 4월까지 씨네 21에 연재한 <최신가요인가요> 코너에 소개된 글이 많은 것 같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으면서 김중혁 작가의 팬이 된 후로 <최신가요인가요>도 매주... 는 아니고 생각날 때마다 찾아서 읽었는데 그 때 읽어서 눈에 익은 글이 많은 걸 보면 그렇다. 그렇다고 실망한 것은 결코 아니고, 연재가 끝나서 아쉬웠던 참인데 이렇게 책으로 소장할 수 있게 되어서 오히려 기쁠 따름이다.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모든 게 '노래'>라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책의 만듦새도 마음에 든다. 김중혁과 김연수, 이 두 작가의 산문집은 한번 읽고 끝내는것이 아니라 생각날 때마다 여러번 읽는데 이 책도 읽고 또 읽게 될 것 같다. 



책에는 공부하듯 음악을 듣느라 정작 공부는 멀리했던 학창시절과 PC통신 '음퀴방'에서 내로라하는 음악 마니아들과 자웅을 겨루었던 청년시절, 카페나 작업실에서 글을 쓰거나 공원에서 자전거를 탈 때, (집이 있는) 일산 방향으로 차를 달릴 때 등 일상 속에서 틈틈이 음악을 듣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음악과 함께해온 정경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에 맞춰 실려있다. 김중혁 작가와 나는 세대도 다르고(김중혁 작가는 1971년생, 나는 1986년생) 고향도 다르고(김중혁 작가는 경북 김천, 나는 서울) 살아온 이력도 다르지만,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경쟁하듯 음악을 들었던 일이라든가 워크맨(그렇다. 나도 워크맨 세대다!)과 CD플레이어(수지는 CD플레이어가 뭔지 모른다던데......), MP3 CDP, MP3 플레이어 등 음악 기기를 하나하나 장만하면서 즐거워했던 일, 길거리나 카페에서 문득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듣고 한동한 멍했던 일 등 음악에 얽힌 추억은 비슷비슷했다. 개별적인 체험은 다르지만 보편적인 정서는 공유할 수 있다고나 할까.



한 가지 아쉬운 건, 김중혁 작가를 그토록 좋아하건만, 아무래도 음악취향은 안 맞는 것 같다. 책에 나오는 뮤지션들의 음악을 거의 다 음원 사이트에서 찾아서 들어봤는데 (전부터 좋아했던) 롤러코스터와 (<최신가요인가요>에서도 강추한 바 있는) 가인 정도를 빼면 나와 영 맞지 않았다. 록과 힙합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디 음악의 벽을 좀처럼 못 넘겠다. 라디오를 즐겨 들어서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를 했거나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는 인디 뮤지션은 대부분 좋아하는데(루시드폴이라든가, 이아립이라든가, 가을방학이라든가 등등), 그들이 하는 인디 음악은 잘 듣게 되지 않는다. 한스럽다. 내가 인디음악에 조금 더 '빠삭'했더라면 이 책을 100퍼센트 음미하고 즐길 수 있었을텐데. 아이고 아이고... 한스러운 것 한 가지 더! 책에 보니 김중혁 작가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해서 찾아봤더니 2012년 봄에 출연했던데 방송 음원은 찾을 길을 모르겠다. 다시듣기, 팟빵 모두 찾아봤는데 일년치만 등록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것도 알았으면 그 때 들었을텐데. 아이고 아이고...... 어째 글을 다 쓰고나니 머릿속이 '노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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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인문학 - 도시남녀의 괜찮은 삶을 위한 책 처방전
밥장 지음 / 앨리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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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빨갛고 누가 하얗더라는 이야기 대신 맥주잔을 부딪치며 오손도손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글로 만나게 해주는 책과 인문의 바다에서 마음껏 허우적거리고 싶습니다." (p.11) 

 

"일하다 보면 직장 상사나 동료가 원수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참아낼 뿐이죠. (중략) 아무리 투사를 거두려고 한들 그 작자가 어른거리기만 해도 분노가 솟구친다면 마지막 방법을 써야 합니다. 비장의 무기인 다카하시 아유무의 <어드벤처 라이프>를 선물하시길 바랍니다. 선물하고 나면 다음 날 눈엣가시 같던 동료와 상사가 고맙다면서 스스로 사표를 던지고 떠날 겁니다." (pp.188-91) 

 

 

미술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0년간 대기업 회사원으로 살다가 서른다섯에 독학으로 화가가 된 사람이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 바로 '비정규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밥장이다. 나는 그가 지금보다 덜 유명할 때(라고 해도 네이버 메인에 자주 소개될 만큼 유명했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림, 그려 보아요>라는 책이 나왔을 때는 블로그 이벤트에 당첨되어 직접 그린 엽서를 선물받은 적도 있다(그 엽서는 지금 내 책상 앞을 예쁘게 장식하고 있다). 지금은 유명 브랜드와 협업을 할 만큼 이름이 알려져서 백화점 명품관과 면세점에서도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팬으로서 참 흐뭇하다.  

 

 

<밤의 인문학>은 밥장이 8년 넘게 드나든 신촌 소재의 단골 술집 '더 빠(the bar)'에서 매주 수요일밤 진행한 '수요밥장무대'를 글과 그림으로 옮긴 책이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읽기 시작했는데 가을 초입을 훨씬 지나고 나서야 이 책을 다 읽은 까닭은 워낙 주옥같은 문장이 많아서다(라고 말하면 변명이 되려나?). 저자가 인문 학자는커녕 인문학 전공도 아니고, 이야기 주제도 맥주, 사치품, 미식, 섹스, 쾌변(!!!) 등등 인문학과 거리가 멀어보여서, 제목만 그럴싸할뿐 신변잡기식의 에세이집이겠거니 생각했던 건 오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알랭 드 보통, 장 자크 상뻬와 데라야마 슈지, 위화와 앤서니 보댕을 엮어내는 솜씨라니! 심지어는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체험>과 김한민의 <카페 림보> 등과 엮기도 했다. 웬만한 독서량과 인문학적 내공, 통찰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고보니 내 책장에도 다카하시 아유무의 <어드벤처 라이프>가 있는데, 영 싫은 사람이 생기면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사직서 대신 이 책을 품고 다니는 직장인이라니!) 어느덧 시원한 맥주보다는 따끈하게 데운 소주를 찾고 싶어지는 계절이 왔지만, 어떤 계절이고 어떤 술을 마시든 간에 <밤의 인문학> 이 한 권의 책이 있으면 긴긴 밤이 외롭거나 슬프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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