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인문학 - 도시남녀의 괜찮은 삶을 위한 책 처방전
밥장 지음 / 앨리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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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빨갛고 누가 하얗더라는 이야기 대신 맥주잔을 부딪치며 오손도손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글로 만나게 해주는 책과 인문의 바다에서 마음껏 허우적거리고 싶습니다." (p.11) 

 

"일하다 보면 직장 상사나 동료가 원수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참아낼 뿐이죠. (중략) 아무리 투사를 거두려고 한들 그 작자가 어른거리기만 해도 분노가 솟구친다면 마지막 방법을 써야 합니다. 비장의 무기인 다카하시 아유무의 <어드벤처 라이프>를 선물하시길 바랍니다. 선물하고 나면 다음 날 눈엣가시 같던 동료와 상사가 고맙다면서 스스로 사표를 던지고 떠날 겁니다." (pp.188-91) 

 

 

미술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0년간 대기업 회사원으로 살다가 서른다섯에 독학으로 화가가 된 사람이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 바로 '비정규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밥장이다. 나는 그가 지금보다 덜 유명할 때(라고 해도 네이버 메인에 자주 소개될 만큼 유명했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림, 그려 보아요>라는 책이 나왔을 때는 블로그 이벤트에 당첨되어 직접 그린 엽서를 선물받은 적도 있다(그 엽서는 지금 내 책상 앞을 예쁘게 장식하고 있다). 지금은 유명 브랜드와 협업을 할 만큼 이름이 알려져서 백화점 명품관과 면세점에서도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팬으로서 참 흐뭇하다.  

 

 

<밤의 인문학>은 밥장이 8년 넘게 드나든 신촌 소재의 단골 술집 '더 빠(the bar)'에서 매주 수요일밤 진행한 '수요밥장무대'를 글과 그림으로 옮긴 책이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읽기 시작했는데 가을 초입을 훨씬 지나고 나서야 이 책을 다 읽은 까닭은 워낙 주옥같은 문장이 많아서다(라고 말하면 변명이 되려나?). 저자가 인문 학자는커녕 인문학 전공도 아니고, 이야기 주제도 맥주, 사치품, 미식, 섹스, 쾌변(!!!) 등등 인문학과 거리가 멀어보여서, 제목만 그럴싸할뿐 신변잡기식의 에세이집이겠거니 생각했던 건 오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알랭 드 보통, 장 자크 상뻬와 데라야마 슈지, 위화와 앤서니 보댕을 엮어내는 솜씨라니! 심지어는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체험>과 김한민의 <카페 림보> 등과 엮기도 했다. 웬만한 독서량과 인문학적 내공, 통찰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고보니 내 책장에도 다카하시 아유무의 <어드벤처 라이프>가 있는데, 영 싫은 사람이 생기면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사직서 대신 이 책을 품고 다니는 직장인이라니!) 어느덧 시원한 맥주보다는 따끈하게 데운 소주를 찾고 싶어지는 계절이 왔지만, 어떤 계절이고 어떤 술을 마시든 간에 <밤의 인문학> 이 한 권의 책이 있으면 긴긴 밤이 외롭거나 슬프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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