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하라 마리의 작품을 최근에 출간된 두 권을 제외하고 모두 읽거나 소장하고 있는 팬입니다.
(이번 기회에 두 권을 장만해야겠네요 ^^)
요네하라 마리의 책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프라하의 소녀시대>입니다.
그녀가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 재학 시절 친하게 지낸 세 명의 친구에 얽힌 일화와
몇십 년이 흐른 후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책인데요,
그 중에서도 저는 루마니아 출신의 거짓말쟁이 아냐를 만난 뒤
요네하라 마리가 느낀 복잡한 감정을 서술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냐는 지금 10퍼센트의 루마니아인이라고 했지.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나라를 오랫동안 갖지 못한 유대 민족의 역사가 겹쳐 보이는 느낌이 들고,
네 말투는 차우셰스쿠와 똑같아` 라는 말이 목에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나는 숨을 크게 한번 쉰 다음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루마니아인들의 참상에 마음 아프지 않아?˝
˝그야 마음 아프지. 아프리카에도 아시아에도 남미에도 이보다 훨씬 심한 곳이 많아.˝
˝하지만 루마니아는 네가 자란 곳이잖아.˝
˝그런 좁은 민족주의가 세계를 불행하게 하잖아.˝ (<프라하의 소녀시대> p.169)
차우셰스쿠 정권의 수하에 있던 아버지를 둔 덕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아냐가
자기 가족과 정권의 과오를 뒤돌아보고 반성하기는커녕 `좁은 민족주의`라며
뻔뻔스럽게 일축하는 모습에 마리 여사는 말을 잃었습니다.
평생을 개인과 국가, 이데올로기와 민족 같은 문제를 두고 고민했던
마리여사의 아픔이 드러나는 대목이라서 저까지 마음이 아리고 아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