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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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라 방송에서도 남자 아이돌이나 개그맨들이 종종 여장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본 방송에서는 아예 여장을 전문으로 하는 남자 연예인, 이른바 '여장가(女裝家)'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미와 아키히로나 마츠코 디럭스, 미츠 맹그로브 같은 이들이 그런 경우다. 왜 여장을 하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연예인으로서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여성의 외모를 동경하거나 여성의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유야 어찌됐든 굳이 쉽고 편한 길을 두고 여장이라는 불편한 길을 택하기까지는 남모를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애초에 남성과 여성, 단 두 개뿐인 성 구분과, 남성은 남성의, 여성은 여성의 외모를 갖추어야한다는 사회적 의식부터가 폭력이라면 폭력이겠지만.

 

 

얼마전 출간된 황정은의 장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주인공 앨리시어도 여장 남자다. 소설에 제시된 단서들로만 미루어 볼 때 그가 여성에 대한 동경이나 여성적인 성 정체성 때문에 여장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어린시절, 아니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그의 주위에 자욱히 퍼져있던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 싶다. 앨리시어의 어머니는 앨리시어와 그의 어린 동생을 때렸다. 두 형제가 뭘 잘못해서 훈육의 차원으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기분이 안 좋아서, 눈초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등등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가며 때렸다. 이웃은 물론 앨리시어의 다른 가족들은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폭력은 앨리시어네 집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두 형제는 학교에서도 괴롭힘을 당했다. 두 형제의 유일한 친구인 고미도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동네 주민들은 키우던 개를 해마다 잡아먹었으며, 재개발 이후 땅값이 치솟을 생각에 멀쩡한 집을 새로 보수하고, 살지도 않는 가족을 사는 것처럼 위장하는 식의 거짓도 불사했다. 물리적인 폭력은 물론 거짓, 기만, 묵인 등 정신적인 폭력까지, 앨리시어는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한 자가 있으면 어김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비정상적인 구조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폭력이 그가 여장 남자가 된 절대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머니에게 맞서 복수할 계획을 세우던 그가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졌겠는가. 그렇다면 그를 무너트린 건 폭력보다도 더 무서운 운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버지의 전 부인이 낳은 배다른 형제들을 찾아간 앨리시어. 그 우연한 행동이 다른 우연을 줄줄이 낳아 앨리시어의 유일한 희망이자 삶의 낙을 앗아갈 줄 알았을까. 왜 하필 그 날 그 자리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물어도 답해주는 이는 없다. 인생이라는 베틀의 북을 움직이는 건 인간이 아니라 운명이고,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운명을 좌우하는 시간과 공간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시키고 엮는 건 하늘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국 운명 그리고 하늘은 그렇게 잔혹하고 폭력적이다. 인간이 폭력적인 건 그 때문이다. 어머니의 존재 자체를 없애고자 했던 앨리시어가 되레 여자의 모습을 뒤집어쓰고[女裝] 그토록 증오하던 어머니로 되살아난 건 그런 깨달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장편치고는 짧디 짧은 이 소설을 읽고 이다지도 무거운 마음이 드는 건, 그러나 그 때문만은 아니리라.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어머니에게서 똑같이 폭력을 당할 운명, 머슴살이를 하던 아버지처럼 똑같은 무시와 냉대를 받을 운명...... 이게 어디 소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던가. 내가 당했으니까 너도 당해야 한다, 그런 부모를 두었으니 어쩔 수 없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삶을 결정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알레고리는 이 사회에도 넘쳐난다. 앨리스씨를 그 누가 야만적이라고 떳떳이 욕할 수 있으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바로 그가 억지로 떠밀려 들어간 '이상한 나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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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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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를 알게된 건 '창비 라디오 책다방'보다 먼저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통해서였다. 그 때만 해도 한국 소설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았는데, 영화든 책이든 깐깐하기로 소문난 이동진 DJ가 황정은 작가를 하도 강력하게 추천해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언제인가 '창비 라디오 책다방'을 듣게 되었다. <헌법의 풍경>, <욕망해도 괜찮아> 등을 쓴 김두식 교수님이 진행한다고 해서 듣기 시작했는데, 같이 진행하는 분의 목소리가 낭랑하니 예뻐서 누구일까 하고 귀를 기울였더니 다름아닌 황정은 작가였다. 이거슨 운명이다, 라는 생각에 그날부로 황정은 작가의 책을 샀는데 어쩐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기대가 커서 실망하면 어쩌나, 목소리에 속은 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황정은 작가의 신간 <야만적인 앨리스씨>가 나왔다. 이 책을 읽으려면 먼저 전에 산 책들을 읽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에 잔뜩 겁을 먹고 <백의 그림자>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아, 이 소설 정말 좋다.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에 비하면 상당히 얇아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금방 읽기는 했다), 다 읽고나니 잘 만들어진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은교와 무재의 사랑 이야기는 지극히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이라서 소설 한 편을 읽고도 두 편의 소설을 읽은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잘난 곳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평범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 평범한 공간에서 평범한 사랑을 하는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특별하고 로맨틱하게 느껴지는지. 인기 드라마나 영화 속 인스턴트 사랑에 익숙하던 내 입에 누군가가 공들여 키운 유기농 채소가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왜 이동진 DJ가 강력추천했는지, 황정은 작가의 담담한 목소리와 말씨가 그토록 매력적으로 들렸는지 알 것 같다. 그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 주변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현실의 복사판이라는 점도 좋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몰린 전자상가, 그 안에서 개미처럼 살아가는 인간들, '슬럼'이라고 불리는 동네에서 나고자란 남자...... '그림자'라는 소재는 등장인물들을 이어주는 화제이기도 하지만 그들 자신의 처지를 일컫는 은유가 아니었는가 싶다. 


 

그저께 밤에 이 소설을 읽고 곧이어 어젯밤에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읽었는데,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이 소설에 비해 책 자체는 얇지만 무게감은 더 묵직하다. 제목만 보아서는 어두운 '그림자'보다야 '앨리스씨'가 훨씬 가벼울 듯 한데 말이다. 정확한 이유야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창비 라디오 책다방' 내용으로 짐작건대 작가 자신이 사회 문제에 전보다 관심을 가지고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물론 황정은 작가의 사회에 대한 관심은 <백의 그림자>에서도 엿보인다). 아무래도 황정은 작가를 오래오래 좋아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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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검은 안개 - 상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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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 거장 마츠모토 세이초가 쓴 <일본의 검은 안개>는 월간 문예춘추에 1960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연재된 논픽션을 엮은 책이다. 연재 당시 일본 사회 각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검은 안개'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일본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고, 논픽션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주관적인 견해로 보이는 부분도 더러 있는 점은 아쉽지만, 일본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일본 사회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마츠모토 세이초 소설을 포함한 사회파 미스터리 팬이라면 미제 사건이나 다름 없는 이야기들을 소설가 특유의 상상력과 집중력으로 복원하고자 한 작가의 열정에 놀랄 것이다.


이 책의 놀라운 점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로 논픽션, 즉 실화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마츠모토 세이초는 허구의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열두 개의 이야기는 모두 실화다. 그것도 1948년 폐점 직후에 은행에 들어가 은행원 전부에게 독극물을 마시게 한 뒤 현금과 수표를 털어 달아난 '제국은행 사건', 1949년 일본국유철도 초대 총재 시모야마가 출근 중에 실종되었다가 이튿날 기찻길에서 사체로 발견된 '시모야마 사건', 1952년 탑승자 37명 전원이 사망한 일본항공의 '목성호 추락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굵직한 사건들뿐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사건들이 여러가지 의문점과 사회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미궁에 빠진 채 남겨졌다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범죄수사 드라마를 보고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왔지만, 이처럼 허구 같은 실화는 처음이다.


둘째, 용감하다. 이 책에 실린 사건들은 모두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1945년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미군 점령을 받고 있던 시기에 일어났다. 연재가 시작된 게 1960년 1월이니 약 9년의 시간이 흐르기는 했어도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며 미소 냉전체제였던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때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스파이 관련 사건부터 대형 비리 사건, 노조 탄압 및 불온사상 척결 광풍 같은 사건들을 공공연히 들춰내고, 신문으로 치면 다른 면에 실릴 사건들의 배후에 공통적으로 미군의 조작 내지는 음모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는 마츠모토 세이초의 태도는 지금 보아도 무모하고 과감하다.


셋째,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이다. 이 책에 실린 마지막 사건은 다름아닌 한국전쟁이다. 일본 국내에서 벌어진 사건들만 계속 보다가 마지막에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맞닥뜨렸을 때 나의 기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저자는 왜 이 모든 굵직한 사건들의 최종장으로 한국전쟁을 택했을까? 저자는 "지금까지 다룬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절정을 향해 있는, 그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복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 내에서의 미군의 움직임이 어떻게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는지 저자는 여러가지 가설과 증거를 제시한다. 그것들이 맞고 틀린지를 떠나서 한국전쟁에 대해 한국인인 나조차도 모르는 일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일본의 군수공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일본경제가 크게 발전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일본인이 전쟁에 차출되었고, 오키나와 미군 주둔이 장기화되었으며, 일본의 민주화가 백지화되고, 재벌뿐 아니라 그동안 미군이 소탕하는 데 열을 올렸던 옛 군벌 세력과 우익까지 이때를 계기로 재기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알면 알수록 참 슬픈 역사의 이면이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으로는 <점과 선>을 읽은 게 유일한데, 이 책을 읽고나니 저자가 왜 고위 관료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는지, 철도를 주요 트릭으로 설정했는지 어렴풋이 알겠다. 아무래도 다가오는 겨울에 마츠모토 세이초를 비롯한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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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착한 기업 시작했습니다 - 젊은 사회적기업가 12인의 아름다운 반란
이회수.이재영.조성일 지음 / 부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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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책임, 노블레스 오블리주 운운해도 기업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이윤 추구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은 어떨까? 사회적 기업은 '사회 혁신 마인드를 가진 기업가들이 빈곤, 실업, 환경, 교육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비지니스 방식으로 해결하는 혁신적인 기업 조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과 의존의 삶이 아닌 자활과 자립의 길을 열어 주는 등 사회를 혁신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p.5)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기업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기업인 이상 어느 정도의 이윤 창출이 안 되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청춘, 착한 사업 시작했습니다>에 소개된 열두 곳의 사회적 기업을 보면 대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 12인의 사회적 기업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에이컴퍼니 정지연 대표는 아티스트 팬클럽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기획하여 재능 있는 신인 작가를 육성하는 동시에 수요는 높으나 공급이 부족한 대중들의 문화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유명 작가에게만 후원이 몰리고 신인 작가의 진입장벽은 높은 불합리한 구조는 미술뿐 아니라 예술계 전반의 관행이라면 관행인데, 만화, 소설, 음악 등 다른 장르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연극계에는 있다. 바로 김동하 대표가 이끄는 토크앤플레이다. 연극배우 출신인 김 대표 역시 인기 배우, 유명 작품에만 자본이 몰리는 풍토에 회의를 느끼고, 노인이나 학생 등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대중들도 참여할 수 있는 신개념 연극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아직 일반 기업의 수익 구조를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의 추세라면 기대해볼 만 하다.

 

 

이들이 명문대 졸업장이 없어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두커뮤니케이션즈 권태훈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엘리트다. 우연히 외교통상부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된 그는 어려운 외무고시를 패스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가지고도 삶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을 보며 진로를 재고했다.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얻은 정보를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청소년 진로 잡지 'MODU'다. 명랑에너지발전소 안연정 대표는 원래 방송국 PD가 되고 싶었는데, 서울과학기술대 2학년 때 모 방송국 연수에 참가했다가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방송을 만드는 방송국 조직의 한계를 깨닫고 사회적 기업으로 방향을 돌렸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적 기업에 뛰어든 이도 적지 않다. 한국판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라 할 수 있는 직장인, 대학생, 다문화 청소년 멘토링 시스템을 개발한 점프의 이의헌 대표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다. 저신용자부터 정치인까지 '착한 금융'을 지원하는 신현욱 팝펀딩 대표는 삼성그룹과 네이버를 거쳤다. 이들이 높은 연봉과 편안한 생활을 뒤로 하고 사회적 기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배가 부르고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르그닷이 그 예다. 패스트 패션에 반기를 들고 윤리적 패션을 주도하는 패션 벤처 오르그닷에는 유명 대기업 출신 디자이너들이 상당수 근무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소비 지상주의, 대기업의 과도한 마진, 중소 하청업체에 대한 착취, 건전한 업무 관행의 말살 등을 목도하다 못 견디고 나온 그들은 사회적 기업에서 해법을 찾았단다. 과도한 스펙 경쟁, 의미없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이런 청춘, 이런 기업은 어떤지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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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ook 서른 넘어 옷 입기 - 지금부터 시작하는 ‘나답게’ 입는 법 F.book 시리즈
에프북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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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자들은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단순히 몸무게가 많고 적고, 나이가 들고 어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발목이 굵네, 가슴이 처졌네, 주름이 많네, 이 나이에 어떻게 이 구두를 신겠느냐, 분홍색은 나랑 안 어울린다... 하면서 말이다. ... 스타일 좋은 여자가 되자고 말하고 싶진 않다.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과 헤어스타일로 자신을 치장해야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여자인지 깨닫길 바라는 것이다. 거울 속의 여자가 초라하고 멋없는 단점투성이가 아니라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그래서 자꾸 예뻐해 주고 싶은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p.115)

 

 

패셔니스타, 라기보다는 패션 테러리스트에 가까운 나지만,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나름의 패션 철학은 가지고 있다. 서른 즈음인 나의 옷 입는 방법이 서른 넘어서도 통할까?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에프북에서 만든 책 <서른 넘어 옷 입기>에 따르면 말이다.  책에는 패션 숍 <린넨 내추럴> 대표 오선영, 액세서리 브랜드 <캐미> 디자인 디렉터 김문정, 가방 브랜드 <꼬르뷔> 디자이너 송수정, 아동복 쇼핑몰 <꼬모> 오너 허수영, 온라인 숍 <오일클로스> 오너 김지영 등 패션피플이면서 동시에 아이 엄마이기도 한 다섯 명의 '엄마여자'들의 옷 만들고 옷 입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애엄마라고 하면 떠오르는 꾸밈 없고 펑퍼짐한 옷차림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이십대 미혼녀 못지 않은 감각적인 스타일에 실용성까지 잡은 완벽한 패션, 거기에 일과 살림을 균형있게 양립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어찌나 멋지던지, 보는 내내 감탄이 나왔다. (옷 잘 입는 여자들 이야기 사이에 배치된 옷 못 입는 편집자들 이야기는 또다른 재미다 ^^)



옷 잘 입는 그녀들의 비결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첫째, 기본 아이템을 잘 갖추라. 사도 사도 없는 게 옷이라지만, 아침에 옷장을 열었을 때 기본 중의 기본인 하얀색 면 티셔츠나 청바지조차 없으면 한숨이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비싼 돈 들여 산 건 대체 뭔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계절마다 또는 세일 기간마다 유니클로, 자라 같은 SPA 매장에서 티셔츠, 청바지, 가디건 등 기본 아이템을 부지런히 '쟁여' 놓는 건 필수다. 아내이자 엄마인 그녀들의 기본 아이템에는 몇 가지가 추가된다. 모임이나 회식 등 중요한 자리에서 입을 블랙 정장과 원피스, 학교 행사에 참석할 때 유용한 트렌치 코트 등이다. 패션 숍 <린넨 내추럴> 대표 오선영이 소개하는 리넨, 니트 소재의 기본 아이템들은 몇 년을 입어도 유행을 타지 않는 데다가 예쁘기까지 해서 기본 아이템이라기보다는 신경을 많이 쓴 옷차림처럼 보였다. 액세서리 브랜드 <캐미> 디자인 디렉터 김문정 역시 질 좋은 셔츠나 자켓,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청바지 등 기본 아이템부터 잘 갖추라고 충고한다. 여기에 팁 하나 더. 키가 큰 사람은 그냥 셔츠나 원피스를 입는 것보다 셔츠 스타일의 원피스가 잘 어울린다고 한다. 키가 175cm나 된다는 그녀가 소개하는 셔츠원피스를 보니 마음에 들어 나도 이참에 몇 벌 구입할 생각이다. 



둘째, 유행을 타는 디자인이나 색상보다는 기능과 소재 위주로 고르라. 더위와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나는 아무리 세련되고 예쁜 옷이라도 날씨에 안 맞으면 못 입기 때문에 전부터 여름에는 땀 흡수를 잘 하는 면, 겨울에는 뜨끈뜨끈한 히트텍, 기모 소재를 최우선적으로 골라왔다. 아이 엄마인 그녀들은 옷의 기능뿐 아니라 소재가 인체에 무해한지 여부에도 민감하다. 가방 브랜드 <꼬르뷔> 디자이너 송수정은 결혼 후 아이의 첫 가방을 고르다가 성에 차지 않아 직접 브랜드를 런칭했을 정도로 소재에 예민하다. 아이가 물거나 빨 수 있기 때문에 옷이나 소품을 고를 때 천연 소재인지, 피부에 자극을 주는 질감은 아닌지를 제일 먼저 본다는 그녀. 안 그래도 대량생산, 패스트 패션의 부작용으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함유된 옷이 많다고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녀들의 제품은 엄마 마음으로 만든 가방, 소품이라고 하니 믿음이 간다. 



셋째, 나만의 고유한 옷을 입으라. 나는 늘 심플하게만 옷을 입다보니 심플함이 곧 나의 패션 철학이고 고유한 개성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옷 잘 입는 그녀들은 그저 심플하게만 입는 게 아니라 저마다 고유한 패션 테마를 가지고 있었다. 아동복 쇼핑몰 <꼬모> 오너 허수영의 패션 테마는 '프렌치 시크'다. 프랑스 여인들의 무심한듯 시크한 스타일처럼, 블랙, 베이지, 그레이 등 모노톤의 옷에 팔찌나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를 볼드하게 가미하는 식인데, 모노톤의 옷만 입으면 심플은커녕 밋밋하고 개성없어 보일 따름이지만 액세서리를 어떻게 가미하느냐에 따라 마치 다른 옷을 입은 듯 개성이 배가 된다. 신경을 쓴 듯 안 쓴 듯한 그녀의 패션 철학은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이것도 어쩌다 이렇게 된 게 아니라 책, 잡지,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한 부단한 공부와 자료 조사의 결과라고. 온라인 숍 <오일클로스> 오너 김지영의 패션 테마는 보다 과감하다. 오랜 시간 캐주얼을 즐겨온 그녀는 결혼 후에도 캐주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서른 넘어 입으면 다소 부담스러워 보일 수 있는 샬랄라 러플과 레이스, 요란한 프린트 등은 되도록 자제하지만, 티셔츠, 청바지 등 기본 아이템에 과감한 색상, 화려한 프린트를 추가하는 식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이런 멋진 '엄마여자', 아니 언니들이 있으니 곧 있으면 다가올 '서른 넘어 옷 입기'가 결코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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