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
시노다 나오키 지음, 박정임 옮김 / 앨리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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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공이라는 노인이 매일 지게로 흙을 날라 산을 옮겼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어리석어 보이는 일도 꾸준히 우직하게 하다 보면 이룰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먹은 것을 기록하다 책까지 낸 남자가 있다. 시노다 나오키는 1990년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에 후쿠오카로 전근을 가면서 식생활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매끼 먹은 음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간략하게 메모를 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점점 그림을 덧붙이기도 하고 그림에 색을 입히기도 하면서 기록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렇게 완성된 노트가 모두 45권(2013년 기준). 2012년 오십 세가 되던 해에 그의 이야기는 텔레비전에 소개되었고 책으로도 나왔다. 


스물일곱 살 때부터 쉰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끼 먹은 음식을 기록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서 사진을 보면서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오로지 '눈과 혀와 위장의 기억'에 의존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놀랍다. 뿐만 아니라 음식의 생김새, 재료의 배치, 색상 등을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음식의 맛에 대한 감상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치 기록을 완성하는 데 들인 시간은 고작 퇴근 후 30분. 회식을 하고 술에 잔뜩 취한 날에도 기록만큼은 잊지 않았다고 하니 노력과 열정이 대단하다. 


한 장 한 장 보면 그 날 먹은 음식을 기록한 식사 일지에 불과하지만, 이십여 년치를 모아서 보면 저자의 성격과 개성이 드러난다. 저자가 먹은 음식과 감상을 쭉 보다 보면 저자는 같은 음식을 계속 먹는 걸 싫어하지 않는 무던한 성격이고, 일부러 질릴 때까지 먹는 집요한 면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국 음식을 주로 먹지만 외국 음식도 이따금씩 즐기고(회사 사람들과 1박 2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 요리를 먹기도 한다), 여행사 직원으로서 해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낯선 음식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루 세끼 먹는 일이 당연해서인지,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서인지, 뭘 먹어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뿐이다. 저자는 이제 "식재료를 생산해주는 사람들과, 그것으로 요리를 해주는 사람들, 그 외에도 다양하게 얽힌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형태로 남기고 싶어 일기를 쓴다"고 한다. 어쩌면 나는 음식의 소중함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고 살아온 게 아닐까. 저자처럼 나도 식사 일지를 써야겠다, 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매끼를 소중하게 여기고 꾸준히 기록으로 남긴 저자의 자세는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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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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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인의 글을 읽었다. 그가 말하길, 한국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위안부 문제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신의 할아버지가 2차 대전에 참전했는데 한국의 역사 교과서가 그의 할아버지처럼 2차 대전에 참전한 일본인을 나쁘게 말한다는 것을 알고 한국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것이 인간인가. 나는 그 글을 읽고 얼마 전에 읽은 프리모 레비의 책 제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차 대전이 어떤 전쟁이고 그 전쟁에서 일본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으며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째서 전쟁에 끌려갔는지도 모르는 무식함은 차치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가 우선인 나머지 타인의 아픔이나 인류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의 '인간답지 않음'에 소름이 돋았다. 바로 이런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이 종군위안부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사죄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유대인이라면 아이부터 노인까지 죄다 잡아들여 학살하는 죄악을 저지른 게 아닐까. 


<이것이 인간인가>는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에 이송되어 1945년 토리노로 돌아오기까지 10개월간 겪은 일들을 담고 있다.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프리모 레비는 1941년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졸업장에 유대인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기 때문에 명망 있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반파시즘 부대에 가담했다가 파시스트 경찰에 붙잡혀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아우슈비츠에 들어선 그는 더 이상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이름 대신 문신처럼 팔뚝에 새겨진 번호로 불렸고, 번호가 불렸을 때 큰 소리로 대답하지 않으면 구타를 당했다. 수용자들은 모두 똑같이 옷이 벗겨지고 머리를 깎였으며, 매일 같은 시간 같은 행동을 하도록 강요당했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한 채 노역에 끌려가고, 부과된 노역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매질을 당했다. 오로지 침묵만 허용될 뿐 질문이나 말대답을 하는 경우 가차없는 응징을 당했다(어째 한국의 군대나 학교와 비슷하다). 


이 책에는 나치가 수용자들에게 어떤 가혹행위를 했는지 자세히 적혀 있지만, 저자가 책을 쓴 목적은 오로지 나치의 죄상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아우슈비츠 역시 소수의 지배자가 다수의 피지배자를 관리하는 체제였으며, 대부분의 사회가 그러하듯 피지배자 내에도 다양한 유형이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어떤 수용자는 조금이라도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기꺼이 나치에 협력했으며, 어떤 수용자는 다른 수용자를 착취하고 물품을 갈취하길 꺼리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을 수용자 간에 매매하는 지하경제도 존재했다. 사람이 죽으면 슬퍼하기는커녕 덕분에 잠 잘 자리가 넓어지고 먹을 양식이 늘어난 것을 기뻐했다. 


저자는 나치로부터 가혹한 대우를 당하고 수용자들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보면서 자신 또한 인간이길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씻기를 포기하고 남의 음식을 탐내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으로부터 귀를 막고자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자는 인간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일부 수용자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전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인이었던 수용자는 마실 물조차 귀한데도 아침마다 몸을 씻으며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다. 저자는 그를 보며 씻기를 포기하고자 했던 마음을 접었고, 두 사람은 결국 아우슈비츠에서 살아서 나갔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구타를 하는 인간과, 구타를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아가는 인간은 같은 인간일까. 아침에 몸을 씻고 저녁에 죽임을 당하는 인간과, 저녁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침에 몸을 씻는 인간은 같은 인간일까. 이들 모두는 인간일까.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인간답게 산다는 건 - 나를 지키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누가 아플 때 위로해주고 힘들 때 손잡아주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세상에는 인간답게 살지 않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비명으로부터 여전히 귀를 닫고 있는 인간들,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를 거짓으로 여기는 인간들, 침략전쟁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하는 인간들, 이 모든 걸 알면서도 무시하고 지나치는 인간들 말이다. 나 역시 알면서 무시하는 문제, 보고도 지나치는 문제들이 많기에 이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 없다. 대체 나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지금으로선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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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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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집 안 읽게 된지 오랜데 이 책은 재미있기도 하고 책 중독자로서 공감 가는 대목도 많아서 좋았습니다. 글 쓰기 싫다, 책 읽기 싫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저자라서 추천하는 책들이 외려 믿음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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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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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 금정연은 책 읽기 싫다, 글쓰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한다. 최근에는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글쓰기가 너무 싫은 나머지 웹툰 작가로 전업할까 생각 중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엔 진심이 느껴지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서평가란 사람이 책 읽고 글 쓰는 게 싫다는데도 그 말이 듣기 싫지 않고 외려 믿음이 가니 우습다. 한 해에 책을 수천 권씩 읽는다는 자기계발 강사, 글쓴이의 고뇌가 느껴지지 않는 글을 '찍어내는' 작가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일까. 금정연의 볼멘소리는 차라리 솔직해서 좋다. 그만큼 힘들게 책을 읽고 괴롭게 글을 쓴다는 의미라고 여기게 된다.


그만큼 힘들게 읽고 괴롭게 쓰는 사람이 직접 읽고 소개하는 책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니 서평가로서도 좋은 전략이다(로베르토 볼라뇨에 대해 말할 때마다 웃음기를 띠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언젠가 볼라뇨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언제부터인가 서평집을 읽는 시간에 책 한 권을 더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 나도 금정연의 서평집만큼은 전부 읽었다(그래봤자 세 권이지만. 그가 소개한 책을 다 읽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신간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금정연이 이제까지 낸 서평집 중에 가장 읽기 쉽고 재미있다. 그의 문장이 전보다 말랑말랑해진 건지, 아니면 일부러 대중적인 글만 골라서 엮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작들은 한 편씩 끊어 읽었다면 이 책은 단숨에 읽었다. 몇몇 대목에선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병원 검사 때문에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해진 저자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더니 얼마 후 딱 그 '얼마'만큼의 돈이 들어와 "론다 번과 이지성이 옳았단 말인가!"라고 절규하는 대목은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그렇다고 마냥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쌓여가는 택배 상자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서점을 들락날락하며 구매 버튼을 누르는 모습은 웃기기보다 웃프다. 책 읽는 시간이 아쉬워 이불 속에서도 책을 읽었던 소년이 글쓰기를 밥벌이로 택한 죄(?)로 책장을 펼칠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는 어른이 되었다는 이야기나, 대학 시절 조별 발표를 피하기 위해 조원들의 밥값을 대신 냈던 그가 서평가란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강연과 행사 진행 같은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은 짠하기까지 하다. 


서평가 금정연을 애정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꾸준히 서평을 써줬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는 서평가로 머무르기보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인터넷 서점 MD를 그만둔 것도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고, 지금도 꾸준히 습작을 하는 듯하고. 책 읽기 싫다, 글쓰기 싫다는 볼멘소리는 사실 책 쓰고 싶다, 내 글 쓰고 싶다는 뜻을 품고 있는지도 ^^ 서평이든 소설이든 그가 쓴 글이라면 덮어놓고 읽을 테니 지금의 유머러스함과 시니컬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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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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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할 때 태아는 산모가 겪는 고통보다 수십 배는 더한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안전한 자궁을 벗어나 불안하고 수상한 세상으로 나온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지, 한때 태아였던 자로서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만약 태아에게 성인만큼 온전한 정신과 감각이 있어서, 자궁안에 있으면서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느끼거나 알 수 있다면 어떨까. 하필이면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게, 어머니와 삼촌이 불륜 관계이고 조만간 태아의 아버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면. 


이언 매큐언의 신작 <넛셸>은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인 태아의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는 출산을 앞둔 며느리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태아의 고요한 존재감을 강렬하게 인식했고, 얼마 후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을 읽으면서 삼촌에 의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빼앗긴 햄릿의 고뇌를, 삼촌과 어머니의 불륜을 목도하고 이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으로 나와야 하는 태아의 갈등으로 치환하는 기발한 발상을 떠올렸다. 


주인공 햄릿은 만삭인 어머니의 뱃속에서 어머니 트루디와 삼촌 클로드가 아버지 존의 눈을 피해 만남을 가지고 몸을 섞는 것을 지켜본다. 햄릿은 어머니가 이미 한 남자와 결혼해 그의 아이를 밴 몸인데도 음주를 즐기고 삼촌과의 정사를 받아들이는 것을 증오하면서도, 어머니의 몸에 기생하는 한 어머니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고, 심지어는 어머니가 마시는 와인의 맛을 같이 즐기는 독특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이래서 임신 중 음주가 위험하다고 하는 걸까). 


햄릿은 어머니와 삼촌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채고 떳떳하게 사람들 앞에 나설 요량으로 아버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 것을 알게 된다. 햄릿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할 아버지에게 경고하고 싶지만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는 아무런 힘도 방법도 없다. 결국 아버지는 죽음을 맞게 되고, 햄릿은 부정한 어머니와 음험한 삼촌이 기다리는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할 처지에 몰린다. 햄릿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하나.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음모로 얼룩진 가족 관계 속으로 들어가 사느냐, 아니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죽느냐.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을 이언 매큐언의 스타일로 각색한 것이 재미있고, 어머니와 삼촌의 불륜, 아버지의 죽음을 어머니의 뱃속에서 목도한 태아가 품을 법한 생각들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상상해낸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이언 매큐언의 대표작 <속죄>처럼 한숨에 읽을 만한 소설은 아니지만, 끝까지 읽고 문장들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본다면 색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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