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 - 사이코패스 전문가가 밝히는 인간 본성의 비밀
애비게일 마시 지음, 박선령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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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이 명제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너그러운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 이르면 더 이상 너그러울 수 없고, 아무리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손해를 볼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면 옹졸해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이타적인 동물이다. 이 명제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모든 인간이 이타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MB라든가.. 503이라든가..)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 또는 사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민족과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선 독립운동가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집단의 부정을 고발한 공익제보자를 들 수 있다. 


<착한 사람들>의 저자 애비게일 마시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이타주의자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저자는 1996년 어느 날 밤에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자동차 엔진이 고장 나는 사고를 당했다. 그대로 있으면 꼼짝없이 다가오는 대형 트레일러트럭에 부딪히는 상황이었는데 어디선가 한 남자가 홀연히 나타나 저자를 구해준 다음 아무런 댓가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은 채 사라졌다. 


그때까지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굳게 믿었던 저자로서는 놀랍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한 경험이었다. 낯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었다. 결국 저자는 전공을 의학에서 심리학으로 바꿨고 사회심리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왜 어떤 사람은 이기적이고 어떤 사람은 이타적인가. 이타적인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타적인 사람의 특징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가, 후천적으로 개발되는 것인가. 저자는 알고 싶었고, 알아냈다. 


모르는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가하는 행위를 멈춘 것은 크게 의미 없는 동정심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보다 지원자들이 월리스 씨를 위해 약속된 보수를 포기하거나 전기 충격을 계속 가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등 연민으로 인해 뭔가를 희생한 것이 더 인상적이다. 놀랍게도 자기가 월리스 씨 대신 전기 충격을 받겠다고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 (59쪽) 


저자는 인간의 이타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그 유명한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제시한다. 이 실험은 인간이 얼마나 권위에 취약하고 복종에 익숙한지 알려주는 증거로 자주 인용되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는 잘못되었다. 동영상을 직접 보면 '모든' 지원자가 명령에 복종한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지원자들은 알려진 대로 명령에 복종했지만, 어떤 지원자들은 (전기 충격을 당하는) 월리스 씨에 대한 연민을 호소하거나 실험 중지를 촉구하거나 복종을 거부했다. 


왜 어떤 사람은 이기적이고 어떤 사람은 이타적일까? 가장 큰 원인은 뇌에서 찾을 수 있다. 사이코패스 가능성이 있는 청소년의 뇌를 스캔한 결과 편도체의 기능 장애가 발견되었다. 편도체는 인간의 사회적, 정서적 기능을 담당한다. 편도체의 기능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으면 인간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연민을 거의 느끼지 않고, 겁먹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도 반응하지 않는다. 반대로 편도체의 기능이 활발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연민을 쉽게 느끼고, 겁먹은 사람의 얼굴을 금방 식별한다. 


사이코패스 기질이 뇌에서 발현된다면 사이코패스는 어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 청소년에게도 있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 어린이, 사이코패스 청소년은 지능지수가 높은 경우에 더 많은 문제 행동을 일으킨다. 이들은 타인의 심리를 쉽게 간파하며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거나 알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행동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단 하나로 규정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 어떤지 알고 싶다면 사이코패스를 보라. 사이코패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가장 걸맞은 인물이다. 그가 베푸는 친절이나 남을 도와주는 행동 모두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막아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착해 보이는 행동도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156쪽) 


저자는 사이코패스 연구를 할수록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희망을 얻어 간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그 어떤 사람도 진정한 사이코패스에 비하면 이타적인 편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애정을 느끼고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 한순간이라도 불쌍한 사람을 보면 연민을 느끼고 먼저 다가가 도와주고 싶다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진정한 이기주의자가 아니다. 


선천적인 사이코패스도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공감과 연민을 학습할 수 있다. 평소에 다양한 연령과 출신, 지위와 계급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가치관을 접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 이것이 힘들면 동서고금의 문학 작품을 읽거나 영화 또는 드라마를 보는 방법도 있다. 그렇다면 이기적인 사람은 본능에 충실한 게 아니라 게으른 것이다,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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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쇼콜라티에 8
미즈시로 세토나 지음, 서수진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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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뺨치는 외모와 뛰어난 실력을 모두 갖춘 인기 쇼콜라티에 소타에게는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여자가 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사에코. 고등학교 1년 선배이자 소타의 첫사랑이며 쇼타를 쇼콜라티에의 세계로 이끈, 쇼타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여자다. 


소타는 사에코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사에코는 그런 소타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요시오카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했으면 남편과 잘 살면 될 것을, 유부녀가 된 사에코는 잊을만 하면 소타 앞에 나타나 소타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지난 7권에서도 사에코는 소타가 운영하는 초콜릿 가게 '쇼콜라비'에 나타나 소타와 하룻밤을 보낸다. 사에코가 남편과 싸우고 집을 나온 것을 알게 된 소타는 사에코가 이젠 제발 자신의 곁으로 와주길 바라고, 사에코는 그런 소타의 마음을 아는 척 모르는 척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소타의 가게에서 지낸다(환장할 노릇이다).





소타를 내심 짝사랑하고 있던 쇼콜라비의 점원 카오루코는 소타의 연심을 자기 좋을 대로 이용하는 사에코의 태도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사에코에게 한 소리 하려다가 외려 사에코에게 당하고 만다. 


불륜하는 여자를 욕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조차 못하고 외롭게 지내는 카오루코와 불륜이라고 욕먹더라도 남자들로부터 끊이지 않고 사랑을 받는 사에코. 둘 중 도덕적으로 옳은 건 카오루코이지만, 감정적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건 절대적으로 사에코다. 


사에코에게 진 카오루코는 자신이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것을 자각한다. 이제 나이 제한에 걸려 마음 대로 일을 구할 수도 없다. 지금도 애인이 없지만 점점 더 애인 구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이십 대에 결혼하고 삼십 대인 지금도 자신보다 연하인 남자의 구애를 받는 사에코가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마침 세키야 씨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 카오루코는 소타 이외의 남자와 만날 마음이 없었지만,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해서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건 불공평하다는 사에코(a.k.a. 연애의 고수)의 말에 따라 세키야 씨를 만나러 간다. 


카오루코는 사에코의 코치에 따라 상대가 말할 때 날선 비판이나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려 하지만, 세키야 씨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난다. 자기 인생의 도움이 되는 여자가 좋다, 사귀면 돈과 명예가 따라오는 여자는 금상첨화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카오루코는 화를 참지 못하고 세키야 씨의 말을 부정하지만, 말을 하고 보니 자신이 연애의 현실을 모르고 이상만 주장하는 어린애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소타와 함께 있으면 내가 더 행복해질 것 같아서,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 소타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혼하면 행복해요?... 사람에 따라 다른가? 사에코 씨는 어때요?" 


얼마 후 사에코를 만난 카오루코는 결혼에 대해 묻는다. 그 전까지 활발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연애의 기술을 떠들던 사에코가 이 때 처음으로 기운 없고 자신감을 잃은 표정을 짓는다. 


26살에 결혼하겠다고 인생 계획을 세웠다, 그 때 마침 지금의 남편인 요시오카를 만났다, 결혼을 해보니 즐거운 순간도 있지만 즐거운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말을 하는 사에코의 표정이 어찌나 쓸쓸해보이던지. 대체 사에코는 무엇을 후회하는 걸까. 실패한 결혼? 놓쳐버린 사랑?





적당히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가장 사랑하는 남자를 놓친 여자와, 가장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적당히 사랑할 남자들을 놓치고 있는 여자. 둘 중 누가 더 현명하고 어리석은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분명 사에코보다 카오루코에 가깝지만, 사에코가 어리석다고 하기엔 사에코 나름의 행복이 있어 보이고(일단은 결혼도 한 번 해봤고, 불륜이기는 해도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도 있다), 카오루코가 어리석다고 하기엔 카오루코 나름의 미덕이 있고(실패한 결혼 생활을 억지로 유지하지도 않고, 불륜도 안 한다!)... 


단 하나, 사에코보다 카오루코가 나아 보이는 것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카오루코는 사에코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상대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장난'은 하지 않는다. 이런 '장난'질이 뭇 남성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 평생 잊지 못할 화상을 입는 것이겠지만. 


이제 드디어 다음 권을 끝으로 이 (환장할) 만화가 끝이 난다고 한다. 어떻게 끝이 날지, 대체 소타와 사에코는 누구를 택하고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지 안 보면 무지하게 섭섭할 듯. 어서 다음 권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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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키 도리 2
와타나베 카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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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와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남자와 삼각관계에 빠졌는데 하필 그 둘이 쌍둥이 형제라면...? 


와타나베 카나의 정통 순정 만화 <헝키 도리>는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타치바나 유카리가 어려서부터 남매처럼 자란 쌍둥이 형제 하야미 오우, 슈운과 삼각관계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한없이 비현실적이지만 이 맛에 순정만화 보는 것 아니겠어요? ㅎㅎ).


유카리는 성격이 소심해도 너무 소심하다.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서 같이 놀자는 말도 못한다. 그런 유카리를 어려서부터 돌봐주고 지켜준 사람이 오우와 슈운 형제다. 





정의감이 강한 오우는 유카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혼내줬다. 자상하고 배려심이 많은 슈운은 유카리가 기운이 없을 때 곁에서 위로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렇게 세 사람은 남매처럼 가까운 친구로 언제까지나 친하게 지낼 줄 알았다. 그랬는데...


고등학생이 된 유카리가 오우를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세 사람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유카리는 오우한테 고백은커녕 평범한 말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슈운은 그런 유카리의 고민을 들어주며 유카리를 응원한다. 오우한테 고백하라고 격려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마음은 꼭꼭 숨기고...





그도 그럴 게 유카리는 지금 다른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다. 유카리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 사귄 친구 아유무가 오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난 것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 유카리는 둘 중에 무엇을 택해야 하나 고민한다. 


고등학교에서 처음 사귄 친구이자 유일한 단짝인 아유무와 멀어지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친구 때문에 첫사랑인 오우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고민에 빠진 유카리는 자기도 모르게 아유무를 멀리하고, 아유무는 유카리가 자신을 왜 피하는지 모르는 채 서운함만 느낀다.





유카리와 아유무 사이의 오해는 다행히 빨리 풀리고, 유카리는 매년 봄마다 떠나는 가족 여행에 아유무를 초대한다. 여행 멤버는 유카리와 아유무, 유카리의 삼촌, 오우와 슈운, 이렇게 다섯. 여행에 처음 참가한 아유무는 어쩐지 유카리의 삼촌에게 반한 눈치다(이 두 사람, 잘 됐으면 좋겠다 ㅎㅎ). 


유카리는 유카리대로 예전처럼 오우, 슈운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서 즐겁다. 우정이냐 사랑이냐, 이런 고민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어릴 때처럼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처럼 편안한 기분에 취한 유카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 잠이 들고, 슈운은 그런 유카리를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 슈운을 오우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어느 날 방과 후, 오우가 슈운에게 묻는다. "너, 유카리 좋아해?" 


우연히 오우와 슈운의 대화를 듣게 된 유카리는 슈운의 대답을 듣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세 사람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말을 해버리고 만다. 세 사람 모두 한 사람을 얻으면 한 사람을 잃는 가혹한 상황. 결국 세 사람 모두 서로를 잃는 게 최선인 걸까. 


1권을 읽을 때만 해도 슈운을 응원했는데 2권을 읽고 유카리가 왜 오우를 좋아하는지 알고 나니 오우도 멋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유카리와 오우가 잘 되길 바라자니 슈운이 불쌍해도 너무 불쌍하다(친구도 아니고 쌍둥이 형제한테 좋아하는 여자를 빼앗기는 상황이라니...). 


왕 소심한 평범녀인데 하룻밤 사이에 두 미소년을 두고 궁극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유카리도 불쌍하다(라고 쓰고 부럽다, 라고 읽는다 ㅋㅋ). 과연 유카리는 둘 중 누구를 택할까. 어서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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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노트 패드 1
야마시타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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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몸과 인격이 다른 사람의 것과 바뀐다면.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처럼 몸과 인격이 바뀐 상대가 도쿄에 사는 미소년 또는 포니테일이 깜찍한 미소녀일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여고생이 중년 남성의 몸과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야마시타 토모코의 신작 <화이트 노트 패드>는 바로 그런 경우를 그린다. 17세 여고생 오다마키 하나는 별다른 취미도 없고 학교에선 항상 조용히 지내는 평범한 소녀다. 항상 등을 구부린 채 걷고 체격에 비해 목소리가 낮아서 평범하다기보다는 음산한 느낌을 풍긴다. 친한 친구는 단 한 명. 축구부 후지모토를 남몰래 좋아하지만 직접 고백할 용기는 없다.





'17세의 가을, 나는 느닷없이 빼앗겼다.' 


어느 날 하나는 눈을 뜨자 자신의 몸이 17세 여고생의 몸이 아니라 중년 남성의 몸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된다. 왜 몸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고, 원래 누구의 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몸의 원래 주인은 돈도 없고 가족도 없는 중년 남성. 하나는 기억상실증 환자 아닌 기억상실증 환자로서 지옥 같은 1년을 보낸다.





한편, 38세 자동차 정비공 키네 쇼고는 경제적으로는 빈곤층에 속하지만 독신이라서 별문제는 없다. 등산을 좋아하지만 2년 정도 산에 가지 못했고,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지만 고백은 못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쇼고는 눈을 떠보니 자신의 몸이 중년 남성의 몸이 아닌 17세 여고생의 몸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몸이 17세 여고생의 몸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쇼고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단 하나... '최강'!!!





늙고 지쳐 병들어갈 일만 남았다고 믿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열일곱 살 여자아이의 건강하고 탄력 있는 몸을 얻는다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할 터. 나아가 쇼고는 외모를 갈고닦아 17세 여고생 오다마키 하나의 몸으로 패션 잡지의 인기 독자 모델이 되어 승승장구한다.





어느 날 하나와 쇼고는 하나가 일하는 잡지사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상대가 자신의 원래 몸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반응은 엇갈린다. 하나가 된 쇼고는 하나의 젊음을 빼앗아 전과 달리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짜릿해하는 반면, 쇼고가 된 하나는 쇼고가 자신이 가질 수도 있었던 - 하지만 자신은 가질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 미래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어째서 당신이 더 잘 살고 있는 거야."





하나는 쇼고가 자신의 몸으로 인기 독자 모델이 되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낀다. 내가 저렇게 예뻤다니. 나 같은 여자애도 마음만 먹으면 인기 독자 모델이 될 수 있었다니. 내가 나를 몰라서, 내가 나일 때 누리지 못하고 놓쳐버린 기회를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는. 


쇼고는 쇼고대로 하나가 자기 대신 가난한 자동차 정비공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환희를 느끼면서도,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좋아했던 여인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고 좋아하는 차 이야기도 마음껏 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을 느낀다. 


인간은 누구나 지금의 나와 다른 내가 되길 꿈꾸지만, 막상 지금의 나와 다른 내가 되면 그건 그것대로 힘들고 충분치 않다는 것일까. 이야기 전개가 워낙 흥미진진해 결말까지 쭉 봐야겠다(야마시타 토모코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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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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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대신 써드립니다'. 실제로 이런 직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가와 이토의 소설 <츠바키 문구점>의 세계에선 엄연히 존재하고 적지 않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겉보기엔 평범한 문구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대로 편지를 대필해온 츠바키 문구점의 새로운 주인 '아메미야 하토코', 일명 '포포'의 직업이 바로 대필이다. 


포포는 어려서부터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로부터 대필가가 되기 위한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 어릴 때는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뛰어노는 동안 자기만 글씨 연습을 하는 게 억울하기만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할머니에게 말이 좋아 대필이지 사기라고 대들기도 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츠바키 문구점의 새 주인이 된 지금은 과거의 일이 부끄럽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밀려드는 의뢰를 해결하느라 바쁘고,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배우지 못한 게 한스럽다. 


그렇다고 포포의 실력이 형편없는 건 결코 아니다. 의뢰인이 찾아오면 일단 음료 한 잔을 대접한 후 의뢰인의 사연을 천천히 듣는다. 사연을 다 들으면 몇 시간 또는 며칠의 말미를 얻은 다음, 편지에 적을 말을 곰곰이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바로 떠오르는 법은 결코 없기에 요리를 하거나 외출을 하거나 이웃과 수다를 떨면서 기분 전환을 한다. 그러다 보면 예술가에게 '창작의 신'이 내려오듯 포포에게도 '대필의 신' 같은 게 내려와 편지에 적을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편지에 적을 말이 떠오르면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을 사람, 사연과 편지 내용에 어울리는 편지지와 필기구, 우표 등을 차례로 고른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할머니에게 보낼 편지에는 정성스레 말린 압화를 이용해 편지지를 만들고, 절연하고 싶은 지인에게 보낼 편지에는 사랑과 증오가 섞인 복잡한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특별한 기술을 이용해 글씨를 쓴다. 포포가 쓴 편지의 원본이 책에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의 재미는 이것만이 아니다. 만화 <슬램덩크>,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무대이기도 한 가마쿠라가 배경이다 보니 가마쿠라의 유명 관광지와 음식점, 볼거리와 즐길 거리에 관한 이야기가 쉬지 않고 나온다. 번역가 권남희는 이 책을 번역하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가마쿠라 여행을 다녀왔을 정도다(번역가 권남희의 가마쿠라 여행기가 이 책 마지막에 역자 후기로 실려 있다. 이 글도 매우 재미있다!). 이 책은 2017 일본 서점 대상 4위에 올랐는데 나로서는 1위 <천둥과 벌꿀>보다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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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2017-11-18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중한 기억을 위해 펜을 고르고, 편지지를 고른다. 책을 읽으면 그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