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신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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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의 운동화>에 이어서 읽은 김숨의 소설집이다. '이혼', '읍산요금소', '새의 장례식' 이렇게 세 편이 묶였고, 세 편 모두 가부장제에 의해 희생된 여성의 삶을 그린다. '이혼'은 제목 그대로 이혼을 앞둔 한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 자체도 흥미롭지만, 소설에 삽입된 유대 민담이 놀라움을 넘어 충격을 준다. 동생한테 이런 이야기 아느냐고 물어보니 안다고 답한 걸 보면 유명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릴리트는 유대 민담에 등장하는 인물로, 최초의 여자이자 아담의 첫 아내였다. 민담에 따르면, 하느님은 릴리트를 아담의 갈비뼈가 아니라 아담과 똑같이 흙으로 빚은 뒤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만들었다. 그러니까 최초의 남자 아담과 최초의 여자 릴리트는 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첫날밤, 아담이 동침하려 했지만 릴리트는 그의 밑에 깔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을 주인이자 남편으로 섬기기를 거부한 릴리트는 하느님의 노여움을 샀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사탄이 되었다. 얼마 뒤 하느님은 흙이 아니라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고, 그렇게 해서 최초의 여자이자 아담의 아내는 릴리트가 아니라 하와가 되었다. (이혼, 21쪽) 


어려서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 이런 비화가 있었을 줄이야. 아담이 요구한 체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고 사탄 취급 당한 릴리트가 불쌍하고, 그런 줄도 모르고 아담의 짝이 되었고 나중에는 뱀에게 속았다는 원죄까지 뒤집어쓴 하와가 불쌍하다(아담XXX). 사탄이 남자 말 안 듣는 여자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남자에게 순종하지 않는 여자, 남자가 요구하는 체위를 거부하는 여자, 남자가 입지 말라는 티셔츠 입는 여자, 남자가 파는 마카롱 10개 먹는 여자 등등이 사탄이고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는 존재라면, 나는 사탄으로 살다가 하느님 없는 지옥으로 가고 싶다. 하느님도 '내 신'이 아닌데 하느님 믿는다고 어릴 때 교회 다니고 미션 스쿨 다니며 채플 들은 시간들(+헌금) 아깝다ㅠㅠㅠ 


이어지는 '읍산요금소'는 이혼 후 친권도 포기하고 매일 같이 폐쇄된 부스 안에서 남성 운전자들의 성희롱과 인신공격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그린다. 마지막에 실린 '새의 장례식'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자란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때리는 이야기가 나온다(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자란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때리는 이야기는 드문 듯). 김숨 작가. 좋다는 말 많이 들었는데 읽어보니 역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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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의 운동화
김숨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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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 뜨거운 이야기를 차갑게 썼을까. 김숨의 <L의 운동화>는 여러모로 나의 기대를 배신한 소설이다. L이 이한열 열사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 나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처럼 읽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소설을 상상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소설은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차갑고 서늘하다. 이한열 열사가 상징하는 독재 타도, 민주주의 같은 대의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마음에 남은 얼얼한 여운은 뭘까. 얼음을 만졌는데 동상이 아니라 화상을 입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미술품 복원 전문가인 '나'는 L(이한열 열사)이 타계하기 직전에 신은 운동화 한 짝을 복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진다. L은 19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 2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L의 희생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피격 당시 L이 신었던 운동화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다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L의 정신을 기리는 상징물로 남았다.


'나'가 복원을 망설이는 것은 L의 운동화를 복원할 실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L이 상징하는 가치에 공감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나'는 L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흉물처럼 남아 있는 L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일인지 고민한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하고 감상하는 것은 결국 산 사람들의 죄책감과 부채감을 달래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L이 신다 만 상태로 남아 있는 운동화에 손을 대는 것은 실상 복원이 아니라 훼손이 아닐까. L의 운동화는 1987년 당시 전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신었던 흔하디흔한 타이거 운동화 중 하나일 뿐인데, L이 신었다는 이유로 복원 대상이 되고 기념관에 전시되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일까. 애초에 이 운동화가 L이 신은 운동화이기는 한 걸까. 나머지 한 짝은 어디 있을까. 


소설의 모티프가 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는 실제로 존재한다(신촌역 8번 출구 근처에 있는 이한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으로 상상한 L의 운동화를 사진으로 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사진 속의 운동화는 L이 신은 운동화라고 보는 게 맞을까, 복원 전문가가 복원한 운동화라고 보는 게 맞을까. 낡고 해진 운동화는 30년이 지나도 복원할 수 있는데 왜 죽은 사람은 복원할 수 없을까. L이 남기고 간 사람들은 저 운동화를 보고 무엇을 생각할까.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끝없이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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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반납 여행 - 전후 일본 사학사의 한 컷 오래된 책을 찾아 자박자박 1
아미노 요시히코 지음, 김시덕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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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일 줄 알았는데 짐작과 달리 '고문서 반납'에 중점을 둔 인문 교양서에 가까운 책이다. 저자 아미노 요시히코는 일본 정부가 1949년에 세운 사회사 자료관에서 일한 적이 있다. 사회사 자료관에는 일본 정부가 전국 농어촌에서 수집한 엄청난 양의 고문서가 있었는데, 얼마 후 사회사 자료관은 재정난으로 인해 문을 닫고 저자도 고등학교 교사로 이직하면서 고문서는 갈 곳을 잃게 되었다. 


저자는 한동안 고문서의 존재조차 잊고 살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서 도둑'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문서를 빌려 갈 때는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여태까지 돌려주지 않았으니 도둑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리하여 저자는 무려 18년에 걸쳐 일본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고문서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고문서 반납 여행을 한다. 고문서를 빌려준 주인 입장에서 보면 1949년에 빌려준 문서를 1998년에야 돌려받았으니 50년 넘게 걸린 셈이다. 


저자는 고문서를 돌려주러 갈 때마다 주인에게 쓴소리를 들을 것을 각오했는데, 놀랍게도 고문서를 돌려받은 주인 대부분이 고문서를 돌려줘서 고맙다고 오히려 감사를 표했다. 심지어는 정부나 기업, 학교 등에서 일하는 '높은 사람들'이 고문서를 빌리고 돌려준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이니 고문서 외의 영역에서는 민간에 대한 횡포(갑질)가 얼마나 심할지 짐작이 된다(한국은 어떨까). 


저자는 고문서의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그동안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개념이나 역사 이론에 허구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농공상'이 대표적인데, 저자는 농업을 중심으로 일본의 경제가 발전했다는 기존 역사학의 관점은 잘못이며, 어민, 산민, 상인, 직공 등 그동안 천시된 '비농업' 분야의 경제인들이 일본 경제의 성장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고문서를 반납하기 위해 쓰시마(대마도)를 방문한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가 쓰시마의 전통 가옥이 일본의 전통 가옥과 다른 모습임을 깨닫고 그 이유를 묻자, 같이 방문한 연구자가 쓰시마의 전통 가옥은 제주도 또는 한국 남부 지방의 전통 가옥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답한다. 대체 얼마나 비슷할까. 궁금해서 쓰시마의 전통 가옥 사진을 검색해봤더니 일본의 전통 가옥을 연상케하는 사진만 나온다. 직접 가서 봐야 알 수 있는 걸까. 반납할 고문서는 없지만, 언젠가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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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삶의 정물화
문광훈 지음 / 에피파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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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조용한 삶의 한 장면을 포착해 사각의 화폭에 담은 정물화 같은 책이다. 저자 문광훈은 현재 충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가면들의 병기창>, <가장의 근심>, <심미주의 선언> 등이 있다. 책의 절반은 저자가 일상에서 건져올린 생각의 편린을 담은 글이고, 나머지 절반은 저자가 사랑하는 음악과 문학, 미술에 관해 평한 글이다. 


영화 <스틸 라이프>를 보고 쓴 글도 있다(스포일러 있음!!). 주인공은 고독사한 사람의 지인을 찾아 장례를 치르는 일을 하는 구청 공무원 존 메이. 예산을 너무 많이 쓴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날, 존의 아파트 바로 맞은편에서 살던 빌리 스토크가 죽은 채 발견되고, 존은 빌리를 위해 처음으로 사무실을 벗어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빌리의 지인을 찾는다. 마침내 존은 빌리의 지인을 찾아내고 빌리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는데, 하필이면 빌리의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존 역시 가족이나 연인, 친구 하나 없는 고독한 인간이었기에 존의 목숨이 꺼져가는 그 순간에도 존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고독사한 사람의 뒤처리를 하던 사람이 고독사하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메라가 멀찍이 떨어지자 그동안 존이 장례를 치러준 영혼들이 존의 곁으로 모여드는 모습이 보인다.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무척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한 장면일 것 같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가까이서 보면 지루하고 답답하고 억울하고 말도 안 되는 일 투성이지만, 멀리서 보면 제법 괜찮은 그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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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공감 - 우리가 나누지 못한 빨간 날 이야기
김보람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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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가 나오는 거니까 참아." 생리통을 호소할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생리로 인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 것 같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플 때에도 엄마가 해준 말을 되뇌이며 참았다. 엄마 말대로 나쁜 피가 몸에서 나오고 있는 중일 테니까. 나쁜 피가 나오면 내 몸은 더 깨끗해지고 건강해질 테니까.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를 만들고 책 <생리 공감>을 쓴 김보람 감독도 오랫동안 생리는 나쁜 피가 몸에서 나오는 것,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년 전 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네덜란드인 친구에게 우정의 상징으로 할머니가 만들어준 생리대 파우치를 선물했을 때, 네덜란드인 친구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네덜란드에선 사각형의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여성이 드물고, 자신은 그조차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오래 전에 '생리를 하지 않는 시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저자는 생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생리컵, 면생리대, 해면 탐폰, 스펀지 탐폰, 울 탐폰, 생리컵, 여성용 콘돔 등 다양한 생리 용품을 직접 사용해 보았고, 생리 경험을 공유하는 수많은 '피'자매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 과정을 통해 저자가 얻은 것은 직접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과 책 한 권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이기 때문에 당해야 했던 수많은 금지와 차별, 혐오를 인식하게 되었고, 자기 자신조차 남성의 시선에 동화되어 스스로를 부정하고 혐오하고(내 가슴은 왜 이렇게 작을까, 나는 왜 남자친구를 만족시키지 못할까) 있었음을 깨달았다. 


'생리=나쁜 피'라는 관념이 생긴 것도 생리 경험이 없는 남성들이 이 사회의 다수라서 벌어진 일이다. 알다시피 생리는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할 것을 대비해 형성된 자궁내막이, 착상이 이루어지지 않자 저절로 탈락해 배출되는 현상이다. 즉, 생리혈은 나쁜 피가 아니라 좋은 피, 건강한 피다. 매달 3일에서 7일 동안 좋은 피, 건강한 피가 수백 밀리리터씩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아프고 힘든데 '생리충', '피싸개' 소리까지 들어야 하나. 생리는 성적 흥분으로 비롯되는 현상이 아니므로 사정 또는 몽정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도 잘못이다.


<생리 공감>에는 이 밖에도 저자가 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면서 생리와 여성에 몸에 관해 새롭게 얻은 지식과 성찰이 담겨 있다. 김보람 감독을 처음 알게 된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김하나의 측면돌파 - 김보람 감독 편'과 교보문고 북뉴스 김보람 감독 인터뷰도 좋으니 관심 있는 분은 듣거나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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