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 백은별 장편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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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수아는 유복한 부모 슬하에서 사랑받으며 자랐고 학교생활도 원만하게 하고 있다. 수아의 가장 친한 친구는 윤서인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8년 동안 단짝으로 지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윤서와의 관계는 대체로 좋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서가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수아의 눈 앞에서. 윤서의 죽음은 수아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충격을 주었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과 친구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 수아를 계속 힘들게 했다. 그래서 수아는 1년 후 자신도 윤서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스스로 설정한 시한부 인생의 결과는 무엇일까.


백은별 작가의 소설 <시한부>는 여러 번 나를 놀라게 한 작품이다. 첫 번째는 제목이다. <시한부>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말기 암 같은 병에 의해 원치 않게 죽음을 앞두게 된 사람의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젊고 건강한 여자 중학생이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내용이라서 놀랐다. 두 번째는 소설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중학생인데 이들 중 다수가 죽음을 바란다는 점이다. 윤서와 수아뿐 아니라 이들의 주변 친구들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자해 또는 자살 충동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작가의 나이다. <시한부>를 쓴 백은별 작가는 2009년생, 올해로 15세다. 작가 자신이 교실에서 보거나 겪은 청소년들의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내용이 생생하고 작가의 메시지가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주인공 수아와 마찬가지로 가장 친한 친구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수아가 느끼는 감정적 고통이 허구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이 글은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나의 친구에게도 읽어주고 싶다.


"윤서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네가 생각날 때면 많이 그리워진다. 함께한 모든 기억이 그냥 많이 소중한 기억이다. 보고 싶다. 그냥 그때로 돌아가서 한 번 더 느끼고 싶다. 다시 살아 돌아와 달라는 말도, 내가 시간을 되돌아가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겠다. 그냥 그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어리고 순수했던 감정을 한 번 더 느끼고 싶다. 더 소중하게 간직할 텐데." (270쪽) 이별 후에 드는 감정과 생각이 희미해진 후 결국 그리움만이 남는다는 걸 작가는 어떻게 알았을까. 통찰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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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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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 시대의 고비키초. 극장과 유곽이 밀집해 있다는 이유로 악처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정월 그믐날 저녁에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여인의 옷을 입고 나타나 칼을 휘두른 소년의 이름은 기쿠노스케. 그로부터 2년 후, 한 사내가 고비키초에 나타나 그 날의 사건을 목격한 자들을 만나 한 사람씩 이야기를 듣는다. 이미 지나간 일인 데다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있겠느냐며 손사래치던 이들은 그 날의 사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려준다. 과연 이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어디로 데려갈까.


나가이 사야코의 소설 <고비키초의 복수>는 2023년 나오키상, 야마모토슈고로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은 마쓰이 게사코의 소설 <유곽 안내서>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일단 에도 시대의 유흥가를 주 무대로 삼은 점이 그렇고, 살아온 배경도 종사하는 직업도 다양한 사람들을 한 명씩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 그렇다. 공교롭게도 <유곽 안내서> 역시 나오키상 수상작(2007년)이다. <고비키초의 복수>를 읽으면서 구성과 내용에 흥미를 느꼈다면 <유곽 안내서>도 읽어보면서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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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CL midnight children 4
사카모토 신이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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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하커는 드라큘라 백작의 초대로 영국을 떠나 루마니아로 향하는 중이다. 다리도 불편한 외국인 소년이 혼자서 여행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걱정한다. 게다가 조나단이 루마니아로 출발하는 내일은 무시무시한 성 조지의 날. 이날은 자정을 알리는 종이 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악령들이 나타나 활개를 친다는 전설이 있다. 조나단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률을 공부하는 자신이 그런 비이성적인 미신을 믿겠느냐며 코웃음치고 예정대로 길을 떠난다. 과연 조나단은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사카모토 신이치의 서양풍 호러 미스터리 만화 <#DRCL midnight children> 4권은 빌헬미나의 친구 조나단 하커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그려진다. 이제까지는 영국의 명문 사립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배경이 한정적이고 장면이 비슷비슷한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조나단의 등장으로 인해 배경이 바뀌면서 새로운 사건, 참신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게 된 점이 좋았다. 이 만화 특유의 기이하고 으스스한 느낌은 여전하다. 요즘 유행하는 일본 만화들과 다른 결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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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못 내는 소녀는 「그녀가 너무 착하다」고 생각한다 11
야무라 이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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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유명한 광고음악 노랫말이 있다. 이 만화의 주인공 코코사키가 바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남들이 속으로만 하는 생각을 알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 코코사키는 심인성 장애로 인해 말을 하지 않는 전학생 마시로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걸 좋아한다. 마시로로서는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코코사키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마침내 코코사키는 자신의 비밀을 마시로에게 고백하기로 정한다. 과연 마시로는 코코사키의 비밀을 알고도 코코사키의 친구로 남아줄 것인가.


마시로의 캐릭터가 워낙 순하고 착해서 코코사키의 비밀을 안 후에 실망하거나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아닌 자신에게만 털어놓은 이유가 뭐냐며 오히려 그 부분을 궁금해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코코사키가 마시로를 생각하는 만큼 마시로도 코코사키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한편 코코사키는 마시로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에 마시로의 옛날 기억을 되살려 상처를 달래주고 싶어한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을 만큼 큰 상처인데 과연 코코사키가 해결할 수 있을까. 감동의 결말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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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인 김규림 작가의 두 번째 독립출판물이자 <도쿄규림일기>, <뉴욕규림일기>의 뒤를 이은 '규림일기'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은 <도쿄규림일기>, <뉴욕규림일기>와 마찬가지로 저자의 손글씨와 그림이 직접 인쇄되어 있다. 표지는 중국의 국기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바탕에 금색으로 글씨가 인쇄되어 있는데, 책의 본문을 보니 실제로 존재하는 중국의 어떤 인쇄물을 본딴 표지라고 한다(어떤 인쇄물인지는 책으로 확인하시길...ㅎㅎ). 규림일기 시리즈 리뷰마다 썼지만, 매번 표지 아이디어가 너무나 기발하고 절묘하다. 다음 규림일기 표지는 무엇으로 하실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연변을 여행지로 택한 이유가 재미있다. 저자는 예전부터 북한에 가보고 싶었는데,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한글의 멀티버스'를 보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연변의 사진을 보게 되었고,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연변 역시 한글의 멀티버스를 볼 수 있는 장소라는 걸 깨달았다. 한글의 멀티버스를 체험하기 위한 여행이라서 그런지 이번 책에는 <도쿄규림일기>, <뉴욕규림일기>과 다르게 사진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연변에서 발견한 한글을 보여주기 위해 각종 간판, 표지판, 메뉴판, 상품 포장 등의 사진이 나오는데, 과연 신선하고 부지런히 기록한 저자의 열정 또한 대단하다. 


문구인인 저자는 연변에 도착해서도 제일 먼저 문구점에 들렀다. 뉴욕이나 도쿄와 달리 연변은 문구로 유명한 이미지가 아니라서 만족할 만한 문구 쇼핑을 하셨는지 궁금했는데, 소개해주신 문구들을 보니 '문구의 세계는 넓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해주는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저자의 여행기를 보면 문구점 외에도 서점,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문구를 구경하거나 구입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번 여행기에는 연변대학에서 만년필을 구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식의 물건 구입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그 자체로 기념품이 되고 여행이 된다는 점에서 지불한 가격 이상의 효용을 주는 것 같다. 나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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