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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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사망한다. 남자의 이름은 K. K는 15년 전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K는 자신의 사망 보도 이후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살면서 한 여자의 이름과 얼굴을 빌려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여자는 K가 쓴 소설을 읽고 작가 행세를 하면서 지냈다. K가 사망한 날 아침, 여자는 죽은 K의 책상에서 K가 남긴 서류 봉투를 발견한다. 여자는 K가 남긴 서류 봉투를 K의 딸이 재직 중인 대학 연구실에 가져다 놓는다. 


K의 딸은 연구실 문 앞에 놓인 서류 봉투를 보고 깜짝 놀란다. 봉투에 적힌 이름이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그의 이름인 '손승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인 '강재인'이었기 때문이다. 봉투를 열어 그 안에 든 서류를 본 K의 딸은 그것이 15년 전 사망한 아버지 K가 쓴 글이란 걸 알게 된다. 대체 누가 왜 이런 글을 자신의 연구실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일까. 15년 전 사망한 아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정녕 없는 걸까. 


천희란의 소설 <K의 장례>는 남성 소설가 K의 두 번에 걸친 사망과 이를 통해 연결된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이름'이다. 문제의 중심에 있는 소설가 K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 반면, K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두 여자는 각각 전희정, 손승미라는 가명을 쓴다. 전희정, 손승미는 가짜 이름(가명)이기도 하지만, 남이 지어주지 않고 자신이 직접 지은 이름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진짜 이름'이기도 하다. 


두 여자의 차이점은, 전희정이 자신의 이름만 스스로 짓고 작품 활동은 K에게 의존한 반면, 손승미는 자신의 이름도 스스로 짓고 작품 활동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특히 전희정은 K가 쓴 소설로 유명 작가도 되고 돈도 많이 벌지만, 자기 스스로 이룬 성취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손승미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어떤 이름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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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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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랜드는 어릴 때 삼촌의 저택에서 지도 한 장을 보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 그것은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의 언어를 전부 배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외국어 공부에 몰두한 그는 번역가로 커리어를 쌓다가 출판사 사장이었던 아내의 뒤를 이어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그렇게 번역인으로 출판인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줄 알았던 그가 어느 날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가족이 있는 트리에스테를 떠나 자신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런던으로 간다. 


런던에서 레이랜드는 돌아가신 삼촌이 자기 앞으로 남긴 저택에서 지내며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본다. 그는 어린 시절 강압적인 아버지와 피상적인 학교 교육에 질려서 가출을 감행했다. 호텔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외국어를 공부했고,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번역가로 데뷔했다. 기자인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아내를 따라 아내의 고향인 트리에스테로 갔다. 그곳에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키웠고, 현재 그의 딸은 의사, 아들은 변호사가 될 예정이다. 즐거운 삶이었지만, 몇 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로는 예전만큼 즐겁지 않다. 


삼촌의 책상에서 '이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번역하는 일은 그만하고 너 자신의 글을 쓰라'는 내용의 편지를 읽은 후로 레이랜드는 남은 생을 자신의 글을 쓰는 데 바쳐야 할까 고민하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레이랜드는 이웃인 케네스 버크와 친구가 되고, 감옥에 갇혔을 때 통역해준 것을 계기로 러시아어 번역가 안드레이와 교류하게 된다. 오랫동안 신세 진 런던의 출판인 크리스티 모자에게 신세를 갚을 일도 생기고, 소설가 프란체스카 마르케세, 메리 앤과도 재회한다. 


<언어의 무게>는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된 원작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가 16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중요한 반전이 있는데, 그 반전이 인터넷서점 책 소개에 떡하니 나와 있는 걸 보면 반전이 아닌가 보다(반전을 모르고 읽었던 나로서는 반전을 읽고 충격이 상당히 컸기에 반전이 무엇인지 이 글에 적지 않겠다). 반전을 알기 전에는 시한부 판정 후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을 알고 나서는 어떤 '죽음'이 존엄한 죽음인가에 관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소설에는 배우자가 심각한 병에 걸려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 다른 배우자가 고의로 사망시킨다면 살인인지 존엄 상실인지에 관한 논쟁이 여러 번 등장한다. 레이랜드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나서 남은 생을 정리하는 한편으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다량을 섭취할 경우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약을 준비한다. 이 경우 후자는 극단적 선택일까 아니면 존엄 상실일까.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사는 것과 목숨이 다하기 전에 스스로 생을 마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존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또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런던으로 돌아온 레이랜드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동안 자신이 내렸던 선택들을 반추한다. 만약 자신이 가출하지 않고 아버지와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대학에 진학했다면 어땠을까. 호텔 경비원으로 취직하는 대신 철도원이 되었다면. 아내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내를 따라 트리에스테로 이주하지 않았다면. 아내의 뒤를 이어 출판사 사장이 되지 않았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기 전에 출판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면... 


레이랜드 앞에 선택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지만, 레이랜드는 그중 몇 가지만을 선택했다. 선택의 결과 레이랜드의 삶은 이렇게 되었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의 결과로도 레이랜드의 삶은 이렇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생은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러니 선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후회할 필요도 없는 것은 아닐까. 이제 더는 어제도 내일도, 삶도 죽음도 생각하지 않고 눈 앞의 소설에만 집중하는 레이랜드를 보니, 얼마 전에 읽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본 "다른 인생은 없다, 지금을 살아라'라는 경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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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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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였던 엠마 웹스터는 여성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기 위해 정치에 투신해 노동당 하원의원이 되었다. 현재 엠마는 불법 촬영물에 대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디언>지의 표지를 장식할 기회가 오고, 법안 홍보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한 엠마는 촬영에 응한다. 하지만 표지가 공개된 후 사람들의 반응은 엠마의 예상과 달랐다. 대중은 엠마가 인터뷰에 설명한 법안의 내용보다 엠마의 립스틱 색깔과 하이힐의 높이에 관심을 보였다. 


네티즌들은 물론이고 엠마의 지역구에 사는 유권자들마저 엠마가 노동당 정치인답지 않다고 등을 돌렸다. 여성들은 엠마가 페미니스트답지 않다고, 남성들은 엠마가 여성 인권만 챙기고 남성 인권에는 무심하다고 비난했다. 쏟아지는 공격에 정신이 혼미해진 엠마는 예전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한다. 그 결과 딸이 불법 촬영물 유포 가해자로 몰리고, 엠마 자신도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 과연 엠마는 정치인으로서,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벼랑 끝에 놓인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세라 본의 소설 <레퓨테이션 : 명예>는 촉망받는 여성 정치인이 언론과 대중의 집중 포화를 받으며 추락하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린다. 사실 요즘은 인터넷과 SNS가 워낙 발달해서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닌 일반인도 자칫하면 소설에서 엠마가 당한 일과 비슷한 일(악플 세례, 스토킹, 협박 등등)을 당할 수 있다. 심지어 '불명예도 명예'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만한 일을 하고(예를 들면 막말을 일삼는 정치인이나 사생활 팔이하는 연예인들) 그걸로 인기를 유지하고 돈을 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엠마가 좀 더 뻔뻔했으면, 덜 착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가디언>지의 표지가 공개되고 사람들이 비난할 때 "내가 얼마나 예쁘고 매력적이면 저럴까"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전 남편이 애 엄마가 너무 나대는 거 아니냐고 비난할 때 변명 대신 그렇게 걱정되면 네가 와서 직접 챙겨주라고 응수했다면 어땠을까. 호감이 있는 남자에게 예의를 차리는 대신 솔직하게 호감을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늘 겸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착하게 굴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엠마를 점점 더 나쁜 길로 이끈 건 아닐까. 


1권을 순식간에 읽었고 이제 2권을 읽을 차례인데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너무나 기대된다. 영상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궁금하다. 작가님의 전작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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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왕 애장판 6
다카하시 카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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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에서 페가수스와의 매직&위저드 대결에서 패한 유우기는 페가수스의 초대로 진정한 듀얼리스트 킹을 가르는 대결에 참가하게 된다. 대결의 장소는 듀얼리스트의 왕국. 약칭 '왕국'으로 불리는 이곳은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넓이 5km 정도의 작은 섬으로 그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곳에는 주최 측이 과거 전적 등을 철저히 조사해 선발한 정예들만 모여 있고, 그중에는 지난번 대회에서 우승한 인섹터 하가, 준우승한 다이너소어 류자키 등도 있다. 


왕국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듀얼에서 인섹터 하가, 바다 사나이 카지키 료타를 연이어 물리친 유우기는 갑자기 등장한 의문의 소년과 듀얼을 하게 된다. 알고 보니 소년의 정체는 카이바의 동생 모쿠바. 정체가 들통난 모쿠바는 페가수스가 유우기를 왕국에 초대한 목적을 알려준다. 페가수스는 전부터 카이바 코퍼레이션을 손에 넣고 싶어 했는데, 카이바가 DEATH-T 계획에서 유우기에게 패한 이후로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경영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위기에 처한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임원들은 회사가 망할 위기에 놓이게 된 원인인 유우기를 페가수스가 이기면 회사를 페가수스에게 넘기기로 약속했다. 이를 알게 된 모쿠바는 유우기가 페가수스에게 지기 전에 유우기의 스타칩을 훔쳐서 유우기와 페가수스의 대결을 막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쿠바가 모르는 사이, 카이바는 의식을 되찾아 과거의 수준으로 실력이 회복되어 있었다...! 마침내 재회하는 유우기와 카이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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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왕 애장판 5
다카하시 카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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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왕> 하면 카드 배틀, 카드 배틀 하면 <유희왕>일 정도로 <유희왕>과 카드 배틀의 관계는 깊다. 하지만 의외로 <유희왕>에서 카드 배틀 게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연재를 개시한 때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유희왕>은 원래 단편 현식으로 연재가 진행되었으며 <유희왕> 애장판 5권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단편 위주의 전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유희왕> 5권에 등장하는 '왕국 편' 이후부터 카드 배틀 게임을 중심으로 한 장편 에피소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언제부터인가 유우기네 반에서 쉬는 시간만 되면 아이들이 카드 배틀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게임의 이름은 '매직&위저드'로, 플레이어가 마법사(위저드)가 되어 몬스터 소환이나 마법(매직)을 구사해 싸우는 카드 배틀 게임이다. 마침 TV에서 매직&위저드 토너먼트 우승전을 방영하여 죠노우치, 안즈, 할아버지와 재미있게 본 유우기는 한 통의 소포를 배달 받는다. 소포의 발신인은 세계적인 게임 업체 인더스트리얼 일루전 사의 명예회장이자 매직&위저드를 만들어낸 천재적인 게임 디자이너 페가수스 J 크로포드인데...! 


페가수스는 소포와 함께 보낸 비디오 영상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비디오 속 저와 매직&위저드 승부를 하죠!"라며 유우기를 도발한다. 사전 녹화된 비디오 속 사람과 어떻게 게임을 하는지 의문을 가진 것도 잠시. 시합이 시작되자 페가수스는 유우기의 패를 전부 읽으며 가볍게 승리한다. 분해 하는 유우기에게 페가수스는 매직&위저드의 진정한 듀얼리스트 킹을 정하는 무대에 나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시작된 듀얼리스트의 왕국에서의 대결.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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