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라비, 내 인생을 산다
아네스 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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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라비, 내 인생을 산다>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저자 아네스 안의 이전 책 <프린세스 라 브라바>와 상당히 유사하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도 그렇고, 이들 대부분이 주변의 도움이나 천부적인 재능 없이 자수성가했다는 점, 미술, 패션, 애니메이션, 엔터테인먼트 등 예술 관련 업종에 종사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프린세스 라 브라바>는 제목의 '프린세스'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여성들의 성공 스토리를 다룬 반면, <세 라비, 내 인생을 산다>는 남녀 모두 나온다는 점 정도일까.

 

 

허나 이 책을 읽는 마음은 <프린세스 라 브라바>를 읽을 때와 전혀 달랐다.  

2010년 3월 <프린세스 라 브라바>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대학을 막 졸업했을 시점이라 (밥벌이의 어려움을 모르고) 책에 실린 인물들의 성공을 그저 멋있고 부럽게만 보았다. 반면 이번에 <세 라비, 내 인생을 산다>를 읽으면서는 책에 적힌 성공보다도 적히지 않은 실패와 좌절, 고생이 눈에 그려져 마냥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도 살기가 팍팍한데 이국에서 혼자 힘으로 성공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겪어보지는 못했어도 상상은 되었다.

 

 

그렇다고 이들처럼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거나 미래를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 

이런 성공 스토리가 있는가 하면 나에게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성공 스토리가 있을 터. 이들의 성공을 무작정 부러워만 할 필요도, 호기롭게 따라할 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관심 있는 분야를 파고들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나한테 잘 맞는 일을 전보다 잘 알게 된 덕분이지,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어서가 아니다. 이런 류의 성공 스토리 모음담은 앞으로 잘 읽게 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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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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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검>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국내에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다수를 소개한 출판사 북스피어는 '미야베 월드 2막'이라는 타이틀까지 만들어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 미스터리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말하는 검>은 발표 시기로는 시리즈 첫번째가 아니지만, 시리즈의 주인공 오하츠가 처음 등장하는 소설이 실려 있어 제목을 '오하츠 비긴즈'로 했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미스터리 소설 작가가 시대물에 도전하다니!

처음엔 생소하다 못해 생뚱맞다는 생각조차 들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시대물을 쓰기 위해 (돈 되는 부업으로) 현대물을 쓴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1980년대 후반에 초고가 완성되고 1990년대 초반에 발표된 작품들인데도 오래된 느낌이 없고, 작가가 이후에 쓴 현대물 <용은 잠든다>, <낙원> 등에도 나온 바 있는 초능력 '사이코메트리'가 등장하며(말하는 검), 일본의 전통 괴담을 다양한 방식으로 차용하고 재구성해 초기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에도 시대, 그것도 서민가를 배경으로 택한 점도 흥미롭다.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차지한 17~19세기 중후반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 우리로 치면 조선 후기쯤으로, 일본 또한 이 시대에 막부가 설치된 에도, 즉 도쿄를 중심으로 서민 문화가 융성했다. 현대물에서도 도쿄의 서민가를 주로 배경으로 택했던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물에서도 에도의 서민가를 배경으로 삼았다. 귀족도, 무사도 아닌 평범한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삶의 애환을 그린 점도 비슷하다. 

 

 

미미 여사와 에도 시대로 타입 슬립하기

이 책은 현대물로 부동의 인기를 자랑하는 작가가 쓴 시대물이라는 점, 일본 문학계에서 인기 순위 1,2위를 다투는 미야베 미유키의 신인 시절 작품이라는 점, 에도 시대의 정취와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까지 재미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국내에 출간된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이 모두 열한 편(모두 북스피어에서 '미야베 월드 2막'이라는 타이틀로 나왔다)에 이른다는 사실! 올 가을과 겨울, 다른 데로 여행갈 것 없이 나는 미미 여사와 에도 시대로 타입 슬립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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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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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것도 바쁜데,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이유는 대체 뭘까? 

남에게 묻기 전에 먼저 내 자신에게 묻는다. 시작은 인터넷서점 기자로 뽑힌 것이었다. 그 전에도 책을 좋아했지만 인터넷서점 기자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정기적으로 서평을 쓰게 되었다. 서평을 블로그에 한편 두편 올리다보니 일기나 쓰던 블로그가 순식간에 서평 블로그가 되었고, 좋아하는 블로거나 서평가들처럼 체계적으로 책을 읽고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다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고나 할까.

 

 

<밑줄 긋는 여자>의 저자 성수선의 독서는 조금 다르다. 

저자의 대외적인 직함은 모 대기업 해외영업 담당 과장. 학창시절에 소설 한 편을 완성한 적도 있고, 대학에서는 독문학을 전공했으며, 벌써 십 여 년째 서평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책 읽기와 글 쓰기에 조예가 깊지만, 그녀에게 책은 생활에 맛과 향을 더하는 양념일 뿐 메인 요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일부러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건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고 할 수준은 아니다.

 

 

저자 성수선의 책 읽기는 치열하다. 

어떤 날은 직장인답게 피터 드러커의 경제 경영서를 읽는가 하면 사회 생활을 좀 더 현명하게 해볼 요량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김연수나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풀거나 알랭 드 보통의 산문집이나 지승호의 인터뷰집을 읽으며 무뎌져가는 지성을 다듬기도 한다. 양도 상당하다. 책에 실린 글은 모두 28편. 편당 한 권에서 세 권 가량의 책을 소개하니 50권 정도의 책을 읽은 셈이다. 직장인 1년 평균 독서량이 9.8권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무색하다.

 

 

허나 그저 지식을 구하고 지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건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공짜로 여행 간다는 생각에 들뜨는 해외 출장 길에 저자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었고, 또 어떤 이는 음주가무로 사회 생활의 고단함을 풀 때 저자는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었다. 지식을 구하지 않아도 되고 더 쉽게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때에도 굳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터ㅡ. 혹 그것은  엉켜있는 생각을 글자로, 문장으로 풀어낼 때의 희열과, 책에서 나와 똑같은 생각,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담긴 문장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아닐까.

 

 

책은 더없이 좋은 벗이자 연인.

나도 저자처럼 하루 종일 밖에서 시달리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때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책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면 내 마음은 마치 우물에 잠기듯 고요해지고, 그 말 중에 내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이나 내가 하려고 했던 생각이 있을 때면 반가운 친구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기쁘고, 때로는 '살아있길 잘 했다'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그럴 때면 책은 그저 지식의 창고나 유흥 거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더없이 좋은 벗이자 연인임을 새삼 느낀다.

 

 

반전을 기대하며...!

생각해 보면 다사다난한 20대를 보내는 동안 위로해 줄 친구나 연인을 찾을 수 없을 때에도 책만은 곁에 있어주었고, 세상 사람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고 응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책만은 내편이 되어주었다. 내 꿈과 상상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고 확인해주었고, 생각만 했던 일을 실제로 해보라고 등을 떠밀어주었다. 어쩌면 저자도 바쁜 현실을 살면서 틈틈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틈틈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현재 매일매일이 과중한 업무의 연속일 만큼 성공한 것이 아닐까? 먹고 사는 것도 바쁜데 책을 읽는 건, 어쩌면 이런 반전을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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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잖아 - 꿈을 향한 두렵고도 짜릿한 30일간의 기록
릴루 마세 지음, 윤민.이강혜 옮김 / 윤앤리 퍼블리싱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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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아우터를 고르느라 머리가 아프다. 

백화점과 쇼핑몰, 지하상가에서도 보고 인터넷 쇼핑몰도 다 뒤져봤는데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하다못해 옷 한 벌을 고를 때도 이런데 삶은 어떨까. 남의 눈 신경쓰고, 돈 따지고 나이 따지느라 포기하거나 고민만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내 나이 벌써 서른. 나름 충실한 이십대를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다가오는 삼십대를 생각하니 대학원도 가고 싶고, 유학도 가고 싶고, 돈도 더 벌어야겠고, 글쓰기나 번역도 제대로 배워보고 싶고 등등 머리에 들어오는 일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막상 뭐라도 하려고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 오면 우유부단해지고 결정장애가 생기는 이유는 대체 뭘까? 그 누구도 아닌 내 인생인데.

 

 

여기, 더 이상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고민만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살기로 결심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릴루 마세. 2009년 잘 다니던 직장에서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저자가 당시 가지고 있던 거라곤 두어 달 치 생활비가 전부. 외국인이라 재취업할 기회도 한정되어 있고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오라고 사정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녀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오프라 윈프리처럼 세계적인 토크쇼 진행자가 되겠다는, 조금은 허황된 듯한 꿈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우린 아직 릴루 마세가 누군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오프라 윈프리를 실제로 만났고 이야기까지 나눴다. 지역 방송국이긴 하지만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진행하는 도전도 해냈다. 세계를 여행하며 유명 작가 및 예술가, 힐러 등을 인터뷰하고 영상을 공유하는 <쥬시 리빙 투어>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 책 <내 인생이잖아>를 써서 작가의 꿈도 이뤘다. 직장에서 해고되었을 때 현실과 타협해 재취업을 하거나 모국으로 돌아가거나 집에 틀어박혀 고민만 했더라면 하나도 이룰 수 없었을 일들이다.

 

 

내게는 책 읽기가 그렇다. 

십대나 이십대 초 언젠가 막연히 책을 천 권쯤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나고 관심가는 책이 생길 때마다 한 권씩 읽었다. 그 결과 어느새 읽은 책이 천 권 이상. 이걸로 뭔가 대단한 일을 이루거나 한 건 아니지만, 생각만 하고 그 시간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놀러다녔다면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지르고 보는 도전 정신. 그거야말로 성공으로 가는 비결이 아닐까. 일단 오늘은 아우터를 지르는 걸로 (^^) 성공의 첫 단추를 끼워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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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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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는 해마다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소설집이다. 
이 책은 그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 핀볼> 이후에 나왔으며,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이 중 <캥거루 통신>과 <오후의 마지막 잔디>를 쓰는 사이에 세 번째 장편 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썼다고 한다. 내가 읽은 버전은 작가의 전면 개고를 거친 이른바 '완전판'인데, 그 말이 무색하게도 작가 후기를 보니 크게 고치지는 않았단다. '미묘하게 손대서 매끄럽게 만들기보다는 불투명한 생각 그대로를 전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이 작가의 캐릭터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해 독자로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표제작 <중국행 슬로보트>는 항구 도시 고베 출신인 그의 경험이 반영된 듯 싶었고(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다),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와 <뉴욕 탄광의 비극>은 그의 여느 소설과 다르지 않은 분위기라서 친숙했다. <캥거루 통신>은 다소 특이했다. 화자가 백화점 불만 접수처 담당자라는 설정인데, 이 소설이야말로 그의 경험이 반영되었다고 해서 재밌었다. 백화점에 불만을 제기하는 하루키라... 왠지 어울리는 듯(하다고 하면 실례일까). <오후의 마지막 잔디>는 현대 미국 소설을 읽는 듯 했고,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는 <양을 쫓는 모험>을 연상케 했다. 직전에 읽은 그의 이후 단편집들과 <도쿄 기담집> 등에 비하면 못 미치지만, 하루키의 초기 단편을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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