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먹고 사는 것도 바쁜데,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이유는 대체 뭘까? 

남에게 묻기 전에 먼저 내 자신에게 묻는다. 시작은 인터넷서점 기자로 뽑힌 것이었다. 그 전에도 책을 좋아했지만 인터넷서점 기자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정기적으로 서평을 쓰게 되었다. 서평을 블로그에 한편 두편 올리다보니 일기나 쓰던 블로그가 순식간에 서평 블로그가 되었고, 좋아하는 블로거나 서평가들처럼 체계적으로 책을 읽고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다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고나 할까.

 

 

<밑줄 긋는 여자>의 저자 성수선의 독서는 조금 다르다. 

저자의 대외적인 직함은 모 대기업 해외영업 담당 과장. 학창시절에 소설 한 편을 완성한 적도 있고, 대학에서는 독문학을 전공했으며, 벌써 십 여 년째 서평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책 읽기와 글 쓰기에 조예가 깊지만, 그녀에게 책은 생활에 맛과 향을 더하는 양념일 뿐 메인 요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일부러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건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고 할 수준은 아니다.

 

 

저자 성수선의 책 읽기는 치열하다. 

어떤 날은 직장인답게 피터 드러커의 경제 경영서를 읽는가 하면 사회 생활을 좀 더 현명하게 해볼 요량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김연수나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풀거나 알랭 드 보통의 산문집이나 지승호의 인터뷰집을 읽으며 무뎌져가는 지성을 다듬기도 한다. 양도 상당하다. 책에 실린 글은 모두 28편. 편당 한 권에서 세 권 가량의 책을 소개하니 50권 정도의 책을 읽은 셈이다. 직장인 1년 평균 독서량이 9.8권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무색하다.

 

 

허나 그저 지식을 구하고 지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건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공짜로 여행 간다는 생각에 들뜨는 해외 출장 길에 저자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었고, 또 어떤 이는 음주가무로 사회 생활의 고단함을 풀 때 저자는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었다. 지식을 구하지 않아도 되고 더 쉽게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때에도 굳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터ㅡ. 혹 그것은  엉켜있는 생각을 글자로, 문장으로 풀어낼 때의 희열과, 책에서 나와 똑같은 생각,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담긴 문장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아닐까.

 

 

책은 더없이 좋은 벗이자 연인.

나도 저자처럼 하루 종일 밖에서 시달리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때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책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면 내 마음은 마치 우물에 잠기듯 고요해지고, 그 말 중에 내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이나 내가 하려고 했던 생각이 있을 때면 반가운 친구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기쁘고, 때로는 '살아있길 잘 했다'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그럴 때면 책은 그저 지식의 창고나 유흥 거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더없이 좋은 벗이자 연인임을 새삼 느낀다.

 

 

반전을 기대하며...!

생각해 보면 다사다난한 20대를 보내는 동안 위로해 줄 친구나 연인을 찾을 수 없을 때에도 책만은 곁에 있어주었고, 세상 사람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고 응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책만은 내편이 되어주었다. 내 꿈과 상상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고 확인해주었고, 생각만 했던 일을 실제로 해보라고 등을 떠밀어주었다. 어쩌면 저자도 바쁜 현실을 살면서 틈틈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틈틈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현재 매일매일이 과중한 업무의 연속일 만큼 성공한 것이 아닐까? 먹고 사는 것도 바쁜데 책을 읽는 건, 어쩌면 이런 반전을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