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디아의 비밀 비룡소 걸작선 2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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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백화점에 갇혀서 하룻밤을 묵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백화점에는 옷도 있고 침대도 있고 먹을 것도 있으니 큰 어려움 없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건 그냥 백화점에서 파는 '비싸고' 예쁜 옷들과 '비싸고' 좋은 가구들과 '비싸고' 맛있는 음식들을 원없이 누려보고 싶다는 욕망에 지나지 않았다. 


1968년 뉴베리상 수상작 <클로디아의 비밀>의 주인공 클로디아와 제이미는 백화점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며칠 밤을 묵는다. 똑같은 일상이 지겨워진 열두 살 소녀 클로디아는 동생 제이미를 꼬셔서 가출을 결심한다.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하나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장료가 무료인 데다가 관람객이 워낙 많아서 매일 같은 얼굴이 보여도 눈치채는 사람이 없을 터. 치밀한 준비 끝에 가출을 감행한 클로디아와 제이미는 계획한 대로 박물관 안에서 먹고 자고 씻고 공부하고 놀면서 흥미진진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디아와 제이미는 미술관이 최근 구입한 천사상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을 발견한다. 대체 천사상에 무슨 비밀이 숨어 있길래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걸까. 궁금해진 두 사람은 천사상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 가출하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게 된다. 


처음에는 이 맹랑한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 언제 경비원한테 들켜서 부모님 집으로 돌아갈지 - 가 궁금했는데, 나중에는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생활을 해나가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이런 모험을 통해 전보다 현명해지고 성숙해진 아이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아이들에게 - 어른들에게도 - 필요한 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선택하게 놔두는 관대한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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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1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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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삶의 조건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 혹은 달라지지 않는지 - 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작품. 오랫동안 읽혀야 할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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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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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다. 이는 인종 문제에 있어서도, 젠더 문제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가 1976년에 발표한 소설 <킨>은 현대의 흑인 여성 다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1815년 미국 메릴랜드 주의 노예 농장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시간 여행을 하기 전까지 다나는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큰 차별을 겪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직업 제한과 임금 차별이 존재하지만, 현대에는 흑인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노력하면 직업을 가질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으므로 옛날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다나는 자신이 흑인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백인 남자 친구 케빈은 그런 다나를 이해하는 척 달래면서도, 다나의 개성을 무시하고 다나가 흑인 여성이라는 사실만을 강조하는 발언을 해 다나를 화나게 만든다. 


내가 이상한 걸까, 세상이 이상한 걸까. 혼란스러워하던 다나에게 일어난 시간 여행이라는 사건은, 다나가 처한 불합리한 상황을 훨씬 더 뚜렷하게 볼 수 있게 도와준다. 1815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는 여전히 노예 제도가 존재하고 백인에 의한 흑인 차별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미래에서 온 다나는(물론 그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지는 않지만) 어느 누구의 노예도 아니지만 피부색 때문에 노예 취급을 당하고 무보수 노동을 착취당한다. 같은 노예라도 여성은 백인 남성 주인의 '재산'이 될 노예를 생산(출산)할 의무를 지고 원하지 않는 남성과 성교를 강요받거나 강간을 당한다. 


시간 여행을 통해 다나는 노예 제도가 있었던 시절이나 없어진 시절이나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다. 물론 19세기에 비하면 20세기의 흑인들이 전보다 훨씬 나은 사회적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그와 같은 변화는 차별을 인식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세기에도 (그리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 차별 역시 그러한 차별을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완전히 철폐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도 마찬가지다.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당연시하는 인간은 결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없다. 


우연히 이 시간 여행에 휘말려 19세기 미국 노예 제도의 실상을 두 눈으로 보게 된 케빈은 더 이상 흑인의 삶, 여성의 삶에 대해 함부로 입 열지 않는다. 자신이 아무리 흑인 여성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한다 한들, 백인 남성으로서 존재하는 한 인식과 경험의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다나는 케빈을 자신과 남은 삶을 함께 살아갈 동반자로서 받아들인다. 알 수 없으므로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 알지 못하겠지만 알고 싶다는 마음이 그들 사이에 놓여 있던 인종의 벽, 젠더의 벽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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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티의 플랜B -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의 비밀
나희선(도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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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구독하는 채널만 보고 게임도 안 해서, 사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도티'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책이 정식 출간되기 전에 서평단으로 이 책을 만났을 때, 과연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막상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는 내가 아는 세상이 참 좁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를 잘 모르고 게임을 안 한다는 이유로 이런 사람의 존재를 몰랐다는 게 아쉽기까지 했다. 몸이 열 개가 아닌 이상, 책으로라도 부지런히 세상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의 저자 도티의 본명은 '나희선'이다. 국내 최고 유튜브 크리에이터이자 국내 최고 MCN 기업 샌드박스네트워크의 공동 창업자인 그는,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법대생이었다. 연세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로스쿨 열풍을 보고 취업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메이저 언론사 취업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만난 차선책, '플랜B'가 유튜브였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유튜브가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미디어 플랫폼이 아니었다. 유튜버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드물었다. 잘 되면 자기소개서 한 줄, 못해도 손해 볼 건 없다는 생각으로 1만 원짜리 헤드셋만 달랑 가지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구독자 수 1천 명을 목표로 시작한 유튜브는 어느새 구독자 수 250만 명을 돌파했다. 그사이 취업 준비생이었던 그는 국내 최정상 유튜브 크리에이터이자 잘나가는 기업의 공동대표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성공은 진작에 다 이루었다. 도티처럼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는 초등학생들이 부지기수다. 만약 유튜브라는 플랜B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메이저 언론사 취업이나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꿈에 매달려 있었다면 어땠을까. 도티 자신은 물론 도티의 팬들에게도 아찔한 일이다. 


이 책에는 도티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된 과정을 비롯해 샌드박스 네트워크를 창업하게 된 과정, 네임드 유튜버로서 초보 유튜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들, 성공적인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기술 등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나처럼 도티를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도티라는 사람과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도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도티처럼 성공적인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귀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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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 먹고 마시는 유럽 유랑기
문정훈 지음, 장준우 사진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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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내로라하는 '식신(食神)'들은 어떻게 여행할까.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이자 푸드비즈니스랩 소장 문정훈이 글을 쓰고, 셰프 겸 푸드라이터로 활동하는 장준우가 사진을 찍은 책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에 그 답이 나온다.

음식 산업을 연구하는 문정훈 교수는 국내외 가리지 않고 어딜 가든 주로 시골을 찾는다. 도시에도 좋은 음식, 좋은 식당이 많이 있지만, 그 나라, 그 지역의 먹거리, 식문화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단연 시골이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저자는 파리나 마르세유, 리옹 같은 대도시보다 시골을 선호한다. 이 책에는 프랑스 중동부에 위치한 부르고뉴 지방의 마콩, 브레스, 코트 도르와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프로방스 지방의 론 강 남부, 프로방스 알프스, 프로방스 지중해 지방을 저자가 직접 여행하고 먹고 마시며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음식은 브레스 토종닭, 정확히는 오븐에 익힌 토종닭에서 나온 닭기름이다. 닭고기도 아니고 닭기름이 별미라니?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브레스 닭이 품고 있다가 이제 더는 품지 못하겠다며 놓아버린 육즙"에 빵을 찍어 먹다가 너무 맛있어서 큰 빵 하나를 해치우고 또 해치우고 또 해치우고... 이제까지 닭 요리라면 치킨, 삼계탕, 닭볶음탕, 찜닭, 닭갈비 등등 다양하게 먹어봤고 또 엄청난 양을 먹어봤지만, 닭기름에 빵을 찍어 먹어본 적은 없고, 그 맛이 과연 치킨이나 삼계탕을 뛰어넘을지 의문이기에 어떤 맛일지 참 궁금하다.

프랑스 시골 하면 와인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는 전국 각지에 포도밭이 있고, 포도밭마다 고유한 개성과 특징이 있다. 이러한 개성과 특징은 와인에도 반영되어 각각의 독창적인 맛과 향으로 나타난다. 혹시라도 와인이 좋아서 프랑스 시골 여행을 하게 된다면 포도밭의 흙을 유심히 보거나 직접 만져보길 바란다. 흙의 질감을 느끼고 난 다음에 마시는 와인은 더욱 생생하고 특별할 테니. 참고로 저자가 강추하는 와인은 부르고뉴의 뫼르소 와인이다. 20만 원짜리 옷은 못 사도, 20만 원짜리 뫼르소 와인은 기꺼이 살 수 있을 정도. 이 또한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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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9 2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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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0 07: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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