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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서른 살, 까칠하게 용감하게
차희연 지음 / 홍익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 여성의 생각 변화
20살 - 이제 10대가 아닌 20대구나. 10대에 비해 늙은 것 같다.
21살 - 밑에 새내기가 들어오네? 이제 나도 헌내기구나.
22살 - 3학년, 이제 나도 대학 늦깎이구나.
23살 - 20살 아이들을 보면 난 이제 졸업 앞둔 늙은이가 된 기분.
24살 - 꽃다운 20대 초반이 다 지나갔네. 25살부터 늙는다는데 이제 1년 남았구나.
25살 - 나 이제 꺾이는 나이인 건가. 이때 관리 잘해야 된다던데.
26살 - 이제 나도 20대 후반으로 접어들겠구나.
27살 - 20대도 몇 년 안 남았다. 슬슬 결혼에 대해 진지해져야겠다.
28살 - 공포의 29살이 코앞이다. 29살 되면 우울해진다던데.
29살 - 영원할 것 같던 20대도 끝이구나. (p.74)
흔히 여자 나이 서른 살을 계란 한 판에 비유하는데, 막상 서른 살을 목전에 둔 스물아홉 살이 되고 보니 '그래서 뭐?' 라는 기분이다. 계란이 한 줄도 아니고 한 판이나 있으니 좋기만 하지, 랄까. 이런 쿨한(?) 태도는 20대 내내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하며 쌓인 일종의 내공(!) 덕분인지도 모른다. 위의 우스갯소리처럼 20살엔 10대가 아니라서, 21살엔 헌내기라서, 22살엔 대학 늦깎이라서 등등의 이유로 매일을 늙어간다는 기분으로 살았으니 이제 초연할 때도 되었다.
마침 만난 책의 제목도 <여자 서른 살, 까칠하게 용감하게>. 나이 같은 생물학적 기준이나, 결혼 적령기가 지났느니 어쩌니 하는 사회적 관념에 좌우되지 말고, 남들 눈에 까칠해 보이더라도 용감하게 자기만의 삶을 개척하는 여성이 되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라 더욱 반가웠다. 까칠함이 용감함으로 보일 수 있는 것 또한 서른 살, 삼십대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이십대엔 자칫 버릇없어 보일 수 있다).
저자 차희연은 대한상담심리치료학회 상임이사와 한국 기업윤리경영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감정 조절 코칭 전문가이다. 감정 조절과 여자 나이 서른이 무슨 상관인가 싶은데, 사실 여자의 서른은 남자의 마흔에 비교될 만큼 중요한 시기다. 결혼을 할까 말까, 직장에 남을까 말까, 아이를 가질까 말까 등 여자의 일생에서 중요한 정도로 1,2위를 다투는 선택들을 내려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스물아홉 살이 되고 보니, 전에는 공부든 일이든 연애든 먼저 내린 결정을 고치거나 바꿀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지 않고, 체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이미 들인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민한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감정 조절. 감정 조절은 단순히 아무런 표현도 안 하고 꾹 참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때와 장소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고, 안좋은 상황에서 감정대로만 행동하지 않도록 절제하는 것이다. 이십 대는 젊어서, 사회의 쓴 맛을 잘 몰라서 감정 조절을 잘 못해도 용서 받을 여지가 있었지만, 삼십 대는 어리지도 않고 사회의 쓴 맛을 모르는 나이도 아니다. 다가오는 큰 선택을 잘 하고, 관계에 있어서도 덜 실수하기 위해서는 감정 조절을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삼십 대 커리어 우먼이 개인적인 행복과 직장에서의 성공을 동시에 성취하는 방법과 감정 조절을 하는 방법에 대해 상세히 나와 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성들 스스로 약자의 삶을 택하지 말라는 것. 저자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온 주부에게 "당신에 대해서 설명해 보세요"라고 물으니 "저는 아들 둘을 둔 엄마고요,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요."라며 자기 자신이 아닌 남편과 자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사례를 소개한다. 비단 이 주부만이 아니라,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하면 직장이니 직위니 하는 사회적 지위로만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오롯한 나만의 개성과 취향을 찾아 가꾸는 것 또한 감정 조절 및 행복과 성공을 동시에 잡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고보니 나는 이십 대에 좋아하는 일을 찾고, 서평 블로거 활동을 몇 년째 즐겁게 하고 있고, 천 권의 책을 읽으며 내 안의 다양한 관심사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이제 이십 대에 뿌린 씨앗들을 삼십 대에 무럭무럭 잘 키워서 사오십 대에 수확하면 된달까? 다가오는 서른 살, 삼십 대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