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아버지들 -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진정한 아버지다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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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빛낸 효성스러운 아들딸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눈먼 아비를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 심청의 이름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먹을 것이 떨어지자 제 살을 베어 부모를 먹인 자식,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삼 년 동안 묘를 지킨 자식의 이야기는 동네마다 집안마다 하나둘씩 있다. 조선을 빛낸 아들딸을 키워낸 어머니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율곡 이이와 이매창 등 조선을 대표하는 관료와 예술가를 키워낸 신사임당,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라'는 말을 남긴 한석봉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에 반해 조선의 아버지들 이야기는 들어본 것이 없다. 있다 한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영조와 사도세자처럼 불행한 부자 관계뿐이다. 


<조선의 아버지들>을 쓴 과학기술교육대학교 교수 백승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왕따'에 가까운 소외감을 느끼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 현상에 대한 해법으로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고 배울 것을 제안한다. 물론 모든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고 배우라는 것은 아니다. 유교 원리를 지배 체제로 택한 조선 사회에선 권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가장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효도를 받아야지,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심청전>을 보더라도 심 봉사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 꽃다운 딸의 목숨을 앗아갔는데도 심판을 받지 않았다. 유교 사회는 오로지 자식만을 감시하고 자식에게만 효성을 강요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아버지들이 있었다. 15세기 성리학자 김숙자와 유계린, 16세기 성리학자 이황과 김인후, 명장 이순신과 명재상 이항복, 17세기 김장생과 박세당, 18~19세기를 대표하는 학자 이익, 정약용, 김정희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 11인의 아버지들과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불행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영조의 사례를 소개하며 오늘날 한국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자녀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이어서 아버지(정약용)는 절대 서울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서울에 살 자리를 마련하라." 그 이유는 간단했다. "문화(文華)의 안목(眼目)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pp.39-40) 


이 책에 소개된 아버지들은 조선 시대 선비 하며 떠오르는 엄격하고 고루한 이미지와 다르게 자상하고 다정하다. 이황은 자녀들에게 잔소리 대신 편지로 가르침을 전했고, 김인후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딸을 위해 비통에 찬 시문을 남겼다. 이항복은 아들과 손자가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친히 작성했고, 박세당은 병약한 아들이 눈에 밟힌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익은 자식들이 자신의 제사에 지나치게 공들이는 것을 염려해 검소하게 제사 지내는 법을 유언으로 남겼다. 


정약용은 18년 동안 귀양 생활을 하며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정약용은 아내가 보낸 낡은 치마폭을 잘라 <하피첩>이라는 서첩으로 만들어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인생의 교훈을 전했다. "하늘은 게으른 이를 미워하여 벌을 내린다.", "의복은 몸을 가릴 수 있으면 족하다.", "음식은 목숨만 연장하면 된다." 등 구구절절 고개가 끄덕여지는 교훈 중에서 "절대 서울을 떠나지 마라"는 교훈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죄인이라서 벼슬을 못한다고 시골로 내려가면 '문화(文華)'로부터 멀어진다. 지금은 폐족이지만 후손들을 위해 미래를 도모하라는 정약용의 당부가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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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귀양 생활 중에도 아들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친자식처럼 챙겼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