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판매완료


책 진도가 안 나간다 싶을 때는 추리 소설만 한 것이 없다. 추리 소설의 계절인 여름도 아닌데 요즘 들어 추리 소설만 내리읽는 건 그 때문이다. 


여기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형수가 있다. 이름은 사카키바라 료. 도쿄 구치소의 사형수 감방, 통칭 '제로 구역'에 수감된 지 7년째다. 사형 집행을 3개월 앞둔 어느 날, 사카키바라의 무죄를 밝히는 사람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익명의 의뢰인이 나타난다. 교도관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난고는 의뢰를 덥석 물고, 파트너로 상해 치사 전과자이자 보호 관찰 대상인 준이치를 택한다.


두 남자가 사건의 진상을 좇는 일종의 '버디 무비'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난고와 준이치의 사연은 사건 못지않게 무겁다. 준이치는 2년 전 술집에서 싸움에 휘말렸다가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로 실형을 살고 가석방되었다. 그동안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여자친구는 이별을 고했다. 난고는 고교 졸업 후 바로 교도관으로 임용되어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두 번의 사형집행 후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가족과 멀어졌다. 교도관이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낀 지 오래인 그는 현상금을 타면 사직서를 내고 빵집을 차릴 생각이다. 


처음엔 현상금이 목적이었지만, 사건의 진상을 좇으면서 난고와 준이치는 사카키바라의 무죄를 확신하고 진범을 잡겠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진다. 사형 제도를 회의하는 난고는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는 걸 원치 않고, 지은 죄보다 더 큰 벌을 받았다고 믿는 준이치는 무고한 사람이 죄를 뒤집어쓰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사건의 진상이 생각보다 훨씬 끔찍해 사형을 바라는 유족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법의 공정함과 형의 효과를 의심하게 된다. 


이 밖에도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범죄자로 추정해 사형을 선고해도 되는지, 보호 관찰 제도에 실효성이 있는지, 사적 제재는 유효한지, 사형 제도는 과연 필요악인지 등을 묻는다. 범죄자, 경찰관, 검찰관, 교도관, 가해자 유족, 피해자 유족 등 범죄에 관련된 사람들과 그들의 삶도 충실하게 묘사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국가(혹은 법)의 이름으로 인간이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이 죽음이어도 되는지를 묻는다. 


이제까지 마츠모토 세이초를 필두로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로 분류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13계단>도 범죄의 사회적 배경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사회파 추리소설로 분류될 수 있을 터. 게다가 이 소설은 죄를 규정하고 형을 집행하는 국가 제도를 철저하게 분석한다는 점 때문에 '사회파 추리소설을 완성한다'고 단언할 만하다. 이런 대작을 이제야 만나다니.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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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11-2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노사이드>도 추천요^^

키치 2016-11-22 17:41   좋아요 1 | URL
요즘 밤마다 읽고 있습니다. 흥미진진하네요 ^^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unnyL 2016-11-22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노사이드 추천이요~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어요^^

키치 2016-11-22 17:42   좋아요 0 | URL
요즘 밤마다 잠을 잊고 읽고 있습니다.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