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필요한 일곱 명의 심리학 친구 - 얕고 넓은 관계 속에서 진짜 내 편을 찾고 싶은 딸들을 위한 심리학
이정현 지음 / 센추리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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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니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했던 게 무색하게도 매일같이 폭식을 하고 있다. 일이 바쁘다고 먹고, 연애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먹고, 심지어는 너무 덥다고, 땀 많이 흘렸다고 먹고, 음식점 에어컨이 시원하다고 먹는다. 잘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어쩌다 보면 웬 먹방, 쿡방이 그렇게 많은지 비슷비슷한 이름의 쉐프들이 나와서 온갖 요리를, 그것도 나같은 요리 초보조차 시도해볼 만한 쉬운 요리를 선보인다. 자동적으로 그날 저녁, 그 다음날 저녁 메뉴까지 결정되는 편리한 세상이라니. 오로지 먹고 또 먹기 위해 사는 나날이다.


이런 내 눈에 <일곱명의 심리학 친구>라는 책의 서문이 들어왔다. '다이어트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떤 스타일로 이끌어나가는지 알 수 있다'니. 난 다이어트고 뭐고 미친듯이 먹고 있는데? 10년 넘게 정신과 의사로 활동해오며 거식증, 폭식증 등 식이장애를 가진 여성들을 치료해온 저자는 식이장애의 가장 큰 원인은 식습관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 특히 어린 시절 충족되지 않은 결핍이라고 설명한다. 스트레스만 받으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일단 먹고 보는 나의 태도는 대체 어린 시절의 어떤 결핍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만의 감정 다루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주로 배우는 환경은 가족, 그 중에서도 엄마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며 어느 정도 이상의 교육 수준을 가진 엄마들이 주로 많이 쓰는 방법이 바로 '감정 축소'다. 이러한 유형의 엄마는 아이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머지 대개 무관심하거나 무시한다. ... "괜찮아, 주연이는 늘 잘하잖아." "엄마 아빤 주연이를 믿어" "선생님께 혼날 수도 있지 뭐" "어떻게 모든 친구가 널 좋아하겠어. 그래도 너를 좋아해주는 친구가 많잖아?" "힘든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게 있을 거야"라는 말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불안한 아이의 감정을 묻어버린다. 아이가 어려움을 툴툴 털고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안하고 두렵고 무서운 감정들을 별것 아닌 듯 축소해 버린다. (pp.35-6)



식이장애는 착해야 한다, 예뻐야 한다, 조금 더 잘해야 한다는 의무에 사로잡혀 사는 여성,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는 여성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이런 여성들에게 필요한 일곱 친구로 엄마, 독립, 일, 스타일, 친구, 감정, 나 자신을 드는데, 이 중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것이 엄마 문제다. 엄마와 딸은 대체로 아빠와 딸, 엄마와 아들보다 가깝고 친밀하며 그만큼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저자는 엄마가 딸에게 보일 수 있는 안좋은 태도 중 하나로 '감정 축소'를 든다. 감정 축소란 아이가 슬픔,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을 표현하면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괜찮다, 잘 될 거다라는 식으로 위로하기 급급하며 회피하는 것이다. "괜찮아, 주연이는 늘 잘하잖아." "엄마 아빤 주연이를 믿어" "선생님께 혼날 수도 있지 뭐" "어떻게 모든 친구가 널 좋아하겠어. 그래도 너를 좋아해주는 친구가 많잖아?" "힘든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게 있을 거야" 같은 말을 나도 자주 하는데, 생각해보니 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 같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시험을 망치거나 친구와 싸우거나 일이 잘 안 풀려서 힘들 때 하소연할 곳이 없고, 남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부담스러워 피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놓친 친구, 남자가 몇 명이었던가. 더 늦기 전에 엄마 문제, 꼭 해결해야겠다.



자신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게 비단 은영 씨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20,30대 여성이 자신의 감정을 읽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간혹 철딱서니 없고 현실감이 떨어져 보여도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자기감정을 살피고 드러내는 일이다. ... 은영 씨는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는 착한 딸, 옆에 두고 싶은 친구, 인정받는 직장인이기 위해 본인만의 '자아' 찾기를 미뤘다. 그렇게 서른이 된 후 껍데기만 남은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참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삶을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p.253)



사귀어야 하는 친구는 엄마만이 아니다. 독립도 해야 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도 찾아야 하며,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발견하고,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귀고, 온갖 감정을 느끼며, 종국에는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 자신과 합일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고독을 권한다. 능동적인 고독과 수동적인 외로움은 다르다. 애인이나 배우자가 있든 없든, 가족이나 친구가 곁에 있든 없든 간에 혼자 있는 상태를 온전히 즐기고 만끽하는 것이 진정한 고독이다. 



독은 또한 일부러 여행을 떠나거나 그럴싸한 취미나 문화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혼자서 밀린 일을 하거나 고지서를 정리하거나 빨래를 개는 일에서도 고독을 누릴 수 있다. 생각해보니 화난다고 슬프다고 음식을 먹을 때 온전히 혼자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부러 친구를 부르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TV나 인터넷을 켜고 마구 '흡입'했다. 차라리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면 그토록 음식에만 매달리지 않았을 텐데. 앞으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을 찾는 대신 혼자서 운동을 하거나 청소를 해야겠다. 아니면 오늘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그러고보면 독서는 다이어트에 참 좋은 취미다. 책장에 뭐가 묻을까봐 뭘 먹을 수도 없고, 오롯이 혼자서 하는 취미이니 고독을 즐길 수도 있다. 폭식 대신 '폭서(暴書)'를 올 여름 다이어트 방법으로 제안해볼까나? 일단 내가 성공하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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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7-1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정축소....제가 특히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네요. 축소라....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