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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 폴 크루그먼, 침체의 끝을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2000년대 이후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폴 크루그먼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다. 나는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 국제경제학 과목을 들으면서 그를 처음 알았다. 수많은 학자들 중에서 그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는 이유는, 교수님이 그의 굉장한 팬이셨는지 매 시간마다 그의 에세이나 그가 쓴 저널을 프린트해서 읽어보라고 나눠주셨기 때문이다. 얼마 전 문득 그 때 생각이 나서 폴 크루그먼의 책 중에 교수님이 소개해주셨던 책 몇 권을 구입했다. 대부분이 90년대에 나온 책이라서 해묵은 느낌도 들었지만(반값도서도 적지 않았다 ^^;;;), 세계경제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과 특유의 명쾌한 논리는 지금 읽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그렇게 그의 예전 책들을 읽던 중에 신간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가 국내에 출간되었다. 90년대에 나온 책들을 읽다가 갑자기 따끈따끈한 신간을 읽자니 시간이 붕 뜬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과거에 쓴 글과 최근의 글을 동시에 읽으며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고,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심각해졌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내가 이런데 그는 얼마나 절박하고 애타는 심정일까.  



이 책에서 그는 주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촉발된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와 그 이후의 전세계적인 불황에 대해 논한다. 이미 90년대 남미 재정위기, 아시아 금융위기, 일본의 장기화된 불황 등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는 그는 이 책에서 그 동안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경제위기가 사그러들기는커녕 전세계적으로 퍼지며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개탄했다. 게다가 대공황, 석유 파동 등을 거치며 어느 정도 위기로부터 회복하는 능력 - 회복탄력성 - 을 갖추었다고 여겨졌던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의 불황의 근원지가 되고 있다는 사실과, 이 때까지 속수무책이었던 정치인과 관료, 학자, 금융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재앙이 특별히 예외적인 것도 아니다. 과거 대공황 시절 정치인들에겐 변명의 여지가 있었다. 그때는 어느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금의 고통을 끝내버릴 수 있는 지식과 방법을 '모두' 알고 있다." (p.38) 그러나 그는 비판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그 대신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양적 완화'다. 그가 스스로를 '신케인지언'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양적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가 불황으로부터 충분히 극복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슬금슬금 긴축정책과 출구전략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그의 주장은 문제시 되기에 충분하다.  
 
 
양적 완화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그는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그 중에서 나는 그가 이미 다른 책에서 여러번 언급한 바 있는 육아협동조합 쿠폰 시스템 사례가 가장 직관적이고 이해하기에 쉬웠다. 근처에 사는 젊은 부부 150쌍이 서로 아이를 돌봐주는 조합을 형성하여 각각 20장의 쿠폰을 가지고 쿠폰 한 장당 30분의 육아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부부들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쿠폰을 아끼느라 아무도 쿠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에서는 쿠폰을 더 많이 발행했다. 그랬더니 부부들은 늘어난 쿠폰의 수만큼 다시 육아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다시 쿠폰이 원활화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크루그먼이 제시한 이 사례는 '절약의 역설'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자본주의는 절약이 아닌 소비라는 혈액을 통해 심장이 뛰는 시스템이다. 모두가 필요한 것만 소비하고, 아끼고 덜 쓰면, 개인의 경제 상태는 좋아질 수 있어도 사회 전체 후생은 증가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는 개인에게도 악영향을 준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필요하지 않은 것, 즉 '쓸데없는 것'에 대한 소비가 경제를 살린다는 생각을 했다. 쓸데없는 것에 대한 소비는 말 그대로 과소비, 무분별한 지출, 낭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긴축재정 하에서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쉬운 부문 - 예를 들면 책이나 영화, 스포츠 같은 문화생활 관련 지출이나 복지 등 사회적 재분배를 위한 지출을 뜻한다. 긴축이 문제라면, 유효수요의 부족이 문제라면, 이러한 부문에 대한 지출이 늘어날수록 제반 산업이 발전하고 경제가 활성화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러한 양적 완화, 정부지출 증가가 순기능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후폭풍이 따른다. 하지만 물가 상승이 무서워서 안 한다면 당장 급한 불인 경기부양이라는 숙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결국 경제란 예측, 예방으로서의 학문이 아니라 문제가 일어나고 난 뒤에야 조치가 가능한 처방, 사후처리로서의 학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조차도 못한다면 경제학은 정말 '쓸데없는' 학문으로 전락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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