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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15/pimg_7796361644570719.jpg)
나의 어머니는 지금의 대청댐 자리인 충북 청주시 문의면에서 태어났다. 나의 외가는 어머니가 두 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약 삼십 년을 서울에서 쭉 살다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외할머니와 외삼촌 가족은 다시 대청댐에서 가까운 대전으로 이사했다. 나의 외가가 있던 자리는 예전에 수몰되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같은 마을에 살던 친척과 이웃들도 전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런데도 서울에서 살면서 마련한 기반을 전부 버리고 돌아간 걸 보면, 나의 외할머니와 외삼촌 가족은 그곳이야말로 그들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소라고 느끼는 것 같다.
셸리 리드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에는 나의 외가처럼 댐 건설로 인해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1948년 미국 서부 콜로라도 주. 열일곱 살의 빅토리아는 아버지, 남동생, 이모부와 함께 살고 있다. 빅토리아가 열두 살 때 빅토리아의 어머니와 오빠, 이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열두 살이면 아직 어른의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나이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집안의 유일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어린 나이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가족 사업인 복숭아 농사와 판매도 거들고 말썽꾸러기 남동생도 보살펴야 했다. 학교에 다니거나 친구를 사귀는 건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빅토리아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그동안 마을에서 본 적 없는 이 남자의 이름은 윌슨 문. 그는 이제껏 빅토리아가 그 어떤 사람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따뜻한 눈길과 친절한 태도, 사려 깊은 말로 단번에 빅토리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인 데다가 아메리칸 원주민 출신인 그를 혐오하고 차별한다.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빅토리아의 남동생은 윌슨 문이 빅토리아 주변에 다시 나타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빅토리아는 당장이라도 윌슨 문과 함께 마을을 떠나고 싶지만, 잘 모르는 남자와 마을 밖에 나가서 산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빅토리아에게 고향은 애증의 대상이다. 빅토리아의 고향은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이웃끼리 가깝고 친하지만 약자, 소수자를 차별하고 외부인을 배척한다. 빅토리아의 고향은 산으로 강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 답답한 공간이지만 바로 그 산과 강 덕분에 전국에서 가장 품질 좋은 복숭아를 생산할 수 있다. 빅토리아는 고향 사람들이 준 상처를 고향의 자연으로부터 치유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향이라고 느끼는 장소의 요체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일까. 자연을 잊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언제든 삶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