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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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로키>를 즐겁게 보고 있다. 이 드라마에는 '타임라인'이라는 단어가 여러번 나오는데, 그도 그럴 게 정상적인 하나의 타임라인을 지키려고 애쓰는 타임키퍼들과 타임라인을 벗어나거나 교란시키는 변종들의 싸움을 그린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읽으면서 '타임라인'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생각났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 중에는 현재의 '나'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내용이 유난히 많다. 과거의 기억은 대부분 상실이나 결손 같은 부정적인 것이 많고, 현재의 '나'는 그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관계를 회복하거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는 실감하지 못한 감정을 확인하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불합리, 모순 등을 인식하면서 더 큰 고통이나 허무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가 아닐까.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소속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고 여전히 괴로운 우리들은, 피자 위에 놓인 페퍼로니처럼 그저 소소하게 좋아하는 것들(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해서만 연결된 감정을 느낄 뿐이므로. 이런 답답한 생각, 무거운 감정을 담고 있는 책이라서 읽는 내내 울적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조금 후련하기도 했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모든 건 결국 지나가고 사라질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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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모자 2021-11-25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으로 이민 간 이탈리아인들이 자신들이 먹던 살라미를 미국인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페퍼가 들어간 소세지라는 의미로 ‘페퍼로니‘라고 얼버무렸다죠.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신의 복잡한 상황과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남들에게는 ‘페퍼로니‘라고 거칠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지요.
인물들은 시간을 관통하면서 ‘살라미‘라는 이름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에 도착했기에 ‘우리‘가 함께 왔던 예전 그곳의 이름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되었죠.
그것은 소설 중반 고전 강의 시간에 나온 ‘우리임‘이 불가능한 세계, 어른이 되어버려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눈 떠버린 이후로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는, 앞으로 가야 할 길도 잃은 장님의 처지이기도 하죠.

키치 2021-11-25 15:36   좋아요 1 | URL
와.. 저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설명과 해석이네요.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