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년, 이 책을 쓴 조던 피터슨은 유례 없이 힘든 한 해를 보냈다. 1월에는 딸 미카엘라가 인공 발목을 교체하는 수술을 받았고, 3월에는 아내 태미가 신장암 진단을 받고 힘든 수술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저자의 우울증이 도져서 지독한 불안과 수면 과잉 상태에 시달렸고 종국에는 항우울제 금단 증상 전문 병원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20년 초에는 폐렴에 걸려서 또다시 병원에 입원했고, 한동안 의학적 혼수상태에 놓여 있다가 깨어난 후에는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이후 무사히 미국에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 팬데믹이 발생했다. 


저자는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을 무사히 버텨낼 수 있었던 건, 그전부터 간직해 온 용기와 인내, 가족들의 사랑과 친구들의 우정 덕분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독자들 개개인이 마주하고 있는 혼돈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또한 이러한 긍정적인 마음 자세라고 조언한다. 나아가 저자는 혼돈에 반대되는 개념인 질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질서란 잘 통제된, 안정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완벽하게 통제된 상태란 없고, 오히려 완벽하게 통제된 상태일수록 맹목적이고 흉포한 상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완벽한 혼돈과 완벽한 질서 모두를 거부하고 적절한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길로 저자는 다음의 12가지 법칙을 제시한다.

 

1. 기존 제도나 창의적 변화를 함부로 깎아내리지 마라. 

2. 내가 누구일 수 있는지 상상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아라. 

3. 원치 않는 것을 안갯속에 묻어두지 마라. 

4. 남들이 책임을 방기한 곳에 기회가 숨어 있음을 인식하라. 

5.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마라. 

6.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7. 최소한 한 가지 일에 최대한 파고들고 그 결과를 지켜보라. 

8. 방 하나를 할 수 있는 한 아름답게 꾸며보라. 

9.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다면 아주 자세하게 글로 써보라. 

10. 관계의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 성실히 계획하고 관리하라. 

11. 분개하거나 거짓되거나 교만하지 마라. 

12.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 


제목만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6번째 장 '이데올로기를 버려라'에서 저자는 "보수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인종 및 젠더 사상, 포스트모더니즘 환경주의 등의 각종 '주의ism'들을 믿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는 맹신이나 무비판적 수용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수긍할 만하지만, 결과적으로 현상을 유지하고 약자,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과도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는 지양하는 것이 맞지만, 일제강점기 같은 식민 통치 하에서 피지배 국민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무조건 그르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페미니즘이 일부 선량한 남성들을 가해자 취급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데, 같은 논리라면 일부 선량한 백인들을 가해자 취급하는 흑인 인권 운동도 잘못인가. 


이 밖에도 동의하기 힘든 내용이 많은 책이었지만, 저자의 직업이 심리학자임을 감안하면 왜 이런 책을 썼는지 알 것도 같다. 일례로 저자는 어릴 때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자를 상담한 적이 있다. 저자는 내담자에게 과거의 기억을 자세히 떠올려보라고 주문한 뒤, 그때는 내담자도 어렸지만 사촌 오빠 또한 어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이제 내담자는 충분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더는 그와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 위로해 준다. 이는 아마도 오랫동안 큰 고통을 받아온 내담자에게는 위안이 되고 나아가서는 치유가 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친족 간에 이루어지는 성폭행과 이에 대한 처벌이 바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당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저자(심리학자)의 처방이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과연 사회 전체에도 그러할까. 심리학 이론이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저자가 그토록 경계하는 이데올로기와 무엇이 다를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북사랑 2021-04-28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부터 한 30페이지쯤 읽었는데 어마무시한 판매지수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어요. 키치님께서 마지막에 던져주신 질문 품으며 나머지도 읽어볼게요^^ 이분 동영상을 꾸준히 찾아서 보았는데, 건강이 안 좋다고는 싶었어도 이정도일지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