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시라이 사토시 지음,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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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자본론>을 일반 대중들도 알기 쉽게 해설한 책은 몇 권인가 읽어봤지만, <자본론>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나와 달리, 일본의 정치경제학자 시라이 사토시는 학부 시절에 이미 <자본론>을 여러 번 정독했다고 한다. 백화점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틈틈이 읽었는데, 책상 앞에서 읽었다면 흘려 넘겼을 내용을 노동 현장에서 읽으니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백화점 담당자와 점장, 점장과 아르바이트생, 판매원과 손님의 관계가 <자본론> 속 대자본과 소자본, 자본가와 노동자, 상품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와 쉽게 연결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부조리와 고통의 이유를 제시하는 책이다. 왜 매일 갑갑한 정장 차림으로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야 하는지, 왜 열심히 일하는 나는 쥐꼬리만한 돈밖에 못 버는데 부동산, 주식 투자하는 사람들은 큰돈을 버는지, 왜 작은 동네 식당이 없어진 자리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서고 국내 기업의 자리를 글로벌 기업이 대체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자본주의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도 알게 해준다. 과거에도 상품 매매 행위는 존재했다. 우리 조상들도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쌀이나 베 등으로 값을 치렀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상품 매매 행위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이러한 상품의 생산, 매매, 소비가 사회의 전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쉬운 예로,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물을 사서 마신다고 하면 공짜인 물을 왜 사서 마시느냐고 코웃음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누구나 물을 사서 마신다. 공공재였던 물이 생산과 소비의 대상인 상품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상품의 생산과 소비를 통한 화폐 교환 활동이 사회의 전 영역에 침투하면서 일어난 변화는 이것만이 아니다. 기존의 노동자 계급은 이제 자신들을 노동자 계급이 아닌 소비자로 인식하게 되었고, 하루빨리 노동자 계급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오늘날의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을 수업료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서비스인지 아닌지로 평가한다. 아마도 그 학생들은 집에서 부모에게 "너를 키우는 데 든 비용과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요구받고 있지 않을까. 많은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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