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외 지음 / 북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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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만들고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를 쓴 영화감독 이길보라의 신간이 나왔다. 제목은 <기억의 전쟁>. 이 책은 저자가 만든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 과정을 담고 있다. 함께 영화를 만든 곽소진, 서새롬, 조소나가 공저자로 참여했다. 


영화 촬영 기간은 공식적으로 5년이지만, 영화의 바탕이 되는 기억들이 쌓인 건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이길보라 감독의 할아버지는 베트남 전쟁 참전군인이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암 투병까지 했지만, 할아버지는 평생 자신이 참전 용사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몇 년 후 저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 군인들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베트남 전쟁 당시 뭘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하는 수없이 할머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드렸는데, 그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할아버지가 참전을 택한 이유를 알게 된 저자는 더 이상 베트남 전쟁이 자신과 무관한 역사적 사건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국가에 의한 폭력이, '정상적인 남성'에 의해 가해지는 여성, 장애인에 대한 차별 및 혐오와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저자는 베트남으로 직접 가서 베트남 전쟁 피해자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사죄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증오부터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고, 두려워하며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마을에는 베트남 양민을 학살하는 한국 군인의 모습을 담은 동상이 있었고, 어떤 마을에는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가 있었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은 무덤 또 무덤... 한국인들이 덕분에 큰돈을 벌어서 잘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베트남 전쟁의 이면에는, 기억되지 못한 죽음과 기억을 지우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파렴치한 모습이 있었다. 


아직 영화를 못 봐서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단편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가까운 시일 내에 영화를 보고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을 생각이다. 그때는 이 책에 적힌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에 더욱 사무치겠지. 사무친 문장들이 역사를 위로하고 현실을 바꾸는 동력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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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1-02-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전 영화만 봤는데 책으나왔군요. 재판에 관한 걸 보니 이 사안도 현재진행형인 것이 분명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