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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물 ㅣ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유튜브 채널 <편집자 k>를 운영하는 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 님의 책 <문학책 만드는 법>을 읽고 구입한 책이다. <문학책 만드는 법>에 이 책의 표지 탄생 비하인드스토리가 실려 있는데, 편집자 님에 따르면 배수아 작가 님이 다른 건 전부 편집자 님 마음대로 하시되 이 사진을 꼭 표지로 써달라고 부탁하셔서 대체 어떤 사진인가 하고 봤더니 여성의 나체 사진이라 적잖이 난감하셨다고. 어떻게 하면 배수아 작가 님의 의도를 만족하면서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당혹감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탄생한 표지가 바로 이것. "이 비밀스러운 결속이 나는 기쁘다."라는 문장을 책띠에 인쇄할 문구를 고른 이유도 나오는데, 이유를 몰라도 멋진 문장이지만 이유를 알고 나니 더 멋지게 느껴졌다(배수아 작가 님을 향한 편집자 님의 뿜뿜한 애정이 느껴졌다).
책에는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마다 다른 제목이 붙어 있지만, 자세히 보면 겹치는 부분이 더러 보인다. 가령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의 아버지 없는 아이와 <노인 울라에서>에서 아버지를 찾는 아이는 동일 인물로 보인다. <뱀과 물>에서 전학 온 소녀와 <도둑 자매>에서 유괴를 당한 소녀 역시 겹쳐 보인다. 다른 듯 닮은 이야기, 겹치지만 묘하게 어긋나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모든 기억은 망상"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에요.", <1979>중에서)
누구에게나 이것이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있겠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볼 수 없다. 각자가 믿고 있는 현실에는 각자의 편의나 이익에 따라 수정되고 삭제되고 편집되고 조작된 것들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 역시 진실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현실일 것이라고 믿으며 읽었다. 내 눈에는 기이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장면들도 누군가에게는 그 무엇보다 사실적이고 벗어나기 힘든 현실일 터. 망상과 망상 아닌 것은 대체 누가 구분할까. 나의 망상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이고, 나의 현실이 누군가에게는 터무니없는 망상일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집 속의 낯설고 기묘한 세계로부터 눈을 떼고 싶지 않았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