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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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일색인 역사에서 여성의 이름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유사 이래 인구의 절반은 늘 여성이었으며, 여성들도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겪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도 마찬가지다. 고교 시절,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정부의 수탈을 피해 해외로 이주한 동포들의 역사를 배웠던 것을 기억한다. 그중에는 하와이로 이주한 동포들의 역사도 있었고, 대한인국민회와 박용만, 이승만 같은 이름들을 함께 배웠던 것도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 하와이로 간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배운 적도 없고 알려고 한 적도 없었다. 이금이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1917년 경상도 김해의 작은 마을. 열여덟 살 소녀 버들은 앞으로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아버지는 오래전 의병 전쟁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었고, 손위 오빠는 일본 순사에게 대들었다가 죽었다. 어머니와 함께 삯바느질을 하면서 어린 남동생들을 건사하며 살고 있던 버들은 오랜만에 마을을 찾은 부산 아지매의 소개로 '포와(하와이)'에 괜찮은 신랑감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포와'에 가면 배불리 먹고 돈도 많이 벌고 공부까지 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한 버들은 어머니 몰래 부산 아지매를 불러서 '사진결혼'이라는 걸 시켜달라고 한다. 사진결혼이란 신랑 신부가 중매쟁이를 통해 서로의 사진만 보고 결혼을 하는,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결혼 방식이다.


버들이 사진결혼을 한다고 하자 친구 홍주도 따라나선다. 홍주는 시집간 지 몇 달 안 되어 남편이 죽는 바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 '남편 잡아먹었다'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집 안에만 처박혀 있던 차에 아예 조선 땅을 떠날 수 있다니 그저 좋았다. 버들과 홍주는 부산 아지매 집에서 같은 동네 출신인 송화를 만난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무당인 송화는 조선 땅에 있어 봤자 천출이라 고생할 게 뻔하다는 어머니의 판단으로 사진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버들, 홍주, 송화는 포와에 가면 멋진 신랑도 있고 조선에서와 달리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풀어 포와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하지만 막상 포와에 도착하자 그들의 상상과 전혀 다른 일들이 펼쳐지는데...


나라면 어땠을까. 포와에 도착해 부산 아지매가 들려준 이야기가 사실이 아님을 알았을 때.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외국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함을 깨달았을 때. 차별과 가난을 피해 포와에 왔건만 포와에도 차별과 가난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같은 조선인들끼리 힘을 모으기는커녕 서로 반목하고 갈등할 때. 나라면 힘든 현실을 이겨낼 방도를 찾기보다는 현실이 힘들다는 핑계로 도망치거나 포기하는 길을 택했을 것 같다.


버들과 홍주, 송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여도 현실에서 도망치거나 생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쪽을 택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버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고,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품으려고 노력했다. 홍주는 홍주답게 대담한 방식으로, 송화는 송화답게 부드러운 방식으로 서로를 감싸주고 받쳐줬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가족도 없는 곳에서, 서로가 서로의 입과 귀가 되고 가족이 되었다.


이렇게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고 세상까지 바꾼 '여성들의 역사'는 사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나 존재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성들의 역사에 무지하고 무심한 것은, 이제까지 역사가 남성들의 역사(his-tory)인 줄 모르고 역사 공부를 해온 까닭이다. 여성들의 역사를 알지 못하니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성들을 무시하고 비하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역사가 더 많이 발굴되고 구전되고 서술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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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s1815 2020-04-0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은 이렇게 쓰는거구나! 배우고갑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