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아트로 레알이 최근 공개한 또다른 방역오페라... 라고 생각했는데, 방역수칙을 완전히 무시했다. 거리두기를 철저히 한 '라 트라비아타'가 반응이 좋지 않았는지, 아니면 이제는 바이러스 쯤은 괜찮다고 생각하는건지...

 

루살카는 발을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는 발레리나로 분했다. 발레리나가 발을 다쳤으니 얼마나 자존감이 바닥이겠는가. 목소리와 맞바꿀 정도로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연출이 솔직히 지루했다. 다만, 루살카 역의 아스믹 그리고리안의 발레 연기는 평가할 만하다. 원래 좀 했는지, 아니면 이 연출을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한건지는 알 수 없으나 발 끝으로 걷기가 진짜 발레리나 같았다. 음악이나 성악은 높이 평가하긴 어렵지만, 그리고리안의 음색만은 돋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0년 12월 7일 바렌보임이 라 스칼라에서 지휘한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가 내가 감상한 100번째 오페라 공연물이 되었다(봤어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제외). 그 간 20명의 작곡가의 52편의 작품을 보았는데, 이제 스탠더드로 분류된다는 150개 작품을 보고 이짓을 그만둬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올해는 (시간도 많기도 했지만) 6월부터 몰아서 보기 시작하면서 조금 숨가쁘게 달려왔던 것 같다. 그간 감상한 프로덕션들을 엑셀파일에 정리했는데, 복기하는 의미에서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몇가지 순위를 매겨봤다.

 

 *

 

□ 작곡가 별 감상한 작품 수

 

1. 베르디: 11개

 

 

 

 

 

 

 

 

 

 

 

 

베르디는 작품 수도 많거니와 이전 벨칸토 오페라와 다르게 연극적인 요소를 강화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완성자이다. 대중성 뿐 아니라 실험 정신도 뛰어나 '시몬 보카네그라' 같은 독특한 위치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27개 오페라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에 비유하더라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 깊이를 알고 싶어 우선은 중후기의 작품들만 주로 봤다.

 

2. 푸치니: 7개 

 

 

 

 

 

 

 

 

푸치니의 선율은 가히 최고다. 이전까지 나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작곡가는 슈베르트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적 감수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관현악을 동시에 감상하려면 푸치니만한 게 없는 것 같다. 

 

3. 모차르트: 5개

 

 

 

 

 

 

 

 

 

오페라 처음보기 시작할 때 모차르트의 작품은 '저속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초짜의 오만이었지. '돈 조반니'와 '코지 판 투테'는 나의 최애작품이 되었다(오히려 가장 유명한 '피가로의 결혼'과 '마술피리'는 지루하다). '티토의 자비'와 같은 세리아 역시 괜찮았다.

 

 

□ 작품 별 감상한 프로덕션 수

 1. 라 트라비아타: 12개

'라 트라비아타'는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새로운 비올레타, 새로운 연출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2. 리골레토: 6개

이에 비해, 리골레토는 이제 좀 질려서 덜 보는 중. 그래도 '아름다운 아가씨' 4중창은 좋다. 

 

 

 

 

3. 돈 조반니, 일 트로바토레, 라 보엠, 토스카: 각 4개

 

 

 

 

 

 

 

'돈 조반니'는 곧 '라 트라비아타'를 따라잡을 것 같고, '일 트로바토레'는 한때 가장 많이 봤지만 지금은 주춤. 푸치니의 작품은 '토스카'를 더 좋아했지만, 지금은 '라 보엠'과 거의 대등해졌다.

 

 

□ 인상적인 프로덕션 5

가장 재미있게 본, 가장 놀라웠던 프로덕션을 순위 없이 5개 꼽았다. 물론 구력이 쌓이거나 다시 보게 되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돈 조반니(잘츠부르크, 2014)

돈 조반니는 내가 보았던 4개가 다 좋은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처음 보았던 이 프로덕션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도 있구나'는 걸 처음으로 느꼈고 끝까지 한시도 지루하지 않았다. 연출 자체는 평범하지만, 무엇보다 석상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르칸젤로의 연기는 정열적이면서도 느끼하거나 밉지 않다.

 

 

 

 

피에라브라스(취리히, 2007)

나는 오페라를 보기 전 슈베르트를 매우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처음 보았던 잘츠부르크 공연이 충격적으로 재미가 없어 좌절했는데, 두번째로 본 클라우스 구트의 이 프로덕션은 충격적일 만큼 재미있었다. 작곡가가 이 오페라를 기획한다는 설정을 보면서, 구로사와 아키라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본이 허접해도 연출이 좋으면 통한다.

 

 

 

 

라 트라비아타(잘츠부르크, 2005)

두말할 필요 없는 오페라 공연물의 레전드. 미니멀리즘 공연 중에서도 이만한 걸 보기는 당분간 힘들 것 같다. 무대 디자인도 대단하지만, 내내 무대 위를 배회하는 노인의 정체는 '유주얼 서스펙트' 급의 반전이었다. 

 

 

 

 

 

 

라 트라비아타(라 페니체, 2006)

Top 5에 '라 트라비아타'를 두 개 꼽더라도 갈등이 없다. 그러나 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부먹이냐 찍먹이냐와 같이 심각한 실존적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로버트 카슨이 연출한 이 프로덕션을 보고비로소 내가 이 작품을 진짜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사회 비판적 메시지는 그 어느 프로덕션보다도 강렬하다.

 

 

 

 

루살카(뮌헨, 2010)

패륜적인데 무대감독의 똘끼가 상상을 초월한다. 원작의 동화같은 이야기와 오스트리아 등에서 발생한 두 개의 감금-성폭력 사건을 믹스했는데, 대본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는 걸 보면서 도대체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읽기 2022-04-0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감삼평 잘봤습니다 덕분에 뭘볼까 고민하는 초보인 저에게 길잡이가 되었네요
 
[수입] [블루레이] 바그너 :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 [4Blu-ray 한글자막]
마이어 (Waltraud Meier) 감독, 바그너 (Wilhelm Richard Wagn / Arthaus Musik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나의 세번째 반지이자 100번째 접하는 오페라 공연 영상물이다. 꼬박 5일 걸렸다. 보기 위해 한달 여 전 바그너 평전을 읽었고 풍월당의 대본집을 다시 정독했으며 닐 게이먼의 '북유럽 신화'를 읽는 등 사전 준비를 꽤 했는데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으므로 이번 감상포인트는 관현악에 두었다. 아직 귀에 익은 유도동기들이 몇 개 안되기 때문에 이번엔 좀 많이 잡아내려 했다.

 

바렌보임이 지휘한 반지는 처음인데, 관현악 파트의 긴장감이 최고다. 연출은 빛을 이용한 무대 색감과 백스크린 영상이 굉장히 고급지다. 직접적인 표현은 최대한 자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감나게 잘 표현했다(숲, 용 파프터 등). 안무가 있다는 게 독특한데, 단순히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춤추는 게 아니고 직접 사건진행에 참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검은 색 옷 입고 뭐 소품을 끌거나 미는 다른 연출들과 달리 그냥 대놓고 연출의 일부로 가져가는 것이다.

 

보탄, 브륀힐데 등 대부분의 배역이 매번 바뀌는 게 아쉬울 수는 있겠으나 뒤집으면 비교해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되겠다. 의외로 하겐 역의 미하일 페트렌코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판매 중인 링 싸이클 블루레이 중 거의 유일하게 한글이 지원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일 것 같다. 번역 수준도 높고 꼼꼼하다. 링 사이클을 처음 보는 사람은 원전에 충실한 연출(메트 판)과 좋은 한글자막 (라 스칼라 판) 중 개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 - 한국 보수를 향한 바깥의 시선
진중권 지음 / 동아일보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보논객 진중권이 주간동아에 10여회 연재한 '대안으로서 보수의 재건' 주제의 칼럼 모음집이다. 한국일보에 연재한 '트루스 오디세이'와 달리 별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묶은 것 같다. 건진 건 부록으로 실린 김종인과의 대담 정도.

책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두가지이다.

1. 보수 생존 방안. 철지난 반공주의, 시장만능주의에 매몰되어 있고, 정부 수립 이후 항상 '갑'의 지위에 있어왔기에 아직도 자기들이 주류라고 착각한다는 것. 현실은 땅 속에 들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운동권들이 김대중-노무현 때 인터넷-벤처로 진출한 동년배들과 함께 사회 주류로 자리잡았음에도. 이는 최근에 읽은 강원철 교수의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의 분석과 통하는 면이 있다. 영국 보수당은 300년을 유지하는데 있어 구 체제의 유지를 목표로 하지 않고, 시대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젊은 보수주의자들을 양성하고, 교육, 사회보장제도 등 진보진영의 아젠다를 선점함으로써 프랑스와 같은 대혁명을 피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국왕중심의 의원내각제, 귀족으로 구성된 상원 등). 진중권도 박정희 사회보장제도, 이명박 시내버스운영체계 등을 통해 보수도 진보아젠다를 끌여들이는 등 유연성을 발휘하라고 조언한다.

2. 싸움의 기술. 586 운동권 출신은 선전-선동의 도사이고, 프레이밍 전략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니, 상대방의 프레임에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공격할 것. 구 보수는 언제나 갑이었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본인들의 문제가 왜 문제인지 모른다는 게 문제이다. 오거돈-박원순 등 일련의 사건으로 민주당의 도덕적 우위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 민주당의 주장을 점검하여 민주당 정책 전부가 아닌, '내로남불' 부분을 국지적으로 공격하면 지지를 얻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지금 민주당에 환멸을 느끼고, '존경받는 보수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에 관련 책들을 뒤적이고 있는데(그렇다고 지금의 국힘을 찍을 건 아니고), 이 책이 다이제스트로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만 읽어도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 - 한국 보수를 향한 바깥의 시선
진중권 지음 / 동아일보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간 뜨자마자 주문함. 주간동아에서 읽긴 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